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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엄마들이 뿔났다. 광우병 때문에…

"아이들 급식, 남편들 회식 자리 위험해져"

엄마들은 어설펐다.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김은혜 생협 이사장의 독려에도 좀처럼 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엄마는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는 내내 손을 벌벌 떨기도 했다.

엄마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투정부리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쏜살같이 광화문으로 달려왔다. 숙취가 안 풀렸다며 피곤해하는 남편 아침밥을 챙겨주고 길거리로 나왔다. 엄마들은 마음을 담아 외쳤다.

"쇠고기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합니다. 엄마들은 마음에 진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 머리에 뿔이 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급식, 남편들의 회식 자리가 위험해졌습니다. 쇠고기 협상이 철회될 때까지 엄마들은 싸울 것입니다."

"전쟁통에 피죽 먹고 자랐지만 광우병 쇠고기는 먹지 않았다"
▲ 엄마들이 길거리로 나왔다.ⓒ프레시안

30일 오전 11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엄마들이 모였다. iCOOP생협연합회와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국민감시단의 주최로 이뤄진 이날 행사에서 엄마들은 정부가 주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비판하며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김은혜 이사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부는 문제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대통령은 위험한 쇠고기를 '값싸고 질 좋은 고기'라고 말하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새 정부가 설거지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장난하는 건가요? 저는 전쟁통에 피죽먹고 자랐지만 광우병 쇠고기는 먹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간 단식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김 이사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기자들 앞에서 쭈뼛거리던 엄마들도 김 이사장의 구호를 따라 외치며 점차 힘을 내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의 주도로 참가자들이 차례를 이어가며 발언을 했다. 참가자들은 이내 카메라 앞에 당당함을 찾았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말이 나오자,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누구는 학교 급식 체계의 허술함을 지적했고, 다른 누군가는 미국 검역 체계의 위험성을 얘기했다. 발언 중간마다 나오는 "엄마들이 뿔났다. 아빠들도 뿔났다."는 구호에 엄마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이정주 생협연합회 회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아이들을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국민이 정부에 권한을 줬더니 정부는 국민 의사와 관계없이 생명권을 외국에 팔아넘겼습니다."

"범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겁니다"
▲ 이 아이도 곧 학교 급식을 먹게 될 것이다.ⓒ프레시안

박석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본 공동집행위원장이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이 '범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이번 주 토요일 청계광장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집회가 예정됐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잡는 날'로 정해 캠페인을 열어갈 겁니다. 노조는 노사협의 항목에 한우만을 쓰도록 하는 내용을 마련케 해야죠. 부모 감시단은 대규모 외식업체 등에 미국산 쇠고기를 안 쓰도록 서명하는 협약식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기자회견장이 버스정류장 맞은 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회견을 지켜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표정에는 '관심'이 드러나지 않았다. '시끄럽다'는 듯 귀를 막고 길을 걸어가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아직 그들의 모임이 '국민적'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게 분명하다. 그러나 한 참가자의 말대로 '생전 뉴스도 안 보던' 엄마들이 길거리로 나와 정부와의 '투쟁'을 선포하는 모습이 심상찮은 것 또한 사실이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기자에게 말했다.

"범 한나라당이 국회를 장악해 18대 국회에 기대할 것이 크지 않습니다. 원외에서 시민단체와 국민, 지식인 등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문제를 재협상하도록 압박하고 소비자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여기 엄마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전단지 돌리는 엄마들…"쑥스럽지만 우리가 해야죠"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된 집회가 끝난 후, 엄마들은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서울 서부권에 사는 엄마들은 청계천 방향으로, 동부권에서 온 엄마들은 종로 방향으로 흩어졌다. 청계천 쪽으로 향하는 엄마들을 따랐다.

마침 점심시간에 맞춰,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엄마들은 손에 든 전단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조금은 수줍은 표정으로 엄마들은 직장인에게, 어르신께 광우병의 위험성과 협상의 부당함이 담긴 전단지를 돌렸다.

"아휴! 쑥스럽네요. 그렇지만 다급한데 어떡해요? 직접 나서야지. 그래도 어떤 분은 '엄마들이 이렇게 나서야 한다'며 격려해주시니 기분 좋네요. 한 학생은 자기 혼자 서너 장 받아갔어요. 친구들 나눠주겠대요."
▲ 엄마들은 용기를 냈다. 시민들은 '늘 그렇듯' 무심결에 전단지를 받았다.ⓒ프레시안

부천에서 왔다는 김해랑 씨(40)는 예상 외로 시민들 반응이 좋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색해하던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모습에서는 당당함이 드러났다. 안 받겠다고 손사레 치는 사람은 뒤를 쫓아가 기어이 손에 전단지를 들려줬다. 절실함이 묻어났다.

그렇지만 모든 시민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 아저씨와 김 씨 사이에 조그만 말다툼이 벌어졌다.

"한우 비싼 건 사실 아니요? 가격 낮출 생각은 않고 미국 쇠고기 먹지 말라고 안 먹나? 내가 먹겠다는데 당신이 뭔 상관이요?"

그늘에서 쉬고 있는 엄마들에게도 한 행인이 시비를 걸어왔다. "중국산에 독극물 들었는데 왜 중국산은 반대 안하고 미국산만 반대하느냐"고 물어왔다. 한 할아버지는 "에이! 서민도 쇠고기 좀 먹어야지. 그걸 왜 반대해갖고…"라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와는 달리 시민들의 무관심과 냉대에 지쳐서인지, 엄마들은 다른 데로 고개를 돌렸다.

왜 시민들이 이렇게 무관심하냐고 물어봤다. 엄마들은 '불안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경제논리에만 빠져 (광우병 위험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는 얘기다. 조그만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정미영 씨(35, 서울시 목동)는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안 해준다며 속상하다고 말했다.

"인터넷만 뜨거운 것 같아요. 언론에서 이런 것 알려줘야 하는데 기자들은 가만히 있고…오죽하면 엄마들이 길거리로 나왔겠어요? 엄마들이 자주 가는 사이트 있거든요? 거기서는 조·중·동 사회부 기자 실명이랑 휴대폰 번호 돌기도 했어요. '우리가 직접 전화해서 기사 써달라 하자'고 엄마들 사이에 얘기가 나왔거든요."

같은 동네에서 온 남모 씨(48, 서울시 목동)는 올 가을에 입대할 아들이 걱정돼서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절절한 엄마의 마음이 드러났다.

"전단지 돌리다가 전경이 보였어. 우리 아들 같은 거야. 전단지를 줬더니 얘가 '감사합니다' 그래. 군인들도 다 알더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또 잘 모르는 것 같고…정부가 시민 지켜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안 하니 불안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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