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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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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조한혜정 교수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변변한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극장으로 이끈 이 영화는, 관객의 요청의 최근 연장 상영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별>도 극장에 같이 걸린다.

<프레시안>은 생명의 가치가 헐값이 된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되묻는 이 영화를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영화를 보면서 "길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보면서 그보다 나을 것 없는 우리의 처지를 떠올렸다"는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문화인류학)가 첫 번째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토종 거북 남생이가 도로변을 힘겹게 걸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좀 무뚝뚝한 인간적인 남자들(야생동물 교통사고 조사원)과 아주 많은 야생동물의 주검이 등장한다. 인간을 위한 도로, 실은 인간도 종종 희생당하는 그 '길'은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만들어낸 괴물같은 공간이다.

길이 닦이기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야생동물에 그 도로는 낯설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영토에 속한다. 야생동물은 번쩍거리는 두 눈의 거대하고 빠른 동물을 피해서 그 영역을 여전히 조심스럽게 먹이를 구하러, 애인을 만나러, 겁 없이 집밖으로 멀리 산책나간 새끼를 찾으러 건너 다녀야 하는 것이다.
▲야생동물 '로드킬'을 고발한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의 한 장면. ⓒ진진

그래서 그들은 어이 없이 죽어간다. 80㎞ 이상을 달리면 운전자도 어쩔 수 없다는 속도. 이 영화는 그래서 동물들을 위해 도로 건설과 생태 통로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영화일까? 그런데 인간은 동물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힘이 있는 존재일까?

영화를 보는 97분 동안 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렸다. 죽어가는 동물에게 미안해서 우는 것일까? 우리는 그들을 너무 홀대 하였으므로 이제 '환대'를 해보자는 '만물의 영장'다운 반성의 울음일까?

물론 그런 동정심 가득한 사람들도 영화관 안에는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 눈물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무수한 생명을 바람결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그 체제는 인간에게도 예외없이 부는 바람이라는 것, "경쟁에 온 몸을 던지라"고 명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압력 속에서 인간 역시 내팽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위에서 죽어가는 무수한 생명들과 별 다름없이 보호막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이 영화는 이제 더 이상 눈 감지 말아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가 개봉하면 나는 황윤 감독의 첫 번째 작품, <작별>을 보러갈 것이다. <작별>은 <어느 날 그 길에서> 이전에 만든 작품으로, 새끼 호랑이의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동물원 철창 안에 갇힌 야생동물의 입장에서 동물원을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야마가타 국제 다큐 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수작이라고 하는데, 수작이 아니더라도 나는 작품을 보러 갈 생각이다. 동물원에서 보호를 받는 목숨이건 야생에서 보호받지 못한 목숨이건 간에 별 차이가 없는 삶을 두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근대에 만들어진 기구가 거대한 괴물이 되어서 구성원들의 생사 관리권을 쥔 시대가 오고 있다. 푸코는 '사회'와 '사람'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세 군주들의 권리는 인민을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이었다. 19세기 근대에 새롭게 정착된 권리는 인민을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생명 권력'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그나마 참 다행이다. 황윤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있어서….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개봉관 현황

"이 영화평이 조금이라도 누리꾼 분들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인간만이 살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관객 'redglass2U'

서울 :
인디스페이스 (명동 중앙시네마. 4/20부터 화, 목, 일요일 상영) http://cafe.naver.com/indiespace
하이퍼텍 나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4/28일부터 연장상영 시작) http://cafe.naver.com/inada
('하이퍼텍 나다' 극장에서는 <어느 날 그 길에서>만 상영됩니다.)

광주 :
광주극장 (4/11부터 2주일 상영 예정) http://cafe.naver.com/cinemagwangju

인천 :
영화공간 주안 (4/15일부터 상영) http://cafe.naver.com/cinespacejuan

공동체 상영 신청 : http://www.OneDayontheRoad.com | oneday2008@naver.com
(극장 상영기간 동안은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관람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장에서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단체관람 혜택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극장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의: 이상엽 프로듀서 (유선전화) 070-7578-3628 | 011-9060-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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