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쓰지 않으면 농성장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20일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28°C. 무덥기 짝이 없는 날에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까지 감내하며, 그는 이틀째 단식농성을 계속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재선에 성공한지 불과 2주도 되지 않은 정치인을 이 뜨거운 바닥에 나앉게 한 것일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강기갑 의원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바로 다음 날인 19일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굴욕적으로 진행되어 위험천만한 결과를 이끌어낸 한미 쇠고기협상을 전면 철회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민의 70%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사실상의 전면 개방을 결정한 이번 협상은 "국민의 생명까지 통상협상 대상으로 삼은 매우 위험천만한 처사"라는 것이다.
18일에 타결된 한미 쇠고기협상 결과 한국 측은 뼈를 포함한 전 부위를 수입하고, 쇠고기 연령제한을 조건부로 해제하며,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광우병 위험통제국가로서의 미국 지위를 하향조정하지 않는 한 수입금지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강 의원의 바람이 국회에서 실현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외국과의 협상은 행정부 자체 권한이고 국회에서 이를 법적으로 견제할 수단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당 의원 상당수가 이번 협상을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강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스스로가 농민이며, 농민을 대표하겠다며 당선된 국회의원이 정작 관련 사안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무력감은 그로 하여금 다시 단식을 하게 만들었다. 땡볕에 너무 오래 노출된 탓인지 힘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강 의원은 말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고. 이어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정부가 너무 듣지를 않는다. '막가파식'으로 밀어 붙이려고만 한다. 그러니 이렇게 해서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갖게 하고 그들에게 호소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이날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이 다녀갔다고 한다. 관련장관 대책회의를 하고, 피해 농가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도 "국민 보건에 대해서는 정부 측에서 자신 있어 한다"며 믿어 달라는 호소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그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눈치다.
"축산농가 보호에 대해서는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국민 보건 관련해서는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에 광우병 환자가 발견되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게 하지 않았나.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국민 보건에 대해서 자신 있다고 하던데, 정치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전문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입법부 차원의 협상 철회 촉구 결의안을 발표케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물론 이것은 형식적인 차원의 구속력밖에 없는 조치로서 행정부가 거부하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의원은 "어쨌든 행정부에 대한 압박은 되지 않겠느냐"면서 "국민의 힘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 2005년 10월에도 강 의원은 쌀협상 비준안 처리 문제를 놓고 반대의견을 주장하다 단식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29일만에 단식 농성을 중단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종결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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