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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도 학생들처럼 잠 못 자 보시오!"

[인터뷰]유인종 전 교육감 "MB 교육정책, 70년대로 회귀"

"교육이 정도를 가야지, 정치나 경제 논리에 휩쓸려 가면 되나. 서두르는 것, 그게 교육에선 큰 화근이 된다."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76)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 12년간 서울시 교육위원회 의장, 서울시 교육감 등 공직을 맡았던 그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는 교육 정책에 매번 가슴을 쓸어내리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에서 출발해 고려대 사범대학장을 거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 교육 현장에 가장 밝은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 전문가다. 그는 1996년 서울시 교육감에 취임하자마자 일제고사를 없애고 수행평가를 도입했다. 또 2001년에는 자립형 사립고 건립을 반대해 교육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새 정부의 교육 정책을 두고 "몇 달 사이 보통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힘써 마련했던 일제고사 폐지, 수행평가 도입은 전국 시도교육감의 합의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영어 교육, 대입 자율화 등 일련의 흐름 역시 아주 걱정스러운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이런 흐름 탓일까? 지난 16일 서울 을지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유인종 교수는 거의 원고가 마무리된 책의 목차를 보여줬다. 최근 몇 달간 급변하는 교육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소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

유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놓고 "지금은 소수가 반발하지만, 다음에는 다수가 반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곧 또 뒤집어진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모든 정책엔 역사가 있다…왜 그걸 부정하나"
▲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 ⓒ프레시안

프레시안 :
교과부가 '학교 자율화 계획'을 발표했다. 0교시, 야간 보충 학습, 우열반 등을 학교 자율에 맡긴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유인종 : 교육이 정도를 가야지, 정치나 경제 논리에 휩쓸려 가면 될까. 몇 달 사이 보통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선진국은 교육을 진화시키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계속 '뒤집기'만 반복되면서 후퇴한다.

평준화와 같이 교육이 보편화하는 흐름은 누구도 깰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우리 동네에서 30명이 시험을 봐서 3명 정도가 합격했다. '엘리트 시대'의 일이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초등학교 들어갈 때 시험 봤다고 하면 웃는다. 조금만 더 지나면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시험을 쳤다고 하면 웃을 거다. 그게 교육의 보편화 현상이다. 아무도 못 막는다.

문제를 해결할 때는 '현주소'에서 해결해야 한다. 엉뚱하게 과거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니까 자꾸 혼선이 오고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자꾸 1970년대 이전에 했던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아이들은 그만큼 불행해진다.

프레시안 : 정부가 왜 이렇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보나.

유인종 : 너무 서두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 몰입 교육을 서두르다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정책에는 역사가 있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논의한 역사다. 교육도 1970년대부터 전문가들이 모여서 얘기를 많이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고, 역대 정부가 그때마다 사회적 합의를 받으면서 해온 거 아닌가. 그 역사 속에서 잡혔던 방향을 아니라고 부정한다? 다들 분개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소수가 반발하지만 다음에는 대다수가 반발한다.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영어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된다고 보나? 10%도 안 된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교육청은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영어 교사가) 60%라고 거짓말을 한다. 대중들은 모른다. 만약 정부가 '기반 조성을 한다'고 하면 말도 되고 의미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충원하고 학급 수를 줄이려면 대개 15~20년이 걸린다.

서두르는 것, 그게 교육에서는 큰 화근이 된다. 영국에서는 제도 하나를 바꾸려 해도 20~30년이 걸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임기에서 다 끝내려고 하니, 그래서 그런 것 같다. 뉴타운도 서울시장이 해보니까 어렵다고 하지 않나. 10년 걸릴 일을 총선에서 국회의원 되겠다는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우니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교육 정책도 똑같다.

선진국에서는 대개 교육 정책의 소프트웨어를 바꾸지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 제도를 바꾸면 우리나라에선 '편법'이 먼저 나온다. 평준화를 보완한다며 특수목적고등학교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만들었다. 다 편법으로 결국 귀족학교, 일등학교가 되지 않았나.

"아이들 '소 싸움' 즐기는 학대 교육…미래가 불행해진다"

프레시안 : 이번 교과부의 정책을 놓고 지난 3월부터 시도교육감협의회를 거쳐 시행되고 있는 일제고사와 연관지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과부는 다양화를 추구한다며 자율화 정책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일제고사, 입시와 맞물려 획일적인 경쟁만 치열해질 거라는 우려다.

유인종 : 맞다. 일제고사가 우리 교육 발전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제고사가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도록 했나? 정반대로 실망과 좌절을 준 경우가 더 많다. 학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또 그것으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나? 가령 이번 국어 시험에서 25문제가 나왔다. 하나를 틀리면 360등으로 떨어진다. 이번에 시험을 봤던 내 손자가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안 가져다줬다. 따져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은 올백을 맞았는데 나는 1개 틀려서 그랬다'고 하더라. 1등을 못한 나머지는 어떻게 되겠나. 동기부여가 안 된다. 그래서 보따리를 싸는 게 '기러기 아빠'다. 대표적인 일등주의, 차별주의 문화다.

또 평가는 교육의 목표에 따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어 교육의 목표는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로 네 가지다. 그 중 일상생활의 80%를 차지하는 말하기, 듣기는 놔두고 '읽기' 능력 하나만 가지고 시험을 보는 거다.

결국, 일제고사는 아이들을 일등주의, 입시 준비에 몰아넣는 것 외에 의미가 없다. 아이들 소 싸움 시켜놓고 어른들은 즐기는 학대 교육이다. 30년 후를 살아갈 세대, 그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인종 교수는 "1970년대 이전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정책 입안자, 혹은 일제고사에 찬성하는 이들은 경쟁을 통한 능력 향상이 결국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유인종 : 그들은 일제고사가 왜 필요한지 규명하지 못한다. '경제 제일'이라면서 일등주의를 밀어붙이지만, 행복지수는 계속 떨어지지 않나. 후진국이 하는 일이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길게 봤을 때 옳은 방법은 아니다.

짚고 넘어갈 것은 최소한의 윤리와 상식,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는 거다.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잠재우는 건 최소한의 윤리와 상식 아닌가. 0교시, 야간자율학습으로 잠 안 재우는 게 윤리고 상식인가. 우리 경우에는 그것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한 거다.

얼마 전 한 시민단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아이 중 20%만 건강하고, 서울시 조사 보고에 의하면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대학의 경쟁력은 초·중등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랐을 때 생겨나는 거다. 어릴 때 골병이 들면 경쟁력은 이미 사라진 거다.

선진국은 학력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학력은 입시 준비를 위한 국·영·수 공부와 같다. 능력주의 시대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잠재능력의 시대'다. 그 무한대의 능력을 개발해주는 것이 바로 '교육력(education power)'이다.

"규제할 부분엔 자율을, 자율에 맡길 부분은 규제하는 정부"

프레시안 : 교과부는 규제가 비효율적 업무를 낳고 있다며 철폐 이유로 내세웠다.

유인종 : 규제할 부분엔 자율을 주장하고, 자율에 맡길 부분은 규제한다. 안타깝다.

자율화는 정확하게 맞는 방향이다. 사실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만 지켜준다면 모두 자율화하는 게 최고의 정책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거다. 성적별로 밥을 먹인다든지 하는 게 최소를 벗어난 것이다. 가난한 지역과 잘 사는 지역 학교를 따로 만들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상식에 벗어난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이 엉망이고 사교육비가 늘어나니까, 입시 지옥화가 되니까. 이건 사회적 책임성, 공공성 아니냐. 이건 정부가 규제해줘야 한다.

대학 입학 제도를 대학교육협의회에 맡긴다? 이해 집단인 그들이 공공성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제3의 기관을 만드는 게 좋다. 또는 최소한의 규제만 해놓고, 나머지는 입학 사정과 같은 자율 규제에 맡기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 입학 사정까지 간섭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이것 말고 지금 풀어줄 게 많다. 교육공무원 인사까지 위에서 쥔 것 먼저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교육과정령도 필요 없다. 법으로 교육과정령 지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교육과정령을 만들면 학문의 발전이 안 된다. 또 과나 과목을 마음껏 바꾸게 해줘야 하는데, 법 때문에 못하는 게 많다. 그런 건 풀어줘야 한다.

정권을 잡았으면 연구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토론도 해보고. 그런 걸 걱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정책인가. 대통령이 자율성 좋아하니까 시의회에서 '24시간 학원 교습 허용' 같은 정책을 내놓는다.

'학교 자율화 계획' 발표한 교과부도 연구하지 않았다. 그럴 기간도 없었다. 최소한 '왜 그렇게 왔을까?' 정도는 연구를 했어야 옳다. 그게 안타깝다.

"눈치 보느라, 한 술 더 뜨느라 경쟁 더 심해질 것"
▲유인종 교수는 "거국적인 교육 운동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교과부 차관은 우리 사회가 이제 성숙했기 때문에 일명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반과 같은 우열반이라던지 다른 부작용은 생겨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유인종 : 더 심해질 거다. 과거에 사교육 하면 대학 입시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사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영어. 두 번째는 특목고. 대학은 세 번째가 됐다. 과거에 없던 게 더 심해진 거다. 눈치 보느라, 한 술 더 뜨느라 그러는 거다.

인수위 정책 때문에 영어 사교육에 난리가 나지 않았나. 외국 가는 비율도 훨씬 늘었다. 사교육비가 20조 원이라는 건 참고서 등 나머지 비용을 뺀 건데 그걸 합치면 30조 원이 넘는다. 2~3년 내에 배로 늘어날 거다. 어떻게 할 것인가.

프레시안 : 이번에 발표한 정책의 주요 방향 중 하나는 시도교육감 권한 확대다. 어떻게 보나?

유인종 : 교원 정원을 내주는 건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다른 부분은 거의 다 규제 대상이다.

예를 들어, 사설기관 모의고사를 허가하는 것, 어떻게 감당하려 하나. 학교가 학부모들 때문에 감당 못한다. 나는 정말 어른들이 한번 학생들처럼 잠을 안 자봤으면 좋겠다. 하나하나를 보면 너무 서둔다는 인상을 받는다. 조금 있으면 그걸 다 다시 추슬러야 한다. 또 시간이 걸린다.

시도교육청에 넘겼을 때 시도교육감의 자질을 내가 안다. 정말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정책을 펴느냐. 그렇지 않다. 우리 도가 최고라고 하려고 정책을 만들고, 거기에 우리 아이들이 희생을 당한다.

"반드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겠지만 희생이 너무 크다"

프레시안 : 많은 우려에도 앞으로 청소년을 경쟁에 몰아넣는 정책이 계속 나올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인종 : 그렇지 않다. 반드시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너무 희생이 크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새마을운동이나 환경운동보다도 훨씬 강한 교육 운동이 벌어져야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거국적으로 교육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

현상을 풀어나가는 데에는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게 벌어져야 우리나라가 선진화 된다. '내 자녀 시대'에서 '우리 자녀 시대'로 가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 운동가가 되고 싶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는 거다. 틀림없이 100% 흐름은 다시 돌아온다. 교육계는 여러 나라에서 끌고 가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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