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의 눈과 귀를 독차지하는 두 사람을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싶다. 캐리커처에 걸맞게 다소 과장되게 말이다. 손 화백의 펜 끝은 김용철·사제단(김인국 신부)·김상조·노회찬·심상정·이상호·김성환이라는 <프레시안> 특별취재팀이 '일곱 게릴라'라 칭한 이 책의 주인공에게도 닿아 있다. 이들의 캐리커처를 처음 만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이 책은 <프레시안> 기자들의 발로 뛴 현장 기록이다. 제목 위와 아래에는 각각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가' '삼성의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라는 길고 무거운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들의 문제 인식이 결코 짧고 가볍지 않음을 엿보게 한다. 저자들은 삼성에 대한 가파른 문제의식을 일곱 게릴라를 통해 풀어냈는데, 이 방식은 꽤 사람들을 유인할 듯하다. 평하는 이의 처지나 관점에 따라 찬사를 혹은 비난을 한몸에 받는, 다시 말해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주인공이니 이것은 확실히 이 책의 흥행 요소가 될 터이다.
이 책의 미덕은 이들을 심층 인터뷰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삼성과 맞서 싸웠는지, 관련 사실을 빠짐없이 적시해 놓았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 삼성이 왜 문제인가를 드러내고 환기하는데 이 책만큼 유용한 저작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 이유다. 인터뷰와 관련 사실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 삼성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종합적 이해를 돕는 것이다. 저자를 대표해 김하영 기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부디 일곱 게릴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삼성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고, 힘겹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일곱 다윗들에게 힘이 보태지기를 기원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전사' 혹은 '투사'로 불린다. 그것도 언제부터인가 정치권력도 통제의 끈을 놓아버린 '절대 권력' 삼성을 향해 온몸을 던졌으니 골리앗에 맞선 다윗으로 불리는데 지나침이 없다. 지난해 10월말 만난 김용철 변호사는 필자를 한동안 흥분시켰던 취재원이었다. 그는 필자가 10년 넘게 삼성을 관찰하면서 완벽히 맞추지 못했던 퍼즐 게임을 완성시켜 줄 듯하다. 삼성 특검 수사 결과와 재판 과정을 통해 사실이 확정될 터이지만, 그의 증언은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저자들 역시 그래서 그를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칼을 들고 설치는 남자'를 형상화한 용감할 용자를 이름에 쓰지만 스스로 소심한 사람이라 이런 무척 용감한 일을 혼자서는 벌이지 못했으리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그가 사제단을 마지막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게 했던 주류 언론의 철저한 외면은 어쩌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사제단+김용철'의 결합은 한국 사회에 강력한 믿음과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년 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세상에 가장 먼저 알려 이 땅에 민주화의 싹을 틔웠던 이들이기에, 세속의 이해관계에 가장 멀리 있는 인간인 사제들이기에, 그의 말과 영혼을 사제의 방식으로 '식별'했다기에 세상 사람들은 김 변호사의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려 애썼을 것이다.
이 책에는 김인국 총무 신부가 삼성의 실체를 듣고 왜 영혼이 가리눌리고 무섭고 괴로웠는지, 삼성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일을 제2의 민주화운동(경제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에서 이제는 나란히 '진보신당'의 공동 상임대표가 되어 4월 총선에 승부수를 던진 노회찬·심상정 대표의 활약상도 잘 묘사되어 있다. 노 대표가 국회의원 생활 내내 왜 그토록 재벌과 사법 권력의 유착 관계를 맹렬히 들추어내는데 진력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촌철살인의 비평가답게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소란죄'로 기소당한 사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열어 보시라.
노동운동 할 때 20년 넘게 따라다녔던 '아름다운 마귀' 별명이 선량이 되자마자 '심삼성'으로 바뀐 이유를 아는가? 이 책에 나와 있다. 심 대표가 삼성과 재정경제부 관료에게 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관료의 '친삼성' 네트워크를 파헤쳤고, 금산법 개악을 저지하는데 앞장섰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이 책에 따르면, 김상조 교수도 심 대표 못지않은 난적이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 교수는 삼성을 비난하고 삼성의 문제를 들추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가려는 종착지는 경제 민주화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의 '제도화'다. 그가 단 5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집과 연구실만 오가며 연구하고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몇 안 되는 취재당하는 기자, 이상호 기자를 통하면 삼성이 어떻게 언론을 지배·통제해 왔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문화방송(MBC)이라는 안온한 주류 언론의 기자가 왜 삼성 등 부패한 권력과 모진 싸움을 벌여왔는지도 저자들은 드러내려 애쓴다.
일곱 게릴라 가운데 가장 다윗다운 이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아닐까. 삼성이 어떻게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저지하는지, 삼성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김 위원장 편을 펼치면 해결되리라 믿는다. 그의 인터뷰에서 특히 마지막 대목의 울림이 크다. "노사 갈등이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그 자체가 범죄 수준이다. '페어플레이' 하자는 얘기다. 납치하고 끌고 가지 말고…. 건설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당시 문제의식에 국한된 따라서 좀 낡은 내용이 더러 눈에 띄지만 골리앗 삼성에 대적하는 일곱 다윗들의 생각과 열정, 고뇌를 살피는 데는 전혀 손색이 없다. 일곱 게릴라를 한곳에 몽땅 모아다 좌담을 벌이면 어떤 가공할 일이 벌어질까? 삼성에 대한 최종 분석이 이루어지고 그럴듯한 해법이 돌출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일곱 게릴라의 증언과 행적을 통해 삼성의 속살을 드러낸 이 책은 읽은 이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 삼성의 오너 일가와 몇몇 가신들이 금력으로 국가 기관을 오염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선출 받지도 견제 받지도 않은 권력이라는 삼성. 이 책은 먼저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니냐고 웅변하는 듯하다.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바꾸는 데 건강한 여론만한 추동력은 없는 까닭이다.
동시대를 호흡하는 민주 시민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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