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교 나와야 잘 사는 한국…교육이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 그런 방과 후 클럽이 있다한들 학부모들이 모두 선뜻 아이들을 보낼까. 혹시 공부할 시간이 없을까봐 주저하지 않을까.
우리보다 잘 사는 덴마크의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놀며 배우며 성장을 하는데 유독 한국의 아이들은 왜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공부에 매달려야 할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학교,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보수를 받고 좋은 동네에서 살며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순환 고리가 있는 한 초등학교 시기부터 아이에게 공부를 안 시킬 도리가 없다. 교육이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로 나뉘는 덴마크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덴마크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까. 아이를 그렇게 놀도록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걸까.
나는 다시 주위의 덴마크 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신들은 자녀에게 좋은 성적을 얻도록 하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자녀를 좋은 고등학교 혹은 좋은 대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은가. 자녀가 좋은 직업을 갖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가.
덴마크에서는 2살 반 혹은 3살부터 6살이 될 때까지 유치원에 다니고 6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9년을 다닌다.
초등학교 졸업 후 학생의 진로가 갈리는데 각자의 적성에 따라 인문 고등학교, 상업학교, 기술학교 등으로 진학하게 된다. 인문 고등학교에 가는 학생은 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고 상업학교나 기술학교 학생은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된다.
'중구난방' 교실, 점수도 등수도 없다
덴마크의 초등학교에서는 8학년에 이르기까지 시험을 쳐서 점수를 매기거나 반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이마다 타고난 소질과 능력이 다르고 학습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년 간은 주로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는 기간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각 아이의 특성에 맞게 교육을 하는데 가령 빨리 배우는 아이는 앞선 교과서를 주고 뒤쳐지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따로 도와주게 된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학습태도가 우리 보기에는 매우 규율이 없고 중구난방으로 보이는 것도 아이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믿는 정신의 소산이다.
"아이마다 배우는 방법이 다르다"
내가 방문했던 마글고 방과 후 학교 교장 옌스씨는 이렇게 강조했다.
"아이마다 배우는 시스템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책을 읽으며 배우지만 어떤 아이는 몸을 움직여야만 하고 어떤 아이는 눈으로 봐야 더 빨리 배운다.
1학년 때는 주로 이런 것을 파악해서 그 아이에게 맞게 배우게 한다.
가만히 교실에 앉아서 배우는 것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 창의력을 기를 수 없다.
여기서도 아이들의 수학성적이 뒤떨어졌다며 옛날식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있으나 아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노는 것 하나 하나가 다 배우는 것이다"
공부 잘 한다고 칭찬하는 일은 없다
이처럼 모든 아이가 다르다고, 즉 공부를 잘하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만들기를 잘하는 아이 등 아이마다 타고난 소질과 능력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우쭐하지도 또 공부 못한다고 기죽지도 않는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학교 측에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칭찬하거나 시상하는 제도가 없다. 잘하면 교사와 부모가 만나는 날, 칭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 공부를 못하는 아이라도 전혀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할 수가 있다.
아이들이 수업 내용 정한다…"스스로 생각하는 힘 기르는 곳이 학교다"
마글고 학교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아침 아이들과 함께 그날의 프로그램을 짜서 아이들 스스로 하게 한다고 했다. 날로 새 지식이 쏟아져 나오니 학교에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없고 단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어떻게 배우는지 그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던 덴마크의 교육부 장관 역시 '학교교육의 목표가 어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장차 기업이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데, 현대에는 누가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고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숫자가 아닌 관찰과 기록으로 아이를 평가한다
초등학교에서 8학년까지 시험도 없고 석차를 매기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담임교사는 매 아이들마다 과목별 학습능력과 사회성 발달을 꼼꼼히 말로 적어서 기록부를 만든다. 그랬다가 일 년에 두 번 학기 중간에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만나는 날(한 학생당 25분이 할애된다)이 기록부를 부모에게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성적표다.
담임교사는 아이에 대해서 말해주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도울 것인지 상의하여 그것을 다음 1년간의 목표로 정한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하는 평가
그리하여 개선을 해나가고 그것을 또 기록해서 다음 해에 교사와 학부모와 아이가 같이 점검해본다.
재미있는 것은 학년이 조금 올라가면 학부모와의 면담이 있기 전, '아주 잘한다', '잘한다', '보통이다', '못한다' 등의 세부 항목으로 나뉜 평가용지를 아이와 부모에게 미리 나누어주어,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학습과 행동을 평가하게 하고 부모 역시 자기 아이를 평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교사는 교사대로 기록부를, 부모와 아이는 각자의 평가서를 들고 만나는데 대개는 서로 일치한다고 한다.
담임교사, 입학부터 졸업까지 안 바뀐다
담임교사는 대부분 1학년부터 9학년까지 계속 아이들과 같이 올라가고 중간에 바뀌더라도 한번 정도 바뀐다. 그러니 자연 아이들을 잘 파악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학부모보다도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들 말한다.
담임교사가 9년 동안 같은 학급을 맡게 되면 학생들을 편파적으로 대한다거나 혹은 학부모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우는 없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만일 있으면 그 교사는 당장 파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혼자서만 잘하면 아무 소용없는 수업 방식
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4명씩 팀으로 짜서 공부나 발표를 하게 한다. 그래서, 가령 산수를 잘하는 아이가 주어진 문제를 혼자서 먼저 풀어도 소용이 없고 그 팀이 다 함께 풀어야 푸는 것이 된다.
잘하는 아이가 못하는 아이를 가르쳐서라도 다 같이 알아야 한다.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못하는 아이를 끌어올려서 함께 가야 한다는 덴마크 특유의 평등정신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못하는 아이를 무시하거나 따돌리는 것을 학교에서 금기시 한다. 아무리 1등을 해도 교사는 '제일 잘하는 아이' 라고 하지 않고 '잘 하는 편 (잘 하는 아이 중의 하나)'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상위권'이 따로 없는 학교
우리처럼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이 있고 등수를 매기는 한 아이들은 상위권에 들기 위해 일찍부터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덴마크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예 시험과 등수 자체가 없으니 상위권이라는 말도 의미가 없는 셈이다. 등수를 매기거나 우열을 가리는 교육이 아니라 누구나 다른 능력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 참으로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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