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초대 대통령실장에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를, 경호실장에 김인종 전 2군사령관을 각각 내정하고 이를 1일 공식 발표했다.
이 당선인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관련해 "물길이 통하면 민심이 통한다"는 슬로건을 개발한 당사자인 유 교수를 대통령실장 기용으로 운하 사업 강행 의지를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유 교수가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버리고 대신 '권력'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유 내정자는 이날 인수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말씀처럼 국민을 편안히 섬기고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에 성심을 다 할 생각"이라면서 "이 무거운 책무를 두려운 마음으로 준비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유 내정자는 "대통령실장이라고 해서 언론에선 큰 자리인 것처럼 보도를 했지만, 대통령실장은 대통령이 국정을 잘 하시도록 보좌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직위나 자리로 일하는 게 아니라 성심과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덧붙였다.
각종 연설문 모두 직접 작성…이명박의 '복심'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는 우리나라 지리학계의 수장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독일 키일대에서 학위를 받은 후, 지리학의 여러 방면에 걸쳐 연구 업적을 남겨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비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지리학회 사무총장에 당선돼 2007년 1월부터 활동해온 것은 이런 학문 궤적과 부합한다.
유 내정자는 1990년대 중반 이명박 당선인과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줄곧 지근거리에서 측근으로 지내왔다. 이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큰 그림을 그렸고, 이 당선인의 서울시장 시절부터는 연설문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도 했다. 이 당선인의 신년사도 그의 손을 거쳤고, 대통령 취임사도 쓰게 된다. '이명박의 이데올로그'라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유 내정자 본인은 명망 있는 학자의 길을 걷던 자신이 이 당선인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지난 대선 직후 <조선일보>와 가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명박 당선인을 돕는 이유를 이 당선인에 대한 다음과 같은 호의적인 평가로 에둘러 설명했다.
"가난으로 끼니를 잇기 어려웠던 바닷가 어촌의 소년이 많은 도전과 성취를 통해 대통령이 된 거예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내가 무얼 해야 한다는 일관된 생각이 재산 헌납 같은 것으로 이어진 것이죠. 사람들은 새 대통령이 앞으로 정글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그려나갈 것으로 우려하지만 이명박이라는 사람의 그 깊은 곳에 흐르는 생각은 그게 아니에요.
현란한 말솜씨와 제스처가 아니라 정말 서민의 아들로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해온 거예요. 이런 삶의 여정을 통해 그 밑에 흐르는 것은, 자기는 어려움을 딛고 성공했는데 그걸 국가가 제도로서 가능하게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이지만 대한민국이 보여줄 또 다른 성공일 것이라고 봐요.
민주화나 산업화에 이어 시장경제-고도성장을 택하면서도 이런 걸 이뤄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안도하고, 그래서 내가 (그를) 지지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당선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구름 앞에서 노는 상류층 사람이 아니에요. 길 가다가 풀빵 사 먹고, 군고구마를 사 갖고 와서 나눠 먹는 분입니다."
동료 학자 "학문적 소신 저버리고 권력 앞에 줄 섰다"
그러나 정작 유우익 내정자가 이명박 당선인의 측근으로 10년 가까이 지내왔고, 대통령실장까지 맡은 것을 놓고 주변의 평가는 차갑다.
유 내정자의 동료 교수 84명이 참가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이 주최한 31일 토론회에서는 "학문적 소신을 저버리고 권력 앞에 줄을 서보겠다는 사람"의 본보기로 유 교수가 거론됐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유우익 교수는 몇 년 전 전국 곳곳을 돌아보고 쓴 에세이에서 '현재의 땅에서 과거를 보고자 국토를 답사했다'고 썼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국토의 과거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국토 개조'를 외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라고 유 내정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를 비판했다.
심지어 지리학계의 후학도 유우익 내정자를 실명 비판했다. 지리학을 공부하는 황진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은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유 교수는 수차례 '생태'를 강조했던 사람"이라며 "유 교수는 과거에 자기가 비판했었던 입장에 투항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그가 투항의 근거로 인용한 유 교수의 과거 글은 다음과 같다(☞관련 기사 : "한반도 대운하, 유우익과 박형준이 막아라").
"복구가 불가능한 문화 경관이 개발 사업에 의해 훼손, 파괴되는 것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보존 가치가 있는 개별 문화재뿐만 아니라 장소와 지역 전체가 갖는 가시적 경관 및 그 이미지의 개성까지 포함하여 포괄적인 의미에서 적용되는 말이다." ('지역 개발에 있어 환경 윤리의 문제', <지리학> 제27권 제1호, 1992).
"정권적 차원에서 졸속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으며, 지역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여론에 무력하게 끌려 다니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국토 구조 개편을 위한 정책 과제를 생각한다면, 이를 냉철히 반성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국토와 산업의 미래상>, 1997)
황 연구원은 "유우익 교수는 당선인에게 운하 사업을 철회하라는 고언을 해야 한다"며 "그것이 유 교수가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몫"이라고 고언했다. 그러나 정작 유 내정자는 학계로 돌아가겠다는 자신의 말까지 번복하고 대통령실장을 맡음으로써 운하 사업에 선봉에 서게 됐다.
"유우익 내정자, 권력 얻고자 영혼 팔았다"
유우익 내정자는 앞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현재를 이렇게 평가했다.
"사실 나는 아쉬울 것 없어요. 지리학계의 수장이고 국제학술기구의 사무총장으로 어디 가도 VIP 대접 받아요. 먹고살 것도 있고 아이들도 다 키웠어요."
이렇게 아쉬울 게 없었던 사람이 왜 성공한 학자로서의 길을 이탈해 대통령실장을 수락했을까?
그 속내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짐작해볼 만한 대목은 있다.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유 내정자는 처음 이 당선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당선인을 유 내정자로 바꿔서 읽어보자.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교수는 유 교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권력을 얻고자 영혼을 팔았지요."
"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서 개척하고 이뤄내는 게 놀랍지 않나요? 샐러리맨이 이사가 되고 사장이 되면 '이제 좀 편히 잘 살자' 할 만한데 회장이 되고, 다시 만족하지 않고 국회의원, 시장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것, 그건 욕심이 아니에요. 그런 정신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분이라고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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