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는 17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당시 구조본 인사팀 팀장이었던 노인식 부사장(현 삼성에스원 사장)에게 '위치 추적을 정말 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며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어색하게 시인하더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부끄러운걸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겠나"라며 "(그런 행위가) 죄가 되는 걸 알면서도 죄를 많이 지을수록 충성심을 인정받는다는 걸 아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이는 그간 위치 추적 사실을 부인해온 삼성 측의 해명을 뒤집는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명백한 정황에도 혐의 부인한 삼성
삼성SDI 노동자 위치 추적 사건은 4년 전인 2004년 7월 언론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당시 삼성 내 노조 설립 운동을 주도하던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을 비롯해 삼성SDI 전·현직 직원들은 자신들이 위치 추적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위치 추적은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졌는데, 이미 사망한 사람 또는 삼성SDI 퇴사 직원 등의 휴대전화가 불법 복제돼 위치 추적에 이용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노조 결성에 적극적인 삼성SDI 직원이거나, 해고자, 산재 사고로 사망한 직원의 부인 등이었다. 특히 삼성SDI 직원의 위치 추적은 퇴근시간 이후인 오후 6시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위치를 추적해온 '누군가'가 주로 이용한 기지국은 삼성SDI 수원사업장이 있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신동이었다.
이런 정황 탓에 당시 위치 추적의 당사자가 삼성 측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삼성 측은 "회사가 그들의 위치를 추적한 사실이 전혀 없기 때문에 누가 그랬는지 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황당할 따름"이라며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었다.
당시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그룹 경영진이 공모해 내 위치를 추적했다"며 이건희 회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 삼성 경영진 7명을 정보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또 김 위원장을 포함한 삼성SDI 전·현직 직원 6명은 자신들의 위치를 추적한 '누군가'를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7개월 동안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소중지를 결정했다.
검찰, '증거 불충분' 이유로 기소중지
당시 사건에 삼성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김용철 변호사의 이번 발언은 검찰의 재수사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환 위원장은 "검찰의 수사는 고소 내용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갔었다"며 "결국 검찰은 더 이상의 수사를 하지 않은 채 기소를 중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누군가'를 고소했던 삼성SDI 직원들은 고소 다음날부터 사측으로부터 회유, 협박, 감시, 미행 등을 당했다"며 "심지어 작업하는 내내 회사 관계자가 1미터(m) 뒤에 서서 욕설과 함께 그를 집요하게 감시하는 '1미터 감시'를 했다"고 밝혔다. 결국 김 위원장과 한 명의 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은 고소를 취하했었다.
당시 고소인 측 변호를 맡았던 김칠준 변호사(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17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으로 지금이라도 재고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당시 검찰은 위치추적을 당한 건 맞지만 '누구인지'를 밝힐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명백한 정황이 있는데도 기소중지 결정이 내려졌던 것은 김용철 변호사가 밝혔듯 검찰이 '삼성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증거"라며 "민주노총 등과 회의를 통해 재고소 여부를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노조 탄압 사례 수도 없이 많다"…이번엔 드러날까
삼성SDI는 그동안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이나 해고자, 노동자들에 대한 지나친 통제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최근 <오마이뉴스>는 삼성SDI가 1대1 감시시스템을 통해 노동자의 일일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을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삼성SDI 하이비트 해고자 대표 최세진 씨는 얼마 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해고자들을 미행하는 차량 번호까지 외울 정도로 감시가 심하다"고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은 사측에 불리한 일을 막는 전담팀이 있다고도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삼성 구조본(현 전략기획실) 산하에 있는 인사팀 노사 담당이 주로 임무를 맡는 '사고처리반'이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 팀은 서류를 위조하고, 위치를 추적하고, 은행 계좌를 열어보고, 카드 내역을 조회하는 등 불법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며 "내게 상대방 변호사를 매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밖에도 이 팀의 노조 탄압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며 "일이 해결될 때까지 당사자를 지방이나 해외로 끌고 다니는 방법을 주로 쓰고 결국 돈으로 해결하고 각서를 쓰는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고도 언급했다.
지난 9일 김용철 변호사 변호인단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기자회견에서 "검찰은 삼성 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삼성의 노조 탄압 실상에 대한 조사도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이번 발언을 바탕으로 위치추적 사건을 비롯해 삼성의 구조적인 '노조 결성 방해'가 검찰의 엄밀한 조사를 받게 될지 주목된다.
한편 이에 대해 삼성SDI 홍보실 관계자는 "당시 관련했던 분들이 지금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며 대답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SDI 내 인사담당 관계자와의 연락도 불가능했다.
김성환 위원장 구속 판결도 삼성 작품? 한편 김용철 변호사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의 구속 판결에 삼성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당시 구조본 내 임원들은 김성환 위원장을 두고 '구속시켜야 하는데'라며 고민했다"며 "나는 속으로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구속을 시키더라"고 말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2005년 2월 검찰이 삼성SDI 노동자 위치추적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린 뒤 1주일도 채 안돼 구속됐다. 삼성 측이 그를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를 했고 법원은 검찰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법정구속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34개월 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지난해 2월 김 위원장은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지정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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