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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우리가 당신 죽이려는 것 아니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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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 회장, 우리가 당신 죽이려는 것 아니잖소"

[옥중 인터뷰]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사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조정본부 법무실장)의 양심선언을 선뜻 믿기엔 어려운 감이 적지 않았다. 잘나가던 검찰 출신에다 삼성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그가 아니었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도 처음 양심선언을 하겠다며 찾아온 그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식별'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김 변호사의 소식을 전해 듣고선 그의 말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간파한 사람이 있었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아니다. 바로 현재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이다.

사실 김성환 위원장은 '비자금'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96년 징계 해고를 당한 뒤 10년 가까이 삼성 내 노조 설립을 위해 싸우다 명예훼손, 업무 방해 등의 '죄목'으로 지난 2005년 3년5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말마따나 그가 삼성이라는 피라미드의 맨 바닥에서 싸웠다면 김용철 변호사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그룹 전체를 주무르던 이였다.

그러나 김성환 위원장은 김용철 변호사에게 "동지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말이 자신이 하는 말처럼 느껴져 "뒷통수를 맞은 것 같다"고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를 직접 만난 적도, 삼성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 활동에 관여한 적도 없는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김용철 변호사가 당한 일=그간 노동자들이 겪은 일"

지난 6일 영등포교도소 접견실에서 만난 김성환 위원장은 기운이 많이 없어 보였다. 삼성족벌 해체와 민주노조 건설을 주장하며 12일간 단식을 벌이다 입원하고, 퇴원한 지 만 하루가 지난 때였다. 그러나 삼성과 노동자에 대한 그의 말은 받아적는 기자의 손이 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쏟아졌다.

김 위원장은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뉴스를 처음 접한 뒤 "김용철 변호사가 앞으로 겪어야 될 일들이 스크린처럼 눈에 지나갔다"고 말했다. 삼성이 곧 김 변호사를 인격적으로 매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김 위원장은 "김 변호사가 당한 일들이 바로 노동자들이 당한 일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김용철 변호사가 퇴직 후 한 달에 2000만 원씩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예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슨 말 할지 모르니까 돈으로 메꾸는, 사후 감시였다. 삼성에서 노조 만들려다가 돈을 받고 정리당한 노동자들도 똑같은 사후 관리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삼성과 맞서 싸우다 보면 다른게 아니라 족벌 세습 경영이 문제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며 "무노조 원칙 역시 족벌 경영을 위한 탄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임금 등 노동자에게 문제가 닥치면 이 기업이 돈을 빼돌리는지 감시의 눈을 돌릴 수밖에 없고, 비자금을 만드는 삼성에서 보면 제일 껄끄러운 부분 아니겠나"라며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의 결과물이 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정부, 언론, 검찰 등이 모두 뇌물을 받았다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당연한 얘기"라고 맞장구 쳤다. 그가 지난 10년간 몸으로 느꼈던 것을 김 변호사가 증언으로 확인해준 셈이었다.

그는 한가지 사례로 "삼성 전략기획실을 검찰이 압수수색 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삼성의 노동 현장 또한 노동부가 제대로 감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2003년 2주간 삼성SDI 세 공장에서 적발한 노동법 위반건수가 1000건에 달할 정도로 온갖 유해한 작업 조건이 만들어져 온 곳이 삼성"이라고 밝혔다.

"노조 설립, 더디지만 한순간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그러나 김 위원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곧바로 삼성 내부의 개혁이나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는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건 노동자들에게 달린 몫"이라며 "삼성 노동자들은 '불패신화'로 불리는 무노조 경영에 대한 패배의식, 삼성이 대한민국 위에 있다는 허위의식에 찌들려 있다"고 말했다.

희망이 아예 없다고 한 건 아니었다. 삼성 내 노조 설립 운동을 "답답할 정도로 진도가 안 나간다"고 표현한 그였지만 "한순간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더디고 답답하지만 언젠가는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월 16일 교도소에서 치러졌던 16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에서도 "무노조, 족벌경영으로 쌓은 삼성의 탑도 한 군데에 구멍이 뚫리면 무너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구조조정을 단행하려는 삼성SDI를 한 예로 들며 "노조가 있었다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SDI가 불법의 중심에 서 있다고 알려졌을 때 뒤집어졌을 것"이라며 "그나마 달라진 점은 정리해고를 하면서 회사가 형식적이지만 노동자들의 눈치라도 보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성환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 보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 생각"
▲ 김성환 위원장 ⓒ임경옥

프레시안: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나.

김성환: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사람이 얘기한 내용의 결과로 내가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의심없이 저 사람 말이 내 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겨레>에 응원하는 의견광고를 내기도 했다.

또 김용철 변호사가 앞으로 겪어야 될 일들이 스크린처럼 눈에 지나갔다. 삼성의 노동자들이 노조 운동을 하면 삼성에서는 납치를 한다. 그래도 버티고, 굴복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매도, 인격·도덕·가정상 매도를 하는데, 김용철 변호사라고 비껴나갈 리 없다, 똑같을 것이라고 봤다.

교도소에서 틀어주는 <SBS> 8시 뉴스에는 그런 내용 없이, 김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했다는 뉴스만 나왔지만, 삼성 노동자들이 그동안 당했던 일련의 과정이 연상됐다. 나중에 보니까 역시 가정에 대한 매도, 개인적인 매도가 이뤄지더라. 동지의식을 느꼈다. 비록 나는 피라미드로 따지면 바닥에서 탄압을 받은 노동자이고, 그 사람은 상층부에 있었지만, 나나 그 사람이나 겪었던 일은 똑같았다.

사실 삼성과의 싸움을 자조적으로 얘기할 때 '계란으로 바위 깨기'라고 비유한다. 그래도 바위에 계란 썩은 내라도 나지 않겠나, 바위가 썩었다는 건 알릴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하면서 이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프레시안:노동운동을 해왔던 입장으로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김성환: 김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해도 직접 노동자들의 의식화가 이뤄지진 않는다. 그건 노동자들에게 달린 몫이다. 그만큼 삼성 노동자들이 깨어있는 노동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불패신화'라고 하는 '무노조 경영'에 대한 패배의식, 삼성이 대한민국 위에 있다고 하는 삼성 자체가 가진 권위주의를 절대 깰 수 없다는 허위의식에 찌들려 있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활동가 층이 두껍다면 얘기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삼성SDI에서 1100명을 해고하겠다고 협의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노사협의회를 통해 교섭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SDI에 노조가 있었다면 김 변호사가 삼성SDI가 불법의 중심에 서 있다고 밝혔을 때 뒤집어졌을 거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변화를 가져왔을까? 오히려 회사에서 '알아서 긴다'. 전에는 자기들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갔겠지만 지금은 친회사적이라고 해도 시대적인 사안, 현장 노동자들의 눈치 보면서 형식적으로 정리해고자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거다.

"열심히 싸운 결과, 삼성 광고로 확인하는 노동자들"

프레시안:얼마전 삼성SDI가 노동자들을 감시해온 실태를 고발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일종의 변화 아닐까.

김성환: 이미 1998년 IMF위기때부터 지금까지 삼성이 써먹은 수법이다. 겉으로는 명예퇴직이지만 실제로는 사직을 강요한 거다. 삼성생명 1700여 명이 해고당했다. 거의 대부분 여성노동자였는데, 말로는 회사 사정이 안 좋다고 하면서 사직을 강요했다.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러나 공론화될 수 없었다. 우리가 싸운 뒤에 '열심히 싸웠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는지 아나? 신문 광고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 나는 전면광고를 보고서 '우리가 참 열심히 싸웠다'고 판단한다.

왜 공론화가 안됐냐고? 나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때 뭐했냐고. 그렇게 삼성 무노조에 맞서 싸운 건 거의 처음이었다.

지금 삼성SDI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을 위해 사전에 노동자들을 탄압해왔다고 한다. 사측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은 외국 출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도 그동안 현장 노동자들 중에 드러나지 않은 활동가들이 있었다. 자기들의 생존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니까 저항을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김 위원장의 구속 이후에도 삼성 내 노조 움직임 등은 계속 있는 것인가?

김성환: 그렇다. 답답할 만큼 진도는 안 나가지만 진행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나오고서 삼성 노동자들이 새롭게 뭔가를 해보자고 할 줄 알았나? 수십년간 의식을 지배한 게 있기 때문에 삼성 노동자들에게 피부로 와닿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교도소에 비유한다. 교도소 밖에서 어떤 높은 분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얘기하면 교도소 담을 넘어 전달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삼성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당해왔다고 해도 한순간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그런 희망을 갖고.. 더디고 답답하지만 언젠가는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믿음이 있다.

"증거 못 내놓아도 삼성 왕국을 몸으로 느끼는 노동자들이 있다"
▲ ⓒ민중언론 참세상

프레시안:
그간 삼성의 행태를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 등으로 밝혀왔다. 앞으로도 또 책을 낼 생각이 있는지?

김성환: 기회가 되면 그러지 않겠나. 지금이야 쥐어짜서 나오는 얘기이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을거다. 세상이 변해서 노동자들이 힘을 갖게 되면 좀 더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내가 안 낸다고 해도 의미있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어려운 점은 삼성노동자들에게 증거를 가지고 얘기하라면 할 말이 없다는 거다. 나는 2000년부터 전단지 등에 삼성이 '조직적인 범죄 집단'이라고 글을 쓴다. 학계, 사법, 언론, 정치권력 모두 썩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게 그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못 내놓는다.

그러나 우리는 겪고 있었다. 삼성이 노동자를 납치, 감금하고 탄압한 것에 대해 얘기하면 그걸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 학계가 그랬고 심지어 사법부에서는 차일피일 기소를 미뤘다. 경찰에서는 집회 방해하는 회사 편을 들어준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이 사회가 삼성에서 온전히 남아있는 데가 없구나라는 걸 느꼈다.

현장 노동운동을 해도 소위 고급 간부들이 찾아와서 비자금 등 온갖 얘기를 다 한다. 그런 얘기를 하면 많은 노동자들이 돈을 받고 정리된다. 어쩔 수가 없다는 거다. 대한민국에 삼성이 있는데 누가 나를, 우리 가족을 책임질 수 있냐는 거다. 맞다. '김성환 위원장이 나를 책임질 수 있소?'라고 물으면 나는 책임지지 못한다. 당신의 의지를 바라는 건데 그것만 가지고도 자신이 없다고 한다.

"국민을 돈으로 물들인 당사자는 죄 많은 삼성 족벌"

삼성은 꼭 돈을 줘야 안심을 한다. 일상적으로 만나도 꼭 돈을 줘야 되는 게 삼성간부들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오해의 소지가 된다. 한두번 받아먹다 보면 그 맛에 빠져서 깃발을 내린다.

지금도 아마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 계열사들은 비상이 걸렸을 거다. 나 같은 경우도 1분 단위로 체크당했다.

고소 당해서 검찰에 가면 책상에 서류가 산만큼 쌓여있다. 검찰이 아니라 삼성이 만들어서 제출한거다. 죄가 있으니 언제 어떻게 구멍이 날지 몰라서 그렇게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도 한 달에 2000만 원씩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예우가 아니라 사후 감시인 거다. 언제 어디서 무슨 말 할지 모르니까 돈으로 메꾸는 거다. 김 변호사뿐만 아니라 삼성에서 노조 만들려다가 돈을 받고 정리당한 사람들도 사후 관리 대상이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감시하는 거다. 그 정도로 죄를 많이 지은 놈들이 삼성이다.

프레시안: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지은 가장 큰 죄는 돈으로 사람을 망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성환: 김근태 의원이 '대한민국 국민이 노망 들었다'고 했다. 대선 후보가 저렇게 부도덕한 걸 보고서도 지지율이 안 떨어지게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된 건 삼성이 만든 것이다. 돈이 최고라고. 이 시대 모순이 삼성 족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노조 경영? 심오한 철학이 있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개똥철학'이다. 비인간, 반역사, 반사회적 행위가 바로 '무노조 경영'이다. 그걸 하려고 얼마나 죄를 짓고 있는데.

김 변호사가 당한 일들이 바로 노동자들이 당한 일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적으로 매도한다. 그러면서 또 한쪽으로는 '네 말이 옳다'면서 치켜세운다. 회사 방침이 그런데 어떡하냐고, 네가 참아달라고 한다. 이학수 등이 김용철 변호사 만나달라고 한 게 똑같은 거다.

"무노조 역시 족벌 경영을 위한 방법이자 그 결과물"

프레시안:모든 문제가 이건희 일가와 맞물려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그들이 손을 떼면 삼성이 더 잘 될 것이다. 나는 삼성이라는 기업을 좋아한다'고 했다.

김성환: 공감한다. 에버랜드 사건 당시 곽노현 교수 등 법학교수들이 1차 고발 한 뒤에 노동자들이 2차 고발을 했다. 그때 곽 교수 등과 '스톱 삼성'운동을 했다.

삼성과 맞서 싸우다보면 느끼는 건 문제가 다른게 아니라 족벌 세습 경영에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도 삼성 그룹과 삼성 족벌을 나눠 이야기했다. 삼성에 맞서 싸우다보면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더라. 이씨 일가의 불법 비리에 쐐기를 박아야 된다.

우리가 구호를 외칠때도 '족벌 세습 경영 박살내고 이건희 회장 처벌하라'고 했다. 해직자들도 복직 투쟁보다는 조직 건설에 힘쓴다. 무노조 역시 족벌 경영을 위한 탄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잘 못하더라.

왜 저들이 법으로 보장된 노조 결성을 막을까? 상식적인 거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을 보더라도 기업에 대한 감시를 한다. 당장 임금인상 문제가 닥치면 이 기업이 돈을 빼돌리는지를 봐야 하지 않겠나. 노조를 통해 걸러지지 않을 수 없다. 삼성에서 보면 제일 껄끄러운게 노조가 아니겠나. 노조에는 생명력이 있다. 한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삼성이 원천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거다. 김용철 변호사 얘기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의 결과물이 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진다.

"회유와 탄압, 사람이 할 짓 못돼 거부했더니…여기 와 있네"
▲ 지난 2월 김성환 위원장은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지정됐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석방 요구가 높았지만 끝내 특별사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회찬 의원실

프레시안:
삼성에 대한 투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김성환: 특별한 거 없었다. 이천전기에 입사한 뒤 삼성그룹이 이천전기를 인수 통합하는 과정에서 인사관리에 대해서는 삼성이 파견을 해서 운영했다.

해고되는 해였던 1996년에 노사협 위원이었다. 그냥 협의회 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A급이라고 하더라. 그때 나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백지를 돌리면서 협의회 때 하고 싶은 말을 쓰게 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삼성측에서는 그게 그렇게 눈엣가시였나 보더라. 현장 노동자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거다. '김 위원은 좀 조용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어도 회사에서 다 해준다'고… 그런데 그게 되나. 하던 대로 했다.

대표적으로 페인트 도정 작업이 매우 힘들고 환경이 안 좋았는데, 회사에서는 생명수당 2~3만 원씩 주고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나는 안전 설비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럼 그 자리에서는 '좋다'고, '건설적'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경계하는 거다. 자기들은 현장을 기업 문화에 맞게 정리하려면 나 같은 사람은 필요없다는 거다. 그래서 1996년 11월 16일 해고를 시키더라.

당시 1년 전에 집을 융자받아서 샀는데, 해고되니까 영 갑갑해지더라. 현장 사람들이 돈을 모아주기도 했지만 한두번이지 못할 짓이었다.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그 영향은 동지들에게 갈 것이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고 했다. 그러다 보니까 감옥에 와 있네.

정말 특별한 것 없다. 탄압을 하니까 맞서 싸운거고, 회유도 했지만 그것이 치사하고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고 해서 거부했다.

프레시안:삼성 왕국, 이건희 왕국이라고들 한다.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한국의 노동환경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처럼 삼성에서 노조 운동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난한 길이 아닐까.

김성환: 그래야 나중에 늙어서 이야깃거리라도 있지 않겠나. 또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못할까.

가능하면 상대적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나같은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구석구석에 나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노동자, 농민, 철거민, 노점상… 그들은 목숨까지 내놓고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가정까지 파탄나면서도 싸우고 있는데 나는 아직 그렇지 않잖나. 나의 모습이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힘이 되지 않겠나.

얼마전 아들, 딸에게 물어봤다. 아빠가 감옥살이하는데 너희들 욕 얻어먹어 본 적 있냐고. 없다고 하더라.

사람들은 개미들이 무슨 맛에 사느냐고 생각할 거다. 그러나 그 입장에 서면 그들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이나 어렵게 사는 민중들의 삶에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즐거움에 좀 더 내가 같이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왕 삼성과 싸우려면 좀 더 내 자신이 철저해지고, 성숙해졌으면 한다. '악바리'라고들 생각하는데, 그런게 아니라 이 시대의 모순을 안고 있는 삼성과 싸울 때, 그것이 단순히 '투쟁'으로 표현돼도 그 안에 나름대로 철학, 삶의 지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같이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 놈 또 싸운다'가 아니라 '후손을 위한 세상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구나' 그렇게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삼성 문제는 늘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었다"

프레시안:지난 10년간 투쟁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

김성환: 내부 갈등이었다. 가장 힘든 건 동지라고 믿고 있는 이들에 대한 믿음이 깨질 때였다. 이건 단순히 해고자들끼리의 갈등이 아니라, 삼성 재벌의 사주를 받은 이들에 의해 조직이 깨지는 거다.

삼성과 맞서 싸운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다. 삼성은 만나면 돈을 준다. 한두번 받다 보면 습관이 된다.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힘을 받지 않겠냐고? 오히려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에도 답답한 부분이 있다. X파일 사건 이후 지금까지 돈과 사람과 시간을 조직해서 노동조합 조직사업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벤트 사업만 한다. 왜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신문에 내나. 왜 삼성이 발에 땀나게 뛰어서 얻어야 될 정보를 그렇게 갖다주나. 조용히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기자회견을 하고, 그 자리에서 간부뿐 아니라 소위 현장 노동자들 배치시키고 제대로 해볼 수 있지 않겠나.

프레시안:어제 퇴원했다. 열흘 넘게 단식을 했던 이유는.

김성환: 현재 싸우고 있는 삼성SDI 하이비트 여성노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고, 또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삼성 문제는 늘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 TV를 통해 전자계통 현장을 보면 멋있는 데만 나온다. 그러나 여기는 외부에서 견학올 때 모시고 다니는 길이다. 실제 작업 현장에는 유해물질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2003~2004년 울산 삼성SDI에서도 그렇게 사례들이 있다. 분명 그 죽음이 정상은 아닌데, 전문가를 통해 역학 조사를 하자고 해도 소용없었다.

한달에 518시간씩, 하루에 17시간씩 일하다 죽은 분이 있었다. 그 분 한달에 310만 원 받았다. 그런데도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반신불수가 되는 등 같은 공장에서 서너 명이 사고를 당했다.

"삼성의 작업현장도 제대로 감사 받은 적 없었다"
▲ ⓒ손문상 화백

2004년 이 건을 국정감사에 진정했고 노동부에서 수원, 천안, 울산 SDI공장을 특별감사했다. 세 공장에서 2주간 적발한 근로기준법 위반이 1000건이었다. 임산부, 학생 야간근로가 포함돼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을 검찰이 압수수색 해본 적 없다고 하는데, 삼성의 작업 현장도 노동부가 제대로 감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온갖 유해한 작업 조건이 계속 만들어져 온거다. 근로감독관은 오히려 사측에 "이러면 안된다"고 코치해준다. 돈의 힘이 무섭다.

현장 노동자들은 모른다. 현장 사람들은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도 삼성 노동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기숙사와 공장만 오가는 노동자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는 김용철 변호사 뉴스가 나가는 그 시간에 아예 채널을 꺼버리고 회식한다. 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일이 있었냐'고 한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성환: 빨리 양심선언 하라. 그게 살 길이다. 우리가 당신을 죽이자고 하는 건 아니니까. 빨리 양심선언을 해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이 정도 되는 재벌이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얘기를 할 수 있게 하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자.

노사 갈등이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그 자체가 범죄수준이다. '페어플레이' 하자는 거다. 납치하고, 끌고 가고 그러지 말고…그러면서 건설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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