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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헤치며 환자 찾아가는 이동 진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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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헤치며 환자 찾아가는 이동 진료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43> 버마 난민촌 두 번째 이야기

난민촌의 유아원에서 ABSDF 회원들의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었다. (☞ ABSDF란?)

"우리는 괜찮다. 우리보다 정글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

정글 속 난민촌을 떠난 다음날, 우리는 이 여성이 말했던 정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을 만났다.

정글 속의 그들을 겨냥한 버마 군인들의 초토화 작전

Back Pack Health Worker Team, 약칭 BPHWT라고 하는 이 이동의료팀은 버마의 난민들을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다. 말 그대로 약품이 잔뜩 든 배낭을 등에 지고 산 넘고 물 건너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깊은 정글로 숨어들어간 버마인들을 찾아 다니는 의료팀이다. 이들은 버마의 특수한 상황이 배출한 특수한 보건의료활동가 집단이다.
▲ BPHWT 요원이 정글 속 주민들에게 보건상식을 가르치고 있다. ⓒBPHWT의 활동을 소개한 달력

이들은 버마 군부의 탄압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이나 빈곤에 시달리다 못해 버마를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활동팀이다. 이들에게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버마인들은 난민캠프에 살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글에서 살고 있다.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소수민족들이 많은데, 버마 군부는 소수민족에 대해 탄압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발견하면 그 지역을 초토화시켜서 주민들을 내쫓는다.

내쫓은 주민들은 남녀불문하고 끌고 가 강제노역에 투입하고(여성들의 경우에는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이들이 행여 마을로 되돌아올까 봐 집과 마을을 아예 불태워서 이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몰고 있다.

버마군인들을 피해 더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간 이들은 말라리아모기-뎅기열-AIDS-콜레라-이질-장티푸스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정글 속을 헤매다가 버마군부가 매설해놓은 대인지뢰에 피해를 입기도 하고 이들을 색출해내고자 무자비한 초토화작전을 펴고 있는 버마군인에 의해 총이나 폭탄의 세례를 받기도 한다.

"차를 타고 갈 수 없는 험한 길, 환자가 오갈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이들의 보건상태가 좋을 리가 없다. 이들은 태국-버마 어느 정부도 신경 쓰지 않는 버림받은 집단처럼 대접받고 있고, 유일하게 이들을 배려하고 있는 조직이 BPHWT라고 한다.

BPHWT은 팀으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는데, 각 팀들은 버마의 국경을 따라 지역을 나누어 활동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든 정글 속을 찾아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버마군이 가까이 있어 군인들에게 언제 발각될지 모를 불안정한 지역은 BPHWT조차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나마 BPHWT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사정이 낫다고 보여지기도 하는데, 실상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일단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대책이 없다고 한다. 그런 상황은 BPHWT의 활동지역에서만이 아니라 이번에 방문한 난민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도시에서 난민촌을 가기 위해서는 튼튼한 차를 타고 4시간 가량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 1시간 가량은 포장된 시골길이었다.
▲ 정글 속 마을로 가는 길은 이렇게 험하다. ⓒBPHWT의 활동을 소개한 달력

나머지 3시간 가량을 비포장도로 갔는데, 그 3시간은 차를 타고 간 시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ABSDF 사람이 아주 적절하게 그 상황을 표현하였다.

'말을 타고 가는 거다. 이건 차를 타고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라고. 그나마 11월은 건기여서 길이 비교적 괜찮아서 그런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방문했었던 어떤 팀은 우기여서 무려 9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국에 널려있는 중장비를 당장이라도 한두 대 갖다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던 푹푹 패인 길, 차바퀴가 헛돌아갈 정도로 미끄러운 길, 한쪽은 말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인 길을 지나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런 길을 환자들이 오갈 수 있을까?였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자에게 물었더니 그는 매우 간단하게 대답했다. '방법이 없다'고. 난민촌이 이러할진대, 정글 속이야 오죽하겠는가.

전문적인 의료 교육이 절실

나중에 BPHWT 사무실을 방문하여, 좀더 자세한 활동을 영상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필요한 약품과 물품의 구입과 배분은 어떻게 되며 약품의 구입을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는지를 들었다. 혹시 약품을 현물로 지원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 정글 속 주민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BPHWT의 활동을 소개한 달력

이번 태국방문을 계획하면서 '약품을 가져가서 기증하면 어떨까' 생각했었다가 포기했었기에 물어본 것이었는데 잘한 일이었다. '약품은 받지 않고 지원받은 돈으로 약품을 사서 각 팀에 배분한다'고 한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는 ABSDF 의장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그는 버마의 8888항쟁(1988년 8월 8일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 당시 의과대학 졸업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건의료쪽 활동에 대해서는 설명이 분명하고, 지원요청사항도 분명했다.

그는 전문적인 의료인양성에 한국의 NGO들이 도움을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BPHWT에서 활동하는 의료인들은 의료인 자격증을 갖지 않은 의료인들인지라 누구보다 그들이 전문적 의학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희망이리라. 그는 2007년 여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전문적 의학 공부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을 첫 번째로 요청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그 요청에 답을 주지 못했는데, 이번 방문에서도 답을 주지 못했다.

○ 'ABSDF' 관련 기사 :

이제는 중년이 된 '맨발의 학생군'

○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관련 기사

버마 사람들에게 8월이 특별한 이유…한국의 5·18, 버마의 8888
'8888항쟁' 참가자 네 명의 삶
2007 버마 민주화시위, 1988년과 무엇이 다른가?
버마 시위가 끝나지 않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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