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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무팀! 미행 좀 세련되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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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노무팀! 미행 좀 세련되게 하세요"

[인터뷰] 삼성SDI 하이비트 해고자 대표 최세진 씨

한 번의 선택이 때로 모든 것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부모님처럼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살고 싶었던 어린 시절엔 자신의 지금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마트, 게임 회사, 술집에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그 삼성에 맞서 1년 가까이 복직투쟁을 하는 삶이 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만약 2004년 그 봄, 친언니의 추천으로 삼성SDI 비정규직으로 입사하지 않았더라면, 고향 부산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서울의 차가운 날씨 속에 1인 시위를 하고 서 있지는 않아도 됐을까.

아니, 면접 때 "나이도 많은데 5년 넘게 일할 자신이 있냐"며 "우린 오래 일할 사람을 찾는다"던 회사가 입사 3년 만인 지난 봄 갑작스럽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도 '얌전히' 삼성SDI에서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었겠다.

비록 바쁠 때는 한 달에 500시간도 넘게 일하고 겨우 150만 원 남짓을 손에 쥐고, '주간조'일 때는 새벽 4시 반에 부산에서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타고 밤 8시나 돼야 다시 집에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쉬는 시간에 앉아 쉴 의자 하나 없는 공장 안에서 오늘도 열심히 휴대폰 LCD를 만들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 안에도 못 들어가고 심지어는 공장 정문에 나타나도 1번에 10만 원의 벌금이 나오는 사람이 됐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28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SDI의 사내하청 업체 하이비트 해고자 최세진 씨(30)를 만났다. (☞관련 기사 : "100억짜리 그림 사면서 월 130만원 노동자는 자르고…") 김용철 변호사가 잇단 양심선언을 통해 삼성이 '기업 비리의 백화점'임을 보여준다면 그는 몸으로 삼성이 '비정규직 및 노조 탄압의 백화점'임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기업비리 백화점 삼성, 노조탄압도 백화점
▲ 삼성SDI의 사내하청 업체 하이비트 해고자 최세진 씨.ⓒ프레시안

20개에 달하던 삼성SDI 부산공장 사내하청 업체가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였다. 19개 업체에 있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4000여 명도 일자리를 새로 구해야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세진 씨가 있던 하이비트였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공장을 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불안했죠. 그동안 워낙 소속 업체 변경이 제 멋대로 잦아서 한편으로는 회사는 문 닫아도 우리는 해고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들도 있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조만간 우리도 정리한다더라'는 소문도 돌았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 한 언니가 옛 삼성 노무팀 관계자로부터 "송수근이라는 사람을 한 번 만나봐라"는 말을 들었다. 송수근 씨는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지난 1998년 해고된 후 10년 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세진 씨는 "고용불안 때문에 찾아간 거였는데 그 분을 통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차별을 받아 왔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정규직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나한테 술을 사더라고요. '미안하다'면서. 그 때는 왜 그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이 정규직에게만 '비정규직에게는 비밀로 해라'면서 성과급을 줬더군요. 우리도 같이 성과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정규직이 600만~800만 원 받을 때 우리는 120만 원 받아요."

송 씨의 소개로 하이비트 노동자들이 하나 둘 금속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무노조 경영'을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삼성이었기에 물론 비밀리에 한 행동이었다.

"내가 금속노조에 가입한 것이 3월 27일이예요. 그때까지 총 40여 명이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가입을 했죠. 그런데 그 이튿날인 28일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겠다고 했어요. 출근해서 한창 일하고 있는데 다 부르더니 사직서를 내라고 하더라고요. 하이비트 사장은 '물량이 너무 없어서 회사가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했는데 납득이 가질 않았어요."

그 일이 벌어지기 직전 두 달 동안은 정말 물량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세진 씨가 일하는 LCD 공정은 바로 옆의 브라운관 공정과 달리 계속 상승세를 타는 곳이었다. 그들이 하던 일을 누군가는 또 해야 하는데 왜 갑자기 사전에 공지도 없이 회사 문을 닫겠다고 했을까?

세진 씨는 "삼성 측에서 하이비트 직원들이 하나 둘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일 아닐까"라고 물었다. "금속노조 조합원 수가 점점 더 늘어날까봐 두려웠던 것 아니겠냐"는 얘기다.

"우리더러 이해해달래지 말고 돈 많은 삼성이 우리를 이해해주면 안 되나요?"
▲ 하루 아침의 해고. 회사 사장은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고 했지만 세진 씨는 "우리는 당장 먹고 사는 생존권이 달린 일인데 미안하다고 우리가 회사를 이해해 줄 일이냐"고 되물었다. ⓒ프레시안

몇몇은 사직서를 썼고 또 몇몇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세진 씨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공장 본관 앞에서 침묵시위도 했다. 이들이 단체로 행동을 시작하자 삼성SDI와 하이비트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미안하다. 하지만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진 씨는 "우리는 당장 먹고 사는 생존권이 달린 일인데 미안하다고 우리가 회사를 이해해 줄 일이냐"고 되물었다.

"삼성SDI는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적자인 적이 없는 회사입니다. PDP에 무리하게 투자를 하면서 올해만 적자를 낸 거죠. 그것도 우리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 적자가 난 것도 아니잖아요? '이해'는 우리한테 부탁할 게 아니라 돈 많은 삼성이 우리를 좀 이해해주면 안 되나요?"

4월 2일부터는 '출근투쟁'이 시작됐다. 회사는 이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4시 반에 부산에서 공장이 있는 울산으로 출발하는 통근버스 안에서 '회사가 폐업했으니 출입을 통제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공장 정문 앞에서 관리자들이 버스에 올라 하이비트 소속을 골라내 내리라고도 했다. 내내 일하던 일터에서 하루아침에 '외부인' 취급을 받으니 서러움은 더 했다.

삼성은 본관 앞에서 집회 한 번 하기가 어렵기로 소문난 회사다. 삼성에스원 노동자들이 서울 태평로 앞에서 집회를 하기 위해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략을 쓴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이비트 해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집회 한 번 하기 위해 경찰서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그런데 삼성은 아예 업무방해가처분 신청을 해 1회당 개인별로 10만 원씩 벌금을 물게 만들어버렸다.

"삼성? 무서운 곳이죠"
▲ 세진 씨는 "삼성? 무서운 곳이죠"라고 말했다. "미행이나 감시는 오히려 지금은 재밌다"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삼성이 가지는 막강한 파워를 마주할 때는 정말 소름이 끼친다.ⓒ프레시안

세진 씨는 "삼성? 무서운 곳이죠"라고 말했다. '무노조 경영'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집으로 전화해서 "딸내미가 저러다 빨간 줄긋게 된다"고 협박하고 미행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삼성은 미행이 전문"이라는 세진 씨는 자신들을 미행하는 차는 번호까지 외운다고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해고자 18명이 모처럼 야유회를 가던 길, 그날도 어김없이 미행 차량이 이들의 뒤를 따라 오고 있었다. 놀러가는 건데 너무하다 싶어 뒤 따라 오던 차를 세우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도 야유회 간다"고 대답하더랜다. 세진 씨가 "어디로 가는데요? 먼저 가보세요. 같이 갑시다"라고 했더니 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우물쭈물했다.

"그래서 제가 '사람 기분 나쁘게 이렇게 내내 따라다니면 안 되죠. 미행을 할 거면 티 안 나게 차라도 바꿔가면서 다니던가 하세요. 알았어요?'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예, 알겠습니다' 하더군요."

세진 씨는 "재밌지 않아요?"라면서 웃었다. 노무팀 관계자에게서 수시로 문자도 온다. 누굴 만나러 가면 '그 사람은 왜 만나냐'고 묻고, 세진 씨가 금속노조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니 '대의원은 왜 하려고 하냐. 그런 거 하면 안 좋은데'라고 문자가 왔다. (☞관련 기사 : 삼성 직원, '기자' 사칭하다 '딱 걸렸네~')

"어떨 때는 답도 해주고 그래요. 가끔은 '밥 잘 챙겨드세요,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말도 해주고…. 삼성계열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번은 농성장에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친구 와이프가 우리랑 같이 싸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상사가 부르더니 농성장을 찾은 그 사람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왜 갔냐, 이런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하더래요."

삼성의 노무관리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미행이나 감시는 오히려 지금은 재밌다"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삼성이 가지는 막강한 파워를 마주할 때는 정말 소름이 끼친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을 만나면 '회사가 어렵다지 않냐'며 회사 편을 들고 노무사들도 '삼성에서 왔다'고 하면 다 '바쁘다'고 그래요. 삼성SDI라는 말을 처음부터 안 꺼내고 우리 얘기를 하면 '명백한 불법파견이니 한 번 해보자'던 사람들도 나중에 회사 얘기를 듣고는 머뭇거리죠."

"처음엔 욕하던 삼성 정규직, 이제는 후원금도 주고 힘내라고도…"
▲ '대한민국이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지켜보며 세진 씨는 "기분 나빴죠. 아니, 기분이 더러웠어요"라고 말했다.ⓒ프레시안

그러니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지켜보며 그는 "기분 나빴죠. 아니, 기분이 더러웠어요"라고 말했다.

"그 돈이 다 우리가 일해서 만들어 낸 이익일 거 아니예요. 그런데 정작 노동자는 계속 줄일 생각만 하고…. 지금 SDI부산공장에서만 정규직 1000명을 구조조정 한다던데, 참 뻔뻔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비자금 만들어 준 노동자를 또 버리려 한다는 것이…."

세진 씨는 말끝을 흐렸다.

복직 투쟁을 시작한 지 250일이 넘었다. 처음에는 정문 앞에 서 있으면 "너희는 뭐냐. 길 비켜라"던 삼성SDI 정규직들이 이제는 달라졌다고 했다. "농성장에 먹을 것도 가져다 주고 후원금도 쥐어 주고 응원 전화도 온다"는 것.

"농성장 지나면서 어떤 사람은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하이비트 저 애들이 있어서 우리가 안 잘리는 거 아이가. 우리도 쫓기 나면 저 아들이랑 같이 해야지 뭐'라고요."

그는 "10년 간 사회생활을 했지만 지난 8개 월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부당하게 대우 받아도 내가 참으면 되는 줄만 알고 살았어요. 그런데 참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죠. 내 권리를 내 손으로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 생활에 뛰어들었지만 한 번도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는 세진 씨는 "오히려 복직 투쟁을 하면서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좀 더 많이 배웠더라면 싶더라고요. 요즘은 신문도 많이 읽고 <시사IN>도 사서 보고 그래요."

그는 또 웃었다. "투쟁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길 것 같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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