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삼성 비자금 특검법안에 대한 원안 합의가 나온 22일 오후부터 불과 4시간 가량 뒤에 나온 한나라당의 입장 번복과 수정 요구. 그 4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군색한 트집
우여곡절 끝에 삼성 특검법안은 23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사대상의 핵심인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4대 의혹이 살아남았지만, 한나라당이 한때 벌인 소란으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관리' 등은 수사대상에서 빠졌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입장을 갑작스럽게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22일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합의안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것. 둘째, 청와대의 특검법 거부권 행사의 빌미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가 말한 특검법의 '몇 가지 문제점'이란 "수사대상에 포함된 삼성의 불법상속 의혹이 수사와 재판 중인 사건이므로 특검에서 조사되면 재판에 영향을 미치므로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 에버랜드 사건은 대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삼성SDS 사건도 검찰이 수사 중이다. 정성진 법무부장관도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같은 이유로 특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검법 수정안'에도 삼성 에버랜드 사건, 삼성SDS 사건이 수사대상에 포함돼 안 원내대표의 해명은 수긍하기 어렵게 됐다. 그의 법적 논리에 입각해 볼 때 수정안 역시 위헌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 원내대표는 23일 의총에선 "위헌적 요소와 대상은 정리가 다 됐다"며 권고적 찬성당론 방침에 대한 의원들의 동의를 구했다.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의 빌미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요구해 수사대상에 반영된 '당선축하금'이 청와대를 자극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청와대가 국회의 처리상황을 지켜본 뒤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입장을 낼 분위기인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의 일사불란한 대응에 파열음을 낸 한나라당의 태도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안상수-주성영의 실수?
안 원내대표는 23일 오후 의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선 전달과정의 착오도 한 이유로 들었다.
그는 "내가 원래 보고 받기로는 우리 안이 대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고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안을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여야 간사 간 절충을 한 것이더라. (법사위 간사로부터) 구두보고를 받고 의총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두로 전달받은 탓에 꼼꼼히 보고받지 못한 상황에서 긴급히 발표하다 보니 생긴 착오라는 얘기다.
하지만 안 원내대표는 검사 출신의 3선 의원인데다 얼마 전까지 법사위원장으로서 각종 법안의 수문장 역할을 했던 '법 전문가'이자 현재는 원내사령탑이다. 그에게 내용을 잘못 전달했다는 법사위 간사 주성영 의원 역시 베테랑 검사 출신이다. 주 의원은 법사위 소위에 참석해 합의안이 나온 과정을 지켜본 당사자이기도 하다.
주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의사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원내대표가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사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냐"고 여운을 남겼다.
'법'에 관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두 사람이 특검법안의 핵심인 '수사대상'을 놓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건 실수 치고는 너무 큰 실수다. 주 의원은 구체적인 의사소통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그게 중요한가. 이제 통과됐는데…"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법률 전문가 두 명이 스타일을 구기면서까지 특검법의 무사통과를 진화하려 했던 진짜 이유는 뭐였을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줄곧 참석했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두 사람이 특검법 조율 과정에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귀띔했다. 의사소통의 실수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안 원내대표가 당초 제기했던 위헌 시비에 대해선 "한나라당 의원들도 위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압도적인 표결처리가 된 것 아니냐"며 "주성영 의원도 원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어제 법안심사소위의 합의안이 나오고 그것이 한나라당에서 갑자기 뒤집어지기까지 약 4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겠느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그는 "이명박 캠프에서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당초 특검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던 삼성도 그때부터 전방위로 뛰기 시작했다. 의원들에게도 수많은 전화가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일체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