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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밥그릇만 뺏어가는 재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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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민 밥그릇만 뺏어가는 재벌들'

[정희준의 어퍼컷·18] '문어도 다리는 여덟 개 뿐이다'

김용철과 이용철 변호사의 연이은 폭로와 양심선언에도 불구하고 삼성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두더지처럼 삐져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삼성이 임금 떼먹는 파렴치한 악덕 기업은 아니지 않냐', '비자금 조성했다고 직접적인 피해 입은 사람은 없지 않냐', '삼성이 우릴 먹여 살리지 않냐' 등등. 다 틀렸다.

한 번 보자. IBM은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가. 컴퓨터. 토요타는? 자동차. GE는? 가전제품. 보잉은? 비행기. 월마트는? 유통. 나이키는? 스포츠용품.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 그렇다면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한 우물만 판다. KFC가 닭튀김으로 성공했다 해서 소튀김을 내놓지도 않고 또 현지화 하겠다며 한국에서 냉장 삼계탕 판매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러나 삼성은 다 한다. 돈 되는 건 다 한다. 서민들 밥그릇까지 뺏어간다.

소매유통업의 성장, 생계형 자영업의 몰락

한 신문을 보니 올들어 10월까지 40대 초반 남성들이 집중적(?)으로 구조조정 되면서 40대 초반 남성들의 일자리가 무려 23만개 이상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앞길은 어떻게 되는가. 재취업? 마흔 넘어 재취업은 무리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소규모 자영업에 나선다.

그런데 작은 가게 하나 운영하기도 요즘은 쉽지 않은가보다. 같은 기간 종업원 1명 이상을 고용한 개인사업체 사장(고용주)은 156만 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만 명 가까이 줄어 1998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4.3%)를 보였다고 한다. 정말 요즘 저임금 노동자나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자영업 종사자들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사실 소매업 매출액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올해 소매판매액은 1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작년보다 3.5%, 1996년(98조 원)보다 54.7%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매업 시장은 커지지만 여기에 뛰어들어 성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연락이 닿지 않는 옛 동료들은 자영업을 하다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한 직장인의 설명에서 보듯 생계형 자영업에 나선 서민, 중산층들은 그들의 생계전선에서 패퇴하고 있다.

왜 그럴까. 소매업 매출은 늘고 있지만 그 증가분은 모두 대기업들이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 이들은 재래시장과 소규모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며 자신의 이윤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언급했듯 올 소매판매액은 작년 대비 3.5% 증가인데 대형마트는 10.6%를 기록 중이다. 반면 재래시장과 기타 소매점포는 성장률 0%의 침체에 들어갔다.

재벌의 한 계열사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퇴직금 가지고 뭐 좀 하려고 하니까 또 다른 계열사인 대형마트가 밥그릇 뺏어가는 꼴이라면 과장이 너무 심한가? 하여튼 재벌의 돈벌이 방법은 아무리 봐도 저열하고 비겁하다. 염치가 없다.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형마트

대형할인매장 업계 1위 이마트, 그리고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치열하게 격돌하면서 이들은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 이제까지 전국엔 370여개의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이들이 들어서면 주변상권은 그야말로 초토화된다.

과일가게, 생선가게, 야채가게, 건어물가게, 구멍가게, 판가게, 전파상, 철물점, 정육점, 세탁소, 쌀집, 빵집, 서점, 문방구, 자전거포에 인근 식당까지 매상이 폭락한다. 하여간 연탄가게 빼곤 죄다 영향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홈플러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인터넷 쇼핑몰, 담보대출, 자동차보험, 통신, 여행, 꽃배달에 웨딩서비스까지… 없는 게 없다.

이들 재벌 대형마트 때문에 지역의 토착 중급마트들도 속속 문을 닫는다. 그래서 주변의 상인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반대에 나선다. 이들은 동네 어느 공터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불안에 휩싸인다. 그 소문이 사실로 판명되면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공사장 앞으로 가 시위를 벌인다. 뉴스를 보며 시위대를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이 머리에 띠 두르고 시위에 나선다. 작년 1월 우리 학교와 가까운 부산 사상구 엄궁동에 롯데마트가 들어서게 되자 시장 상인들이 시위에 나섰다. 롯데 측은 보상금 더 받으려는 속셈 아니겠냐고 했다. 그래, 보상금 더 받으려고 청과물 시장 상인이 공사현장 앞에서 분신자살했을까.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기이한 위장술
▲ 재벌 대형마트 때문에 지역의 토착 중급마트들도 속속 문을 닫는다. 그래서 주변의 상인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반대에 나선다. 지난 2006년 제주 서귀포시에 문을 연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매장. ⓒ뉴시스

속을 들여다 볼수록 지저분하다. 2009년까지 99개 매장을 확보해 업계 1위 달성을 목표로 하는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한 기사에 따르면 참으로 '기이한 방식'으로 매장을 늘려나간다고 한다. 지역의 상인과 지역언론의 비판을 우려해 공사 기간 현장의 모든 설치물에서 브랜드를 숨기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눈독 들이는 땅을 시장 상인들이 먼저 매입해 버리거나 지자체장이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시유지 매각을 불허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그래서 전주에서는 '덕진마트', 진주에서는 'SM21' 등의 이름으로 위장하여 건설하다가 완공되면 사들인다는 것이다. 아예 부산 남구의 경우처럼 건축허가 표지판까지 숨기는 방식으로 구청도 속이고 지역 상인과 주민을 속이기도 한다. 삼성은 계좌만 '차명' 하는 게 아니라 공사허가도 '차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의 그 삼성의 익숙한 변명을 듣게 된다. '법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 이 말, 정말 기분나쁘다. 도덕적, 윤리적, 실제적, 사회적으로는 모두 문제가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괜찮다?

'친하면 다친다'…그들의 전방위적 '횡포'

이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지역상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고용인에서 납품업자와 생산업자까지 아우른다. 비슷한 대기업 수준이 아니라면 관계해서 별로 좋을 게 없다.

대형마트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납품(협력)업체에게 직원 파견을 요구하다가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또 이들은 야채와 채소의 가격을 내리기 위해 농산물 납품업자들을 압박한다. 산지수집상으로, 생산업자로 파급돼 농촌현장에서 '밭떼기 계약' 등 거래가를 후려치는 방식으로 산지 농산물 값을 마구 하락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대형마트 간 가격경쟁은 이들에게 납품하는 소규모 제조업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하면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고도 언제 밥줄이 끊길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단다. 피고용인이야 이마트, 뉴코아 비정규직 문제에서 알 수 있듯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골목길 싸돌아다니지 말고 세계로 나가라
▲ 지난 2005년 8월 보광 훼미리마트는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입구에서 3000호점을 열었다. 1989년 이후 단시간에 우리나라 전 골목으로 번져 나간 편의점은 이제 1만 점 시대에 접어들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들 대형마트의 번식욕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네까지 침투한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GS스퀘어는 GS(수퍼)마켓이란 이름으로 동네 아파트상가에서 수퍼마켓까지 한다. 대형마트는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바쁘고 귀찮은 사람도 있을테니 아예 집 앞으로 가겠다는 거다.

그리고 이 재벌들은 동네로 들어와 수퍼마켓까지 하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구멍가게까지 한다. 1989년 이후 단시간에 우리나라 전 골목으로 번져 나간 편의점은 이제 1만 점 시대에 접어들었다. 삼성과 형제기업인 보광의 훼미리마트가 3500개의 점포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고 롯데의 세븐일레븐이 1400개, GS의 GS25가 2000개, 동양의 바이더웨이가 1000개의 점포를 전국에 흩뿌리며 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쓸어가고 있다. 맞은편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바라만 보고 있고.

동네 수퍼마켓들은 '별 짓'을 다 하고 있다. 조합을 만들어 유통마진을 줄여보려고도 하고 자체브랜드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재벌의 대형마트의 전방위, 다단계적 공세에 버틸 재간이 없다. 결국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소매업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수밖에는 없다. 솔직히 재벌들은 서민들 밥벌이 할 것은 좀 놔둬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밥그릇은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재벌은 '문어발 확장'도 좀 가려가면서 하자. 문어도 발은 여덟 개 뿐이란 말이다. 그리고 제발 밖에 나가서 세계를 정복해라. 골목까지 쳐들어와서 구멍가게 할아버지, 할머니 정복하지 말고. 서민, 시장상인 밥그릇 뺏어 가면서 무슨 '일등기업'이야. '조폭기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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