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후보가 신당의 후보로 선출된 직후 노무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고 청와대가 "열린우리당의 맥을 잇고 정부와 정책적 공감대가 큰 통합신당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뽑힌 후보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힘을 실어주면서 복원되는 듯 보였던 양측의 관계가 다시금 난기류에 빠져든 셈이다.
"청와대는 도무지 도움이 안 돼"
삼성 비자금 특검에 대한 정 후보와 노 대통령의 인식 차이는 대선후보와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처지와 무관치 않다. 정 후보가 삼성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특검 도입을 천명하면서부터 예정된 갈등이라는 것.
이명박 후보와 선명한 대립각을 그어 활로를 모색하려는 정 후보에게 '부패 대 반부패' 구도에서 삼성은 불가피하게 예외가 될 수 없었던 반면,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까지 수사대상에 포함된 특검법안이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임기가 100일 여 남은 상황에서 특검 수사기간이 최장 200일로 규정된 점은 노 대통령에게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는 분석이다.
정동영 선대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거부권 검토 발언은) 노 대통령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며 "노 대통령 임기 뒤의 일에 대해선 통제권이 없다는 위험성을 고려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후보로서도 청와대의 '특검 무력화'를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신의 제안과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화답으로 성사된 '3자회동'의 산물인 특검법안이 청와대의 벽에 부딪혀 좌초될 경우 입을 정치적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날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한 정 후보는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비리 대상에 검찰이 있기 때문에 특검을 가동하라는 것"이라고 특검 강행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한나라당 특검법안의 '물타기'를 공박하며 나온 발언이지만 "지금 불거진 현안이 있는데 느닷없이 왜 방해하느냐"고 한 대목은 청와대의 특검 거부권 검토에 대한 불편함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정 후보는 특히 "새로운 정부는 참여정부 집권의 연장이 아니다"며 "새로운 정부의 중심세력은 당이 될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당 중심으로 정치하지 않았다"고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선대위의 고위 관계자도 청와대의 태도에 대해 "이해가 안 간다. 청와대는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정 후보가 상정한 '부패 대 반부패' 구도라는 게 부패의 틀에 이명박, 이회창 후보를 비롯해 기득권 집단 특권 집단과의 부패의 연계 고리를 찾아 가두려는 것인데, 청와대가 여기서 딴지를 걸면 구도 자체가 흔들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제까지 캥거루족으로 있을 수 있겠나. 우리의 입장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적 독립, 정책적 독립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정치적 독립은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과의 통합과 후보단일화 등으로 '노무현 색깔빼기'에 속도를 내는 것이고, 정책적 독립은 부패 대 반부패 구도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민주당 합당 또 다른 뇌관
하지만 정 후보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 범여권 통합과 후보단일화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악화시킬만한 또 다른 요인이다.
특히 '지역정당으로의 회귀'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가 앞장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정치적 가치인 '지역주의 극복' 방식과 다른 길을 택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친노계의 유시민 의원은 전날 "반한나라당 구호아래 후보를 단일화 해도 국민들의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며 단일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절대악' 식의 전략을 펴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정 후보의 '반부패' 전략에도 비판적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민주당과의 합당에 관련해선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 진영의 반발이 가장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 후보는 "호남당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정치인은 낡은 정치인이다. 12월 대선은 분열주의 세력과 통합 세력의 대결"이라고 민주당과의 통합에 대한 정당성를 역설했다.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은) 지역을 넘어서려는 비원(悲願)"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후보는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성사시켜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한 부정적 요인을 세탁하려는 속내다. 그는 "지금까지 비공식 TF를 구성해서 한명숙, 천정배 의원, 양길승 최고위원의 공동책임으로 문 후보와 연대와 협력에 관한 다양하 접촉과 대화를 해 왔다"며 "가능한 조기에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문 후보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당분간 단일화 거부 쪽으로 방침을 정한 문 후보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결과적으로 '정동영-이인제 단일화'로 비쳐질 수밖에 없어 정 후보에게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대선을 30여일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정 후보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반부패' 구도와 '단일화 드라이브'에 대해 노 대통령이 '내부의 벽'으로 등장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또 다른 선거 변수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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