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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지뢰' 어떻게 터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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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지뢰' 어떻게 터질지 모릅니다"

[정치와 사람들 ③ 남재희] "후보 말고 '패거리'를 평가해야"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의 이력이 존경할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안을 보는 그의 안목은 존중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언론사 편집국장, 국회의원, 장관을 거쳤다. 그만큼 권부의 생리에 정통하다.

그에게는 정보 수집벽이 있어 보인다. 70대 중반의 노령에도 최근의 각종 논쟁을 막힘없이 인용한다. 연령과 이념을 넘나드는 그의 교제범위는 유명하다. 그의 시각이 유연하고 균형 잡혀 있다는 평을 듣는다면 이 영향이 클 것이다.

남 전 장관은 '리얼리즘'을 강조한다. 주로 진보를 비판할 때 그렇다. 진보의 정책과 노선이 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진보는 리얼리즘에 입각한다. 동시에 진보는 체제의 리얼리즘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후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 전 장관의 주장이 흔쾌하지 않을 수 있다.

남 전 장관의 생각은 진보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어떤 견해를 무시하기는 쉽지만 제대로 가려듣고 약으로 삼기는 어렵다. 오늘 진보에게 필요한 건 무시하는 대범함보다 듣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남 전 장관을 인터뷰에 초대한 이유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 비자금 문제를 말머리로 삼았다. 당초 예정된 질문에는 없던 내용이다. 앞서 대략 스무 문항의 질문을 전화로 전달한 상태였다. 그는 이메일도 팩스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고 봅시다. 신부님들이 관여한 걸 보면 사실이겠죠. 사실 같아요. 신부님들이 코멘트 한 걸 보니까."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물었다. 그 가공할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 "글쎄요. 두고 봅시다" 하고 만다. 조심스러운 태도다.

"노무현 정권, 평년작은 했는데…"
▲ ⓒ프레시안

본 질문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해 '평년작은 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현 정권의 공과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현 정권의 집권 기반이 취약했다는 사실을 먼저 환기시켰다.

"애초에는 개혁적인 생각을 갖고 출발을 했죠. 그런데 (개혁을 실천할 만한) 준비가 덜 됐습니다. 또 열린우리당이라는 게 급조정당입니다. 탄핵 파동 때문에 우르르 당선됐지만 결집력도 약했고요. 우리나라에는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보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세력이 큽니다. 탄핵 파동이라는 격변기적 상황에서 다수가 당선되었을 뿐이죠.

지역을 빗대 말해 좀 뭐하지만, 경상도적인 사람의 수가 전라도적인 사람의 수보다 더 많습니다. 여기에 조중동하고 싸움이 붙었습니다. (노 대통령과 조중동 가운데) 누가 잘했느냐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거기서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됐어요. 일반 국민들에게 노 대통령의 이미지 손상도 많이 됐고요.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인심을 많이 잃었습니다. 평가도 나쁜 것으로 됐고요."

취약한 집권 기반과 준비 부족이 근원적인 제약요인이었고, 언론과의 불화가 정권의 성적을 실제 이상으로 저평가하게 만들었다는 환경적인 얘기다. 객관적인 성적은 어떨까.

"권위주의도 타파됐고, 복지도 조금은 향상이 됐죠. 그래서 '평년작'이라고 했던 겁니다. 조중동만 보는 사람들은 엄청난 실정으로 보지만 그 요소를 빼고 생각하면 그래도 평년작은 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야박한 평가를 받는 건 노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노 대통령의) 언행이 문제입니다. 품위 없는 언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줬어요.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들 중에 품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국민의 마음을 박박 긁어대는, 기분 상하게 하는, 그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합니다. 평년작은 해놓고 언행이 경망스럽고 품위가 없기 때문에 평년작도 못한 것으로 일반에게 비친 것 아닌가 싶어요."

노무현, 지키지 못할 약속

노 대통령 지지자 가운데 다수는 조중동에 적대적이다. 또 그들은 한 때 노 대통령의 '거친 언행'에 오히려 열광했었다. 그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다. 장점이 단점으로 바뀐 이유는 아무래도 행태보단 내용에 있지 싶다.

"보통 기대가 크지만 대개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실망스럽게 끝나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노 대통령은 '반미면 어떠냐.' 이런 식으로 품위 없는 얘기를 해놓고 나중에는 미국 하자는 대로 다하지 않았습니까.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도 하고 한미FTA도 하고. '반미면 어떠냐'고 했던 사람의 언행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는 거지요. 처음에 '반미면 어떠냐'고 한 게 잘못입니다. 국제적인 여러 여건을 생각할 때 한국의 위치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겁니다. 미국과의 협조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출발에서 헛된 꿈을 준 겁니다. 그래놓고 실제로는 별 거 아닌 행태를 보였고요. 그러니 '자주적으로 근사하게 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하는 거죠."

노 대통령이 지지자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이 질문은 결과적으로 무의미했다. 그의 시각에선 통치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반미면 어떠냐'는 식으로 애당초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야당이나 집권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라크 파병도 안 하고'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대량 살상무기 때문도 아니고 다 허위 아닙니까. 앨런 그린스펀 얘기처럼 석유 탐나서 한 거고, 이스라엘 보호하려고 한 거예요. 이건 완전히 부도덕한 일입니다. 도덕적인 기준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죠.

그러나 도덕적인 판단만으로 통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있고 미군이 한국에 3만 명이나 주둔해 있고 또 실질적으로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는 나라에서 지원을 요구하는데 안 들어줄 수 없는…. 만약 이라크 파병을 안했다면 한미 간에 상당한 긴장과 파국이 왔을 것으로 봅니다. 도덕적인 판단과 통치자로서의 행위는 같을 수가 없는 거예요. 통치자의 행위는 때로 부도덕할 수가 있는 겁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부도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통치자가 자이툰 부대를 보낸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관료들은 무섭다"

그는 현 정권의 성과 중 하나로 복지의 증진을 들었다. 그의 말대로 수치로 보면 복지비 지출이 분명 늘어났다. 현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은 그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노령화에 따른 자연증가분이 대종이었다는 등 논쟁적 반론이 있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현 정부 들어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며 체감하지 못한다. 역시 문제는 경제인가?

"그건 노무현 정부 잘못만은 아닙니다. 우리 경제가 고용 없는 성장이 되고 있잖아요. 고용 없는 성장은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자본이나 공장을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신흥 공업국에 뺏기고 있지 않습니까. 임금이 싼 나라로 간단 말이죠. 이런 게 관계된 것이지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복지비용의 증진과 제대로 된 경제성장의 실패, 모순된 두 가지 지표는 노 대통령이 한 때 농반진반으로 자기규정했던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말과 닮아있다. 노 대통령은 어쨌건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하고 싶은 속내를 여러 번 내보이기도 했다. '말'이 아니라 '정책'에 입각해 노 대통령의 이념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토지에 대한 부분, 예를 들어 종부세 이런 건 상당히 개혁적인 겁니다. 방향이야 맞는 거죠. 굳이 헨리 조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땅에서 과도한 이익이 생긴다는 건 그 집이나 땅이나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한테서 과도하게 착취하는 겁니다. 원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이자율 정도의 적정 이윤은 괜찮죠. 그러나 이자율 몇 십 배의 어마어마한 아파트값 상승은 거기에 세 들어가는 월급쟁이나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착취하는 겁니다. 개인적인 착취가 아니라 사회 메커니즘에서의 착취죠. 종부세 같은 것을 높게 매기는 건 당연합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손문의 삼민주의에도 나오고 임시정부 헌법의 삼균주의에도 나옵니다. 그런 것은 상당히 진보적이죠."

종부세와 함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정책도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정책은 노 대통령에 의해 폐기처분됐다. 노 대통령은 "열 배 남는 장사도 있다"고 했었다. 개혁적 지지층이 떨어져 나간 요인 중 하나로 이를 꼽는 사람도 있다.

"이정우 교수는 관료들에게 졌다고 평가하더군요. 관료들이 무섭습니다. 관료들에겐 양면성이 있습니다. 부동의 자세, 현상유지의 자세, 이런 건 비판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관료가 있어 안정성도 있고 전문성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관료들에게 말려들면 안 됩니다. 말려들면 만날 현상유지입니다. 초기에는 관료들을 좀 이끄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대개 관료들에게 말려듭니다. 관료들 하자는 대로 합니다. 어느 정권이나 나중에 그리 됩니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얘기가 집권 1년 내에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이 어렵다고 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오버'와 노무현 정부의 '무능'

'잃어버린 10년'이 화두다. 현 정권을 민주정부 2기로 볼 것이냐, 3기로 볼 것이냐는 논쟁이 엄존하지만 남 전 장관이 "권위주의 정치, 군정적, 준군정적 요소를 청산하면서 민주적인 가치를 정착시켰고 남북문제에서는 화해가 진일보한 단계"라고 후하게 평가한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주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건 한국 최근사의 가장 큰 역설이자 비극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출발합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설 때 IMF 관리체제를 맞았죠. IMF의 무리한 요구를 김대중 정부가 수용했습니다. IMF의 요구가 잘못됐다. 무리한 것이었다는 것은 그 후 여러 사람이 지적했습니다. 스티글리츠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아무튼 IMF가 외환위기를 기회로 해서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했고, 김대중 정부로서는 무리한 요구인 줄 알면서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YS 정부가 물려준 유산, 즉 상황론에 기댄 DJ-노무현 정부의 항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 수용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 전 장관 견해의 포인트는 김대중 정부가 시쳇말로 '오버'를 했다는 점에 있어 보였다.

"김대중 정부가 주책이 없었던 것 같아요. (IMF 요구보다) 한 술 더 떴습니다. 은행 같은 걸 막 팔아치웠어요. 나는 여기에 김대중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IMF 요구 이상으로 값싸게 처신했어요. 그건 비판받아야 합니다. 너무 서둘렀던 것 같아요. 조지 소로스 같은 투기업자를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칙사 대접하고 말이죠."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현격히 '초과수용'한 게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신자유주의를 만개시켰다는 비판에 대한 또 하나의 변명거리는 아닐런지.

"준비가 덜 됐습니다. 명확한 방법론 설정이 덜 되었다는 게 근본 문제입니다. 또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을 감당하려면 뒷받침해줄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너무 약했어요. 거기다 조중동은 조지기만 하고. 뭐 그냥 정상적인 자유주의적 정책도 '좌파다' 그러지 않습니까. 좌파는 뭐가 좌파입니까."

그의 설명대로 하면, 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확대 적용한 건 대체로 무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그렇기만 한 것일까.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사업본부장은 언젠가 '개방을 통한 내부 개혁'이라는 친노 의원의 발상을 개탄한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를 신념의 차원에서 밀어붙인 민주파도 있다는 얘기다. 시장의 자유화와 정치적 민주화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일반적으로 관계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많습니다. 이른바 아시아 나라들이 그렇죠. 싱가포르가 시장주의 국가 아닙니까. 그러나 이광요나 그 아들은 어마어마한 귄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말레이시아도 그렇고 대만도 그렇죠.

분명한 건 시장의 자유화가 강화되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힘이 약해진다는 거죠. 좌파적인 정책구상이 후퇴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좌파적인 정책구상이라는 건 경제에 정치력이 관여를 많이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시장이 자유로울수록 좌파적인 이데올로기는 쇠퇴하게 됩니다. 이건 정치적 권위주의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생산은 시장에, 정부는 분배에만"
▲ ⓒ프레시안

박정희 시대의 그늘은 희귀한 방식으로 현재에 드리워져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자가 된 민주파는 박정희 시대의 독재정치를 현재의 자기노선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인권탄압은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화는 곧 시장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교한다. 시장에 대한 개입과 독재를 한 꾸러미로 놓는다는 점에서 박정희 옹호론자와 신자유주의자는 동일한 지반 위에서 마주 서 있다. 남 전 장관은 언젠가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면서 "경제발전과 인권탄압은 불가피한 패키지가 아니다"고 한 적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정보정치, 고문정치, 탄압정치는 일본의 헌병정치, 특고정치를 그대로 본 딴 겁니다. 그런데 식민지에서의 헌병정치, 특고정치는 일본 본토의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한반도에서 일본의 헌병정치는 지독했습니다. 대만하고도 달랐어요. 대만은 일본 해군이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식민통치가 좀 온건했습니다. 대만 사람 중에는 친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군들이 원래 국제적으로 돌아다녀서 젠틀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육군이 점령했어요. 육군은 해군에 비해 잔혹합니다. 거기다 헌병, 고등경찰, 특고정치, 이러니까 어마어마한 탄압의 전통이 있었던 거죠. 박정희 정권은 일본의 특고정치, 사상경찰 제도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일본 만군의 헌병장교가 그대로 한국군에 들어왔어요. 일정 때 헌병정치, 특고정치의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인 겁니다. 그것하고 경제발전의 방법론하고 반드시 묶여야 한다는 게 어떻게 성립합니까."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건 논쟁거리다. 장하준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 방어적 재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정희 시대를 영어로 '커맨드 이코노미(command economy)'라고 합니다. 명령경제입니다. 지금은 그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장 중심으로 되어 나갑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국제경제의 일부입니다. 소위 '합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글로벌스탠다드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안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출입으로 먹고 살지 않습니까."

물론 글로벌스탠다드라고 하지만 분배 영역에선 각국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다양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국가에선 복지적인 것을 강화하는 다양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의료나 교육제도, 각종 사회안전망 같은 문제에서 말이죠. 복지를 위한 정부의 주도적 역할, 이건 지켜야 합니다."

요컨대, 정부의 개입 범위는 분배의 영역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 쪽은 시장에 맡기고 분배 쪽에서는 정부가 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생산의 영역에서 정부는 공정의 보장자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금산분리 폐지는 재벌들 사금고 만들어달라는 것"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신자유주의는 불가항력적 대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통치적 범위에서 이에 대한 안전장치는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이 숨어있다.

"신자유주의의 주된 정책기조는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규제완화입니다. 먼저 민영화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느냐. 나는 우리나라 관료나 공기업 전문경영인이 우수하다고 안 봅니다. 따라서 권영길 씨 말처럼 재국유화를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국유화해서 누구에게 맡길 겁니까. 관료에게? 다시 비능률과 부패가 나타날 겁니다. 민간에게 맡길 것은 맡기고 (국영의 범위는) 수도나 전기, 더 나가서 철도, 이 선에서 머무르는 게 좋죠.

규제완화는 결국 전경련의 요구입니다. '금산분리 폐지하라' '순환출자 제한 폐지하라' 이거 아닙니까. 이명박 씨가 금산분리를 폐지한다고 했다가 요새는 완화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그 소립니다. 금산분리 폐지는 은행을 재벌들의 사금고로 만들어 주자는 얘기 아닙니까. 그런 규제완화가 되겠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봐도 금산분리 해제한 나라는 2~3%에 불과합니다."

국가 모델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가령 사회보장제도, 연금, 의료, 교욱 제도 등에서는, 이런 것을 통틀어 복지정책이라고 하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여기서는 각 나라의 전통과 특수성에 의해서 독자적인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을 뒷받침하려면 가치적인 면에서 평등의 가치나 사회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는 힘이 강해야 합니다. 영미모델에선 평등이나 사회연대의 가치가 강조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구라파 모델에선 평등의 가치와 사회연대 가치가 강조되니까 그게 힘을 받습니다. 곧 그것을 뒷받침하는 진보정당이 있다는 겁니다. 진보정당이 있으니까 힘을 받아서 복지제도가 존속하고 발전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은 평등의 가치를 강하게 갖고 있는데, 그걸 뒷받침할 힘이 약하니 자꾸 밀리는 것 아닙니까. 영미모델에 밀리고 있습니다. 밀리지 않으려면 진보적인 정치화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남 전 장관은 북유럽의 모델을 선호하는 듯 했다. 그는 "이정우 교수가 좋은 말을 했던데, 우리에게는 북구 모델이 바람직스럽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려면 진보정치의 세력화, 곧 진보정당의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기대감이 배반(?)돼서 일까? 남 전 장관은 민주노동당의 현재에 대해 신랄했다. 얼마 전 그는 권영길 후보에게 공개서신을 띄운 적이 있다. 거기서 그는 민주노동당의 모습을 '당랑거철'에 비유했었다. 수레바퀴를 가로막는 사마귀의 형세라는 뜻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잠꼬대"
▲ ⓒ프레시안

"권영길 씨가 헛다리를 짚고 있어요. 리얼리즘이 너무 없어요. 예를 들어 '연방제다' 하는데, 그 무슨 웃기는 얘깁니까. 북한이 고려연방제라고 하니까, 자기는 코리아, 고려를 코리아로 표기만 바꾼 것 아닙니까. 연방제라는 게 뭡니까. 남북을 통틀어 그 위에 중앙정부가 있는 게 연방제 아닙니까. 연방이 군사와 외교를 장악하는 겁니다. 현재 남북이 군사문제를 담당하는 연방 국가를 세울 수 있습니까. 군사문제를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제3의 연방 국가에 맡길 수 있는 처지냐, 이 말입니다. 그건 잠꼬대 같은 소립니다. 잠꼬댑니다, 잠꼬대."

이 대목에선 그의 언성이 매우 높아졌다.

"북한이라는 게 연방은 고사하고 연합도 될까 말까입니다. 북한은 실패한 경제체제입니다. 백낙청 씨가 얘기하는 것처럼 한반도 분단체제가 아닙니다. 한반도 분단 체제에서 연합하고 연방하고 해야 될 대등한 상대로 북한을 생각하는데, 북한 문제에서 우리는 도와줘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코리아 연방'을 말하고 있으니…."

권영길 씨가 '미국을 벌벌 떨게 만들겠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닮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비현실적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 체제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차베스에 대해서도 평가가 다양합니다. 포퓰리즘 정부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차베스의 포퓰리즘이 가능한 건 오일머니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입니다. 정상적인 이데올로기적 좌파정권이 아닙니다. 오일머니 가지고 동네마다 새마을운동 하는 것처럼 주민위원회 조직해서 돈 대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포퓰리스트예요. 그러면서 평생 집권하려고 하고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닮으려고 합니까. '차베스처럼 미국을 벌벌 떨게 만들겠다.', 이 무슨 환상적인 얘깁니까."

남 전 장관은 민주노동당이 '저항단체' 같다고 했다. '집권정당'과 '저항단체'를 가르는 기준선은 지향과 정책의 리얼리즘일 것이다.

"'연방제만이 살 길이다, 미국은 물러가라',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미국은 제국주의자입니다. 월남도 침략하고 이라크도 침략했습니다. 미국이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 정치의 리얼리즘에서 '미국 놈들 침략자니 나가라' 이렇게 되겠습니까. 왜? 상대가 있는 것 아닙니까.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과 북한과 남한의 역학 구조에서 우리가 점차 평화구조로 전환해 나가야지 한 쪽만 싹 어떻게 하자고 하면….그러니 리얼리즘이 없다는 겁니다."

남 전 장관은 민주노동당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유연함'은 자신의 정체를 배반하기도 한다. 민주노동당, 나아가 진보가 지켜야 할 가치란 무엇일까.

"해방공간 3년 동안 우리 정치가 꽃을 피웠습니다. 공산당도 합법화되고 좌우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어요. 그러나 해방공간적 사고가 지금도 적합합니까. 우선 민족에 대한 생각이 그 때와 지금이 같을 수가 있습니까.

요전에 여운형 씨 서거 60주 기념행사가 있어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여운형 씨가 했던 해방공간에서의 좌우합작과 지금의 좌우관계를 생각한다면 같을 수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나는 다르다고 봅니다. 해방공간에서의 민족은 독립운동을 함께 해 온 뿌리입니다. 같은 흐름입니다. 국가 수립하는 데 두 흐름이 협력하자는 겁니다.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건국하는 단계에서 두 흐름이 손을 잡자는 겁니다.

이제 60년이 지나서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정부를 구성해서 실험을 했습니다. 한 쪽은 실패하고 한 쪽은 뭐 어떻게 됐고. 성적표가 다 나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해방공간적인 민족주의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 나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해방공간의 민족개념과 지금의 민족개념은,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민족주의는 다릅니다. 그리고 해방공간에서의 진보적인 생각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는 지금의 이데올로기 문제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해방공간의 생각을 지금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해방공간의 책만 읽습니다. 그 때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많이 생각합니다. 지금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21세기 새로운 단계에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진보주의를 얘기해도 새로운 단계에 맞는 진보주의를 얘기해야지.

나는 아까 말한 대로 이정우 교수가 말한 정도의 모델이 좋습니다. 전 세계에 200개 가까운 국가가 있습니다. NL쪽 사람들은 현재 어느 국가가 모델이 될 수 있느냐를 얘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하면 그건 공론입니다. '북구 국가다, 영국이다' 뭐 얘기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기든스의 제3의 길이나 이정우 교수의 얘기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런 현실적인 얘기를 민노당이 해야 합니다. 해방공간의 관념에서 탈피해 그런 차원에서 정책을 현실적으로 펴나가야 합니다. (이상국가의 상을 보여줄) 레퍼런스(reference)가 있어야 합니다."

"입 발린 '정책'보다 '자질'이 더 중요"
▲ ⓒ프레시안

이쯤해서 대선으로 화제를 옮겼다. 이번 대선의 이슈는 부정과 비리가 될 모양이다. 이명박과 김경준,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를 쫓느라 기자들은 바쁘다. 언제쯤 국민연금 개혁이나 한미FTA 같은 게 대선의 메인 이슈가 될까 하는 단상은 해놓고 보니 한가하긴 하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부정부패나 비리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부정부패나 비리가 없다면 정책이 두드러지겠죠. 지금 이명박 씨도 확증은 안 됐지만 도곡동 땅이나 김경준 하고 주가조작을 했네, 안 했네, (주가조작의) 주체네 아니네, 땅 투기를 했네, 안 했네 뭐 그냥 온갖 것이…. 그런데 오히려 그게 (정책보다) 더 중요합니다. 대통령의 자질 문제니까. 그 사람 스스로 입 발린 말 하는 것보다는 (자질이) 중요한 거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봐요."

이번 대선은 경제대선이라고 한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고 한다.

"지금 경제 문제 아니면 안 먹힙니다. 정동영 씨가 개성공단 몇 십 개 만들어서 북한 카드로 이명박의 경제카드를 상쇄하려고 하는데 북한카드로는 경제카드를 상쇄할 수 없습니다. 경제카드는 경제카드로 대항해야 합니다. 북한 카드로는 대항이 안 됩니다. 문국현 씨처럼 해야죠. 물론 북한카드를 쓰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북한카드를 주 이슈로 해서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정동영 씨 측이 전략을 잘못 잡았다고 봅니다."

"민노당은 대선보다 총선이 중요"

한국 대선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는 '비판적 지지론'이다. 민주노동당이 과녁이다. '될 사람 밀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한국의 랄프 네이더는 필요 없다"고 했다.

"현재 단계에서 민노당에게 대선은 선전의 기회이지 당선의 기회가 아닙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더 중요합니다. 대선 후보 단일화에 끼어들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표를 못 얻습니다. 휘말려버립니다.

단일화를 주창하는 측에서는 '보수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진보진영과 개혁진영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앨 고어가 지난 미국 대선에서 득표에서 이기고도 플로리다에서 졌습니다. 플로리다에서 고어가 부시에게 진 표가 랄프 네이더 푭니다. 랄프 네이더가 안 나왔으면 고어가 대통령 됐죠. 플로리다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랄프 네이다 표만 고어에게 줬어도 민주당이 승리하는 거였어요. 그러니 '랄프 네이더 개새끼다' '저 놈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 됐다' 그냥 막 랄프 네이더를 조졌습니다. 그러자 랄프 네이더가 '무슨 말이냐. 차라리 고어 보고 왜 랄프 네이더의 정책을 채택 안했느냐, 이렇게 말해야 순리가 맞는 것이지 무조건 고어 안 밀어줬다고 비난하는 건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어요. '고어야말로 왜 랄프 네이더의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느냐, 고어가 내 정책만 채택했으면 난 그만뒀다, 나를 정책으로 봐야지 왜 표로 보느냐'고 했어요.

민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노당은 진보정당이고 나머지 대통합민주신당이니 민주당이니 문국현 씨니 하는 것은 그냥 개혁적인 세력입니다. 그 사람들이 민노당 정책을 채택하면 권영길 씨가 안 나와도 되지. 랄프 네이더 논리와 똑같은 겁니다. 그렇지 않고 표만 보태주면 진보정당은 없어지는 거죠. 랄프 네이더가 아주 근사한 말을 한 겁니다."

민노당으로서는 반가운 말이겠지만 비판적 지지론자들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할 것 같다는 현실적인 위협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의식이 향상됐습니다. 자기주장을 할 줄 압니다. NGO도 발달했고요. 대북화해 정책 기조를 역전시킬 수 없습니다. (북한에게) 더 주느냐 덜 주느냐의 문제는 있겠지만. 또 쥐꼬리만큼 복지정책을 향상시켰는데 그것도 역전시킬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엄청난 저항이 생길 겁니다. 이명박 후보가 집권한다고 가정해도 이미 주어진 여건의 큰 테두리를 역전시키지 못할 겁니다."

"지뢰는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한국의 정치는 역동적이다. 그러나 올해는 좀 다른가 싶었다.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견고해서다. 그런데 요 며칠 조짐이 이상하다. 김경준 씨가 귀국한다고 하고, 이회창 씨가 출마했다.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인가.

"(이명박 씨) 비리 문제 관련해서 지뢰가 어떻게 터질지 모릅니다. 이회창 씨가 그 지뢰를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서상목 씨가 말 잘 했더라고요. (이회창 씨의 출마는) 이명박 씨가 낙마할지 모른다는 게 전제 아닙니까. (서상목 씨가) '이회창 씨가 나오면 테러나 암살 위협도 분산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사실은 비리문제로 낙마할지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 아닙니까. 실제 낙마할 가능성을 시사한 겁니다. 그러니 모릅니다. 지뢰가 어떻게 터질지."

남 전 장관은 '지뢰가 있다',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안경 뒤에 감춰진 노안 깊숙이 모종의 직관이 작동하는 듯 했다.

"지뢰가 있습니다. 이회창 씨가 그것 때문에 (출마) 생각하는 거니까요. 이회창 씨가 나오면 (이명박은) 떨어지는 거지. 이회창 씨가 두 번 선거에서 천만 표 넘게 얻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여론조사 했는데 14%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회창 씨가 출마한다고 하면 14%에서 시작한다는 얘깁니다. 출마선언하고 으쌰으쌰 하면…. 옛날의 그 패들 있지 않습니까."

끝으로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대통령 후보 개인만 보지 말고 패거리까지 합쳐서 평가해야 됩니다. 대통령 개인이 아무리 좋아도 패거리가 나쁘면 나쁜 겁니다. 패거리까지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다. 신문들이 분석을 잘 해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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