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회의적 전망이 지배적이던 삼성 비자금 특검 도입이 13일 '정동영-권영길-문국현 회동'을 계기로 급반전됐다.
이같은 반전은 김용철 변호사가 전날 삼성측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당사자로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를 지목한 것과 일정한 연관이 있다. 검찰이 삼성 비자금 수사에 착수했지만 수사 주체에 대한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나온 정치권 다수의 결의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조만간 급물살을 탈 삼성 비자금 특검 정국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임채진 내정자의 거취 문제, 각 당의 정치적 노림수 등이 맞물려 연말 대선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임채진이 특검을 불렀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은 '대선후보 3자 연석회의' 합의사항을 토대로 이날 곧바로 실무협상을 진행 중이다.
14일 발의될 특검법안과 관련해 3당은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떡값 리스트'는 물론이고, 삼성 비자금의 조성 경위와 용처, 비자금 사용에 대한 지시주체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 중이다. 또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법안에 명시될 것으로 보이며 삼성 SDS 특혜의혹 등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포괄적 합의가 성사될 경우 이건희 회장의 특검 소환을 배제할 수 없고,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편법 승계 등 삼성그룹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특검 대상에 오르게 된다.
원내 의석 분포 상 특검법안의 통과 전망은 청신호다. 민주당도 이날 삼성 비자금 특검 도입 촉구 성명을 내고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 전반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특검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삼성 비자금 특검 찬성 세력은 대통합민주신당(140석), 민주노동당 (9석), 창조한국당(1석), 민주당(8석)이 의기투합할 경우 재적의원의 과반을 훌쩍 넘는 158석으로 늘어났다.
특히 당초 '선(先)검찰수사 후(後)특검' 입장 기울어 있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의 떡값 연루 의혹의 여파로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함에 따라 이탈표도 최소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삼성에서 자유로울까?
그러나 3당이 합의한 법안 처리 시한인 23일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역시 임채진 내정자에 대한 여론의 불신과 맞물려 독자적인 특검 법안을 검토키로 했으나 특검의 수사대상이 3당과 크게 어긋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
특히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및 당선 축하금 특검에 대해 민노당은 수용 가능한 입장을 내비쳤으나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이 '물타기' 의혹을 제기하며 난색을 표해 조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법안 심의를 맡게 될 법사위 심의과정은 물론이고 본회의에서 3당과 한나라당의 파열음이 증폭돼 특검법안 처리가 좌초되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한나라당도 극단적 방법으로 대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그렇더라도 대선 전에 특검을 통한 수사 결과가 나오기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특검법안이 23일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특검 구성에 최소한 1~2주가 소요되는 만큼 빨라야 12월 초에나 특검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법안 논의와 특검 구성 과정에서 삼성 비자금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될 것이 확실시 돼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내용이 폭로될 경우 대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까지 지배할 핫이슈로 부상할 수 있다.
또한 특검 구성까지 수사주체가 될 검찰도 여론의 압력에 의해 모종의 수사 성과를 낼 경우 삼성 비자금 파문은 특정 정치세력의 유불리를 쉽게 따지기 어려운 초대형 이슈로 발전할 개연성도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반부패 주도권 잡기 경쟁은 삼성 비자금 문제를 핵심에 놓고 가열될 것으로 전망되며, 경우에 따라선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의 2002년 대선자금 문제가 재조명돼 혼전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사실상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세력이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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