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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도시' 이제 보니 여럿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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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명품 도시' 이제 보니 여럿 잡는다

[정희준의 어퍼컷·17]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 '명품 서울' 된다?

삼년 전 유럽에 갔다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둘러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문득 이 많은 '역사유물'들이 사실은 채 일백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 물론 합스부르크왕가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오래 된 유물도 있었지만 20세기 초반에서 2차대전 당시까지의 유물이 가장 많았던 듯하다. 이렇듯 50년 밖에(?) 안된 옛것도 소중한 역사유산이 되고 문화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옛것은 다소의 불편함과 손해가 따르더라도 끝끝내 지켜내야만 한다. 우리는 캄보디아에 앙코르와트를 보러 가고 인도와 이집트에 타지마할, 피라미드 같은 역사유적을 보러 가지 무슨 '삘딩'이나 무슨 '쎈터' 보러 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현대식'으로 승부하려 한다. 맨날 오천년 역사를 떠들면서 옛 것을 싫어하고 창피해 한다. 결벽증이고 콤플렉스다.

특히 옛 것이 '개발'을 가로막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허구헌 날 '항일정신'에 '독립정신'을 떠들다가도 고가다리 하나 놔야 된다니까 독립문을 당장 길 옆 구탱이로 밀어내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 정도 '위치이동'은 애교다.

작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자문위원으로 그 곳 건설청 공무원의 발표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행정도시 건설에 있어서의 강점, 약점, 기회, 위협 요인을 파악하는 이른바 SWOT분석(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에서 그 공무원이 지역 내 역사유적을 약점(Weakness)으로 분류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이땅의 개발주의는 공무원 사회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영도다리 철거에 앞장섰던 공무원들
▲ 1960년대 부산 영도다리 모습. 영도다리는 6.25전쟁 당시 생활고에 지친 피난민들이 달을 보며 망향의 눈물을 흘리던 곳이었다. ⓒ연합뉴스

2004년 부산에선 영도다리를 놓고 논란이 일었었다. 과거 중앙동에 있던 부산시청이 옮겨가고 그 터에 100층이 넘는 롯데월드를 지으려는데 그 터 바로 옆에 있는 영도다리가 '영~ 걸그적'거리는 것이었다.

일제치하인 1934년에 준공된 영도다리는 배가 지나갈 때면 상판이 들리는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식 교량이었다. 이 모습을 보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곤 했다. 특히 영도다리는 6.25전쟁 당시 생활고에 지친 피난민들이 달을 보며 망향의 눈물을 흘리던 곳이었고 이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실향민들이 투신자살하는 단골 장소로 선택(?)되는 바람에 경찰이 다리 밑에서 보트를 타고 대기하기까지 했다 한다.

피난 와 부산 지리를 모르는 이들은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영도다리는 부산의 예스러움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곳일 뿐 아니라 부산의 상징이자 정신이다. 서울서는 '한강 가서 빠져 죽어라' 하지만 부산서는 '영도다리에 가서 빠져 죽어라' 한다. 92년 대선 당시 그 유명한 초원복국집 도청사건 때도 여기 모였던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다짐했던 것이 바로 "이번에 YS 당선 못 시키면 모두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 아니었나.

그런데 당시 영도다리 철거에 가장 앞장섰던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맙소사, 부산시 공무원들이었다. 당시 부산시는 보수하면 된다는 학계의 의견조차 무시하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시민단체와 반대여론에 밀려 확장복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당시 시에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며 그 장점만을 홍보하니 많은 시민들이 그 말을 믿었던 듯하다. 그러나 당시 철거에 찬성했던 부산시민조차 지금은 복원결정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개발'은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

작금의 동대문운동장 철거 논란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오간다. 지난주 이경훈 국민대 교수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가 왕세자 결혼을 계기로 조성한 다소 불온한 의미를 갖고 있다"며 철거를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는 입맛 따라 골라서 보존하는 게 아니다. 독일은 치욕스런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해 기념관까지 만들었고 중국은 수치스런 난징대학살의 기억을 간직하고자 추모관을 지었다. 하물며 '다소 불온하다'고 해서 있는 유적조차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몰역사'를 넘어 비판 받아 마땅한 '반역사'적 인식이다.
▲ 동대문운동장 전경. 서울시는 오는 13일 추계서울시고등학교야구대회가 끝남과 동시에 철거에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일제가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 옛 훈련원 자리에 지은 근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이 경기장은 당시 일본의 고시엔 경기장 다음으로 큰 경기장으로 경평축구가 열릴 때면 2만 관중이 몰려 일본 경찰을 긴장케 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찬탁과 반탁 집회가 열렸던 대표적 군중집회 장소이기도 했고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의 장례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박스컵 축구와 고교야구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을 꺼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지었던 조선총독부와 화신백화점은 이미 헐렸고, 서울시청도 곧 헐릴 운명이다. 그런데 동대문운동장이 헐린다는 소식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철거가 사실상 서울시의 도심 재개발을 위한 땅장사라는 점 때문이다. 총독부였던 중앙청은 민족의 수치를 없애자던 당시 나랏님의 '몰역사적' 고집 때문이었지만 지금 동대문운동장 철거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천박한 '반역사적' 인식 때문이다. 서울의 역사는 서울시의 돈벌이만도 못한 것인가.

사실 '역사철거'의 측면에서 오 시장은 대단히 공격적이다. 서울 도심재개발을 위해 역사유적인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그 대체구장을 짓기 위해 서울시의 수도 100년사를 간직한 또 다른 역사유적인 구의정수장을 또 헐려 했던 것이다. 두 개의 역사유적을 '한 방'에 날려버리겠다는 참으로 '깜찍한' 발상이다.

서민은 '일부 이익집단'?

그리고 이경훈 교수의 문제 제기 중 못내 불편한 것이 있다.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장의 상인들은 세계적 풍물시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명박 전시장의 약속만 믿고 청계천에서 옮겨 왔다가 '명품' 좋아하는 오 시장이 쫓아내려 하니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두고 이 교수가 '이익집단' 운운하는 것은 경우에 심하게 맞지 않다. '이익집단'이란 단어는 아무데나 가져다 붙일 게 아니다.

13일 마지막 대회가 끝나고 곧 철거에 들어가면 생계가 막막한 판국이다. 지방선거 당시 여당의 강금실 후보와 치열하고도 속 거북한 '서민 경쟁'을 벌였던 오 시장이 지금 '명품 시장'으로 돌변해 자신들을 더 변두리로 내몰려 하니 얼마나 분하겠는가. 그들은 왜 자꾸 짐을 싸고 떠돌아 다녀야 하는가. 여기서 이익집단은 위정자들에게 속고 또 속는 서러운 서민들이 아니라 도심재개발을 밀어 붙일 서울시의 정책결정권자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을 개발업자, 건설회사, 투기꾼들이다.

낙동강 오리알보다 못한 체육인

'서민 무시'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체육인 깔보기'다. 대체구장으로 계획했던 구의정수장 확보가 결국 어려워지자 서울시는 대체구장 완공 때까지 구의정수장 일부를 모래로 덮어 임시경기장으로 쓰라는 희한한 제안을 했는데 알고보니 관중석은 400명 규모란다. 고교야구 준결승만 해도 1000명이 모여드는데 말이다. 또 주차공간은 10대도 안 된단다. 시 관계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 않냐고 했단다. 나도 패러디 한 번 해 보겠다. "니가 타라. 대중교통."

애초에 서울시가 약속했던 구의정수장, 신월정수장 등 일곱 개 대체구장 중 현재 공사가 제대로 진행 중인 곳은 하나도 없다. 이제보니 서울시는 대책도 없이 야구인들을 몰아내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감히 한 마디 하건데 동대문운동장 일단 헐리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음과 동시에 야구인들은 갈 곳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이다.

역사를 보존하는 '포스트모던' 건물?

이경훈 교수는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 역사적 기억의 보존과 도시공간의 효율적 재편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동대문운동장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린 그의 설계안이 역사를 잘 보존한다는 의견엔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리고 주변과의 타협 없이 치솟은 쇼핑타워들과 낡고 오래되고 번잡스러운 저층 빌딩들에 둘러싸인 곳에 비집고 들어간 듯한 이 건축물은 주변과 잘 어울릴 것 같지도 않다.

여유공간도 없이 스스로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이 건축물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도, 양보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을 건물이다. 세계적 스타 건축가라는 자하 하디드의 이 작품은 한국적이지도, 서울적이지도, 동대문적이지도 않다. 이것마저 '포스트모던'이라 우기면 할 말 없지만. 명품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환경·서민 팔아 시장 되더니 본색은 '명품 시장'
▲ 지난해 5월 지방선거 당시 서울 시내 시장에서 유세 활동을 하고 있는 오세훈 현 서울시장 ⓒ연합뉴스

서울시는 철거 이유 중 하나로 '공간의 효율적 재편'을 든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사실은 정리해고의 가면이듯 공간재구성도 도심재개발의 진면목인 서민의 희생을 가리고 있다.

1200만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울을 '명품 도시'로 변모시키려는 오 시장의 계획에서 혹시 서울의 서민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보이기엔 '창피한' 존재들 아닌가. 혹시 그래서 그는 2009년까지 서울시내 가판, 구두수선대, 교통카드판매대도 '도시미화'를 위해 없애자고 한 것은 아닌가.

문득 5공화국이 생각난다. 당시 독재정권은 대책없이 1988년 올림픽을 치르겠다고 나서고는 그 '재원마련'을 위해, 그리고 '환경미화'를 위해 상계동, 목동, 신정동을 철거로 밀어버리고 주민들을 내몰았다. 서울의 변두리로, 아예 서울 밖으로 쫓겨나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토굴을 파고 땅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만 했던 이들도 있다. 지금과 비교할 때 여러가지로 다르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비슷해 보인다. '서울의 경제개발'을 위해, '외국인'을 위해….

서울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시민인가 외국인인가. '명품도시'엔 서민을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가. '명품도시', 이제 보니 여럿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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