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나서 삼성의 로비를 받은 전ㆍ현직 검사 등의 명단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당연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었다.
제기동 성당 안과 밖은 오전 일찍부터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급기야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 2시에 이르러서는 기자회견 장소인 1층 강당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기자와 관계자들이 가득 찼다. 카메라 앞을 가리지 말라는 방송사 촬영기자들의 고함, 몸싸움을 벌이는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들의 신음소리가 뒤엉켰다.
급기야 좁은 장소에 가득 들어찬 인파로 인해 기자회견 당사자인 사제단 신부들과 김용철 변호사도 입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들어가야 기자회견을 할 것 아니오"라는 신부님의 말에 "저도 움직일 수 있어야 비켜드리죠"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30여 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은 한마디로 '전쟁'이었다. 사회를 맡은 김인국 신부와, 기도문 낭독을 맡은 문규현 신부, 입장문 낭독을 맡은 전종훈 신부, 김용철 변호사가 준비된 원고를 읽는 동안 촬영을 위한 '소리없는' 몸싸움이 계속됐다. 이 전쟁은 당사자들이 퇴장하는 순간까지 그치지 않았다.
"오늘 기자회견은 얼마나 언론에 보도될까"
적어도 200여 명이 넘게 몰린 이날 기자의 숫자는 1주일전 1차 기자회견에 50여 명 남짓 왔던 취재진의 몇 배에 달했다. 한 주간 삼성 비자금 의혹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삼성은 시간조차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급하게 연 기자간담회를 통해 "김영철 변호사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으로 일관했을 뿐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변호사는 한 기자가 '로펌을 그만둔 이유는 삼성이 아니고 김 변호사의 개인 비리 때문이었다'는 삼성측 주장에 반응에 대한 입장을 묻자 눈을 감고 '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는 '언론도 모두 우리 편'이라며 그를 말리던 한 삼성맨의 말이 떠올랐던 게 아닐까. 실제로 1주일 전 사제단의 폭로가 있고 나서 언론들은 대선자금,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 로비 등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너무 적은 보도량을 보였다.
이날 취재진의 전쟁을 보던 한 기자 역시 "오늘 기자회견이 과연 언론에 얼마나 보도될까"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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