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이날 교육 공약을 발표하며 "내일 아침 좀 시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이 낳을 파장을 짐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공약이 큰 파문을 낳는 이유를 이 후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관련 기사 : 이명박 "대입 자율화…교원도 경쟁해야")
학생이 학교를 골라서 가면, 공교육이 정상화된다?
이 후보가 이날 유독 강조한 단어는 '자율'이다. "'자율형 사립고' 100곳, '기숙형 공립고' 150곳, '마이스터 고교' 50곳을 설립하겠다. 이처럼 누구든 적성에 따라 골라 갈 수 있는 고교 300곳을 만들어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고, 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라는 내용에서 강조점이 찍힌 대목도 '자율'이다.
'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라는 말은 현재의 공교육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전제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후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공교육'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9일 발언만 놓고 보면, 이 후보는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면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진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도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자립형 사립고, 과학고, 외국어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이 후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공교육'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 나온다.
만약 이 후보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이들 학교들이 현재 낳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고교 입시의 과열, 특목고의 입시명문고로의 변질, 일부 자립형 사립고 및 외국어고 등의 높은 학비 등의 문제다.
적어도 9일 발언 내용만 놓고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런 해법 없이 학생의 학교 선택권만을 맹목적으로 강조할 경우, 현재 자사고 및 특목고가 낳고 있는 문제가 보다 전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학교가 특정 종교 교육을 강요하는 것에 맞섰던 강의석 씨 사건에서 드러났듯 학생의 학교 선택권 확대가 가진 순기능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강의석 씨가 부딪혔던 종류의 문제는 현행 고교 평준화 체제를 흔들지 않고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학생이 선택하여 지원하는 유형의 학교가 많아진다면, 그래서 사실상 고교 평준화 도입 이전으로 되돌아간다면, 학생들의 인권은 더 크게 침해될 수밖에 없다는 게 교육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고교 평준화 도입 이전 우리 사회가 겪었던 고교 입시 과열 경쟁이 부활하게 된다. 또 과거 명성을 날렸던 입시 명문고를 이어받으려는 학교들 간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입시 위주의 교육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입시 경쟁 강화로 수험 기술자를 양성하면 국가 경쟁력이 강화될까?
그리고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입시 경쟁이 낳을 부작용은 크다. 우선 과도한 입시 경쟁은 문제풀이에만 능할 뿐, 사고력은 둔한 수험 기술자를 양성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수험 기술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 후보가 강조하는 경쟁력 강화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적인 지식 자본주의 시대가 구현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단지 수험 기술자에 불과할 뿐, 지식 경쟁력은 취약한 이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간의 서열화는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우월감 혹은 위축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현행 평준화 제도에 따라 추첨에 의해 고교에 배정된 학생들이 상대적인 열패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종류의 감정들이 학생의 내면에 큰 상처를 주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또 학생들이 느끼게 될 이런 우월감, 위축감, 열패감 등은 사교육 시장을 타오르게 할 땔감이 되리라는 점도 분명하다. 이렇게 될 경우, 지금도 이미 가계에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는 사교육비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단지 가정의 경제적 부담만 문제가 아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원리는 사교육 시장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사교육 시장이 커질수록,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은 심화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교육에 길든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습능력을 확보할 수 없다.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즉 혼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퇴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쟁력 강화는커녕, 개인과 사회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허용하면, 뒷감당은?
9일 발표된 교육 공약에서 '자율'이라는 단어는 여러 번 나온다. 이 단어는 대학 입시에 관한 대목에서 다시 힘이 실렸다. 고교 진학 단계에서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강조했던 이 후보가 대학 진학 단계에서는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강조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 내내 유지돼 온 3불정책(기여입학제·본고사·고교등급제 금지)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3불 가운데 본고사 및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허용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머지 하나인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도 "기여입학제 부분은 기부금을 장학금으로 사용하자는 논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장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부유층이 낸 기부금을 서민 가정 출신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무르익는다면 허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3불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란이 있었던 만큼,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우선 본고사 허용의 경우, 이미 많은 폐해가 드러나 금지-허용-재금지의 과정을 거쳤다. 대학들이 본고사에서 어려운 문제를 내는 경쟁을 벌이는 까닭에 정규 수업의 수준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되고, 이는 과도한 사교육비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이미 1980년대 초에 나왔다. 그래서 본고사 제도가 없어지고, 학력고사 제도가 등장했다. 그러나 학력고사 제도가 폐지된 1994년부터 3년 간 본고사 제도는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똑같은 문제가 불거지고, 같은 지적이 나왔다. 고액 연봉을 받는 인기 입시 강사였던 이범 씨는 자신의 책에서 사교육 시장이 현재 수준으로 급팽창하게 된 계기로 1994년 부활한 본고사를 꼽기도 했다.
결국 본고사는 1997년 입시부터 다시 폐지됐다. 당시 <조선>, <중앙> 등 보수 매체들도 본고사 폐지를 환영하는 논조의 기사를 실었다. 물론 이들 매체는 지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입장 선회의 배경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이 후보가 대학의 학생 선발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본고사 허용 입장을 취한다면, 최소한 이미 드러난 본고사의 폐해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에 부딪히게 된다. 이 후보 측이 이런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고교등급제의 경우, 보다 높은 수준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졸업생의 성적에 따라 지원자의 입시 결과가 좌우되는 고교등급제는 '현대판 신분제'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누구나 평등한 교육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보편적 인권 차원의 논쟁이 불거질 수 있다.
또 고교 등급제가 허용되면, 내신 성적이 입시에서 별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대학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교과 수업은 파행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또 고교 간 등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이 더 강화될 수 있다.
소외계층 위한 '기회균등할당제'는 왜 빠졌나?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선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를 이야기하는 순간, 소외 계층을 위한 '기회균등할당제'에 대한 언급을 빠뜨릴 수 없다.
'기회균등할당제'를 함께 거론하지 않는다면, 부유층을 위한 대입 특혜는 허용하면서, 소외 계층에 대한 고등교육 확대에 대해서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부유층에 편향된 이 후보의 이미지가 더 굳어질 수 있다. (☞ 관련 기사 : "'기여입학제'는 찬성한다면서…")
물론 "기여입학제를 통해 확보한 기부금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겠다"는 논리로 피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미 유명 사립대학들은 막대한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저소득층 지원에는 인색하다. 이런 풍토에서 과연 기여입학제를 통해 확보한 자금이 저소득층 지원에 쓰일 수 있겠는가. 대학 건물을 꾸미고, 병원 등 수익 사업을 확대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는가"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사립학교 재단의 자율성을 옹호해 온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지적이다.
입시는 대학교육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공시족'으로 메워진 대학을 어쩔 건가?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대학 교육 정책의 초점이 입시에 맞춰져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 대학이 처한 위기의 핵심이 과연 우수한 학생을 가려 뽑지 못하는 데 있느냐는 질문이다.
보수, 진보 성향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이 지적한 위기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대학생들이 전공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 대부분 취업 준비 혹은 각종 고시 및 자격증 시험 준비에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취업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인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지금은 이공계열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전공 분야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뛰어난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뽑은들, 대학 교육 정상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극심한 취업난과 고용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어른 세대가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을 지켜봤던 대학생들로서는 '안정된 직장'에 집착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대학생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대학교육의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 이런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대학이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없다.
하지만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며, 경쟁 논리를 중시하는 이 후보가 대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안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불투명하다.
(☞ 관련 기사 : 이명박의 청년실업 대책은? "눈높이를 낮춰라", 취업 고민 20대, '확인 사살'한 이명박)
이명박이 생각하는 훌륭한 선생님은?
이 후보는 9일 교육정책의 다양한 쟁점을 언급했다.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는 쟁점을 회피하지 않은 것은 높이 평가될 대목이다. '3불 정책' 못지않게 민감한 쟁점인 '교원평가'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교원평가제에 대해 '찬성' 입장이다. 노무현 정부의 입장과 드물게 일치하는 부분이다. 교사들은 대체로 반대하는 편이지만, 다른 직종 종사자들은 대체로 찬성 입장이 우세한 정책이라서 득표 면에서 딱히 손해볼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정책에서 드러난 입장과 비교해보면, 교원평가제 지지 입장은 이 후보의 소신에 해당하리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교원평가제를 찬성한다"고 말하는 순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교원평가는 교원의 인간성이나 자질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교원의 교육활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교육활동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따져 묻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평가에 필요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 교원평가제가 뭐길래…)
그렇다면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는 이 후보는 어떤 교육활동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지,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게 옳다고 여기는지를 묻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후보는 경쟁 논리와 경제 성장을 유독 강조했다. 이런 이 후보가 "(교원평가제를 통해) 훌륭한 교사를 만드는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생각하는 '훌륭한 교사'가 어떤 유형인지 궁금해 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듯하다. '입시 준비에만 매달리는 교사', '사회 주류의 가치관을 내면화하게끔 가르치는 교사'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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