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보건복지부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아래 에이즈 예방법)을 개정하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를 통해서 알게 된 후 그 대안으로 새로운 법안을 11월에 국회에 제출하기까지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아래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숨 가쁜 한해를 보냈다.
인권 증진 대 질병예방, 그 관계에 대한 인식의 확인
정부안의 핵심내용은 '감염자'라는 용어를 '감염인'으로 바꾸어 표기하고, 감염인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금지를 선언적으로 첨가하였으며, 그간 지침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던 보건소 익명검사를 법률안에 들여왔고 소위 '강제처분'을 '치료권고'라는 제도로 이름바꿈을 한 것이다. 사실상 감염인의 인권을 저버리는 독소조항을 온존시킴으로써, 실패한 통제위주의 보건정책을 연장하려는 법안일 뿐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느꼈던 가장 큰 장벽은 법안 조항이나 문구 그 자체뿐만이 아니었다. 소위 한 국가의 에이즈 정책을 책임지는 '리더'로서 정부의 관계자들이 가진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였다. 이들의 의식 속에서 에이즈의 예방과 감염인의 인권은 이분적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방향에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이즈처럼 관리 가능한 질병에서 예방의 기본은 자신의 감염상태를 빨리 파악해서 치료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염인에 대한 극도의 편견이 팽배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합리적인 예방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감염인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하고, 강제적 성격의 검진규정을 삭제하는 등 국민들의 자발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이 필요하다. 감염이 되더라도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도록 하려면 단지 선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업주에게 감염사실이 통보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감염된 외국인을 강제출국시키는 상황에서 아무리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과 홍보를 한다고 해서 검진이 될 리가 없다.
그런 문제의식 하에서 감염인과 모든 환자들,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던 단체들이 같이 모여 에이즈 예방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이 결성되어 12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과 감염인인권증진을 위한 법률"을 국회에 제출하게 되었다.
그 출발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고자 한 것은 에이즈예방과 감염인 인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결성되자마자 전면개정안 작성뿐만 아니라 7월부터 매월 대학로와 신촌, 그리고 종로에서 캠페인을 벌였고, 감염인 증언대회를 통해 "예방은 없고 통제만 있는 예방법"이 감염인의 삶을 어떻게 구속하는지를 알렸다. 더 나아가서는 형식적으로 정부가 몇천만 원의 돈을 들여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로 때우던 12월 1일을 '감염인 인권의 날'로 새롭게 선포하고 포럼과 문화제, 게릴라 콘서트와 전시회를 열어 감염인과 함께 만드는 감염인의 축제로 만들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이즈에 대한 문제도출, 그리고 구체적 활동계획을 만들어 내는 감염인 인권주간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2007년 5월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두 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겼고,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법안심사소위 심의에 대응하여 2007년 6월에 익명보고,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의 삭제, 서면동의 및 강제검진의 철폐, 외국인 감염인 강제퇴거금지 등의 몇몇 핵심사항에 대한 쟁점토론회를 열었다. 현재 법안은 8월 2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대부분 정부안으로 수렴되면서 마지막 심의를 남겨놓고 있다.
에이즈가 보여주는 우리사회의 자화상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은 에이즈예방법 대응을 하면서 FTA반대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전체 운동에 대한 연대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 AIDS는 자본주의가 파생시킨 불평등의 문제이고, 현재 정부의 격리와 통제의 패러다임이야 말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효율성 논리의 핵심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리에서도 동지들의 무심한 말속에서 상처받고 고뇌하였다. 운동사회의 리더조차도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한미 FTA"라고 연설하는 것을 나는 감염인 동지와 같이 들었다. 집회에 참석한 한 노조 동지에게 'FTA반대' 스티커로 착각하고 'AIDS' 문구가 쓰여진 스티커를 내밀었다가 다시 바꾸어 주었을 때는 "그럼 그렇지..나는 그런 사람 아닌데.."라는 반응도 있었다.
지난 1년 반의 에이즈 예방법 대응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태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에이즈가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도덕'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그럴 만한 짓'을 한 사람이고 따라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그런 짓'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그런 기준의 적용은 결과론적이다. 들킨 자, 즉 '에이즈에 감염된 자'만이 비난 받는다.
그러나 공동행동이 던지는 질문은 "HIV감염을 성적인 접촉으로 감염된다고 했을 때, 모든 성관계가 원인이 될 수 있는데 그 중에 왜 이들이 감염되었는가?", "왜 특정집단이 주요한 검진대상이 되는가?" 그리고 "왜 감염된 그 사람들과 특별히 감시되는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되는가?"이다. 그리고 묻는다. "이것은 정당한가?"
그리고 남은 한해, 그리고 내년에 우리는 그 질문들을 계속할 것이다. 에이즈는 우리에게 평등하게 찾아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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