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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보험도 적용 못 받는 '자랑스러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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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보험도 적용 못 받는 '자랑스러운 얼굴'?

[사람이 소중한 일터·4]정수기 판매·관리인

"안녕하세요. 코디입니다."

정수기하면 친절하고 상냥하게 집집마다 찾아와 정수기 관리를 해주는 '코디(Cody=코웨이Coway+Lady의 합성어)'를 떠올리게 되는 건 역시 웅진코웨이 때문이다. 외환위기 시절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웅진코웨이가 지난해 정수기 시장 점유율 48.4%, 매출액 1조1177억 원, 영업이익 112억 원의 업계 1위 회사가 되기까지에는 또 코디 시스템의 역할이 컸다.

때문에 웅진코웨이는 홈페이지 코디 모집란에 "코디란 웅진코웨이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모든 B/S(Before Service)를 책임지고 있는 웅진코웨이의 자랑스러운 얼굴"이라고 적고 있다. "일을 깐깐하게 처리해주는 웅진코웨이의 코디는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 제품은 물론 '코디'(맨 왼쪽)까지 등장시켜 철저한 사후관리를 강조하는 웅진코웨이 정수기 광고.

사실 웅진코웨이 정수기는 TV광고를 통해 유명 연예인은 물론 유니폼을 입은 코디를 등장시킴으로써 '철저한 사후관리'를 강조해 성공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코디들이 그 말 많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업장별로 다소 모양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아 4대 보험은 커녕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노동조합 활동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학습지 교사와 골프장 캐디처럼 잘 알려진 업종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이들을 "자랑스러운 얼굴"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세 명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은 입을 모아 "회사가 우리를 좀 제대로 대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영업 부담에 고통 받는 웅진코웨이의 얼굴들"

업계 최초로 '정수기 대여'라는 방식의 사업을 시작한 웅진코웨이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방문해 정수기 필터를 갈아주는 코디는 광고 속 주인공으로 등장할만큼 제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5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코디의 주된 업무에 대해 웅진코웨이는 "렌탈제품의 정기점검과 멤버쉽 회원관리, 필터교환, 렌탈 회원모집"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코디들에게는 '렌탈 회원 모집', 즉 영업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 보였다. 사실상 정수기 관리자보다 판매자에 가까운 셈이다. 고참급 코디인 김진수 씨(가명)와 힘들다는 1년차의 벽을 넘긴 이상준(가명), 서수정(가명) 씨도 모두 입을 모아 "오더(주문) 압박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지국에서 아침부터 전화해서 닦달을 해요. '오늘은 오더 몇 개 할 거냐'는 거예요. 하루에 20통은 오는 것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고요. 한 번 사무실에 불려 가면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못 가기도 해요."

진수 씨의 말이다. 결혼 전 간호사로 일했던 수정 씨도 아이를 낳고 아는 사람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코디 일을 시작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 털어놨다. 역시 영업 부담이 코디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가장 큰 난관이었다.

'일한만큼, 능력만큼 돈을 더 벌 수 있는' 영업직은 박봉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음직한 직종이다. '밑천 없이 장사를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근무시간이 탄력적이라는 이유로 가정주부의 경제활동 인구 증가와 맞물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에 많은 여성이 나서고 있기도 하다.

웅진코웨이의 코디 역시 전체의 80% 이상이 여성이다. 근무 시간이 자율적이면서 특별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코디는 '좋은 직업'으로 비춰진 탓에 주부들이 많다. 웅진코웨이가 밝힌 코디의 평균연령도 38세다.

"5년 동안 입사 동기 200명 중 190명이 넘는 사람이 그만뒀다"
▲ 웅진코웨이 홈페이지의 코디 안내 화면.

웅진코웨이는 "별다른 경력이나 기술이 없어도 자사에서 실시하는 기본교육을 이수한다면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수 씨는 "영업을 하라고 한다면 회사에서 영업 기술도 좀 가르쳐주고 하다 못해 지국장이 책 한 권이라도 주면서 '어떻게 하면 많이 팔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해보자'고 해야 하는데 그저 막무가내로 '몇 개 팔아야 한다'고만 한다"며 불평했다. 물고기 잡는 법은 가르쳐주기 않고 무조건 '오늘 몇 마리 잡을 거냐'는 식으로 다그치기만 한다는 것이다.

심각한 영업 압박은 주부 사원들로 하여금 오래 이 일을 못 하게 만든다. 실적 스트레스로 인해 근무시간이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재량에 따라 고객과의 약속시간을 정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업무시간 조절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고객의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반 직장보다 자기 시간 활용하기가 더 어렵다. 진수 씨는 "3년 이상 근무자가 1200명이 채 못 된다"고 설명했다.

"입사 동기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몇 명 안 됩니다. 매번 사람이 바뀌기 때문에 교육 등의 행사에서 낯선 얼굴들 속에 있을 때면 좀 서글프죠."

1년을 넘기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은 '좋은 직장'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기 집에 정수기 7대 놓고 사는 사람도 있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지지 않아 자유로운 편이지만 고객님이 오라고 하시면 일요일에도 나가야한다"는 것도, "렌탈료 연체까지 우리가 잡아야 하니 그것도 참 곤란하다"는 것도, 영업에 대한 압박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라고 세 사람은 입을 모았다.

회사의 심각한 영업 압박은 스스로 정수기를 렌트하거나 자비를 들여 등록비를 깎아주는, '출혈영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등록비 10만 원은 "안 깎아주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재간이 없다"고 상준 씨는 말했다. 회사에서 직영하는 일부 매장에서 등록비 10만 원 전액을 면제해주는 사례가 종종 있어 출혈경쟁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수기 대여 회원 한 사람을 모집하면 고객이 내는 등록비 10만 원 가운데 일정액은 해당 코디가 수당으로 받고 나머지는 회사가 가져간다. 그러니 10만 원 전액을 면제해주면 오히려 코디는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회사 수익분까지 코디가 부담해야 하는 형편이 된다.

'출혈영업'은 영업 직종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병폐다.(☞관련 기사 : "일할수록 개인 빚만 쌓이는 회사, 믿기세요?", "학습지·음료·제약회사…모두가 똑같습니다") 음료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웅진코웨이도 등록비 면제 등의 영업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영업실적 부담 때문에 출혈영업이 생긴다. 그들에게 영업 실적 부담은 매일 눈앞에서 마주치는 현실이다 보니 자기 돈을 들여 정수기를 여러 대씩 대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코디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간혹 있다"고 말했다. '체질적으로' 영업이 잘 맞지 않아 목표량 채우기 급급한 사람도 있지만,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를 하는 코디들도 있다. 높은 실적으로 회사의 인정을 받아 관리자로 채용이 되지만 '빚더미 속의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아는 동료 중에는 자기 집에만 7대의 정수기를 쓰는 사람도 있어요. 처음에 친구, 친척에게 대여하고 그리고 나서도 안 되면 집으로 안고 가는 거죠. 별 수 있나요. 정수기가 필요해서 쓴다기보다는 코디 일을 하게 돼서 정수기를 쓰는 거니까, 참 우스운 거죠."

이들이 영업 부담으로 고통 받는 것은 몇몇 '악질 관리자'라는 개인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겹쳐있다. 기본급이 없는 이들의 보수는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정해진다. 몇 가구의 회원을 관리하는지, 그 달에 오더는 몇 개를 받아 왔는지, 어느 가격의 정수기를 팔았는지에 따라 수입이 정해진다.

웅진코웨이 홈페이지에는 "제품점검+영업+수금에 대한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320여 가구를 관리하는 진수 씨의 한 달 수입은 평균적으로 250만 원 수준이다. 280여 가구를 관리하는 상준 씨는 200만 원 수준, 250여 가구를 관리하는 수정 씨는 그보다 못하다고 했다. 280가구 정도를 관리하면 그에 받는 수당이 110만 원 정도다. 나머지는 영업 수당인 것.

"옷도 내 돈 주고 구입"…서러운 특수고용노동자
▲ 웅진코웨이의 인재채용정보 페이지. 특수고용직인 코디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다.

문제는 이렇게 벌어도 휴대전화 요금, 교통비 등 이들이 특히 많이 지출하는 영업 및 관리 비용을 빼면 남는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웅진코웨이의 정식 직원이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이다보니 업무상 필요한 각종 비용은 물론 코디의 상징 유니폼도 모두 자기 부담이다.

"고객들이랑 약속 시간을 맞추는 데 꼭 필요한 휴대전화 비용도 개인 부담이고요. 이동 자체가 일인 직업인데 차로 다니면 월 30만 원 이상이 드는데, 부담이 크니까 오토바이를 많이 이용해요. 그 뿐 아닙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코디 옷도 다 개인이 사는 거예요. 물론 1년이 지나면 옷 값의 50%를 환급해주기도 하지만…."

"웅진코웨이의 자랑스러운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이들을 왜 회사는 특수고용직으로 사용할까?

노동부의 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판매, 식음료판매업체에게 '특수고용형태로 인력을 활용하는 사유'를 묻자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업무실적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퇴직금, 사회보험 등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등의 답이 나왔다.

'인력 사용의 부담은 줄이고 효율은 높인다'는 것이 특수고용직 사용의 취지인 셈이다.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영업시스템이다. 그러다보니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숫자도 어느덧 노동부 통계로 100만 여 명에 가깝다.

"동대문 시장도 사람을 그렇게 부리진 않아요"

이들과 같은 특수고용직은 비정규직과 함께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다.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덤프·레미콘 기사들의 열악한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부도 보호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지난 6월 겨우 국회 환노위에서 일부 의원이 낸 개정안이 법안소위에 넘겨졌을 뿐 본회의 통과까지 갈 길이 멀다.

"나라에서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요. 시간에 쫓기는 직업인데 일하다 다쳐도 산재 인정은커녕 오히려 실적을 못 내니 월급만 줄어들지요. 4대 보험은 당연히 없고, 퇴직금도 안 주고요. 기본은 하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대교는 노조가 데모해서 퇴직금은 준다던데…."

진수 씨의 말이다.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나'는 물음에 그는 "소통이 안 되니까"라고 필요성을 인정하며 "노조까지는 아니어도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싶은 생각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는 아직까지는 노동3권을 보장받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수 씨는 코디 일을 하기 전에 시장에서 일을 했었다고 했다.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 생활은 어떨까?

"그 때는 월급 160만 원을 받으면 130만 원은 저축을 했습니다. 지금보다 받는 돈은 훨씬 적었지만 식대 안 나가지, 명절 되면 떡값이라도 쥐어주지, 돈 쓸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근무시간이 오전 7시~오후 5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퇴근 이후에 운동도 하고 제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도 사람을 이렇게 부리진 않습니다."

진수 씨는 "웅진코웨이는 그래도 좋은 기업"이라고 했다. 기술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정직원은 보수도 높고 복지혜택도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진수 씨는 "하지만 연간 매출 1조가 누구에게서 나온 힘이냐"고 되물었다. 정직원들에게만 좋은 회사 아니냐는 물음이다. 최근 해외연수 등의 코디들에 대한 혜택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지만 경력이 많고 영업실적이 좋은 소수의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혜택이라고 한다.

"정말 회사가 어렵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업계 1위의 '대기업' 아닙니까. 내가 회장이라면 '이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니 참 고맙다'고 하겠어요. 회사가 코디들도 한식구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회사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만, 4대 보험의 적용도 못 받으면서 유니폼도 제 돈 주고 사서 입으면서 수시로 "오더 압박"에 시달리는 '자랑스러운 얼굴'들. 성공신화의 이면이다. 그들이 진정 '웅진코웨이 코디'라는 직업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점심 시간을 쪼개 한바탕 수다를 끝낸 뒤 두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한 명은 지하철역으로 다시 씩씩하게 자기의 일터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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