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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NLL 접근이 가져다 줄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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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NLL 접근이 가져다 줄 '모든 것'

한반도브리핑 <64> 2차정상회담, 남과 북의 접점 찾기

북한의 수해 여파로 갑작스레 정상회담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2차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적 의미가 바로 '평화'임은 변하지 않는다.

2차 정상회담의 숙제는 평화체제 '주도권 확보'

이번 정상회담이 평화 정상회담임은 1차 때와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동력이 되고 남북관계 개선을 가져온 '화해 정상회담'이었다. 이에 비해 이번 2차 정상회담은 북핵문제라는 외적 요인이 주된 동력이었다.

남측이 일관되게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 놓았음에도 그동안 핵문제 악화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가 금년 들어 2.13 합의와 북미 양자협상, 비핵화 프로세스가 일정하게 진전되면서 정상회담 개최의 동력이 마련된 것이다. 즉 핵문제의 존재와 그것의 일부 진전이 정상회담을 가능케 함으로써 남북관계 내부의 동력보다 외부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1차 때와 달리 북핵 국면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비핵화와 관련해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객관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 당사자이자 책임자인 남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문제에 대한 유의미한 합의를 도출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앞으로 평화체제 전환 문제를 다루게 될 한반도 평화포럼의 구성, 그리고 북미간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논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제 한반도 평화의 주체로서 남북 정상이 평화를 진전시키는 일정한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향후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번 회담에서는 1차 정상회담과 달리 단순히 남북관계에만 집중할 수 없는 객관적 환경 때문에 불가불 비핵화와 평화문제에 관한 6자회담이라는 국제구도에 부응하고 이를 더욱 추동해내는 남북의 주도적 개입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군사 분야 진전 없인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 이재정 통일부장관(오른쪽)과 김장수 국방장관이 지난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외적 환경과 별도로 남북관계 자체의 내적 필요성 또한 꾸준히 증대되고 있었다. 객관적 조건에서 지금은 남북관계가 새로운 계기를 통해 한번 더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함을 요구받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진행됐다. 그러나 7년이 지나면서 일정한 정체국면을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들어 남북관계는 정치·군사분야의 진전 없이 한 발짝도 나가기 힘든 구조적 제약 상황을 맞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 등을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해 이제는 정치군사 분야의 진전이 담보되어야 한다.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서도, 개성공단 확대를 위해서도, 금강산 사업 발전을 위해서도 남북간 군사적 협력 없이는 한발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경제·사회문화 분야와 정치·군사 분야가 병행해 남북관계의 두 바퀴가 되어야 한다. 1차 정상회담이 남북간 평화 문제를 비껴간 것을 보더라도 이번에는 군사안보 차원의 일정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치 군사 분야의 진전을 이루기가 녹록치 않다. 이미 북한은 2005년부터 이른바 '근본문제'를 제기하면서 남북간 정치군사적 진전을 요구하고 있다.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 문제를 필두로 한미 군사훈련 중지, 참관지 제한 철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내세우며 최소한 이들 문제가 진전되어야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남측은 아직 이들 근본문제에 대해 완고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방한계선(NLL)은 국경선으로 인식되고 있고 한미 군사훈련 역시 한미동맹과 동일시되고 있다. 참관지 제한 철폐 역시 남북의 체제속성상 남측이 받기 힘든 정치적 부담이 존재한다. 국가보안법은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여전히 국회의 다수는 폐지불가 입장이다. 결국 '지속과 정체'라는 현재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을 이번 정상회담이 돌파해내는 창조적 계기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답보상태였던 정치군사 분야의 진전이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 정상회담' 준비하는 남북의 다른 모습

1차와 비교해 볼 때, 그리고 지금의 정세를 감안할 때, 2차 정상회담은 비핵화에 기여하고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며 남북간 정치군사 분야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구조적 요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자리매김은 '평화'라는 핵심 키워드로 일관할 수 있게 된다. 평화의 전제로서 비핵화, 남북이 주도하는 군사적 신뢰구축, 경협과 교류협력을 가속화하는 군사안보 분야의 남북관계 진전, 이들 모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한반도 평화의 내용들이자 과제들이다.

객관적으로 부여받은 '평화 정상회담'을 놓고 이를 대하고 준비하는 남북의 전략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정상회담이라는 중대 제안을 결심한 북측의 의도는 무엇보다 비핵화 문제에 대한 일정한 양보를 전제로 남북관계에서 이른바 '근본문제'를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 속에 이제 핵문제는 2.13 프로세스가 북미간 양자협상에 의해 유의미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고 이는 북핵을 둘러싼 대미관계가 긍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와 의지를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된 확고한 의지와 입장표명이 기존의 대미 전략과 6자회담 전략에 상치되지 않는다. 즉, 전 세계 미디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거나 9.19 성명 및 2.13 합의의 확실한 이행을 밝힐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특성상 최고지도자가 정상회담을 결심해서 상대방 국가원수가 평양을 방문할 경우 회담이 결렬되거나 얼굴을 붉히고 싸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정상회담을 결심한 북한은 그 자체로 이번 회담에 임하는 남측의 요구를 충분히 알고 그에 대한 일정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北, 비핵화 요구에 대한 선물로 근본문제 진전 요구할 것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 요구에 대한 충분한 선물(?)을 댓가로 남측에 근본문제의 진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05년 7월 남북관계 복원 이후 북한은 장관급 회담을 비롯해서 각급 군사회담과 장성급 회담을 통해 근본문제의 선결을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제 북한 입장에서 근본문제는 최고위급의 담판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정세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6.17 면담 이후 북한은 제2의 6.15 시대를 규정하면서 남과 북이 상대방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며 이를 가로막는 법제도와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체면주의마저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8.15 행사에 온 북측 김기남 정부 대표단장이 전격적으로 현충원을 참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근본문제 중에서도 지금 북이 절실하게 해결하고자 원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서해 NLL 문제에 집중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북한도 국회라는 까다로운 단계가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긴 하지만 2012년 전시작전권 환수로 한미연합사가 해소될 경우 합동훈련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참관지 제한 철폐 역시 남측의 분위기상 지금 당장 관철될 거라 보기 어렵고 특히 정상회담에서 체제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직접 요구하긴 부담스럽다. 따라서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발언이나 합의를 남측에 제공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근본문제 중 NLL 관련 합의 진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양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NLL 문제를 문서로 합의하거나 격론을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화두가 평화인 만큼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남북 정상의 의지를 확인하고 후속 회담 즉 국방장관 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에서 적극 논의하기로 하는 정도의 분위기 조성은 충분히 가능하다.

경제공동체 진전 요구할 南, 문제는 다시 NLL이다
▲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경제공동체와 관련된 제안을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수준에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필요하고 그 핵심 관건은 바로 NLL일 수밖에 없다. 사진은 인천 연평도 북방 NLL 건너편에서 떼를 지어 조업을 벌이고 있는 중국 어선들. ⓒ연합뉴스

이에 비해 남측은 한반도 평화와 함께 남북의 경제공동체 진전을 북에 적극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당연히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이는 곧 상호 윈윈의 경협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경협 확대 구상으로서 '경협 신동력 사업'이나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경협 계획' 등을 준비해 왔다. 더욱이 대통령 경축사에도 드러나듯이 이제는 기존의 일방적, 시혜적 대북 지원 성격을 탈피하여 남과 북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는 투자적, 쌍방향적 경제협력으로 발전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경협의 발전이 평화의 증진과 연관되는 지점은 그것이 남북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킴으로써 결국은 전쟁방지와 갈등해소를 보장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상호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결합함으로써 결국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하게 된다는 기능주의적 접근은 사실 갈등하고 있는 국가간에 매우 적실한 시사점을 준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북에 대해 정치군사 분야에 비해 경제분야의 교류협력을 중시한 것도 이같은 기능주의적 접근의 일관된 방향이었다. 경제협력이 평화를 이끌고 다시 평화가 경제협력을 증진시키는 상호 보완재로서의 '평화경제론'은 향후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임이 분명하다. 이번에 남북 정상이 만나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서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남북의 공동번영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고 합의하고 시범사업으로 한 두개의 상징적 경협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공동체 구상을 실현하고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군사 분야의 남북관계 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공동체 정도의 확고한 경제적 통합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군사적 보장 정도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군사 분야의 신뢰구축과 진전 없이 경협의 질적 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경제공동체와 관련된 제안을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수준에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필요하고 그 핵심 관건은 바로 NLL일 수밖에 없다.

'NLL 협의할 테니 인정하라'로 발상을 바꿔라

사실 NLL은 국경선이나 영토가 아니다. 1953년 정전협정에 육상 경계선과 달리 해상 경계선은 획정되지 않았고 직후 남측의 북상을 막기 위한 편의로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 바로 지금의 '북방한계선(NLL)'이다. 지금 일부에서는 마치 NLL 사수를 영토 사수와 동일시하는 과도한 반북 민족주의를 고양하고 있지만 이는 향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남북의 진지한 노력을 가로막는 잘못된 신화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우리 군의 입장은 'NLL을 먼저 인정해야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NLL 인정을 전제로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기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와 함께 국방장관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까지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 군의 입장이었다. 이를 충분히 감안하면서 향후 전향적인 입장으로 필자는 'NLL을 협의할 테니 인정하라'로 순서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NLL에 관한 한 이미 남북은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서 남측의 관할 구역 인정과 해상경계선 재협상을 동시에 합의해 놓았다. 따라서 'NLL 협의 시작을 전제로 NLL을 인정하라'는 요구는 충분히 북과의 생산적 협상을 가능케 할 것이다.

NLL에 대한 조금 더 유연한 우리의 접근은 그 자체로 NLL의 입장을 후퇴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향후 남북간 논의과정에서 포괄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와 연계하거나 우리가 북에 반드시 요구해야 할 '대북 근본문제'와 연계함으로써 협상의 지렛대를 확보할 수도 있다. 우선 NLL 논의를 시작으로 서해상의 포괄적인 긴장완화 조치를 병행논의하고 아울러 남북간 군인사 교류, 핫라인 설치, 상호 훈련 통보 및 참관 등 초보적 수준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동시에 논의함으로써 북으로부터 실질적인 긴장완화 조치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한 접근이 유연한 양보 얻어낼 수 있다

또한 NLL에 대한 전향적 접근은 역으로 우리가 반드시 얻어내야 할 대북 근본문제에 대해 북한의 유연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북이 우리에게 근본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듯이 우리도 반드시 북에게 요구할 근본문제들이 있다. 즉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고 동시에 북은 쉽게 받기 힘든 민감한 사안이다. 아울러 내정불간섭 문제나 회담의 제도화 문제도 우리가 이제는 북에 확실하게 요구하고 받아내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NLL 논의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통해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고 기타 대북 근본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긍정적 화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북이 원하는 근본문제의 정면 돌파를 위해, 그리고 남이 원하는 경제공동체 구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그리고 정체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새롭게 추동해내고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NLL 문제는 반드시 전향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이번 평화 정상회담을 놓고 남과 북의 상호 접점 마련이 가능하려면 바로 NLL 문제를 피해가기 힘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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