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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화'가 '숀 펜'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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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덕화'가 '숀 펜'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

[기고] 그들의 대선 후보 지지선언, '소신'일까 '구걸'일까

연말 대선을 앞두고 연예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정치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의 정치참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강한 충성심을 드러내면서 일종의 '줄서기'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와 조심스럽고 은밀한 관계를 선호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직접적이고 '진한' 관계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선 정국과 맞물려 일찍부터 문화예술계의 지지 선언이 잇따르고 있으며,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이 '각하'와 '선덕여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회자되는 양상은 오늘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대선, 정치의 전면에 나선 연예인들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가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부터였다. 하지만 연예인은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연예인의 대중적 인기에 바탕을 둔 이미지 정치의 한 측면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 몇몇 연예인들은 정계 진출을 통해 성공하기도 했으며, 일부 연예인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가 활동 중지라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예인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선 것으로는 지난 2002년 대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덕화, 최수종, 심현섭, 박철 등은 이회창 후보를, 문성근, 명계남, 윤도현, 신해철 등은 노무현 후보를, 그리고 김흥국은 축구라는 인연으로 정몽준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영화감독 박찬욱이나 배우 문소리 등은 민주노동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 와중에 윤도현과 심현섭 사이에 논란이 불거졌으며,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심현섭은 2년 가까이 활동을 못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에는 각 당에서 연예인들을 실질적인 참모 역할에 배치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폴리테이너는 '아무나' 하나
▲ 지난 6월 27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문화예술지원단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탤런트 이덕화는 이명박 전 시장을 '각하'라고 불러 논란을 일으켰다. ⓒ뉴시스

최근에는 연예인의 정치참여가 늘어나면서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인 '폴리테이너(politainer)'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떤 이는 이들이 웬만한 정치인들보다 힘이 세다고 말한다. 그들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대중의 인기를 염두에 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실상 정치와는 전혀 다른 기반 위에서 얻은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는 듯 행동한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많은 이들의 비판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연예인이건 창작예술가이건 그들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발언이나 지지 선언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직접 정치가로 나와서 국회의원이나 시장, 대통령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드러나는 현상은 '갑자기' '유력한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문제를 보여준다.

정치적 발언이나 입장은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면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개인에 대한 지지 선언에 앞서 적어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참여가 있어야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줄서기'라면서 뭔가 다른 잇속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등의 비판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정치참여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라면 선거때만 반짝 나타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인기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평소 자신의 입장에 따라 사회적 발언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화예술인의 '공인으로서의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영화배우 숀 펜의 발언과 행보는 국내 연예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스타라면 당연히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면서,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팀 로빈슨(<쇼생크 탈출>의 주인공)과 그의 부인 수잔 서랜든 등과 함께 반전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를 계기로 이라크를 두 차례나 방문했다.

국내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3월에는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대해 50여 명의 가수들이 '전쟁 반대와 파병 철회 촉구를 위한 대중음악인 연대 모임'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등 실천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모 가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으로 전쟁 반대와 평화를 주장했으면서도, 죽어가는 새만금에서 열리는 '락페스티벌'에 당당하게 주도적으로 참가하는 이율배반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것은 죽임이 아닌 '살림의 문화'를 지지하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에서 죽어가고 있는 새만금 갯벌만한 게 또 있을까. 그렇게 본다면 과거 전쟁 반대 주장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만남으로 잘못된 권력 창출을 노리는 이들
▲ 지난 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이라크 철군을 요구하는 반전집회'에 참석한 숀 펜의 모습 ⓒwww.theodoresworld.net

지난 7월 31일에는 85명의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음악·미술·문학계에 속한 이들로서, 이 후보가 "진정한 문화강국, 예술강국 한국을 세계 속에 우뚝 세울 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흘러라 청계천아'라는 헌정 노래도 만들었다고 한다. 젊은 문화예술인을 자처하는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힘은 문화 인프라에 있다"면서 "순수예술을 이해하고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 각별한 관심과 함께 육성책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하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럽고 생뚱맞다. 자신들이 후보를 지지한다면 "순수예술을 이해하고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지지를 해야 하는데도 지지를 먼저 선언하고 부탁을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도 '경제 대통령'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하면서(!)'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문화예술을 살릴 수 있는 후보를 찾는 게 상식적이지 않겠는가.

연예인들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사람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자신들이 뭉쳐 누군가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건 자신들의 영향력, 즉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참여의 본질은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대선 후보는 구애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정치에 구걸하는 문화예술을 보고 싶지 않다. 문화예술은 정치의 부속물이나 주변장치가 아니다. 정치는 인민의 삶을 아름답게 구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문화다. 대중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힘은 특정집단에게는 한 명의 스타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제공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지만 연예인들이 정치인을 지지하면서 보여주는 행태는 연예계 스스로 자신들을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모습은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의 잘못된 만남을 통해 잘못된 권력 창출을 노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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