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렇게라도 해야 회사가 협상에 나서니까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렇게라도 해야 회사가 협상에 나서니까요"

[현장]이랜드 노조, 뉴코아 강남점 다시 점거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거나 영화를 보는 등 주말의 여유를 한껏 즐기고 있을 29일 일요일 새벽 2시.

24시간 영업을 하는 서울 뉴코아 킴스클럽 강남점은 평소보다 유난히 북적였다. 칠흙 같은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은 건물 밖의 풍경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새벽 2시 10분. 매장 내 4곳의 계산대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카트를 계산대 안으로 밀어 넣어 출입을 막았다. 조금 전까지 세 명씩 무리를 지어 식료품 등을 카트 안에 담던 사람들이었다.
▲ 29일 새벽 2시 10분. 갑자기 서울 강남 뉴코아 킴스클럽 매장 내 4곳의 계산대에서 동시에 사람들이 카트를 계산대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세 명씩 짝을 지어 식료품 등을 카트 안에 담던 사람들이었다. ⓒ프레시안

그리고 구호가 터져 나왔다.

"비정규직 대량해고, 이랜드 자본 규탄한다."
"박성수 회장이 직접 나와 성실히 협상해라."

500여 명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매장 내 모든 계산대를 점거했다. 이들은 6월 초부터 두 달 가까이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및 외주화, 정규직의 전환배치 등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랜드 그룹 노동자들이었다.

뉴코아 킴스클럽 강남점은 또 다시 이들에 의해 점거됐다. 지난 20일 경찰병력 투입으로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의 점거 농성이 강제로 해산된 지 9일 만이었다.
▲ 뉴코아 킴스클럽 강남점은 또 다시 이들에 의해 점거됐다. 지난 20일 경찰병력 투입으로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의 점거 농성이 강제로 해산된 지 9일 만이었다. ⓒ프레시안

"정말 두려운 것은 공권력 투입 같은 게 아니예요"
▲ "이렇게 안 하면 회사가 협상에 안 나오니까요." 홈에버 일산점의 정규직 조합원인 김지선 씨(43, 가명)는 '점거'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자 간단히 대답했다. ⓒ프레시안

각각 20일, 13일 동안 점거농성을 벌였던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였다. 결국 그 오랜 농성의 끝은 경찰병력 투입에 의한 강제 연행이었다. (☞관련기사 : "오늘 노무현 대통령은 실수한 겁니다")

그런데 열흘도 채 못 돼서 다시 점거농성에 나섰다. 그동안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매장 타격 투쟁을 벌여 오긴 했지만 들고 나는 것이 자유롭지도 못한 점거 농성을 또 벌인 것이다.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던" 지난 번 농성처럼 장기화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바로 얼마 전에 봤던 것처럼 경찰병력 투입으로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끌려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새벽 강남점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그런 것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왜일까? 뉴코아노조의 비정규직 조합원인 이선자 씨(48, 가명)는 "더 두려운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이런 상태로 시간이 계속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금방 끝나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길어야 보름이면 될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싸움은 이랜드일반노조가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한 지난달 30일부터 꼬박 한 달이 다 돼 간다. (☞ '이랜드 갈등'에 대한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회사가 교섭에 나오지요"

홈에버 일산점의 정규직 조합원인 김지선 씨(43, 가명)는 '점거'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자 간단히 대답했다.

"이렇게 안 하면 회사가 협상에 안 나오니까요."

지선 씨는 "그나마 우리가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고 있을 때는 대표이사가 처음으로 교섭에도 나오고 그랬지만 농성이 해제된 후에 회사의 태도는 여유만만"이라고 말했다.

"교섭대표의 신변도 보장 못 해준다고 하고 대표이사도 장소를 핑계로 교섭에 안 나오고요. 내용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잖아요. 회사가 '언론플레이'를 할 목적이 아니라 진지하게 협상으로 풀 의지가 있는지 정말 의심스러워요. 어떻게든 사장을 협상에 불러내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다시 점거를 하게 된 겁니다."
▲ 점거 농성 해제 후 9일 동안 노사는 한 번도 마주 앉지 못 했다. 또다시 점거를 시작한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협상으로 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두 노조와 이랜드 그룹 측은 점거 농성 해제 후 지난 26일 처음으로 교섭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이랜드 측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조 간부들의 신변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노조는 장소를 민주노총 건물로 변경하자고 제안했지만 회사는 또 "민주노총 건물에서 교섭을 하면 대표이사가 나갈 수 없다"고 나와 교섭은 불발로 끝났다.

결국 점거 농성 해제 후 9일 동안 노사는 한 번도 마주 앉지 못 했다.

"여기서 또 끌어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의 구호만 더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비정규직 계약해지 철회 △외주화 철회 △해고자 복직 등이었다면 이제는 △체포영장 철회 △손배가압류 취하 △구속된 간부의 석방이 덧붙었다.

선자 씨는 "어떻게든 끝을 봐야지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아서 점거 농성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일찍 끝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오래 갈 줄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 이들은 열흘 전에 이어 또다시 이날 새벽 종이박스를 깔고 매장 안에서 누워 쪽잠에 들었다. ⓒ프레시안

선자 씨는 "길어지니 힘들어하는 동료들도 많지만 이럴 때일수록 나 혼자 그만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7월 말로 계약이 해지될 예정이라지만 또다시 농성을 시작한다는 아내에게 남편은 "그냥 사표내고 그만두면 안 되냐"고 심난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선자 씨는 "나야 여기서 짤려도 밥 못 먹는 건 아니라지만 내가 그만두면 이 곳에서짤리면 당장 밥 먹을 일이 걱정인 동료들은 어쩌냐"고 남편을 설득했다.

지선 씨도 "남편에게는 아예 미리 말도 못했다"고 했다. 지선 씨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를 여기서 또 강제로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회사가 성실한 태도로 교섭에 나와 억울하게 계약해지된 비정규직들을 복직시켜주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고 우리 위원장을 풀어줄 때까지 우리는 계속 매장으로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자 씨와 지선 씨는 열흘 전에 이어 또 다시 이날 새벽 종이박스를 깔고 매장 안에서 누워 쪽잠에 들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