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한 신문에 실린 기사 일부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를 다룬 이 기사 속에서 ○○○은 지극한 찬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은 누굴까? 답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이 회장, 즉 삼성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이 평소 취미인 스키를 탄 것도, 기사 속에서는 'IOC 실사단 방문에 앞서 시설을 점검한 일'로 묘사된다. 이 기사는 삼성, 그리고 이건희 회장 일가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언론의 이런 태도는 삼성 관련 기사를 편집국 몰래 삭제하면서 불거진 〈시사저널〉사태를 통해 이미 잘 알려졌다.
최근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정부기관, 대기업, 시민단체 등 25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단은 삼성이다. 심지어 신뢰도 순위에서도 삼성은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이 조사에서 청와대는 영향력 14위, 신뢰도 20위에 그쳤다.
이쯤 되면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은 그저 수사(修辭)가 아니다. 그리고 최대 권력 집단인 삼성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면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다. 물론 삼성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 논평하는 사회과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 그리고 한국의 재벌에 대해 꾸준히 관찰해 온 학자가 있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7일 덕성여대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포럼 2007' 행사에서 "삼성공화국 : 경제 질서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3일 김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장하준 식 재벌 긍정론은 비현실적"…"관료 자체가 기득권 집단"
프레시안 : 삼성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의 최근 경영 실적이 썩 좋지 않다. 그래서 요즘 '삼성 위기론'도 나오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는 소문도 떠돈다. 이렇게 될 경우, 직원에 대한 우월한 보상을 통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 온 삼성의 존재 기반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상조 :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04년 순익 10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100억 달러 클럽'에 국내기업 최초로 가입했다. 이후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위기론이 나오고 있지만, 직원에 대한 보상조차 힘겨울 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여러 지표로 볼 때, 삼성의 물적 토대는 아직 탄탄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대기업과 하도급 업체가 수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도급 업체에 위기를 떠넘기는 방식도 가능하다. '삼성의 위기'를 말하기는 좀 섣부른 듯하다.
프레시안 : 한국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작은 위기 징후에 대해서도 언론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벌의 위상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없는 듯하지만, 재벌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견이 상당해 보인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가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인데, 그는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에 대해 비판하면서 적극적인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산업정책을 통해 성장한 재벌의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한다. 실제로 그는 "재벌을 때려잡으면, '서민'에게 이익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한 잡지에 기고했다. 정부가 특정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 재벌을 육성했던 박정희식 산업정책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상조 : 내가 장 교수와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아마도 현실 인식에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우선 지금은 "성장이 곧 복지"라는 논리가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던 1960년대가 아니다. 한국의 재벌은 이미 글로벌 아웃소싱(Global Outsourcing)의 체계를 갖췄다.
재벌의 성장과 국내 산업의 연관 관계가 약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의 성장을 통해 서민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관료에게 있다. 재벌의 역할을 긍정했던 박정희식 산업정책은 공정한 위치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민하는 관료의 존재가 뒷받침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1960, 70년대에는 이런 유형의 경제 관료가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관료 집단 자체가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다.
그리고 산업의 성격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선진국에서 성공한 사례를 수입해서 적용하는 방식이 통했다. 산업의 발전 수준이 낮고, 산업 간의 연계가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료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산업이 유망한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사례를 그저 적용하기만 하던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과 기술의 상호 연계도 과거와 달리 매우 복잡해졌다. 선진국의 기술을 무조건 들여온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산업정책을 세우려면 산업과 경제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는 게 필수적인데, 이런 작업은 상당부분 경제 관료의 능력 밖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료가 주도하는 박정희식 산업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관료에게 의존한 노무현 정부"
프레시안 : 관료 집단의 성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뜻인데, 이유가 뭐라고 보나.
김상조 : 과거에는 정치권력이 관료를 규율하는 힘이 강했다. 과거의 관료가 더 도덕적이고, 유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위적인 규율이 관료가 특정 세력만을 대변하지 못 하도록 통제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반면 정치적 민주화가 부분적으로 진행된 후에는 이런 규율과 통제가 작동하지 않게 됐다. 정치권력의 통제도 없지만,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도 없다. 이런 통제의 공백 속에서 자율성을 확보한 관료집단은 본래의 보수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정치 권력을 구성하는 세력은 물갈이가 됐지만, 이들은 관료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 했다. 정책적 무능이 주요 원인이다.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권력을 얻었지만, 독자적인 정책 생산 능력과 철학이 없었던 까닭에 관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외환위기 직후라는 조건을 등에 업고, 새로운 정치권력이 관료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성급하게 IMF 졸업을 외친 뒤부터는 관료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정책적 주체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더 심각했다. 정통 관료 출신인 김진표 씨를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로 중용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노 정권은 집권 초기에 '개혁 대통령에 안정 총리'라는 기본 틀을 내세웠다. 이런 기조로 개혁 성향의 청와대 정책실장과 안정 성향의 경제부총리, 개혁 성향의 공정거래위원장과 안정 성향의 금융감독위원장을 결합했다. 하지만 이런 인적 구성은 결국 경제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일관성을 극도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1기 경제팀이 실패하자, 이후 경제정책의 결정권은 정통 관료집단에게 넘어갔다. 김진표, 이헌재, 한덕수, 권오규로 이어지는 경제부총리 인선은 물론 금감위·공정위 등의 감독기구, 그리고 청와대 내 경제참모진의 구성에서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관료 집단에 크게 의존했다.
프레시안 : 관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정책을 추진하면서 생긴 폐해가 있다면?
김상조 : 노무현 정부가 자주 사용하는 정책 구호 중에 '상생과 협력'이 있다. 좋은 말이다. '협력 게임'(cooperative game)이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보다 우월한 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널리 인정되는 명제다.
그런데 '협력 게임'이 성공하려면 게임의 규칙을 어긴 주체에 대한 제재가 필수적이다. 이런 제재가 없으면 기득권 세력은 규칙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게임은 붕괴한다.
개별 경제주체가 협력 게임의 규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유인(incentive)은 협력으로부터 나오는 추상적 이익(benefit)을 선언하는 것으로 생기지 않는다. 협력 게임으로부터 이탈했을 때 겪게 될 구체적 불이익(cost)을 보여줌으로써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기득권 세력의 옹호자이자 그 스스로 기득권세력의 한 부분인 관료집단에 의해 장악되는 순간, 경제주체들이 게임 규칙의 공정성을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상생과 협력을 위한 '양보'를 호소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견제 없는 자율성' 얻은 관료에게 정책 공급하는 삼성
프레시안 : 스스로 기득권 집단이 된 관료집단이 결국 재벌에 대해 공정한 규제를 할 수 없게 됐다는 뜻으로 들린다.
김상조 : 그렇다. 관료에 대한 대안적인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정책 역량을 갖춘 시민사회의 민주적인 통제 장치다. 이런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관료와 재벌의 유착은 막기 힘들다. 이미 노 정부 출범 이후, 이런 경향은 심화돼 왔다.
현 정부에서 재벌, 특히 삼성이 갖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과거에는 KDI(한국개발연구원)가 경제정책의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KDI가 크게 위축됐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게 삼성경제연구소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의제 중 상당수가 삼성경제연구소의 작품이다. 기업도시 건설, 산업클러스터 육성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이런 개념을 공론화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현 정부에 대거 참여했지만, 이들은 대개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다. 그래서 무턱대고 관료에게 경제를 맡겼고, 자율성을 얻은 관료들은 다시 재벌과 유착했다.
이런 상황을 비집고 들어간 게 삼성이다. 삼성은 단지 정부의 규제를 피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삼성은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정부 정책에 참여하고,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 사회 여론까지 주도하고 있다.
프레시안 : 최근 〈시사저널〉사태를 계기로 삼성의 언론 장악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조 : 삼성이 광고를 통해 언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상황에서 〈시사저널〉사태는 필연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당연하다.
굳이 광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의 주요 언론은 재벌 홍보 자료의 유통기관 역할을 해 왔다. 이념적으로도 재벌과 동질화돼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언론과 정부가 싸운다. 삼성경제연구소에게 정책을 의지할 정도로 삼성과 가까운 현 정부가 삼성의 이념을 전파하는 언론과 싸우는 셈이다. 이런 우스꽝스런 풍경 속에서 언론 개혁이라는 대의가 희화화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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