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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검은리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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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 많던 검은리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87-'07, 일상의 혁명②]PC통신에서 웹2.0까지

선배, 오랜만이죠? 저 2월에 활동 복귀했어요. 안식년과 육아휴직으로 2년 반 만에요.

복귀하고 나서 처음 맡은 일이 '통신비밀보호법', 통비법에 대한 거에요.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개정안을 처음 접하고 그야말로 경악했어요.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감청을 개시하는 것도 그렇고, 일반인의 인터넷 이용 기록을 통신사업자가 1년간 보관하도록 한 것도 그렇고. 심상치가 않은 거에요.

하긴 최근 심상치 않은 일이 그것 뿐만은 아니죠. 인터넷 실명제도 도입되었더라고요. 처음엔 선거시기에만 실시되다가, 올 7월부터 엔간한 큰 사이트들에는 의무적으로 실명제가 적용돼요.

"찌질이들 좀 안보게 실명제 하자"?

물론 예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PC통신도 실명제이긴 했죠. 그런데 요금을 수납해야 하는 개별 기업이 필요에 따라 실시하는 실명제와, 국가가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실명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나요? 뒤의 것에서는 전체주의 냄새가 나요. 대체 지구상의 어떤 국가가 "너는 이상한 글을 쓸지도 모르니 '민증'(주민등록증) 까고 써"라고 국민에게 강요할 수 있는 거죠?

짐작이 가시죠? 저는 통비법과 실명제 문제를 널리 알리기로 결심했어요. 예전처럼 활동을 시작했죠. 인권단체들에 알리고,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 의견을 듣고, 글도 쓰고, 사람들도 만나고….석달 간 정말 열심히 뛰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우울해요. 마음이 깊이 가라앉아 있어요. 활동에서 오는 피로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이 문제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상처를 받아요. 처음엔 좀 당황했다가, 화도 나다가, 지금은 답답하기만 해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대개의 사람들이 무관심해요. 그나마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반응들은 제 기대와 정반대의 것들이었어요.

"제발 실명제 해줘. 찌질이들 좀 안보이게."
"저런 놈은 머리통에 CCTV를 달아서 일 년 내내 추적해야 해."


국가 권력에 대해 일갈하는 소리일까요? 아니에요. 지금 이 사람들은 국가 권력보다 곁에서 댓글 다는 사람들을 더 미워하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눈앞에서 거치적거리는 댓글에 화를 내요. 그리고 마침내 국가의 개입을 요청해요. 짜증 때문에.

이런 추세를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죠. 교통이 막힌다고 기꺼이 집회, 시위를 제한하자고 하잖아요. 누가 쓰레기를 무단 투척한다고 구청에 CCTV를 요청하자는 얘기, 우리 빌라에서도 여러 번 나왔어요. 물론 귀찮고 성가신 것, 집 앞이 더러워지는 것에 대해 누구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요. 문제는 실용적 논리가 기본적 인권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기본적 인권, 우리가 어떻게 쟁취했는데요. 거리에서 피와 땀으로 지켜낸 것들이잖아요.

'해방공간' PC통신에 접속하던 열정을 기억하세요?
▲ 지난 2월 서비스가 종료된 PC통신 하이텔 접속화면 ⓒ프레시안

제가 몇 년 만에 복귀해서 아직 분위기 파악이 잘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기억을 좀 더듬어 보죠.

우리에게 87년과 더불어 사이버 공간이 찾아왔어요. 87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가 서서히 확대됐는데, 딱히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PC통신 <천리안>이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서비스되었던 것이 1988년부터니까 시기가 맞물리죠.

저는 아직도 처음 접속하던 날을 잊지 못해요. 처음 글을 올리던 날은 더 떨렸죠. 생각해 보세요. 그전까지 제가 만든 창작물은 모두 '과제'를 위한 것들이었어요. 독후감, 그림일기, 백일장…. 일기나 편지 같은 자발적 창작물은 아주 은밀한 것이었죠.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글을 발표하다니! 제가 올린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보곤 했어요. 모르긴 몰라도 제가 제 글의 조회수를 꽤 올렸을 거에요.

그게 저만 맛본 감격은 아니었지요. 말뿐이던 '표현의 자유'가 날개를 단 거에요. 언론과 출판 권력만 누리던 표현의 자유가, 일반 민중에게 개방되었어요. 이제, 누구나 자기표현 매체를 가진 시대가 온 거지요. PC통신 그리고 인터넷은, 그렇게 지극히 민중적인 매체로 우리에게 찾아왔어요. 그래서 어느 국가에서나 사이버 공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한국에선 더욱 그랬어요. 인터넷이 기술적인 자유를 주었다면, 정치 체제의 변화는 우리에게 그 기술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어요. 민주주의에 대한 거센 열망이 파도처럼 몰아치자 극단적인 감시 권력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떳떳하게 정치 토론을 할 수 있었어요. PC통신과 인터넷은 해방 공간이나 다름없었죠. 모두가 열정적인 시대였어요. 자생적인 모임이 많이 만들어졌고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따뜻하게 대화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우스개도 나누었어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참세상…검은 리본의 결의들

우리는 이렇게 확보한 민주주의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의했어요. 온라인에서의 민주주의는 현실 권력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우리가 달았던 게 '블랙리본'이었어요. 생각나요? 1996년에 신한국당이 안기부법과 노동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켰을 때 우리가 리본으로 외쳤죠. "근조 민주주의!"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참세상, 사설BBS…. PC통신 동호회 방방곡곡에 달았던 블랙리본이 400개를 훌쩍 넘었더랬어요.

블랙리본은 블루리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에요. 1996년 미국에서 통신품위법이 제정될 당시 검열에 반대하여 미국 네티즌들이 달았던 것이 블루리본이었죠. 인터넷의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치던 그들 말이에요.

이 모든 리본들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한국은 실명제와 통비법이 문제라지만, 9.11 이후로 테러를 막는다며 미국에도 상당한 감시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말이죠.

그에 대한 답을 찾다가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를 다시 손에 쥐었어요. 1996년 바브룩과 카메론이 인터넷 자유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글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투쟁을 낭만적으로 회고하던 저에게 뜨끔한 글귀를 발견했어요.

"비록 '가상계급'의 구성원들은 히피가 획득한 문화적 자유를 누리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에코토피아'(히피의 이상)를 건설하는 싸움에 더 이상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체제에 반대하는 공공연한 반역 대신에 이제 이 하이테크 장인들은, 개인의 자유가 기술적 진보와 '자유시장'의 제한들 속에서 일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을 뿐이라고 받아들인다."(<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신좌파와 신자유주의가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전망 속에서 영합했다고 비판해요. 그것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투쟁에 실패한 결과라는 겁니다. 히피와 흑인시민권 운동은 국가 억압과 문화적 포용에 의해 분쇄되었고, 광장은 사라졌어요. 시장만 남았죠. 그리고 그것은 전자시장으로서의 인터넷을 등장시킵니다.

87년 우리의 투쟁으로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됐지만, 그만큼 거리의 정치는 점차 사라져 갔어요. 투사들은 기성 정치권에 투항했죠. 법치주의적 합리성이 증대되면서 운동은 법리 싸움이 되어 갔어요.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이라크 파병, 새만금 문제에 대한 판단을 사법기구에 맡기면서 민주주의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비판이 나와요.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보수적인 판결과 결정으로 운동이 큰 타격을 입기도 했고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 저도 기억해요. 다시 한번 거리를 되찾은 기분이었죠. 그러나 그 뒤로 우리의 거리는 다시 열리지 않았어요.

포털이 만든 매끈한 판매대, 전자 광장은 쭈그러만 든다
▲ 포털사이트 <다음>의 UCC 세상 웹사이트 화면 ⓒ프레시안

1997년 IMF 사태로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았죠.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개편은, 우리에게 정말 급격한 변화를 가져 왔어요. 이제 사람들에게는 광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이죠. 불안정한 일자리로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시장만 남았나 봅니다.

우리의 정치적 실천은 대개 포털 안에서 맴맴 돌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이미지를 소비하고만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진보는 MBC 라디오의 <손석희의 시선집중>입니다. 우리는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급진성을 읽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프로들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 정치가 '소비'될 뿐이라는 것이죠.

이제 대중은 자기 정치를 생산하기보다 소비하는 데 만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웹 2.0이요? UCC요? 그러나 포털이 만들어 놓은 매끈한 판매대에서 저항의 메시지는 쉽게 만날 수가 없네요.

네티즌의 힘은 'OO녀'를 중심으로 한 유희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납니다. 가난한 사람은 빵집 아가씨의 미담 사례에 등장하는 소재일 뿐입니다. 우리의 손가락은 너무도 가볍게 키보드를 누빕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정치는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직접 만들고 표현할 수 있는 매체, 인터넷이 여전히 정치 실현의 장이 될 수 있다면, 그 장을 지키기 위한 우리 투쟁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먹고살기 힘들다면, 왜 우리가 먹고살기 힘든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전자 광장은 쭈그러들고만 있습니다.

권력의 개입은 자청하고 검은리본은 사라진 시대, 언젠간 바뀔까?

프랑코 베라디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답변>에서 이렇게 말해요.

"지력(intelligence)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기호화의 틀 속에 흡수되었다."

우리가 댓글 다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통제 욕구 때문입니다. 생존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여유가 있을 턱이 없어요. 잘리기 전에 얼른 돈 벌어서 재테크도 해야 하는데, 추상적 인권이 눈에 들어올 리 없지요. 오로지 실용성을 위해, 화폐 교환을 위해,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은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국가 권력의 개입을 요청합니다. 그 많던 블랙리본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자유의 기술들이 지배의 기계들로 전화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이것이 요즘 제가 답답한 이유입니다. 여전히 리본을 찾아 헤매는 제가, 언젠가는 거리도, 전자 광장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제가 잘못된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요.

선배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답장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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