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모여든 1700여 명의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이날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갖고 26일부터 하루 8시간 근무 등 준법투쟁을 시작하며 오는 6월 1일 오전 4시간 근무 후 부분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남들 다하는 노동시간 단축, 우리도 하자"…사용자들은 원청 건설회자 눈치 봐
전국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는 지난 3월 28일 이후 5월 7일까지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 및 개별업체들과 9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노사협상은 결렬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8일 노사간 입장차가 워낙 선명하다며 조정중지를 결정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10일부터 벌인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67.9%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했다.
전체 타워크레인 기사 3000여 명 가운데 1700여 명이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에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노조는 "건설현장에서 50% 이상의 공정을 담당하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면 68% 건설현장이 '올스톱'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워크레인은 각종 건설자재 운반 등을 담당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210개 사가 소속된 사용자단체를 상대로 한 요구사항과 대정부 요구사항이다.
사용자들에 대한 노조의 요구사항은 △2시간 강제 연장근무 폐지 및 고용안정 보장 △위험수당, 자격수당 등 복지수당 신설 △법정 국·공휴일 보장 △1년 미만 근로 조합원의 생활임금 상향 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은 단협의 조항에 따라 의무적으로 하루 2시간 연장근무, 총 10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연장근로 수당은 물론이고 법정 공휴일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주5일제 시행으로 여가 문화가 꽃피고 있는 이 시대에 건설노동자들은 휴일도 없이 해고되지 않기 위해 하루 2시간을 의무적으로 연장근무를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원청인 건설회사와의 관계를 고려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궁연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며 다른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놀러갈 때도 우리 건설노동자는 주 70시간 가까이 공휴일도 없이 일하고 있다"며 "남들은 다 하는 '노동시간 단축' 이제 우리도 하자"고 말했다.
"정부 부처간 밥그릇 다툼으로 타워크레인 기사의 안전은 뒷전"
또 하나의 쟁점은 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 등록 문제다. 그간 타워크레인은 건설기계에서 제외돼 있어 각종 안전 문제 등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노조의 요구로 최근 타워크레인을 건설기계로 등록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노조는 "타워크레인 건설기계 등록과 안전검사 및 관리체계 일원화가 부처간 이해관계로 인해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타워크레인이 건설기계로 등록되기 전, 검수권을 갖고 있던 노동부가 이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이같은 내용을 담아 △타워크레인 검수권 일원화를 통한 건설기계 등록 등 전문건설업화 실시 △벽체지지 고정방식의 원칙화 △타워크레인 직종코드 일원화 등을 대정부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 등록은 운전 기사들의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백석근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은 "우리의 오랜 투쟁으로 타워크레인도 이제는 건설기계로 등록하게 됐지만 노동부와 건교부가 (검수권 등을 놓고)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향후 계획과 관련해 박종모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6월 1일 이후 전면 총파업으로 들어갈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사용자와 정부의 태도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늘에서 일하는 열악한 타워크레인 기사"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가운데 하나다. 건설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화장실이나 식당도 없이 먼지 날리는 건설 현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 "탈당에, 대선에 여념없는 의원님들은 아시나요?", "건설노동자들은 새해가 두렵다") 이 때문에 건설 노동자들은 건설현장의 화장실 및 식당을 지어달라며 법개정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남궁연 건설연맹 위원장도 이날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총파업 출정식에서 "이 땅에 노동자는 참 많지만, '화장실 지어달라', '밥 먹게 해달라'고 싸우는 노동자는 건설노동자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 법안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은 건설현장의 속성상 공사가 있을 때만 일을 하는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타워크레인 기사들도 90% 이상이 현장별로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다. 노동 자체가 워낙 위험한 일이다보니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아 왔던 이들이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타워기사와 기존 건설회사 사이에 소위 '소사장제'로 불리는 용역업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임금의 상당 부분을 중간의 용역업체가 '착복'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게다가 수 십 미터 고공의 한 평이 채 못 되는 조종실에서 하루 종일 땅만 바라보며 일을 하다보니 목과 허리 등에 무리가 오기 쉽상이어서 각종 척추질환, 신경성 질환 등의 직업병을 앓고 있다는 것. 또 아침에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기가 쉽지 않아 화장실 등도 심각한 문제다. 이날 출정식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아무리 덥고 목이 말라도 물조차 잘 못 마신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남성들은 여성보다는 나은 편이다. 한 여성 조합원은 "남자들은 음료수 병으로라도 해결이 가능하지만 여자들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부가 타워크레인의 고정 방식 가운데 하나인 '벽체지지 방식'을 개별 기업에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어서 보다 불안정한 '와이어로프 지지방식'으로 타워크레인이 고정돼 있는 것도 문제다. (☞관련기사 보기 : 왜 타워크레인이 자꾸 전복되나 했더니…) '와이어로프 지지방식'은 '벽체지지 방식'보다 비용은 절감되지만 안전면에서는 더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어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매번 올라갈 때마다 무사히 살아서 내려올 수 있을까 불안해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노조는 "평균 13.3일에 한 번 꼴로 타워크레인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위험도를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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