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동대문운동장 철거? 서울시민과 합의하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동대문운동장 철거? 서울시민과 합의하라"

서울시 철거 계획에 반발…"'서울의 추억'이 깃든 곳"

최근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철거 계획을 서두르면서 이에 비례해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게 높아가고 있다. 특히 서울시 계획에 대한 반발 기류는 '시민의 생존권'을 앞세운 주장에서부터 '문화적 향유'를 강조하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작에 입주한 노점상들은 서울시가 약속했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문화운동가들은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게다가 문화재청은 동대문운동장에 대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으니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며 서울시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동대문운동장 부지(2만7000평)를 공원화하겠다고 내세웠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부지 일부에 '서울 디자인 콤플렉스'를 건립해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오는 4월까지 입주시설을 확정하고 2008년에는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시장이 이처럼 계획을 서두르게 된 데에는 지난해 12월 두바이, 밀라노 등지 순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순방 이후 "이들 도시에서 느낀 점은 모두 시장을 선점해 성공했다는 점"이라며 "동북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시가 '디자인 허브'를 선언한 만큼 빨리 서둘러 사업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최대 규모 훈련도감이 있던 곳

그러나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황평우 위원장은 지난 14일 문화연대와 전국빈민연합 주최로 열린 '동대문운동장 철거,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동대문운동장이 가진 역사성을 강조했다. 오 시장의 강조한 '시장의 가치'와는 대척점에 선 주장이었다.

황 위원장에 따르면, 우선 동대문운동장 가운데 축구장 부지는 낙산과 동대문을 거쳐 광희문으로 연결되는 서울 도성의 성곽이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지나가는 곳이었다.

또 야구장 부지는 조선시대 훈련도감(訓鍊都監)의 하(下)도감이 있던 자리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선조 27년(1594년) 창설된 훈련도감은 지금으로 치자면 서울의 '방위사령부'에 해당하는 기관이었던 셈. 북영, 남영, 서별영, 동별영으로 나뉜 주요 병영 가운데 동별영인 하도감은 상주인원이 1000~2000명 남짓 됐던 곳으로 훈련도감 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즉 이곳은 조선 후기 수도방위사령부의 무기고 및 훈련장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침략정서 그대로 보여주는 근대 체육시설
▲ 동대문운동장 전경 ⓒ뉴시스

그 자리에 동대문운동장이 세워진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10월 15일이다. 그 무렵 지어진 건물로는 서울역사(1925년), 경성부청(서울시청·1926년), 동아일보사(1926년), 조선총독부(1926년) 등이 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의 이름은 '경성운동장'이었다. 경성부가 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이 운동장 공사는 경성부 토목기사 오오모리의 설계로 옛 훈련원 터 2만2700평에 15만5000원을 들여 진행됐다.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는 1925년 5월30일자에 "운동장이 완공되면 고시엔(甲子園)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경기장이 된다"고 보도했다. 경성부는 운동장 관리를 위해 만든 '조례' 1조에 "본 조례에서 경성운동장은 1924년 동궁(東宮)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운동장을 말한다"고 밝혔다. 동궁이란 훗날 일왕의 자리에 오르는 히로히토를 가리킨다.

황평우 위원장은 "즉 동대문운동장은 당시 조선인의 체육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일제는 근대 체육시설 건립에도 그들만의 침략정서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준공 열흘 뒤 열린 개장 이벤트는 이름부터 침략의 의도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당시 개장 행사의 이름은 조선신궁봉찬경기대회(朝鮮神宮奉贊競技大會). 관변단체 주관으로 내선일체의 행사로 진행하려던 일제의 계획은 민족진영의 보이콧으로 '반쪽 행사'에 그쳤다. 조선체육회는 이 대회와 같은 날짜에 따로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전조선 야구대회'를 열기도 했다.

우리나라 근대 체육의 역사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운동장

그 이후 축구장과 정구장이 완공되고 관중석도 정비되면서 경성운동장은 서울의 명물로 떠올랐다. 연희전문 학생 이영민이 처음 장외홈런을 날린 곳도, 일본 경찰을 긴장시킬만큼 많은 2만여 명의 인파가 모였던 경평(京平)축구가 열린 곳도 이곳이었다.

광복 후 서울운동장이 된 이곳은 군중집회 장소로 변신했다. 반탁과 찬탁 집회가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1946년 메이데이에는 우익은 축구장에서, 좌익은 야구장에서 집회를 갖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박스컵 축구대회와 대통령배 축구대회가 진행됐던 곳도 여기다.

황 위원장은 "동대문운동장은 1984년 건립된 잠실운동장에 '국내 대표 축구·야구장'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각종 국가 대항전 축구. 야구 대회가 열렸던 곳"이라며 "우리나라 근대 체육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디자인센터? 서울시의 일방적 계획"

황 위원장은 "우리는 대개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값비싼 국보나 보물만 생각하지만, 정반대의 것도 있다"며 "삼전도비, 조선총독부, 아우슈비츠, 바르샤바 역사 지구, 히로시마 원폭 돔 등 민족이나 개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거나 인류의 과오를 보여 주는 장소와 건물 등도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는 2009년부터 성곽을 복원한다고 했으면서 디자인센터부터 지을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성곽복원이 당장 어려우면 운동장을 없애고 건물을 지을 것이 아니라 풍물시장을 활용한 '진짜 복원'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장판이 '디자인센터'나 '공원'보다 과거 훈련도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은 동대문운동장 중 축구장 부지에 대해 근대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실사를 진행했다. 그 뒤 문화재위원들은 "동대문운동장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으니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조사는 마쳤지만 현재 최종 결론은 못 내렸다"며 "서울시가 디자인센터를 짓겠다고 한 것은 일방적인 계획일 뿐 우리와 설계도 검토를 마쳐야 한다"고 밝혔다.

공동의 기억 깃든 운동장을 허물려면 동의부터 구하라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동대문 운동장 수호 100만인 서명운동 홈페이지. ⓒ프레시안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콤플렉스 계획을 서둘러도 임기가 끝날 때에야 착공이 가능하다"고 밝힌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밀어붙일 태세다.

서울시는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한야구협회와 함께 오는 11월 동대문 야구장 철거 및 대체 구장을 건설하는 데 합의하고 지난 19일 서울시청에서 상호양해각서(MOU) 체결했다. 지난해 12월 "동대문 야구장은 101년 한국야구역사의 성지이자 현재 학원야구의 메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KBO 및 대한야구협회의 이런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황 위원장은 "KBO와 야구협회가 동대문 야구장의 주인인가"라면서 "이 야구장은 경기가 좋아서 무작정 쫓아갔던, 그 옛날 몇시간씩 걸어가 시합을 구경하던 이들, 그 추억을 갖고 있는 시민들이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루 몇백 명이 걸어다니던 성곽 돌담길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서 몇천만 명이 다녀간 동대문운동장의 가치는 왜 가볍게 여기는가"라며 "서울시민들의 공동의 추억이 깃든 운동장을 허물려 한다면 천만 시민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영.호남 지역 10개 마을의 '돌담길'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지난해 12월부터 협회 홈페이지(www.kpbpa.net)에서 '동대문운동장 수호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에 참여한 이들은 "동대문 구장은 모든 야구팬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며 "역사와 전통을 이처럼 무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약속은 '모른 척', 이제는 '나가라'?

서울시의 철거 계획에 누구보다도 어이없어 하는 이들은 바로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상인들이다.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노점상은 권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며 동대문 풍물시장은 서울시가 배려했던 것"이라며 "배려는 배려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이명박 당시 시장 측이 노점상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구두 약속과 함께 풍물시장에 대한 홍보까지 해주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는 노점상들은 분노하고 있다.

노점상들은 '관광명소로 만들어주겠다'던 서울시의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애초 약속한 동대문운동장 전체 부지의 절반만 사용하게 했으며, 시설지원 또한 미비해 노점상들은 6억 원을 자체적으로 모아 차양막을 설치했다.

전국빈민연합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또 다시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싼 서울시와 노점상 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열린 토론회에서 그는 "서울시는 풍물시장 상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운동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동대문 디자인 월드플라자' 건설계획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흘려보냈다"며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 노점대책'을 통해 시민들을 현혹하고 노점상을 분열시키려는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최 처장은 동대문 벼룩시장이 가진 문화적 가치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청계천 황학동의 전통을 이어가는 이곳은 1950~60년대 추억의 물건을 다듬어 소비하고 유통하는 공간"이라며 "오래된 카메라, 전축, LP판, 각종 민속품과 골동품 등 쉽게 접하기 힘들 물품들은 영화소품으로 애용되기도 하고 외국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해 관광명소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 풍물시장 내부 풍경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