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그때 경찰이 윽박지르지만 않았어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그때 경찰이 윽박지르지만 않았어도…"

[사건 후기]"입원 중인 피해 아이에게 사건 재연 강요"

'경찰 부주의로 교통사고 현장재연 시 2차 피해 발생'

국가인권위원회가 13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인 최 모 군이 지난해 9월 학교 후문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고가다 화물차량과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사고를 재연하게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화물차량과 다시 부딪혀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는 것. 인권위는 피해 학생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쉽게 믿기지 않는 내용이다. 경찰은 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자전거와 화물차의 2차 충돌을 막지 못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프레시안〉은 해당 학생의 어머니, 그리고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과 접촉을 시도했다. 피해학생 어머니인 김 모 씨는 인터뷰에 응하는 것을 한동안 망설였다. 언론에 신원이 공개될 경우, 피해 학생에게 또 다른 불이익이 닥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전주시내 모 경찰서 김 모 경장은 "내가 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느냐.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싫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재 결과, 김 경장은 지난해 10월 경찰청으로부터 '계고' 조치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 군 사건에서의 과실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경찰청의 자체 감사를 통해 당시 사건의 전모는 대부분 드러났다. 김 경장이 피해 학생에게 무리하게 사건 재연을 강요했고, '부주의'로 인해 자전거와 화물차의 2차 충돌을 막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원인을 단지 '경찰의 개인적인 부주의'에서만 찾는 게 옳은 일일까? 취재 과정에서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힘없는 시민에 대한 경찰의 권위적 태도'가 그것이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 김 씨와의 인터뷰가 이런 판단의 계기였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경찰이 너무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화물차와 처음 충돌한 뒤 다친 몸으로 병원에 있는 아들에게 경찰이 무리하게 사건 재연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당시 "아이가 너무 아프다. 굳이 병원 밖으로 나가서 사건 재연을 해야 하느냐"고 거듭 물었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김 씨의 호소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해석에 대한 판단은 조심스럽다. 하지만〈프레시안〉은 당시 사건이 평범한 서민의 눈에 비친 공권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더 주목했다. 다음은 김 씨의 양해를 얻어 그의 육성을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다. 〈편집자〉


다친 몸 이끌고 사건 재연하라고요?

아들이 학교 후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5톤 화물차와 부딪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깜짝 놀라서 학교로 달려갔지요. 그리고 학교 후문 길 건너 편에 있는 ㄱ정형외과로 아들을 옮겼죠. 아들은 다친 옆구리가 너무 아프다고 계속 울먹였어요. 그런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고 현장을 재연해야 하니 (사고가 발생한) 학교 후문 내리막길로 나오라는 것이었어요. 아들이 너무 아픈데 굳이 나가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사실 범죄 사건도 아닌데, 더구나 피해자 입장에서 무리까지 하면서 사고를 재연할 필요는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막무가내였어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거예요.

결국 사고가 난 학교 후문으로 갔어요. 그런데 경찰이 안 오는 거예요. 아들은 아프다고 계속 우는데….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참 기다리다 시계를 본 뒤로부터 다시 30분쯤 지나니까 경찰이 나타나더군요. 김00 경장이었어요.

저를 보더니 화부터 내더군요. 부모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빠지라는 거예요. 애도 아프고 해서 그 자리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경찰이 화 내는 것을 보니까 무섭기도 하고, 또 시키는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되돌아섰어요. 그리고 학교 후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죠. 그런데 한동안 내려가다 보니까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뒤를 돌아보니 우리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더라고요. 경찰은 그냥 멀뚱하게 서 있기만 하고요. 그래서 달려갔죠. 그랬는데 아이가 정신을 못 차려요. 기절한 거예요.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일단 시내 ㄱ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갔어요. 그리고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그냥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더라고요.

"내가 자전거 타라고 했니?"…"이래서 애들은 안 돼"

아이가 깨어났을 때, 당시 상황을 물어보니까 경찰이 당시 사고를 재연해야 한다면서 처음 사고가 났을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 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자전거가 망가지면서 브레이크도 고장났어요. 그래서 자전거가 멈추지 않고 화물차와 다시 부딪힌 거죠. 그리고 아이는 더 크게 다쳤고요.

그런데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은 병원에 찾아오지도 않더라고요. 아, 한 번 왔었네요. 와서 아이를 만나고 갔어요. 아들에게 묻더군요. "내가 자전거를 타라고 했니? 안 했니?" 아들이 "자전거를 타라고 했잖아요"라고 대답하니까 "이래서 애들은 안 돼"라며 화를 내고 돌아갔어요. 그 경찰은 나중에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아이에게) 사건을 재연해보라"고는 이야기했지만 "자전거를 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더군요.

"'없는 사람'은 억울해도 그냥 참고 살아야 하나요?"

아들을 다치게 만든 경찰이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너무 억울해서…. '없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나 싶기도 하고…. 사실 우리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에 손해 배상 청구하겠다며 변호사를 찾아갈 수도 없잖아요.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경찰청에 민원을 넣은 거예요. 국가인권위원회도 그래서 찾아 간 것이고요.

경찰청에서는 사고가 난 다음 달에 자체 감사를 통해 그 경찰을 징계했어요. 그리고 인권위에서는 오늘(13일) 법률구조를 해 주겠다고 하네요. 언론에도 보도됐다고 하고. 경찰이 처음에 그렇게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가 요즘도 비가 오는 날이면 부러진 자리가 아프다고 해요. 그때 경찰은 아픈 아이에게 왜 그렇게 윽박질렀을까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