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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예능'이 아니다"

[교육과정 논란] 예술교육, 패러다임을 바꾸자<1>

이달 말 확정되는 교육과정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번 논란의 쟁점 중 하나가 음악, 미술, 체육 교과의 내신 반영 문제다.

교육부는 현재 수, 우, 미, 양, 가 로 상대평가되는 이들 과목의 평가방식을 글로 적는 '서술형 평가'나 Pass와 Fail 등 두 가지로 평가하는'성패형 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이들 과목의 평가항목을 학생이 선택하게끔 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이들 교과 교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교육에서 음악, 미술, 체육 교과의 위상을 축소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들은 교육부의 방침이 "예술 및 체육 교과를 내신에서 반영하지 않겠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같다고 여긴다.

특히 주5일제 수업이 확대 시행될 경우, 뒤따를 전체 수업시수 감축도 이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는 정책방향대로라면 수업시수 축소의 영향을 국··수와 같은 주지교과보다 음··체 과목에서 더 강하게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보며 안타까와 하는 이들이 많다. 문화적 감수성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을 교육당국이 아무래도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수업시수, 내신 반영 등이 쟁점이 되면서 기존 음악, 미술, 체육 교과 교육의 한계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주로 기존의 음악, 미술 교육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한다. 이들 교과 교육이 기능의 숙련만 강조하느라 정작 학생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중·고교 12년 동안 음악과 미술을 꾸준히 배웠음에도, 우리 사회의 문화적 토양은 이토록 척박한가"하는 질문을 해당 교과 교사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술 관련 교과의 위상 약화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이런 반성이 선행되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예능교육'이 보다 폭넓은 개념인 '문화예술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 창작에 필요한 기능 훈련보다 문화적 감수성과 문화적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 맥락을 고려하여 현상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

앞서 '기존의 문과-이과 구분을 허물 것'을 제안했던 <프레시안>은 '예능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를 교육과정 논란과 관련한 두 번째 의제로 설정했다.

이번 기획에서 <프레시안>은 기존의 예능교육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고민을 소개할 예정이다. 앞서 소개한 '문과-이과 구분 허물기'와 이번에 다룰 주제는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다. 기존의 교과 구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허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능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를 다룬 기획의 첫 번째 필자로 충남 애니메이션고 김인규 교사가 나섰다. 김 교사도 기존의 예능교육을 비판하며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교육'을 주장해 온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미술을 가르치는 김 교사는 평소 기존의 틀을 허무는 다양한 문화적 실천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번 기고에서 그는 미술 교과에 대한 통념을 허무는 다양한 시도를 소개했다. 학교 예술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다음은 김 교사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예술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로서 최근 교육과정을 둘러싼 논란들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음악·미술 수업은 학생들의 부담일 뿐?

교육부가 교육과정 개편 시안에서 현행 예체능 교과군을 미술, 음악 교과와 체육 교과군으로 분리하려 하자, 일부 언론이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 교과시수가 늘어나 학생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자 교육부는 미술, 음악, 체육 교과의 내신반영을 제외하겠다거나, 심지어는 학생들이 선택하여 평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하는 등 혼란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물론 무엇이 옳은 방안인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학습 부담을 줄여야 하므로 예술 교과 수업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입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예술교과는 학생들에게 그저 부담만 주는 과목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명백히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과연 공교육에서 모든 학생이 예술교육을 받아야하는가 하는 도발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입시준비에 방해가 되니까 필요없다는 차원을 넘어 현행 예술교육의 존재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인 셈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뤄진 음악, 미술 교육이 학생들에게, 그리고 과거 교육을 받았던 국민들에게 얼마나 감흥을 주지 못 했으면 이런 주장이 나올까 싶어 속상하기만 하다. 특히 학생들이 실기평가를 선택하여 치를 수 있게 하겠다는 부분에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 예술교육의 빗나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고, 그러한 왜곡을 교육부 스스로 아무런 반성없이 받아들이는 상황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차분히 돌아보면 이런 왜곡의 배경에는 예술 교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내가 담당하고 있는 미술 교과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

미술교육의 목적은 감수성, 창의성 계발이라면서

우리가, 그리고 상당수의 교사들이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미술 교과가 풍경화나 석고데생과 같은 '기능'을 가르치는 교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4차교육과정이 도입된 1981년부터 공식적으로도 미술교육은 기능교육을 벗어날 것을 표방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입장일 뿐이었다. 많은 교사들, 그리고 교육부 관료들은 여전히 4차교육과정 이전의 생각을 고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므로 정책이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들어 예술교육의 가치를 낮춰 평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지식 중심 교육이 다시 강화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주5일제 수업 실시 등으로 전체 수업 시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식 교육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술교육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아주 어리석은 주장이다. 인간의 능력은 지적 능력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감수성과 창의성을 고루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당연한 주장은 이미 1981년 4차교육과정이 도입될 때부터 강조됐던 것이다.

이런 당연한 주장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감수성', '창의성' 등의 개념이 모호했던 것도 한 원인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계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마 이게 많은 교사들이 '기능 중심의 예술교육'을 답습하게 한 원인일지 모르겠다.

'그림 잘 그리는 법'을 넘어 '미적 체험'을 제공해야

하지만 학교에서 행해지는 예술교육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지금, 답을 내려야 한다. 확실한 것은 예술교육은 기능 중심의 '예능'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기능 중심 교육에 머무는 한, 예술교육의 숨통을 옭죄어 오는 흐름에 저항할 수 없다.

그리고 교육현장에는 풍부한 연구와 노력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찾아낸 예술 교과 교사들이 이미 많이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예능이 아니다", 그리고 "예술교육이 추구하는 것과 예능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화, 조소 등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 중심의 예능교육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안면중학교 솔향길 벤치.(2002년 작품)
안면중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며 지나는 산모퉁이 길에 서 있는 장승을 이용해 벤치를 세웠다.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풍경을 꼼꼼히 관찰하고,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미술교육의 힘이다. ⓒ김인규

흔히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면 무조건 심미성(審美性)이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생각일 뿐이다. '회화'라는 장르는 교육의 자료 혹은 수단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미술 교육의 목표가 '그림 잘 그리기', '조각 잘 하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실 조금만 고민해보면 자명한 일 아닌가.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교육활동을 하며 확인한 것도 "학생들이 자신들의 일상에 대해 예술적으로 접근할 때 더욱 생생한 미적 체험을 하고, 보다 활발한 사고가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예술교육이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책에 나온 지식과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을 느끼고 누리며, 개입하고 변형하는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른 생각과 충돌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시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미술 수업을 예로 들면 시각적 체험을 통해 사고와 감성을 자극하여 감수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시각적 체험이 갖는 힘은 실로 크다.

마을 환경이 미술 교재다

이런 생각으로 기존의 미술 수업을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그러다 보니 책에 나온 명화(名畵)뿐 아니라 길거리의 간판, 사람들의 옷차림, 건물, 오염된 환경, 마을풍경 등을 모두 학습내용으로 삼게 됐다. 따져 보면 그것은 이미 '미술'이라는 예술장르가 걸어 온 길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미술관 안에서 다소곳 하게 관객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시각환경을 만들어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게 예술이다.
▲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산동네 골목 풍경이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도시 속에 농촌의 이미지가 섞여 있고, 집 밖에 집 안의 이미지가, 골목에 마당의 이미지가 합쳐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익숙한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 그것은 새로운 미술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 중 하나다. ⓒ장민수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면 학생들이 사는 지역사회 자체가 거대한 학습 자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 속의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는 것에 머물 때,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다.

안면중학교에서 근무할 무렵, 학교 근처에서 꽃박람회가 열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개발의 바람이 불어 닥쳤고, 도로는 날로 뻗어났으며, 팬션들이 속속 지어졌다. 마을의 시각 환경이 크게 뒤흔들린 것이다.

당시 나는 학생들과 이런 변화에 대한 토론했다. 그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이런 변화에 대해 '예술적'으로 반응하고 참여하도록 권했다. 나는 그것을 '느낌을 동반하는 활동'이자, '삶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활동'이라고 이해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여기서 그 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3학년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그 유명한 꽃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개발과 오염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변화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 방법으로 학생들이 선택한 것은 PET병 다섯 개를 구해서 각각 생수, 꽃지 바닷물, 젓개 바닷물, 저수지물, 회집 하수구물을 담아 꽃지 해수욕장을 찾아 온 관광객들에게 파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이었다.
▲ 꽃지해수욕장에서 '물판매 노점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안면중학교 3학년 학생들. ⓒ김인규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개발과 오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얻었을 뿐 아니라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존재일 뿐이던 지역의 관광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예술, 특히 미술의 역할 중 하나가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을 낯선 시각으로 보게 하는 것 아닌가.
▲ 시험공부에 지친 학생들의 모습을 학생 스스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보은

더구나 한창 입시에 몰두해야 할 3학년 학생들임에도 즐거운 놀이처럼 과제를 즐기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학생들은 스스로의 과제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기존 교과의 벽을 허물자…수학과 미술의 결합이 어색하다고?

이런 방식의 교육활동은 기존의 교과활동 방식과 여러 모로 다르다. 일단 기존 교과의 경계를 뛰어 넘어 통합적인 지식에 접근하려는 발상이 필요하다. 수질오염의 문제는 얼핏보기에 과학 교과의 영역이며, 지역개발의 문제는 사회 교과의 과제다. 하지만 이런 교육 속에서 자연스레 다른 교과 간의 협력과 소통이 이뤄질 수 있었다. 나는 이런 협력과 소통이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본다.

앞서 <프레시안>에서 문과-이과의 경계를 허물자고 주장한 것처럼 기존의 계열 사이에 놓인 장벽, 다른 교과 사이에 놓인 장벽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는 종종 나왔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제약이 흔히 주지교과라 불리는 과목과 예술 교과 사이의 장벽이다. 그리고 '기능 중심의 예능 교육'이 아니라 예술 교육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수업을 한다면 이런 장벽은 쉽게 허물수 있다.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하겠다. 2006년 서천중학교에서 진행한 통합교과 활동이다. 당시 사회, 과학, 미술, 국어 교과 교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공동으로 주제를 정하고 서로의 수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수업의 최종적인 성과는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수업은 사회 교과가 주도한 서천지역 뒷골목 조사에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뒷골목에서 긍정적인 장소와 부정적인 장소를 선정하여 평가하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뒷골목에 버려진 재활용쓰레기를 수집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이미지들을 수집했다.
▲ 서천지역 뒷골목 조사 수업 개요. ⓒ고영옥

이를 토대로 미술시간에는 몸짓으로 서천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활동을 하고 국어시간에는 서천을 소재로 한 모방시 쓰기, 과학시간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한 분자모형만들기를 하는 등으로 이어진 후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미래에 대한 주장을 쓰는 글 쓰기(논술)로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이 각각의 교과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지적, 감성적 이해를 도모한 후 글 쓰기를 통해 마무리하는 것이다.
▲ 흔히 '문과'와 '이과'로 구분돼 온 사회 교사와 과학 교사가 서천지역 뒷골목 조사 수업을 함께 진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학생들이 쓴 글을 함께 읽고 검토했다. 교과의 벽을 뛰어넘는 것은 학생들에게나 교사들에게나 중요한 과제다. ⓒ고영옥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국어와 미술, 사회와 미술의 협력 정도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통념을 깨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당시 2학년 학생들과 수학과 미술의 협력수업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수학'과 정반대 편에 있는 듯 보이는 '미술'의 협력은 흔히 어색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화가 에셔가 수학자 괴델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았던 사례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수학과 미술은 생각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미술시간에 못 쓰는 물건으로 입체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시작했다. 미술교사는 이런 작품을 다시 단순화하여 추상적 도형으로 표현하게 했다. 그리고 수학의 도형시간에서 학생들은 기하도형의 원리에 대해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미술시간에 입체추상도형 만들기를 하면서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은 수학적 규칙과 통일, 변화, 규형, 비례 등과 같은 미적요소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체험', '소통', '이해'…예술교육의 새로운 영역

이런 노력들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미술교과 대안교과서 만들기' 활동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대안적 미술교육에 대한 연구는 미술교육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학생들이 접하는 시각문화 환경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내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 '내가 장수풍뎅이가 되어서 본 사람'(종이에 수채/39×54Cm)박근태(학생) 작품. 겹눈으로 본 세상을 상상해 그린 작품이다. 일상을 낯선 시각으로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은 예술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이세백

좁은 의미에서 그것은 시각정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지적 영역을 미술교육의 한 분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보다 폭넓게 보면 시각적 영역에서 인간의 문화를 올바로 자리매김하고 향유하는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의 소비문화가 시지각(視知覺)적으로 파편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또 보다 통감각(統感覺)적인 인간의 감수성을 토대로 시각문화를 인간화 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감수성'의 의미가 무엇인지을 터득해가는 것이다.

새로운 미술교육은 '체험'이라는 통감각적 접근의 영역을 분명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단지 눈으로 보는 이미지의 세계와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세계의 차이를 알게 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미술 교육이 '색상'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수단으로만 받아들이게 했다면, 이제는 물질적 세계로서 색상 그 자체를 먼저 경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 색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색상'을 다른 관점에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술 수업의 목적은 단지 그림을 잘 그리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처럼 '색상'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된다. ⓒ김희숙

더 나아가 미술 교육은 '표현'이라는 기존의 영역 대신 '소통'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설정해야 한다. '표현'은 단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국한된다. 그것을 넘어 이미지로 타인과 소통하는 원리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공감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상'과 '이해'는 다르다. 기존 미술 교육은 종종 단지 예술품을 '감상'하는 활동에 머물렀다. 그것을 뛰어넘어 '이해'라는 영역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이해'라는 영역을 통해 우리의 시각적 관습과 원리들의 배경에 깔려 있는 문화적 특성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기능 중심 미술 교육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쳐 왔던가 하는 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해', '소통' 처럼 흔히 예술 교육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들이 사실은 예술 교육의 중요한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사실은 그동안 진행된 '대안적 미술 교육'에 관한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인간의 세계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세계다. 사람들의 관습이건, 느낌이건, 주장이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우리의 삶을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지력뿐 아니라, 감수성, 창의성 등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시각적 환경과 상황에 참여하는 영역을 분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미술 교육의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을 뜯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는다. ⓒ이세백

이렇게 볼 경우 교육을 지식 영역과 감수성 영역을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고정 관념 자체를 허물어야 한다. 더군다나 미술을 단순히 기능적인 활동으로 취급하는 교육당국의 발상은 정말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발상대로라면 미술교육은 굳이 정규교과목으로 가르쳐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미 말했듯 기능 습득에만 머물러 있는 미술교사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만을 근거로 교육과정 개편논의를 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입시위주의 교육은 그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단히 극복하고 지양해야 하는 부정적인 양상인 것이다. 예술교육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고민들이 이런 답답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아이들과 갈대밭에 나가 직접 자연을 느끼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미술 수업의 범위를 '그림 그리기', '조각하기' 등에 한정하면 안 된다. '글쓰기'와의 결합, 다양한 신체활동과의 결합을 고민해야 한다. 예술교육의 위기는 이런 시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나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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