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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이란 인연 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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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이란 인연 놀음이다"

[화제의 책] 이미지프레스의 <사람들 사이로>

같은 인물이나 장소를 찍어도 사진이 풍기는 느낌은 제각각이다. 찍은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아무런 설명없는 사진을 보다 보면 사진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프레임에 이 장면을 담았을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단순한 풍경 사진이 아닌 인물 사진일 경우 보는 이의 호기심은 한층 커진다. 작가가 왜 그 인물을 선택했는지, 왜 그런 표정의 순간을 잡아냈는지.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들은 사진이 말해주지 않는 사진 속 인물과 작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서 지어내 보기도 한다.

오랜 시간 활동해 온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사람'을 주제로 기획한 작품들을 엮은 책이 나왔다. 작가들이 직접 쓴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이 함께 실려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한층 돕는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집단 '이미지프레스'가 펴낸 <사람들 사이로>(청어람미디어 펴냄)는 '인물 사진'의 다양한 변주와 함께 작가들의 속사정을 들려준다. 2005년 '풍경'을 주제로 엮은 <여행하는 나무>에 이어 이미지프레스가 만든 두 번째 무크지(부정기 간행물)다.

"사진 속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묻고 있었다"

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를 담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 노순택 작가는 '작품 소재 중 하나'였던 두 마을에 어떻게 애정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또 전남 강진 남녘교회의 임의진 목사를 촬영하기 위해 숨박꼭질과도 같은 두 달여를 보내야 했던 김홍희 작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 "대추리에 사는 일흔아홉 살 강귀옥 할머니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서 산 지 어언 40년이 넘었다. 그때 대추리는 사람 사는 마을 같지 않았다. 미군 불도저에 집과 땅을 잃고 떠밀려 나온 주민들은 옛 대추리 옆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였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렇게 어렵게 살아 온 마을 사람들을 또 쫓아낸다니, 그건 안 될 일이여….'

할머니는 들에서 우렁이를 잡다가 해가 뉘엿뉘엿할 때 사진관에 찾아왔다. 한평생을 들녘에서 살아 온 분이었지만, 고운 한복을 갈아입자 고생이라곤 모른 채 곱게 늙은 할머니만 같았다. 나는 2005년 여름 황새울사진관에서 찍은 할머니를 2004년 2월의 필름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붉은 머리띠를 질끈 묶은 채 결연한 투사의 모습이었던 강귀옥 할머니. 인생의 황혼을 맞는 이 분의 머리에 붉은 머리띠를 동여매게 한 이 나라는 대체 제정신일까." (노순택) ⓒ이미지프레스

▲ "임의진 목사가 손님을 위해 잔솔가지들을 그러모아 군불을 땐다. 성질도 강직하고 술은 또 말술이라 사람이 꼬이는 집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손님을 맞는 태도가 극진하다. 부엌 가득 구수하고 은은한 소나무 향기가 퍼져나간다." (김홍희) ⓒ 이미지프레스

"어디 한 곳이라도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혼혈인'이라는 주제를 잡았다는 이재갑 작가의 작품 동기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지난 14년간 혼혈인 1세대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1992년 프로젝트 하나가 끝난 후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는 집에서 우연히 모 TV의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 박일준 씨의 인생역정을 듣게 됐다고 한다.
▲ "왜관에 살고 있는 커티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넨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습관처럼 카메라를 준비해서 어머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그러나 어머님이 잠들어 계신 곳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혼자 어머님 옆을 지키고 있는 넨시의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간 내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4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사진작업을 한 것인가, 깊은 고민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이재갑) ⓒ이미지프레스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는 중, 박일준 씨는 어렸을 때 우유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어린 마음에 계속해서 마시면 피부가 하얗게 된다고 믿어서….'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방청객들이 '하하하' 큰소리로 웃는 모습들이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작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때야 비로소 혼혈인 '형님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형님 한 사람, 한 사람 어디 한 곳이라도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동안 내면의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는 형님들의 모습은 좀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목회자의 길처럼, 자신의 운명과 삶에 대해 결코 부정적이거나 힘겨워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들을 촬영했던 작가는 작업과 인간적인 도리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던 순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혼혈인과의 만남에서, 오랜 시간 알고 지낸 혼혈인의 모친상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사진가가 된 것을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에게는 촬영 모델들의 아픔이 이미 전이돼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카메라를 편하게 응시할 수 있었던 건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를 통해 또 다시 이어지는 사람들

이처럼 <사람들 사이로>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촬영 인물을 만나면서 느낀 인간적인 고뇌와 일화들을 통해 그들의 작품이 단순한 작업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 인연의 결과물이었음을 고백한다. "사람 얼굴 찍는다는 것, 알고보니 인연 놀음이다"라는 김홍희 작가의 말은 사진작가들이 느끼는 바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 속 인물들과 한껏 친숙해진다. 사진 속 인물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그들은 독자들을 응시하는 눈빛을 통해 자신들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묻는다.

이제는 작가를 통해 이어진 사진 속 인물들과 독자의 인연이 시작될 것이다. 그 인연을 지속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이제 사진 속 인물들과의 대화에 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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