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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 학생을 강남 학교 보내면 뭐가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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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 학생을 강남 학교 보내면 뭐가 달라지나"

[기자의 눈] 2010년 고교 배정방안 개편안 논란

이르면 2010년부터 거주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있도록 서울의 고교 배정제도가 개편될 전망이다. 학생이 거주하는 학군 내의 고교에 추첨을 통해 배정하는 현행 방식을 개편해 강북지역에 살더라도 강남에 있는 고교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동국대 박부권 교육행정학과 교수가 7일 '후기일반계고 학교선택권 방안탐색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서울시 교육청의 연구 용역을 받아 작성된 것이어서 현행 고교 배정 방식의 개편 방향의 가늠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내년 2월까지 고교 배정 방식의 최종적인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문제 불거질 때마다 나온 학군 조정 방안
  
  하지만 이런 정책 방향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애당초 교육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계안 의원 등 일부 여당 의원들의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던 학군 조정 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해 8월 23일 국회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서울의 학군 조정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밝혔다. '판교 신도시발 투기광풍'에 놀란 정부가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기 직전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던 시절부터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정책을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종종 밝히곤 했다. 이런 배경 탓에 김 부총리의 발언은 상당한 무게가 실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교육정책이 부동산 정책의 수단이냐는 비판이 자연스레 일었다. 김 전 부총리는 "학군 조정 문제는 '원칙적'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문제일 뿐"이라며 슬그머니 물러섰다. 이어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학군조정을) 검토하지도 않았고 계획도 없다"고 밝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렇게 일단락된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올해 3월,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현행 학군제를 광역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강북과 강남의 교육인프라의 차이 때문에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측면이 있다"며 "학군을 광역화해 강북 학생도 강남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면 이런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5.31 지방선거를 의식한 발표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여당 내부의 반응도 신통치 않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정봉주 의원(열린우리당)은 당정의 학군 광역화 방안 검토 발표가 나온 직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학군 광역화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고 (학군 광역화가 되면) 오히려 집값이 치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조용히 지나갔다.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6월 공청회를 열어 학군 조정을 통한 고교 배정방식 개편을 기정사실화했다. 박부권 교수가 7일 발표한 내용은 지난 6월 공청회에서 나온 고교 배정방식 개편 시안 중 하나다.
  
  '강남 학교에 진학할 권리'가 혜택인가?
  
  학군 조정을 통한 고교 배정방식의 개편에 대한 비판의 논거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교육을 경제 정책의 도구로 여긴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우선 '강남 학교에 진학할 권리'를 일종의 혜택처럼 여기는 발상 자체가 현행 고교 평준화 정책의 전제와 상충한다는 지적이 있다. 인기있는 고교와 그렇지 않은 고교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인기 고교와 기피 고교의 구분이 선명해질 경우 개별 학교들이 가시적인 성과에만 매달리느라 입시 위주의 교육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개편안으로 빚어진 논란의 배경에는 '강남 학교',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학부모의 선망'이라는 키워드가 놓여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 이금천 정책 실장은 "이번 개편안은 '강남에 있는 학교가 우수하다'라는 그릇된 편견에 바탕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강남에 있는 학교가 대학 입시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놓고 이들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질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강남이 강북보다 높은 입시 성과를 내는 것은 학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런 차이를 무시한 채 강북 학생을 강남 학교로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서 그는 "강북 학생이 강남 학교에 다닐 수 있게하는 정책으로는 국민들이 공교육에 대해 느끼는 불만의 총량을 줄일 수 없으며 오히려 교통난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가난한 가정의 학생과 이런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 교육의 전 부문에 걸쳐 종합적인 지원을 한다면 굳이 집에서 먼 학교를 다니려는 학생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표의 승리'?…'집에서 가까운 학교'서 좋은 교육 받을 권리가 우선
  
  이런 지적은 '강남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선망'을 처음부터 되짚어보게 만든다. '집에서 먼 학교에 다닐 권리(강북 학생이 강남 학교에 다닐 권리)'보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강북 학생이 강북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우위에 놓이는 게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한 질문을 빠뜨린 채 나온 교육정책이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신뢰를 얻기 힘들리라는 것 역시 당연하다.
  
  서울시 교육청의 7일 발표로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가 지난해 공론화했던 서울시 학군 조정안은 궤도에 오르게 됐다. "교육이 집값 잡는 수단이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 전 부총리는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한 셈이 됐다.
  
  하지만 '김진표의 승리'가 '한국 교육의 행운'으로 이어질 수 있을가?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두드러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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