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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집회금지' 고집해서 얻은 게 뭘까"

[기자의 눈]"못 막을 거면 금지를 하지 말든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3차 궐기대회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6일 오후 4시경. 동료기자로부터 "시위대 3000여 명이 지하철 회현역 인근에 모여 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황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회현역에 도착하고 나서 적잖이 당황했다. 시위대로 보이는 사람들은 고작 100여 명도 안 돼 보였다.

바로 그 무렵 시위대가 차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시장 골목골목에서 시위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퇴계로 6차선 도로 중 명동 방면 3차로를 점거하고 회현고가도로를 넘어 충무로로 향했다. 당초 100명에 불과하던 시위대는 충무로에 이르렀을 때 족히 3000명은 돼 보였다.

이들은 동대문 쪽에서 행진해 온 민주노총 중심의 시위대와 을지로 3가에서 합류했다. 이 때 이미 시위대는 7000명 규모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이 막아서자 "막히면 돌아간다"며 방향을 틀어 명동으로 향했다. 평화집회를 공언한 시위대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계속 길을 돌아갔다.

오후 6시께 시위대는 명동역 인근의 한 쇼핑몰 앞에서 퇴계로를 봉쇄한 경찰과 맞닥뜨렸다. 그 때부터 지루한 대치가 계속됐다. 이날 시위대가 이같은 '게릴라 시위'를 벌인 것은 퇴근시간인 오후 5~7시 무렵이었고, 이로 인해 도심 교통은 거의 마비 수준에 이르렀다.
▲ 순식간에 남대문시장 인근의 회현역 앞 퇴계로를 점거한 반FTA 시위대.ⓒ프레시안

이런 양상은 지난달 29일 열린 범국본의 2차 궐기대회에서도 똑 같았다. 당시에도 집회를 금지했던 경찰은 집회신고 장소인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쌌고, 기차를 타고 상경한 농민들을 서울역에 가둬버렸다. 그러자 시위대는 기습적으로 동대문에 모여 도로를 점거하고 가두시위를 벌였고, 종로5가를 지나 종로3가 앞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쌓자 급히 좌회전 해 청계천, 을지로를 지나 명동으로 행진했다. 물론 경찰은 막지 못했다. 시위대는 아무런 제지 없이 명동을 지나 롯데백화점 앞을 완전히 점거했으며 결국 을지로 일대가 움쭉달싹 할 수 없게 꽉 막혔다.
▲ '게릴라식' 가두시위로 서울 시내 일부 구간의 교통이 상당한 혼잡을 겪었다.ⓒ프레시안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약 경찰이 이렇게 집회를 금지하지 않고 서울광장이나 종묘광장에서 집회를 열도록 유도했으면 상황이 어땠을까? 서울광장에서 1차 궐기대회가 열린 지난달 22일에는 교통혼잡이 6일만큼 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지방에서는 폭력사태가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폭력사태가 거의 없었다.

만약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원한다면 시위대 인원을 고려해 점거 차로수를 지정해주고 경찰이 남은 차선만으로라도 양방향으로 운행될 수 있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사전에 노선버스 외에는 우회도로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차피 막지도 못할 '게릴라 시위'를 유발하는 것보다는 시민들의 편의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을까?

삼삼오오 흩어져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기습시위를 벌이는 시위대를 상대해서 대규모 병력이 한꺼번에 이동해야 하는 경찰이 막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시위대가 늘, 그리고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6일 상황에서도 시위대는 명동에 도착한 뒤 명동성당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해산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단체가 이동하지 않고 경찰과 밀고 밀리며 지나치게 감정싸움을 한 것도 시위의 목적과는 상관 없는 불필요한 신경전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설마 경찰이 집회 금지 통고를 했다고 해서 범국본이 집회를 안 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경찰은 '도심 교통 혼잡'을 이유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를 금지한 적이 있다. 이어 경찰은 폭력시위 전력을 들어 범국본이 주최하는 모든 집회를 금지시켰다.
▲ 버스정류장을 막고 주차돼 있는 경찰버스들.ⓒ프레시안

경찰의 이같은 조치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국가인권위는 5일 경찰에 집회 금지 조치를 철회하라는 긴급 권고안을 냈지만,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경찰은 6일 범국본의 3차 총궐기대회에도 전국 1070곳에 전의경 363개 중대와 경찰관 1만 명을 배치했다. 총궐기대회가 예고된 서울 혜화동에서부터 종묘 일대에 이르기까지 전경이 빼곡이 배치됐다. 하지만 경찰의 이같은 '강경대응' 자체가 오히려 퇴근길 도심의 극심한 교통 혼잡을 부채질했다. '집회 금지'를 고집해서 경찰이 얻은 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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