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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짜리' 비정규직 양산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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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짜리' 비정규직 양산될 수도"

비정규직법 국회 통과'…차별금지' 실효성도 의문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보자. 2009년 6월.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가는 모 은행의 창구담당 비정규직 오은아 씨. 오 씨는 머리가 복잡하다. 다음 달이면 회사로부터 '정규직 채용' 또는 '계약 종료' 통지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오 씨는 생각한다. '이게 다 재작년에 발효된 비정규직법 때문이야.'

30일 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이 통과돼 2007년 7월 1일 규모가 큰 사업장들부터 시행된다. 아직 시행령 등 구체적 시행방안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법률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정안△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 등 3가지다. 이 가운데 오 씨에게 적용되는 법률은 '기간제법'이다.

새 비정규직법, 2년 계약해 고용한 뒤 얼마든지 자를 수 있어

기간제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사업주는 어떤 특정 근로자를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총 2년으로 제한된다. 2년을 초과해 계속 고용할 때는 사실상 정규직인 '무기근로계약'으로 간주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 따라서 2년동안 고용한 기간제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와 정규직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파견근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해고와 정규직화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 해당 직원의 능력이 특출해 회사에 붙들어두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비용절감 등을 위해 당연히 해고를 하고 다른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해 다시 1~2년 계약을 할 것이다.

오 씨는 결국 '해고'도 아닌 '계약 종료' 통지서를 받았다. 알아보니 자기 자리에 다른 은행에서 근무했던,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근로자가 오게 된다고 한다. 오 씨는 '2년짜리 인생'이 불안해 안정된 직장을 찾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오 씨는 '나도 자리가 비는 다른 은행을 알아봐야겠다'고 체념했다.

물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30일 통과된 비정규직법 대로라면 이런 상황 발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노총 등은 이번 통과 법안을 '비정규직 확산법'이라고 부른다. 근본적으로 기간제 등의 비정규직 채용사유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사용자들이 거의 모든 직종에 '2년짜리' 기간제를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기간제법을 검토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용판 전문위원은 "동일 업무에 다른 기간제근로자 내지 파견근로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일정한 경우에는 해고를 제한하는 등 근로자 고용안정을 보다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경총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설문대상의 기업 중 11%만이 2년 초과 고용 근로자에 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을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원들. 그러나 비정규직법은 국회에서 통과됐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비정규직에게 노동위원회가 얼마나 가까울까


게다가 '차별금지 조항'도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일단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적용 기준이 모호하고, 사용자들이 어느 특정 직종 전체의 비정규직화를 추진한다면 차별 여부를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센터 황선웅 연구원은 "새 법안은 차별행위를 당했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 심사를 받도록 돼 있는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할지 의문이고, 신청을 한다하더라도 사소한 업무 차이도 '동일하지 않은 업무'로 판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차별금지 조항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고용기간이 2년이 넘은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고용의제' 개념이 아닌 '고용의무' 개념으로 규정된 것에 대해 노동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용을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은 이를 위반한 사용자에게 최고 3000만 원의 과태료만 부과되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고용의제' 개념 하에서는 2년 이상 고용된 근로자는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간주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게 되고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도 훨씬 강화된다.

법 통과됐어도 넘어야 할 난관 산적

반면 경영계에서는 "'차별금지 조항', '기간제 2년 고용 제한' 등으로 고용비용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다만 불리하지만 정책불안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는 측면에서 법안 통과만큼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관련 법률 규정 자체가 없었던 기간제 등의 고용형태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됐다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발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거 육아휴직이나 해외연수 등에 의해 생겨나는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용되던 기간제나 파견직이 어느새 고용시장의 일반적인 형태가 됐다.

따라서 기간제에 관한 규제 법률이 없어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어떠한 규제도 가하지 못하던 가운데 '차별금지 조항'만큼이라도 얻어낸 것은 성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 등은 이번 비정규직법 통과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 개정 투쟁' 등 강경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어, 비정규직 법을 둘러싼 진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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