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픈 사람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보면 요추가 입을 벌린 것처럼 배열돼 있어 실제로 추간판(椎間板), 즉 척추 사이의 판=디스크가 삐져나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서 이를 보고 허리디스크 판정을 내린다. 여기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다. 어쨌든 추간판이 삐져나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디스크가 신경을 눌러 허리도 아프고 다리까지 당기고 아프다고 판정을 내릴 때 시작된다. 디스크가 어떤 신경을 눌렀는데, 그 신경이 어떻게 작용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설명이 없다. 척주관이 좁아져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당긴다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복잡한 신경의 작용 때문이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신경이라는 게 복잡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인데도, 이런 설명 외에는 어떤 설명도 하지를 않는다.
디스크가 신경을 눌렀으면 그것은 어떤 신경이고, 그 신경은 하필 왜 허리, 즉 엉치 주위를 아프게 하고 다리를 굳게 함으로써 다리까지 아프게 하는 것인지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리로 가는 주신경은 흉추 3, 4번 사이와 요추와 흉추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갈라져 나온다. 이들 신경이 눌리면 다리에 마비가 온다. 심하게 마비되면 다리를 쓰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게 된다. 이 외에 어떤 신경이 다리까지 굳게 하는지를 입증해 보여야 하는데, 그냥 복잡한 신경작용이라고만 한다. 현대의학에서는 이렇게 얼버무리는 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몸은 하나로 돼 있고, 하나로 돼 있는 몸을 총괄하는 것은 중추신경계이다. 중추신경계는 말초신경계를 통해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로부터 보고를 받고, 그 보고를 토대로 종합을 해서 지시를 내린다. 말초신경계는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체성신경계와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말초신경계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현대의학에서는 주로 소화, 호흡, 혈류, 땀 같은 신진대사를 무의식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신경계를 자율신경계로 보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자율신경계가 처음 연구될 때에는 중추신경계에서 단순히 상황에 대한 반응을 전달하는 출력기능만 갖는 것으로 보았으나, 현재에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내장기관의 자극을 중추신경계에 전달하는 입력기능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인 수의근에도 자율신경계가 관여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의학에서 그 중 다행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민족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일고 있었던 사실을 현대의학에서는 이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인정하려고 하고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자율신경계는 입력기능과 출력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몸은 상호 연결돼 있는 유기체의 체계가 아니라 중추신경계의 일방적인 지시에만 따르는 북한과 같은 수령체계가 되고 만다.
북한에서는 수령 또는 그 후계자는 바로 뇌수이고, 인민대중은 뇌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피동체로 본다. 수령 또는 그 후계자가 없으면 뇌가 없는 사람과 같이 되어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수령과 그 후계자는 양을 인도하는 목자, 바로 사람이고, 인민대중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언제든지 늑대한테 잡아먹힐지도 모르고 맛있는 풀이 그득한 초원도 찾아낼 수 없는 어린 양인 것이다. 오로지 수령과 그 후계자만 사람이고, 인민은 수령이 없으면 역사발전의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非)사람, 즉 동물이다. '인민대중 중심'의 수령체계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말로는 인민대중 중심인데, '수령의 영도'를 따른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되는 이상한 말이다. 수령과 그 후계자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그것을 말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똥고집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고 몸서리를 치게 된다.
우리 몸, 아니 우리 몸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쌍방(雙方) 내지는 다방(多方)으로 작용하는 유기체이다. 여러 개의 살아 있는 세포가 함께 모여 있는 것이 생명체의 몸이다. 그 중에는 더 중요한 세포도 있고 덜 중요한 세포도 있겠지만, 생명체는 다수의 세포가 결합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신경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그 많은 세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유기적으로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기 때문이다. 어느 한 세포가 다른 세포를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세포가 함께 생명의 환희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긴밀하게 협동해야 했다. 신경이 진화하면서 척추동물의 단계에 도달하면 편형동물, 환형동물, 연체동물, 절지동물 등에서 신경이 모여 있던 신경절(神經節) 중에서도 등 쪽에 있으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추신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중추신경계는 북한에서처럼 수령이나 그 후계처럼 인민대중의 뇌수가 아니다. 북한의 수령론도 현대의학의 잘못된 두뇌 중심의 이론을 받아들여 수령이나 그 후계자를 인민대중의 뇌수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중추신경계 역시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세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세포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전체를 통괄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 행정부의 수반이 국민들과 똑같은 사람인 것처럼 중추신경계도 몸의 다른 구성부분과 마찬가지로 생과 사를 반복하고 있는 똑같은 세포이다.
국가조직에서도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제멋대로 자기 당파의 이익이나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나라에 망조가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도 중추신경계가 제멋대로 지시만 내린다면 몸이 제대로 지탱될 리가 없다. 다행히 현대의학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는 중추신경계의 '출력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장육부와 사지로부터 '입력기능'을 하고 있다. 당연히 출력은 입력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생명체에게는 입력이 안 되는데 출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독재자만을 위한 정부가 된다는 소리인데, 우리 몸은 다행히 그렇게 돼 있지 않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현대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몸을 잘못 보고 있다. 자기 껍데기 안에서 '약'을 쓰는 방법만 눈에 보이고 다른 것은 일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약만 생각하는 현대의학의 눈에는 네이버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다음 글과 같이 신경의 문제도 결국은 약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율신경계에 관련된 질환과 치료 자율신경계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아무 이유도 없이 위나 장이 아프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해당 내장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장기관을 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 이러한 증상을 자율신경실조증이라 부르며 이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육체적인 피로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두통이나 현기증이 일어나거나 땀이 많이 난다거나 손을 떤다거나 배가 아파서 설사를 하는 식으로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며 스트레스 등에 의해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심할 경우에는 신경전달물질이나 그러한 물질에 간섭하는 약물을 이용해서 치료하기도 한다. |
"자율신경계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아무 이유도 없이 위나 장이 아프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 것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해당 내장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장기관을 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실제 내장기관을 보면 원인을 알 수 있다. 내장기관의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돼 있는데, 그 원인은 자율신경이 눌려 중추신경계와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이 지점부터 꽉 막히기 시작한다. 인간의 몸을 기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쌍방 통행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부위에서 입력과 출력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기계처럼 한쪽에서 입력이 되면 한쪽에서는 출력만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장육부는 자율신경계를 통해서 중추신경계와 항상 입력하고 출력하는 관계에 있다는 이 간단하고 중요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비감염성질환이 왜 발생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막혀 있는 지점이 뚫리면 몸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인데, 뚫지를 못하고 있다.
위에서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중추신경과 자율신경이 눌려 소통이 잘 안 이루어져 위가 무기력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현대의학은 모르고 있다. 자율신경이 눌리지 않아 트여 있으면 소화는 잘 된다. 물론 위가 하수돼 굳어 있으면 역시 무기력해져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경우를 가지고 헬리코박터균 때문에 위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그리고 이 균을 발견했다고 해서 노벨의학상까지 주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하수된 위를 공명을 틔워 올려주기만 하면 그 즉시 굳어 있던 위가 부드럽게 풀리면서 아프지도 않고 소화도 잘 된다.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약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굳어 있는 위는 풀리지 않는다.
어쨌든 자율신경은 우리 몸의 원리를 이해하는 몇 개 안 되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이다. 이 중요한 열쇠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학은 비감염성질환에 대해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고 큰 성벽 앞에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엉뚱하게 약과 수술로 사람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의학의 방법론적 기초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사람의 몸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화학물질을 약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몸속에 들이부어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위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오장육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 때문이라고 보면 되나. 하나는 중추신경계에서 갈라져 나오는 자율신경이 눌려서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오장육부가 하수돼 서로 눌리고 눌려 굳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신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 그것이 만성이든 급성이든 또 그 어떤 이름이 붙어 있든 간에 원인은 신장이 처져서 굳어 있기 때문이다. 역시 공명을 틔워 신장이 제자리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는 신장의 이상도 조만간 전상으로 돌아간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러한 증상을 자율신경실조증이라 부르며 이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육체적인 피로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병의 이름이야 자율신경실조증이든 다른 무엇이든 크게 문제 삼을 것이야 없겠지만, 그 원인이 '정신적 스트레스나 육체적 피로' 때문이라고 하는 데는 역시 현대의학의 수준에 맞게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스트레스의 원리도 모르고 결과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병의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거명하는 것이 현대의학이다.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하고, 즉 몸을 구부리고 살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살고 있다. 스트레스가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하고 살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피곤해도 몸은 축 처져서 굽는다. 이 역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은 자세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세를 취하면 척추가 굽어 자율신경이 눌린다. 그리고 어떤 자율신경이 눌리느냐에 따라 질환은 달리 나타난다.
그런데 "두통이나 현기증이 일어나거나 땀이 많이 난다거나 손을 떤다거나 배가 아파서 설사를 하는 식으로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며 스트레스 등에 의해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고 하여 어떤 신경이 눌려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지는 모르고 자율신경이 눌려서 나타나는 증세 몇 가지를 두루뭉술하게 나열하고 있다.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두통이 일어나는 것은 목의 오른쪽이 접질려 있기 때문이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은 등이 굽거나 공명이 막혔거나 목의 왼쪽이 접질렸거나 했기 때문이고, 땀이 많이 나는 것은 등이 굽어 내분비계통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고, 손을 떠는 것은 어깨가 틀어졌거나 흉추 3, 4번 사이에서 신경이 눌려 있기 때문이고, 배가 아파서 설사를 하는 것은 대장이 눌려서 굳어 있거나 흉추 9번에서 갈라져 나오는 대장으로 가는 신경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각 증상의 간단한 원인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학은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이상한 병명을 지어 놓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 증상을 얼버무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역시 현대의학답게 약으로 결론을 짓는다.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심할 경우에는 신경전달물질이나 그러한 물질에 간섭하는 약물을 이용해서 치료하기도 한다"고 함으로써 약장사의 본색을 드러낸다. 몸이 굽어 신경이 눌려서 이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몸을 펴면 되는 것인데,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을 섭취해서 해결하라고 약장사다운 수완을 발휘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신경전달물질이 덜 생산되는 것 역시 신경이 눌려서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몸을 펴면 눌려 있어 약해져 있던 신경도 풀려서 제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게 된다. 필자는 신경전달물질을 먹을 것이 아니라 몸을 펴라고 권한다. 신경전달물질을 먹어 버릇하면 우리 몸에서 이 물질을 만드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면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이 화학물질을 사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죽을 때까지 병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몸을 펴면 병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으로 즐겁게 살아가게 될 것을 가지고 현대의학에서는 병자로서 평생 약을 먹으면서 살아가라고 한다.
또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인 수의근(隨意筋)에 자율신경이 관여한다는 것도 당연한 것인데, 이제 겨우 현대의학은 수의근에도 자율신경계가 관여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것은 한번 진화의 과정만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척추동물이 되면서 두뇌가 발전하고, 두뇌가 발전하면서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을 하게 되면서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도 생기게 됐다. 그 이전에 생각을 할 수 없는, 즉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동물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당연히 내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 즉 불수의근(不隨意筋)이 본능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이런 근육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가 점차 수의근이 생겨나고 늘어났을 것이다. 사람도 진화의 산물임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기본적으로 자율신경계가 작용을 하고, 이에 부가되어 체성신경계가 작용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가지고 지금 현대의학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겨우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에 있다. 이 때문에 파킨슨씨병이나 루게릭병, 하반신마비 같은 증세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율신경계가 눌려 그 이상으로 인해 생기는 병인데, 이런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이런 병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정해진 이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을 진화의 산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렇지만 않다면 기본이 자율신경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처럼 큰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아니 두뇌가 전혀 없더라도 생명이라는 것은 태초부터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큰 두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종이 되어서 생각도 하고 문명도 만들어 냈지만,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또는 문명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고 해서 생명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생가하지도 못하는, 문명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존재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진화의 과정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만들어져 있던 것이다.
이렇게 이해해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근대문명의 소산으로 발달하게 된 기계의 작동 원리와 그 기계를 만들어 낸 인간의 두뇌를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현대의학은 근대문명의 소산으로서 근대적인 사고방식, 바로 기계의 작동 원리와 그 기계를 만들어 낸 두뇌를 중심으로 인간의 몸을 이해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 근대의 수준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탈근대(脫近代, post-modern)는 철학과 역사, 미학에서만 다루는 주제어가 돼서는 안 된다. 현대의학이야말로 서양 근대의 가장 엉성하고 잘못된 소산이고, 때문에 탈근대의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반성(反省)돼야 할 부분이 현대의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런 본원적인 문제의식은 아직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필자가 비만에 대해 글을 쓰면 한 번씩 비판을 가해 온다. 필자가 음식물을 통해서 투입된 에너지와 운동을 통해 소비된 에너지의 차이로 이해하는 서양 근대적인 기계론적 사고를 가지고는 비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 필자에게 한심하다는 투로 비판을 가해 온다. 뚜렷한 이유도 대지 못하면서 그냥 한심하다고 한다. 정확하게 반론을 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한심하다고 혀를 끌끌 차기만 한다. 이런 것이 현대의학의 수준이다. 그 단단한 호두껍질 같은 조그만 세계에서 살면서 그 세상이 전체 세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의 죄수들처럼 대명천지를 보지 못하고 있으면서, 한 죄수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이 동굴 밖에 진짜 큰 세상이 있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살아온 죄수들에게는 동굴이 전체 세계여야 한다.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그 동굴이 전체 세계여야 한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이 그동안 살아왔던 관성에 맞는 것이다.
인간을 기계로 보는 발상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는 다음 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범 대표의 둘째아들 이재승 사범이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의 수련체험담에 쓴 것이다. 이 수련체험담 난에 들어와 보면 별의별 체험담이 많이 쓰여 있는데, 모두 스스로 몸을 펴서 몸이 좋아진 경험을 쓴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평생 약을 먹고 살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병이 실은 굽은 몸만 펴면 얼마나 간단하게 사라지는 것인지도 잘 나와 있다.
이재승 사범은 키가 184cm에 몸무게가 65kg이었다. 이렇게 큰 키에 몸이 호리호리한 사람의 등이 많이 굽어 있으면 폐가 눌려 소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다는 기흉에 걸리기가 쉬운데, 이 사범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터져 있던 허파 꽈리를 잘라내고 꿰매는 힘든 수술을 한 덕분에 그 전에 현역 판정을 받았는데도 다시 공익 근무로 재판정을 받아 고등학교에서 전산을 담당하는 것으로 군입대를 때웠다. 그런데 몸살림운동을 하면서 73kg으로 8kg이 늘어났다고 한다.
"몸살림 하고 살이 찌다"
얼마 전 네이버 뉴스를 보니 브라질에서 한 모델이 다이어트를 하다가 거식증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무리한 다이어트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몸살림운동을 하려고 하시는 분들 중에도 살을 빼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말라서 살이 찌고 싶어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체중을 늘리기 위해서 헬스도 거의 1년 동안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막판에 한 달 정도 빡세게 운동하였더니 체중이 2kg 정도 늘기는 하였지만 운동을 무리하게 해서 몸이 갑자기 나빠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운동을 못하게 되니 한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마른 사람은 먹는 것을 적게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밥 좀 챙겨먹고 다니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음식을 적게 먹었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네 끼를 먹었었는데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자기 전에 꼭 밥을 한 번 더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몸무게는 절대로 느는 법이 없었지요.
몸살림을 하고 나서 현재는 작년보다 몸무게가 8kg 정도 늘었습니다. 8kg을 늘리는 동안 제가 한 것은 몸살림운동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먹는 양은 오히려 전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이제는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않지만 네 끼 먹을 때보다 체중은 훨씬 늘었고 몸의 기운도 넘치는 기분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밥을 적게 먹으니까 살이 찌다니.
김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나치게 마른 사람은 흉추 3번이 안으로 밀려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몸 안에 들어온 영양분을 자꾸 밖으로 버리게 되기 때문에 살이 찌지 않고 마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등이 굽으면서 흉추가 안으로 말려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체중은 전혀 늘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작년 초에도 네 끼 먹던 것을 두 끼로 줄였던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루에 한 끼 밖에 안 드시니 저는 한 끼는 무리지만 두 끼로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한 보름 만에 그 마른 몸에서 체중이 2kg 정도 더 빠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4끼 먹는 것으로 바꾸었죠. 지금은 두 끼를 먹어도 전혀 배고픈 것을 모르겠고, 체중은 오히려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네 끼를 먹다가 두 끼로 줄이게 된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몸살림운동을 하면서 몸이 펴지게 되니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점점 줄었고, 내 몸에 필요한 만큼만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끼만 먹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밥을 먹고는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배고프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소화가 다 된 후로 다음 밥 먹을 시간까지 별로 배고픈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한 끼만 굶어도 배가 너무 고프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어도 참을 만하고 힘이 빠지는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을 해 보니 김철 선생님처럼 하루에 한 끼만 드시고 사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살림운동으로 체중을 늘리니까 가장 좋은 점은 허리둘레는 그대로인 채로 체중만 늘었다는 것입니다. 8kg이 늘어났지만 벨트는 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쓰고 쓰던 구멍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이 사범의 경험은 그대로 맞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흡수한 영양분을 신장에서 걸러 밖으로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이렇게 간단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 신장은 우리 몸에 불필요한 물질을 걸러서 오줌으로 내보내는 기능을 하는데, 흉추가 안으로 말린 사람은 불필요한 물질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질도 걸러서 버린다. 그래서 살 찌려고 아무리 많이 먹어 보아야 살이 찌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2번 방석숙제와 걷기숙제를 꾸준하게 하면 언젠가는 말려 들어간 흉추가 올라오면서 살이 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데 있다. 위로 올라왔거나 옆으로 튀어나온 척추는 위나 옆에서 눌러 제 위치로 가게 만들 수 있지만, 말려들어간 흉추는 펜치로 잡아서 뺄 수도 없기 때문에 2번 방석숙제와 걷기숙제를 통해 스스로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정맥 같은 것은 한 달만 숙제를 꾸준하게 하면 대개 사라지지만, 이 경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을 하기가 어렵다. 몇 달 정도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정도는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은 병원에서 진통제 타 먹고 금세 통증이 사라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이렇게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운동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운동해서 몸을 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신비의 약을 먹고 금세 살이 붙기를 바란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건대 신비의 영약은 없다. 몸을 펴는 것이 수백 년 된 산삼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는 최고의 영약이다. 마치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위기에 빠졌다가 운 좋게 비급(祕笈)을 얻어 수련해서 초절정의 고수가 돼서 다시 무림에 등장하는 일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오직 매일 꾸준하게 몸을 펴는 운동을 하는 것만이 예컨대 초절정의 고수가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 사범이 네 끼에서 두 끼로 식사량이 줄었다는 것도 맞는 얘기이다. 몸살림운동을 해 본 사람 중에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이지만, 몸이 펴지면 일정한 양 이상의 식사는 하지 않게 된다. 몸이 알아서 더 이상 먹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먹으려고 하면 몸에서 거부한다. 장수하는 분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소식(小食)과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 분들이 일부러 소식을 하거나 아무 거나 가리지 않고 먹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다. 장수하는 분들은 몸이 꼿꼿하게 펴져 있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한테 필요한 양만큼만 가리지 않고 먹게 된다.
오래 살려면 소식을 하라고 하는데, 억지로 소식을 하면 거꾸로 일찍 죽게 된다. 몸을 펴면 자연스럽게 자기 몸에 맞게 먹게 되고, 그것이 소식이 되는 것이다. 몸이 굽어 많이 먹고 싶어하는데 억지로 적게 먹으면, 이는 오히려 자기 몸을 학대하는 꼴이 된다. 몸이 학대를 당하는데 편할 리가 없다. 억지로 적게 먹으려고 하지 말고 몸을 펴려고 해야 한다. 평생 먹을 음식의 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그 총량의 잉여분이 줄어 일찍 죽는다는 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아예 안 먹으면 잉여분이 줄지 않으니까 천 년 만 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는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 정도로 치부하면 된다.
정말로 우리 몸을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현대의학의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의학적인 방법으로 보면 된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한의학에 대해, 한의학이 오행(五行)론에 의거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엠페도클레스가 이 세상은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또 한의학은 본래 우리 민족의 의학도 아니었다. 중의학(中醫學)을 가져다 쓴 것이 현재의 한의학이다. 현재의 한의학은 우리 민족의 좋은 방법은 다 없애 버리고 현대의학과 마찬가지로 약재 위주로 새로이 재편성한 것이다. 한의학 역시 어떻게 하면 약을 많이 팔아먹을까 하는 약장사의 논리에 빠져 있는데, 이 점에서는 현대의학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약을 통해서 우리 몸을 보려고 해서는 몸이 보이지 않는다. 약만 보이게 된다. 약만 보이니까 약에 빠지게 된다. 약을 통하지 않고 직접 우리 몸을 보아야 몸이 잘 보인다. 몸을 과학적으로 보는 것은 약을 통해서 보지 않고 그냥 맨몸으로 보는 것이다. 맨몸을 보면 몸이 보인다. 몸살림운동은 몸에 관한 과학을 과학답게 세우고자 한다. 현대의학이든 한의학이든 그 동안 약을 통해서 이데올로기화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우리 몸을 봄으로써 진정한 몸의 과학을 만들고자 한다. 몸살림의 인체학은 이를 위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번 회에는 허리 강화운동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방향이 또 삼천포로 빠졌다. 원래 얘기라는 게 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게 돼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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