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살인 사건에 관한 의혹의 중심에는 현 집권세력인 아로요 정부가 있다. 부패한 에스트라다 정부가 전민중적인 저항의 결과로 물러난 후 들어선 정권이다. 그래서 현 정권은 '분노한 민중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부패한 현 정권마저 민중의 힘에 의해 끌어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로요 정부는 진보적 활동가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정치적 살인'이다.
인권운동 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은 최근 필리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살인'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을 쓴 정법모 씨는 과거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NGO센터에서 활동했으며 지금은 필리핀 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권오름〉 측은 "가능하다면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예정보다 일찍 게재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2006년 6월 11일 중부루손 농민 연맹(AMGL)의 회원 마니 데 로스 산토스 살해
2006년 6월 8일 코딜레라 인민연맹 노인 대표 마쿠스 반깃과 케손국립고등학교 교장 글로리아 까수가 살해
2006년 6월 4일 좌파정당 바얀무나 지도자 데이비드 코스투나와 그의 동료 아카디오 나끌레 살해
2006년 5월 29일 전 CPP-NPA 지도자 소테로 리아마스 살해
2006년 5월 27일 바얀무나 환경운동 지역 코디네이터 놀리 까풀롱 살해
2006년 5월 22일 팔라완 지역 방송인 살해
2006년 6월 8일 코딜레라 인민연맹 노인 대표 마쿠스 반깃과 케손국립고등학교 교장 글로리아 까수가 살해
2006년 6월 4일 좌파정당 바얀무나 지도자 데이비드 코스투나와 그의 동료 아카디오 나끌레 살해
2006년 5월 29일 전 CPP-NPA 지도자 소테로 리아마스 살해
2006년 5월 27일 바얀무나 환경운동 지역 코디네이터 놀리 까풀롱 살해
2006년 5월 22일 팔라완 지역 방송인 살해
필리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필리핀의 아로요 현 대통령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필리핀에서는 묘하게도 농민/노조 활동가/진보적 정치인/인권변호사 및 활동가/여성 지도자/언론인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감행되고 있다.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길거리에서 검은 헬멧을 쓴 오토바이 괴한으로부터의 암살 시도가 벌어진다.
이런 대부분의 테러는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 잔학성과 피해자 숫자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연루된 테러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계엄령시기(1972-1986년)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간지인 필리핀 신문 <인콰이러(Philippine Daily Inquirer Newspaper)>가 추산한 희생자는 2001년 아로요 집권 이후 224명(2006년 6월 기준)이다. 또 인권단체인 카라파탄(KARAPATAN) 기준으로는 752명(2006년 9월 29일 기준)이며 실종자는 180명에 달한다. 국제 앰네스티에서도 2006년 상반기에만 51건의 정치적 살해가 있었으며, 이 수치는 2005년 한 해 동안 기록되었던 66건에 비교해 그 빈도가 더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희생자 수는 일주일 단위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누가 살해 대상인가?
2004년 11월 딸락에 있는 하시엔다 루이시타라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던 농민들이 파업을 했다. 당시 파업 참가자 중 7명이 시위 저지선 밖에서 정부군에 의해 살해된 사건은 아로요 정부에 의한 대표적인 대규모 학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2005년 11월에는 레이테 섬 동북부의 팔로에서는 47명의 농민들이 모임을 갖던 중 군인들이 이들을 포위한 후 총을 쏴 9명의 농민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당시 18명이 실종되었으나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군부는 이들을 공산주의 무장계열인 신인민군(NPA, New People's Army) 소속이라고 밝혔고, 누구도 이 사건으로 조사받거나 처벌받지 않았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일반 농민이나 농민운동의 지도자로서 토지개혁이나 농장과 관련된 문제에 가담하고 있던 사람들이 군부에 의해 가장 많이 살해되었다. 군부는 이들이 공산 게릴라나 이슬람 분리주의자들과 연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전국농민조직인 케이엠피(KMP, Kilusang Magbubukid ng Pilipinas)뿐만 아니라 이고롯, 아그타, 모로와 같은 원주민들도 포함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는 노동자, 그리고 무슬림이다. 최소한 2005년에만 18명의 노동자가 살해되었다. 주로 이들은 '아부 사야프' 소속원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농민이나 노동자 이외에 좌파 정치인들도 이러한 암살의 표적이 되어 왔다. 아로요 집권 이후 95명(2006년 6월 기준)의 정치 지도자들이 암살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정당명부제 선거에서 농민, 여성 등을 대표하는 좌익 정당, 바얀무나, 가브리엘라, 아낙 바위 등의 소속 멤버로 선출된 정치인들이다. 직선 시의원이었던 바얀무나의 알레라도 라데라는 대낮에 저격당했다. 최근에는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인, 종교인들까지도 이 사망자 대열에 오르고 있다.
어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백주 대낮에 벌어지는 이러한 살해는 상대적으로 눈에 안 띄거나 쉽게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산간지방이나 농촌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부 루손, 남부 타갈로그, 중부 비사야, 비콜, 북부 민다나오, 일로코스-코르딜레라 지역이 주요한 사건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는 수도 메트로 마닐라에 거주하고 있는 정치 지도자, 언론인, 법조인, 학계 종사자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필리핀 어디에 거주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정부나 대자본에 반대하는 어떤 사람도 정치적 살해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누가 이 범행을 하고 있나?
물론 살해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들이 몇 명 있다. 하지만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살해를 저지르는 이 '저격단원(death squad)'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들에 대해서는 군이나 경찰에 의해서도 조사된 바가 거의 없다. 군부나 정부에서는 이들이 무장공산주의 계열이나 무슬림 무장단체의 일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정치적 살해가 주로 중무장된 군사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과 특정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살해 방법 등을 이유로 이 집단이 군부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날이 다르게 급증하는 사망자 명단을 보면서 이제는 일반 대중들도 이 사망 사건에 군부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중부 루손지방의 필리핀군 사령관인 조비토 팔파란은 이미 여러 진보진영으로부터 '대량 살해'에 대한 혐의로 기소되어 있으나 그 책임을 부인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초사법적 살해가 필리핀군이 반정부 세력들을 소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까지 언급했다. 그가 사마르섬이나 민다나오 지역 책임 사령관으로 있다가 중부 루손지방으로 관할을 옮긴 후 중부 루손지방에서는 정치적 살해 사건이 급속히 증가했다.
필리핀 신문 <인콰이러>에 따르면 2006년 전체 살해 사건의 4분의 1이 팔파란 장군의 관할 지역인 중부 루손에서 자행되었다고 한다. 팔파란 장군은 이 사망 사건들을 통해 '처형자'라는 대중적인 별명을 갖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수백 건에 이르는 살해 사건에 대해서 처벌은 고사하고 조사가 진행된 경우도 거의 없다. 대통령과 경찰은 범행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겠다는 공표를 하긴 했지만 아직 처리된 사건은 한 건도 없다. 경찰이나 군부의 개입이 목격된 사건에 대해서 정부는 희생자들이 공산게릴라나 무장 이슬람 세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일련의 살해 사건이 최근 더 강화된 반정부세력에 대한 정부의 진압정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를 갖게 한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로요 대통령이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했으며, 미국은 2004년 46억 달러를 필리핀의 군사·경제 계획을 위해 지원했으며, 3000만 달러를 '반란' 진압 군사훈련 비용으로 지원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자유 수호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국내 치안을 위한 군비 증강이나 미군의 파견을 허락했다. 이러한 아로요 대통령의 강경한 노선은 그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것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아로요 대통령은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된 이후 2000년 제2차 민중혁명을 통해 새롭게 추대된 대통령이다. 민중의 지지를 받던 대통령이 존립 자체까지 흔들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아로요 대통령은 민중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 각종 분야에 대해서 민영화를 단행했으며, 공교육이나 공립병원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고,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 비율을 대폭 인상했다. 2005년까지 100조에 달하는 채무를 지고 있으며, 외채를 갚는 데만 국가 예산의 30%를 소요하고 있다. 총인구 8500만 명 중 800만 명 이상이 해외에서 일을 하면서 송금한 돈이 1년에 12조5000만 달러에 달하지만, 외채를 줄이는 데는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 아로요 대통령은 2004년 5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의 부정 혐의와 남편을 비롯한 측근들의 부정 축재 등으로 탄핵 절차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아로요 정부는 군사계획과 관련하여 많은 재정적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 납치 집단인 아부 사야프에 대한 무력 진압 등을 위와 같은 예산 증가의 구실로 삼고 있다. 2003년 미국 국방부의 폴 월포위츠는 필리핀을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제2전선"이라고 칭했다. 2002년부터 필리핀군은 미군과의 합동 군사 훈련을 확대했으며 민다나오에는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은 이슬람 세력이 많은 민다나오뿐만 아니라, 신인민군(NPA) 숫자가 많은 중부 루손지방에도 미군을 파견하고 계속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급기야 국민들의 탄핵요구가 거세지던 2006년 2월 아로요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 기간 중에 59명의 국회의원과 군인장교, 사회비평가 등에 대해 체포령을 내렸다.
현재 비상사태는 해지되었지만 아로요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연일 정치적 살해는 일어나고 있으며 필리핀 인권단체들은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 필리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필리핀의 반인권적 상황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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