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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십자수 해놓을 테니 빨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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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십자수 해놓을 테니 빨리 오세요"

경기도 건설노조 조합원 가족들의 고통

"지금 공갈·협박·금품갈취범 혐의로 억울하게 붙잡혀간 당신…. 지난 수년 간 노동조합 간부로 있으면서 현장을 바꾸자고 밤낮으로 숨가쁘게 뛰어다니면서 이뤄왔던 모든 일들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안타깝고, 그때 당시나 지금이나 삶에 지친 모든 건설 노동자들의 희망이 무너질까봐 두렵네요."

지난 8월 21일 수원지검 특수부에 의해 긴급 체포된 경기도 건설노조 전 현장조직팀장 김종덕 조합원의 부인 김미란(37) 씨가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남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마음에 병이 났습니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합니다. 두 아들 앞에서 아빠가 붙들려 가던 날 큰 아이의 첫 마디가 '아빠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붙들려 가는데…'라는 것이었어요. 울먹거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일터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던 '평화로운' 아침에 김 씨의 남편이 왜 갑자기 들이닥친 수원지검 특수부 검찰수사관에 의해 두 아들 앞에서 연행된 것일까?

"아빠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을 위해 일하셨잖아요"

"요 며칠 간 아빠가 집에 들어올 수 없게 돼서 이유를 알기 전에는 정말 서운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빠와 건설노조 아저씨들의 안 좋은 소식을 듣고도 특별한 느낌 없이 '어떻게 해'하는 수준의 작은 걱정뿐이었어요. 그런데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우리 집에 경찰들이 온 것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나고 무서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장윤희(14) 양은 지난 8월 23일부터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윤희 양의 아빠는 장석철 경기도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 경기도 건설노조 간부들에 대한 수원지검의 체포·구속 등의 조치로 인해 장 부위원장 역시 수배됐기 때문이다.

윤희 양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아빠에게 쓴 편지에서 "아빠가 안전하게 잘 계실지 걱정된다"고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수배되고 나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영문도 몰랐던 아빠의 수배. 그러나 윤희 양은 그 이유를 알고 나서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로부터 아빠가 활동하는 노조 사람들 3명이 협박·갈취라는 이유로 구속됐다는 얘길 들었어요. 아빠는 분명히 우리와 많이 놀아주지는 못했지만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느라 늦게 들어오시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나올까요…. 어린 학생일 뿐인 나도 화가 많이 났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경기 건설노조 조합원 3명, 75m 상공에서 22일째 고공농성 중
▲ 경기도 건설노조 조합원 3명이 "노조탄압을 중단하라
"며 22일째 올림픽대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프레시안

경기도 건설노조 조합원 가족들이 이처럼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이 노조 간부들에 대해 수원지검 특수부가 갑작스레 연행 및 체포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경기도 건설노조가 사측을 상대로 한 공갈과 협박을 통해 노조 전임자 임금을 갈취했다는 의혹에 따라 이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수원지검의 이같은 주장이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측으로부터 제공받은 노조 전임자 임금은 지난 2000년부터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지급받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더욱이 사측이 먼저 검찰에 고발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원지검이 '알아서' 수사에 나선 것을 놓고 노조는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수원지검의 기획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22일로 22일째 올림픽대교에 설치된 75m 상공의 주탑에서 경기도 건설노조 조합원 3명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강 위 하늘에서 한 달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경기 건설노조에 대한 공안탄압이 중단되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 "딸 생각에 가슴 아프지만 이대로는 못 내려가"

같은 상황을 둘러싼 두 주체의 '해석차'…가족들의 고통은?

윤희 양은 편지를 통해 아빠와 같은 노조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이 농성 중인 올림픽대교를 찾아가 보고 "왜 아빠와 아저씨들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아직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시험 보는 것을 싫어하는 평범한 중학생일 뿐"이라는 윤희 양.

"아직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사태가 빨리 끝나서 아빠를 우리 집에서 보고 싶어요. 아빠에게 줄 십자수를 완성하고 있을 테니 아무데도 다치지 마시고 빨리 오시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뒤에는 아빠를 사랑하는 저와 필성이, 엄마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디 힘내세요."

노조가 교섭 과정에서 사측을 상대로 '공갈·협박'을 했다는 수원지검의 주장과 '교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수준의 일이었다'는 노조의 주장에는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두 주체의 '다른 해석'이 담겨있다.

"교섭 과정에서 일어나는 '힘겨루기'를 공갈·협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라는 노동문제 전문가들의 설명과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공갈·협박을 받았다'는 진술을 강요했다"는 사측 인사담당자의 증언은 차치하고라도, 수원지검의 해석으로 인해 발생한 조합원 가족들의 고통이 과연 그들만의 것이어야 하는지 윤희 양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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