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의 역사'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몸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조령 고개나 추풍령 고개 같은 산고개를 얘기하는 것은 아닐 테고 사람의 등과 가슴 위에 붙어 있는 고개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지 무슨 역사 같은 것이 있을 것일까. 현생인류로 진화한 이후에 인간의 고개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고개에는 역사가 있다. 변화가 있다는 말이다. 어렸을 때에는 사슴의 목처럼 길고 예쁘던 고개가 어느 날부터 점차 굵고 짧아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는 자라목이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에게는 편두통, 고혈압, 부정맥 등 중에서 분명히 한 가지 이상의 병이 있다. 또 자라목이 된 사람도 몸살림운동에서 권하는 운동을 매일 꾸준하게 하면 나이 70이 넘었더라도 다시 사슴의 목처럼 예쁜 목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편두통이든 고혈압이든 부정맥이든 모두 한꺼번에 사라진다.
다른 나라는 놔두고 우리나라를 보면 분명하게 고개의 역사가 있다. 8.15광복 당시와 지금은 천지의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할 뿐이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하고. 이렇게 고개에 역사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문화나 노동형태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현대병이 많아졌다는 것은 고개가 많이 숙여져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등이 굽었기 때문이다. 등이 굽으면 목은 1자가 되면서 숙여지게 된다. 가슴을 펴면 등도 펴지는데, 그러면 목은 정확하게 역C자 형태가 되면서 바짝 올라간다. 등이 굽은 것은 허리가 굽었기 때문이고, 허리가 굽은 것은 골반이 밑으로 말려 내려가 있기 때문이고, 이렇게 된 것은 고관절이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관절이 틀어진 상태에서 구부리고 살고 있으니 현대병이 많아지는 것이다. 소아들에게 성인병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기어 다녀야 할 때 기어 다니지 못하게 보행기를 태워 고관절이 약해지고 허리가 굽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걸어야 할 때 걸리지 않고 차만 타고 다니게 하고 놀 때에도 뛰어놀지 않고 게임만 하고 있으니 더구나 고관절이 약해지고 허리도 굽는다.
예전 세대에 비해 먹을거리가 풍성해지니 덩치는 커지는데, 덩치가 커지는 데 반비례해서 체력은 떨어진다. 이에 대해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이 사회에서는 환경이 오염돼서 그렇다는 근거 없는 소리나 하고 있다. 보행기 이후에는 침대, 의자, 소파가 굽은 몸을 더 굽게 해서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이런 잘못된 도구와 그로 인한 자세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서양 것이면 똥도 향기롭다는 근대화시대의 몰주체적인 사고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어린이들은 산을 ―자로 그린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사는 곳에 있는 산이라는 것이 거의 ―자 형태의 구릉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린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산의 모양은 점차 삼각형 모양으로 변해 간다고 한다. 여행도 하고 TV도 보면서 산이란 게 ―자가 아니라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을 인지해 가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필자가 책을 내는 데 그 안에 들어가는 삽화를 가지고 조그만 실랑이가 있었다. 그림을 그린 분이 요즘 신세대인데, 역시 신세대답게 그림을 그려 왔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이아니라고 얘기를 해 주어도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요즘 신세대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그것이 정상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늘 자기 눈으로 본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다. 제대로 고개를 들고 있는 모양으로 다시 그려 달라고 했지만, 이 분이 다시 그려 온 것 역시 충분히 고개를 들고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별수가 없었다. 전체를 다시 그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조금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의 통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젊은 세대가 자기 자세가 무너져서 아픈 것인지 모르고 약이나 먹고 사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통념 속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의 시대에 자신의 좋은 전통을 비과학적이니 미신이니 하면서 배척한 결과인 것이다. 좋은 자세도 이때 버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거의 다 버려 버렸다.
몸살림운동이 존재할 이유는 무너져 버린 한국인의 자세, 나아가 인류의 자세를 바꿈으로써 질환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도록 방법을 알려주는 데 있다. 감염성질환의 문제는 현대의학이 모더니즘적인 주체·객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상당한 정도 해결했으나, 비감염성질환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체·객체의 철학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자가면역으로 원인을 돌리면서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비감염성질환은 주체·객체의 철학으로는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다. 자세의 문제를 병원체의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고개의 역사를 다루는 이유는 고개를 보면 사람의 자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가 세워지고 가슴이 펴져 있는 사람은 고개가 들려 있다. 고개 숙인 사람은 허리가 굽고 가슴이 움츠러들어 있다. 그런데 그림을 통해서는 허리를 세우고 있는 것인지, 가슴을 펴고 있는 것인지를 분별해 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잘 부각시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개는 정확하게 드러난다. 옷을 입어도 고개는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나타낼 때 가장 중요한 얼굴 바로 밑에 붙어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개의 역사는 구한말 이전까지는 지금 남아 있는 고분벽화나 그림, 동상, 불상 등을 보면 알 수 있고, 구한말 이후는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벽화든 그림이든 동상이든 모두 실제 모양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고개를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사진이야 실제 모양을 그대로 찍은 것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자료를 통해 고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의자에 앉아 생활하거나 업무를 보았는지 마루나 온돌방에 앉아 생활하거나 업무를 보았는지도 알 수 있고, 걸어 다닐 때에는 어떤 자세로 걸었는지도 알 수 있다.
우선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 우리 조상님들은 어떤 자세를 하고 살았는지 알아보자. 옆의 벽화는 평안남도 온천군 신영면 신영리에 있는 감신총(龕神冢)의 전실(前室) 서쪽 감벽의 그림이다. 5세기 전반기의 고분벽화로 추정되는데, 연꽃 위에 평상이 있고 주인공은 평상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자가 아니라 맨바닥에 앉을 때에는 책상다리나 무릎 꿇고 앉는 게 일반적인 자세인데 무릎 꿇는 자세는 아니므로 책상다리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림이 훼손돼 안타깝게도 고개 드는 자세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고구려 때나 지금이나 앉는 자세가 같았다는 것은 알게 해 준다.
고구려 때에도 온돌을 이용했는데, 온돌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타 민족과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적절한 생활문화 중의 하나다. 고구려 때에는 온 방에 모두 구들을 깔지 않고 평상을 둘러싸고 ㄱ자 모양으로 깔았다. 위의 주인공은 그 평상에 앉아 있다. 여기에서 다룰 것은 아니지만, 온돌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밝히는 것도 우리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황해남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있는 동수묘의 주인공도이다. 동수묘(冬壽墓)의 주인공 동수는 326년(미천왕 27)에 요동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무장이며 357년(고국원왕 27)에 죽은 것으로 봤으나 최근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이 무덤의 주인공을 고국원왕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 사실관계야 어쨌든 간에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있고, 그 옆에 신하로 보이는 인물 역시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당시에는 신하이든 주종관계에 있든 부복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랫사람이 더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고개를 제대로 들고 있는 것은 못 된다. 요즘 사람들보다는 반듯하게 들고 있지만, 아래 그림의 주인공 부인보다는 고개가 숙여져 있다. 이렇게 고개를 완전하게 들고 있지 못한 것은 주인공이 노인이 됐을 때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늙어서도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어야 건강한 것인데, 동수묘의 주인공은 완전히 세우지는 못하고 있다. 다음 그림에서 보면 부인만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앉아 있는 시녀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바짝 쳐들고 있다.
고개를 제대로 들고 있다는 것은 허리가 제대로 서 있고 가슴이 활짝 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 기운이 떨어지면서 고관절이 쉬 틀어져 허리가 굽게 되는데, 허리가 굽으면 등도 굽으면서 고개도 숙이게 된다. 이 부인의 모습과 남편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고개를 들은 정도에서 보자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수렵도를 보면 기마자세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활을 앞을 향해서 쏘든 뒤를 향해서 쏘든 허리는 곧게 세워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말을 탈 때 허리를 구부리고 있으면 얼마 못 가 허리가 무너져 더 이상 탈 수 없게 되므로, 말을 탈 때는 항상 허리를 펴는 기마자세를 해야 한다.
이 그림을 보고 고구려인의 용맹한 모습이 보인다는 캡션을 달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의 눈에는 그보다는 다른 측면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 말을 타고 사슴이나 호랑이 사냥을 하는 것은 기마민족에게 별로 색다른 모습이 아니므로 '용맹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자세를 가졌을 때 고개가 바짝 들린다는 것이 강조돼야 할 것 같다. 호랑이를 밑으로 보고 활을 쏘고 있는 사람을 보자. 그는 허리나 고개를 숙이지 않고 궁둥이를 들고 고관절이 있는 사타구니 부분에서 숙여 밑을 바라보면서 활을 쏘고 있다.
허리가 서고 고개가 들려진 사람은 어깨가 떡 벌어지게 돼 있다. "어깨가 떡 벌어진 장사"라는 말은 허리가 제대로 서 있어 힘이 센 당당한 남자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허리가 서 있어야 힘도 세고 당당하게 보이는 것이다. 주인은 항상 허리 세우고 가슴 편 당당한 자세를 하는 반면, 종은 요즘 사람들처럼 허리를 굽히고 가슴을 움츠리고 조아리는 자세를 하게 돼 있다.
주인과 노예란 서로 상반된 두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관계를 말한다. 펴고 있는 주인은 종이 펴고 있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같이 펴고 있다는 것은 같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하는 임금에게, 가신은 영주에게,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구부리고 조아려야 한다. 구부리는 것은 편 사람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마치 서열 낮은 늑대가 대장 늑대에게 누워서 배를 보임으로써 복종을 표시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신분제사회에서는 윗사람 앞에서 아랫사람이 구부리고 조아리지 않는 것은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것으로 이해가 됐으므로 불경한 행위로 여겨졌다.
고구려인들이 이상형으로 추구하던 인물의 모습은 선인도(仙人圖)에 잘 나타나 있다. 서양에서는 인간의 형상뿐만 아니라 신의 형상도 근육질의 모습으로 그린 데 비해 고구려의 선인은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바짝 들고 있는 모습이다. 서양과 한국은 이미 고대시대부터 이상형의 인간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왼쪽이 여자인 달의 신이고 오른쪽이 남자인 해의 신인데, 남자의 팔뚝에 서양의 그림에 항상 강조돼서 나타나는 꿈틀거리는 근육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날아다니면서도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다음은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바티칸시국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아담의 창조>다. 자세히 보면 인간인 아담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까지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다. 수렵도에 나와 있는 전사가 활을 밑으로 쏠 때에도 고개를 들고 쏘는 모습과 대조가 된다. 이는 누차 얘기한 대로 침대와 의자 생활을 하면서 허리가 굽어 고개까지 숙여져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서양 사람들의 통념 때문이다.
또 아담이든 하느님이든 힘을 쓰지 않고 있는데도 힘을 주고 있을 때처럼 근육이 굳어 있다. 마치 최홍만과 K1에서 겨루었던 밥샙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밥샙은 근육이 징그러울 정도로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지만, 이런 근육을 가지고는 지구력이 떨어져 후반에 힘을 쓰지 못한다. 오랫동안 힘을 쓰면 풀어져 있던 근육이 굳으면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밥샙 같은 사람의 근육은 평상시에 이미 굳어 있기 때문에 잠시 힘을 쓸 수 있을 뿐 금방 지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근육을 두고 강성근육이라고 한다.
근육은 힘을 주지 않고 있을 때에는 위의 해의 신의 팔뚝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풀어져 있어야 한다. 풀어져 있어야 편한 것이다. 굳어 있으면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근육통이라고 한다. 근육이 굳어 있으면 신경을 눌러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풀어져 있다가 힘을 주게 되면 그때 가서야 근육이 솟아올라야 한다. 힘을 주는데도 근육이 솟아오르지 않으면 힘이 없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부드럽게 풀어져 있다가 힘을 주면 튀어나와 단단해지는 근육, 이것이 바로 연성근육이다.
누차 한 얘기이지만, 우리 민족은 원래 연성근육을 추구해 왔다. 이것이 건강과 관련해서 본다면 맞는 것이다. 허리 세우고 가슴 펴고 있으면 고개는 자연히 상방 15도 각도로 올라간다. 그러면 현대병이고 성인병이고 걸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좋은 건강법은 쓰레기장에다 갖다 버리고, 사람의 몸을 망가뜨리는 강성근육을 추구하느라 야단이이다.
헬스장에서든 어디에서든 운동 많이 한 사람은 대개 몸이 망가져 있다. 고관절이 틀어진 상태에서 많이 뛴 사람은 다리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저리고 아프다. 일어서고 앉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다리를 풀려고 몸살림운동의 방법으로 운동을 할 때에도 더 많이 뛴 사람일수록 연성근육으로 풀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등에는 근육이 없어야 하는데, 서양적인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다리와 마찬가지로 등에도 딱딱한 근육이 붙어 있다. 이것이 등살이다. 등살이 오장육부로 가는 신경을 눌러 만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등살을 찌우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비너스 상을 보아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요새 1자 목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자세가 비너스에게 보인다. 이 미(美)의 여신은 허리도 굽고 등도 굽어 있다. 그 결과 목이 1자 목이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아랫배도 나와 있다. 허리와 등이 굽고, 그래서 배도 나오고 목도 1자가 된 미의 여신이라.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지금 우리의 통념 속에서 사고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 미의 표준이었을 것이다.
각도를 달리해서 비스듬히 뒤쪽 밑에서 각도를 잡고 찍은 다음 사진을 보면 요즘 미인들과 달리 허리가 만곡을 긋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리가 만곡을 긋지 못하니 아랫배가 나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너스 상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체의 원리에 맞게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이렇게 허리가 굽어 있는 여자를 배가 쏙 들어간 것처럼 만들었다면, 그리고 등이 굽어 있는 여자의 목을 C자형으로 만들었다면 보기에는 좋을 것이지만 실은 억지로 지어낸 모습에 지나지 않게 됐을 것이다. 이 정도로 인체의 원리에 맞게 만들었으니 실제 모델을 보고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조각의 달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잘 만들 수가 없다. 자세의 문제를 떠나 기술적인 수준에서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오른쪽 그림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사신총의 역사상이다. 밥샙만큼은 안 되더라도 고구려 벽화에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상당히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시 고개는 바짝 쳐들고 있다. 허리는 만곡을 긋고 가슴은 쭉 펴져 있다. 밥샙은 격투기를 하기 위해서 몸을 구부려서 그런 측면도 있지만, 목이 완전히 굽은 1자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일할 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연상태에서는 굽지 않던 몸이 노동을 하면서 굽게 되기 때문이다. 문명화와 함께 사람의 몸은 굽어 이제는 인류로 진화하기 이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굽은 몸을 펴지 못하기 때문에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예외적으로 고개가 약간 숙여져 있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 대부분의 우리 선인들은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그 누구에도 복종하지 않고 나는 내 길을 간다는 당당한 기상이 느껴진다. 고구려가 중국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운 것은 바로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의 자세가 바로 마음의 자세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 그림이나 동상을 가지고 백제나 신라의 사람들은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능한 것은 불상(佛像)을 가지고 추정해 보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아담이나 하느님 그림이 그 시대 사람들의 자세에 대한 보편적 인식, 그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생각을 반영한 것처럼 불상도 그 시대의 사람, 특히 그 불상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불상의 모습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불상을 보면 대개는 정확하게 고개를 들고 있지만,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불상도 일부 있다. 특히 근래 만들어진 불상일수록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하느님 그림이 그 당시 서양 사람들의 자화상인 것처럼 근래에 만들어지는 우리의 불상은 실은 우리의 자화상인 셈인 것이다.
불상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대표적인 불상으로 신라시대에는 불국사의 석굴암에 있는 석굴암의 본존석불을 보기로 하자. 다음의 사진은 정면에서 보는 것이므로 정확한 평가는 어렵겠지만, 고개가 상당히 들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기로 하자. 석굴암의 본존불조다 더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렇다고 백제인이 신라인보다 더 고개를 바짝 들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많은 불상을 비교해 보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한두 개의 불상으로 백제와 신라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서양 것과 우리 것은 워낙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우리 민족 내부에서는 어느 쪽이 더 고개를 들고 있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시대의 자료로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서양과 달리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살았다는 결론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삼국시대의 고개가 고려와 조선, 그리고 현재까지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는 다음 회에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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