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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모두의 블루오션, 산별교섭의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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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사 모두의 블루오션, 산별교섭의 진전

[기고] 보건의료 산별교섭 타결의 의미

노동조합의 싸움은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보도하곤 한다. '파업 돌입'이니 '극적 타결'이니 하는 껍데기만 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은 그 현장이 병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의료대란', '환자불편'이 언제나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올해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는 그동안과 조금 달랐다. '의료대란'만 강조하지 않고 그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변화'에 주목했다.

'새로운 변화'란 노동운동이 기업을 넘어 '산별체제'로 전환하고 교섭구조가 기업별교섭을 넘어 산별교섭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과 노사합의로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대화'를 제기한 점, 또 병원이 필수공익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 회부를 보류함으로서 노사가 '자율타결'을 했다는 점이다.

보건의료 노사의 교섭 타결, 그 이면에 담긴 '새로운 변화'

보건의료노조가 파업돌입 하루 만에 극적 타결을 이룬 후 언론보도를 살펴보자.

<동아일보>등 대다수 주요 언론들은 '병원파업 타결…오늘부터 완전 정상화' 라는 식으로 그 결과를 밋밋하게 보도했지만 일부 언론은 이번 타결의 이면과 향후 노사관계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의료 노사정委' 구성 추진, 병원노사 산별교섭 첫 자율 타결(<문화일보> 8.25), '산별 협상 타결을 통해 산별 노사 협상 정착에 가속도 붙을 것' (<KBS 뉴스> 8.25), '산별 노사관계로의 본격진입' (<매일노동뉴스> 8.28), '병원노사 의료 노사정위원회 구성·재난지역 공동 의료지원' (<연합뉴스> 8.25), '파업은 3년 연속 이어졌지만…내년부터 모범적인 산별교섭 기대'(<경향신문> 8.25) 등이 바로 그 유형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파고든 기사로는 '산별교섭의 딜레마, 이중교섭' (<연합뉴스> 8.27), '병원노사 이중교섭 노사쟁점 부각될 듯' (<매일경제> 8.28) 등으로 임금협상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을 이중교섭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산별협약서 체결, 산별교섭 시대의 밑그림 될 것
▲ 보건의료 노사가 산별교섭 시작 3년 만에 산별협약서를 체결했다. ⓒ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의 이번 산별 타결에 대해서는 앞의 몇몇 언론 보도처럼 타결의 '양'보다 '질'에 주목해야 한다. 그럼 무엇이 새로운 질적 전환을 예고하고 있나?

첫째, 보건의료노조를 건설하기 시작한지 8년, 산별교섭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이 노조는 '산별기본협약, 보건의료협약, 고용협약, 노동과정협약, 임금협약'이라는 산별 협약의 5대 기본 틀을 갖춘 '산별협약서'를 체결함으로써 산별교섭 시대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 산별 5대 협약은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했다.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사에 취업해야 하고(고용협약), 먹고 살 만큼의 생계비를 받아야 하고(임금협약),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노동과정협약).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취업해서 건강하게 일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고용, 임금, 노동과정 등 3개의 범주에서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보건의료 노동자의 경우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특수한 공공적 역할 때문에 보건의료 영역이 하나 더 추가된다(보건의료협약).

'산별기본협약'이 다른 4개 영역을 하나로 묶어주면서 산별교섭의 초석 역할을 한다. 이번 산별기본협약에는 그동안 노동계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들이 포함됐다. 즉 산별협약이 기존 현장 단협과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도록 했으며 유효기간 1년, 자동갱신 조항 등이 포함됨으로써 산별협약의 기본 골격이 갖춰진 것이다. 그리고 금속노조에 이어 보건의료노조도 2006년 말까지 사용자단체를 구성한다는 사용자 쪽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2004년에 처음 시작되어 3년 연속 파업과 노사갈등을 겪어오면서 많은 과도기적 비용을 지출한 보건의료산업에서 사측의 대표성과 책임성이 한층 강화되면서 노사관계와 산별교섭이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직권중재 없이도 자율타결은 가능하다
▲ 이번 보건의료 노사의 교섭 타결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회부 없이 이뤄진 자율타결로, 필수공익사업장 노조운동의 새로운 선례를 만들었다. ⓒ 보건의료노조

둘째, 노사합의로 의료노사정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달리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부정적이고 사용자단체인 경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금의 노사정위원회는 반쪽짜리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 노사는 산업 차원에서 의료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노사정 대화의 틀을 정부에 정식 제안한 셈이다.

아쉬운 점은 이미 이와 비슷한 합의를 2004년도에 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복지부, 노동부 등 정부 각 유관부처에 정부 차원의 역할을 촉구했지만 저마다 공을 다른 부처로 떠넘기면서 한발 짝도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여를 거부하는 민주노총에는 끊임없이 참여를 요청하면서도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자고 요청하는 보건의료 노사는 외면해 온 참여정부의 사회적 대화 정책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의료 노사 간 합의는 다시 한번 정부에 의료노사정 대화틀을 제안하는 것으로, 이후 정부 차원의 참여와 역할을 기대해 본다.

셋째, 이번 노사 간 자율타결은 직권중재 회부 없이 합법파업이 보장된 가운데 이뤄진 것으로서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과 관련한 새로운 선례를 만들었다. 직권중재가 오히려 병원 사용자 측의 불성실교섭 행태를 부추기고 자율타결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직권중재에 회부되지 않는 조건이라면 노사간 교섭을 통한 자율타결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의료 노사 간 합의가 보여준 것이다.

넷째,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번 보건의료협약에 '보건의료 예산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80% 확대, 공공보건의료 확충 등을 노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 병원환경 개선과 환자보호자 편의시설 확충 등 환자 중심의 병원 만들기에 나서기로 한 것, 환자편의와 공보험 강화를 위해 병원 내 건강보험 상담센타를 운영하고 병원 식당에 우리 쌀과 농산물을 사용하며 국내외 재난사고 발생 시 긴급 의료지원 활동을 전개한다'는 등의 합의가 반영됐다는 점이다. 이는 보건의료 노사가 대립하고 투쟁하면서도 대국민 건강권 실현을 위해 함께 할 공동과제를 확인하는 것이란 의미가 있다. 바로 이것이 산별교섭의 사회적, 공공적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산별임금 협상 문제는 남은 과제
▲ 물론 남은 과제도 많다. 정부, 사용자, 노조가 함께 산별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 보건의료노조

하지만 이후 산별교섭의 발전을 위해 추가로 풀어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산별교섭에서 어떻게 산별임금 협상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이번 산별교섭에서는 밖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얼마를 올릴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올릴 것인가?' 가 더 큰 쟁점이었다. 산별노조가 내부 임금격차를 줄이면서 산별 단일 임금체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중장기 목표와 더불어 당장 차이를 인정하는 현실적 타결방안 사이에는 깊은 간격이 존재한다. 이번 교섭과정에서 산별타결 방식으로 '단일안', '플러스 알파 방식', '타결 범위율', '특성별 타결' 등 다양한 타결방식이 검토됐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120개 병원은 규모와 특성에서 엄청난 편차가 존재한다. 이런 차이를 넘어 산별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아 산별 타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집중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공공병원이 공무원 수준의 임금인상 등을 고집함으로써 산별교섭 타결에 실패하고 지부별로 협상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사측이 막판까지 주장했다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삭제된 이중교섭과 이중쟁의 문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의 안건과 대상 분리 문제, 사측 내부 의견조율과 교섭단의 대표성과 책임성 확보 문제, 교섭구조의 효율성 강화를 통해 교섭 비용 절감방안, 산별교섭을 빙자한 집단 불성실 교섭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적용 문제 등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제 공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넘어갔다

이제 공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돌아갔다. 사용자는 1998년 산별노조 건설 이후에도 계속 산별교섭 참여를 거부하다가 2004년 14일 간의 산별 총파업 이후 처음으로 산별교섭에 참가했고, 2005년에는 쟁의조정 신청 이후에 뒤늦게 대표단을 구성해 교섭에 참석했으며, 올해 비로소 교섭 초기부터 대표단을 구성해서 산별교섭에 정상적으로 참가했다. 사측도 이제 산별교섭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근거 없는 우려를 버리고 산별교섭에 적극 참가하여 노사관계 발전에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부 또한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과 노동계 전체의 산별노조 전환, 산별교섭 추진에 발맞춰 기업별 노조와 기업별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현행 노동법을 전면 개정하여 산별적 노사관계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불안정한 산별교섭 구조로 인한 교섭비용의 증가를 막기 위해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 중인 '사용자단체 구성 강제와 산별교섭 법제화, 산별협약 효력 확장제도' 등 산별교섭의 제도화와 관련된 노동계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 산별교섭은 노사정 모두에게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신세계이자 '블루오션' 이다.

마지막으로 노조 또한 본격적인 산별노조, 산별교섭 시대를 맞이하여 조직역량을 정책역량과 현장조직을 강화하는 데 더 투여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와 평등을 실현하는 교섭구조와 산별협약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조직전환하여 산별노조 시대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보건의료노조가 3년차에 산별교섭을 타결했다. 이를 계기로 보건의료 노조원들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산별노조 시대에 부응하는 산별교섭 체제를 정착시키고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리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공공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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