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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과거 위에 어떻게 미래를 건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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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과거 위에 어떻게 미래를 건설할까?

[현장]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 위한 공동워크샵

지난 1997년 '강제 징용, 강제 연행 희생자 유골 발굴을 위한 한일 대학생 공동 워크샵'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공동 워크샵'이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한일 양국 대학생 및 연구자 120여 명은 지난 17일부터 홋카이도 대학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공동 워크샵'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또 학술대회와 함께 아시지노 구 일본 육군비행장 건설 강제연행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 작업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앞서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도쿄에서 야스쿠니 반대 촛불집회 등 한국과 대만, 일본 등 3국 시민단체 회원 500여 명과 함께 야스쿠니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관련 행사들의 생생한 소식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김두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사가 보내왔다. <편집자>.

'Boys, be ambitious'의 유래

"Boys, be ambitious."

30~40대라면 중고등학교 시절 참고서에 으레 쓰여 있던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 총장으로 있던 클라크 박사가 1886년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행한 연설에 처음 등장한다. 지금도 홋카이도대학에는 클라크(William S. Clark) 박사를 기념하는 동상과 건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클라크 박사야 젊은이들에게 원대한 꿈을 가지라는 일반적인 격려를 한 것이겠지만, 한창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며 세계를 향해 나아가던 일본인들에게는 이 말이 또 다른 의미를 가졌던 듯하다. 당시의 일본사회가 '소년들에게 요구한 큰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이후의 역사로 미루어보건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의 일본이 야망을 성취해 가는 과정은 일본 열도에 인접한 지역의 주민들을 절망케 하는 과정이었다. 필자가 8월 13일부터 참가하고 있는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과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공동 워크샵'(이하 동아시아 워크샵)은 그 과거를 확인하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다.
극우파들은 왜 남자들이 다수인가?

'boys'와 관련해서 한 가지 짚고 가자면, 지역을 불문하고 왜 극우파는 남성들이 절대 다수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에도 도쿄에서 야스쿠니 반대집회를 통해 평화를 외치던 1000명의 동아시아 사람들 중에는 남녀가 골고루 섞여 있었지만, 행렬에 반대하던 우익인사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유럽의 나치 또는 파시스트들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언론의 사진들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남성들이었다. '한반도 주민들의 역사'가 아닌 '한국과 한민족의 역사'를 미화하는 재야사학자들도 절대 다수가 남성들이다. 인터넷의 각종 극우 사이트들에 올라오는 글들도 왠지 여성들이 쓴 느낌의 글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왜 그럴까? 국가주의와 남성, 그리고 남성 중심의 세계관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제국의 아침'을 맞던 시기, 일본의 '소년들'이 생명과 환경, 자유(미국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무한경쟁의 자유가 아닌)와 평등, 상호존중과 배려, 공동번영 등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큰 꿈을 꾸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홋카이도 개발의 뒷이야기

도쿄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필자는 홋카이도현 삿포로시로 건너왔다. 홋카이도는 선주민(先主民)이었던 아이누족에 대한 엄청난 차별을 거쳐 이제는 일본사회에 동화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에서 도시계획 및 개발 전문가를 데려와 삿포로를 근대적 도시로 만들었는데, 이때 홋카이도대학을 세우고 클라크 박사를 초청해 총장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또 홋카이도에 대량의 이주민을 정착시키는 동시에 섬 전체를 식민지화했다. 지금도 삿포로에는 용인의 한국민속촌처럼 '북해도개척촌'이 있어 당시의 건물들과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다.
▲ 일제의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간 한국인, 대만인 등 101명의 유골이 보관돼 있는 사찰 '니시혼간지'. ⓒ김두진

그러나 '개척'은 어디까지나 본토인들에게나 의미를 갖는 말. 아이누족 출신인 모토이(남, 35) 씨는 "아이누에게 있어 그것은 개척이 아니며 침략"이라고 했다. 독립된 근대국가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미개인 취급을 하며 산 속으로 몰아버리는 등의 차별이 홋카이도 개척의 실체였다는 것이다.

아이누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족을 홋카이도 곳곳으로 끌고 가 도시 건설 현장에 종사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삼기도 해, 현재도 홋카이도대학 의학부 건물 옆에는 1000여 구의 유골이 안치된 '아이누 납골당'이 있다. 대학 측에서는 건물 입구를 봉하고 그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누운동가들은 유골을 이곳에서 빼오기 위한 노력을 벌이며 법적 소송도 제기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아이누족과 조선인, 반세기만의 만남
▲ 아이누운동을 벌이고 있는 오가와 씨. ⓒ김두진

필자가 묵고 있는 삿포로의 '니시혼간지'라는 사찰의 지하에도 기막힌 사연이 있다. 이곳 지하에는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간 101명의 유골이 큰 항아리 3개에 담겨 보관되고 있는데, 그 중 조선인이 70여 명으로 가장 많고 대만인과 소수의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머나먼 홋카이도까지 끌려와 강제노동을 하게 된 조선인들 중 일부는 탈출에 성공한 뒤 아이누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숨어 지내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아이누 여인과 결혼해 2세를 낳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모토이 씨의 부친이 바로 그 주인공. 오가와 씨도 조선인과 아이누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그는 현재 일본정부가 저지른 죄악을 폭로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삶을 규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온갖 차별과 끔찍한 강제노동의 경험은 반세기가 지나 새로운 연대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한 인류학자가 현장연구를 위해 묵던 사찰의 주지인 토노히라 요시히코 씨(강제연행·강제노동희생자를생각하는홋카이도포럼 공동대표)로부터 홋카이도 섬 중앙에 위치한 슈마리나이라는 곳에 강제징용으로 끌려 왔다가 암매장된 조선인 유골이 있으며, 그들의 유골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 인류학자가 현재의 동아시아 워크샵을 있게 한 정병호 한양대 교수다. 그는 유골 발굴 작업을 위해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아이누운동을 하고 있는 오가와 씨를 알게 됐다. 정 교수는 아이누족과 조선인의 불행이 제각각의 경험이 아니라 지난 세기 인류가 경험한 폭력에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음을 알리는 동시에 동북아에서 그러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10년째 동아시아 워크샵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 토노히라 스님은 자신이 속한 종단의 다른 사찰인 '니시혼간지'의 사연도 알려왔다. 이곳을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숙소로 제공하도록 주선했을 뿐만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소개, 조직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한·일 대학생과 시민들의 만남

현재 니시혼간지에는 광운대, 서강대, 서울대, 이화여대, 제주대, 충북대, 한양대 학생들과 행사 주관단체인 '평화마을'의 회원들 70여 명 및 일본의 학생과 시민단체 30여 명이 묵고 있다. 이밖에 발굴이 진행될 홋카이도 최북단 아사지노 마을에도 15명의 전공자들이 발굴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 한양대 정병호 교수 ⓒ김두진

특히 일본 측 참가자들 가운데 한 명인 가츠오(20, 남) 씨는 재일조선인이나 아이누족, 오끼나와인들과 같은 일본 내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다양한 모임들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과거와 같은 좌우파의 이념 대결을 지향하는 학생들은 소수가 됐고, 이제는 평화, 환경, 소비자운동 등이 호응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일 양국의 참가자들은 8월 17일 홋카이도대학 측이 준비한 특별 강의에 참가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이 대학 인문사회과학 종합교육연구동에서 열린 이날 강의는 홋카이도대 대학원 문학연구과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구일본군 아사지노비행장 건설 강제연행 희생자 유골발굴실행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것.

이날 강연에서 이노우에 카츠오 교수(일본근대사)는 '홋카이도의 강제연행 관련자료'라는 제목 강연을 통해 현재까지의 강제징용 연구 현황과 새로 발굴된 자료를 소개했다. 워크샵 참가자뿐 아니라 방학임에도 이 대학 학생 100여 명이 강의실을 채웠으며, 예정된 시간을 1시간이나 넘길 정도로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홋카이도신문(삿포로 지역판)도 8월 17일 목요일자 24면에 "'아이고' 소리를 조선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제징용과 관련된 양심적 일본인들의 활동 소식을 전했다. 비록 큰 흐름은 아니지만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한국에서 보던 것처럼 일본 전체가 과거사에 무관심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우경화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기도 했다.

과거를 마음에 새겨 미래를 함께 만들기 위하여
▲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 ⓒ김두진

8월 18일. 같은 대학교 농학부 본관 대강당에서는 동아시아 워크샵 주최로 국제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회의에 앞서 '아이누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지역 밴드의 축하공연이 있어 분위기를 달구었다.

회의는 '동아시아의 과거를 마음에 새겨 미래를 함께 만들기 위하여'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한 1920년대와 30년대를 닮아 있어 동아시아 사람들의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는 요지의 기조연설을 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또 발표에 나선 서승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을 상징하고 있다"며 "동아시아인들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라는 타자"라고 동아시아의 구도를 분석했다.

모리타 토시오 평화·국제교육연구회 대표는 "동북아시아 긴장과 미군의 재편, 일본인의 역사인식과 우경화 등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젊은이들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 자리에 모인 300여 명의 청중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을 정치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역사인식과 민족적 우월감 등 사회문화적 각도에서도 이해해야 하며, 이는 결국 내셔널리즘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

동북아시아 워크샵 참가자들은 19일 버스로 8시간을 달려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시(市)로 이동해 유골 발굴작업에 들어갔다.
▲ 홋카이도 대학 의학부 동물실험실에 있던 아이누의 유골을 투쟁 끝에 수습한 아이누 납골당. ⓒ김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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