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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여, 전세계를 보며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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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여, 전세계를 보며 행복하십니까?"

이란 대통령이 부시에게 보낸 서한 공개

"얼마나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거리에 뿌려져야 하는가? 당신은 전 세계의 현 정세를 보며 행복한가? 역사는 잔혹한 정권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지난 8일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1979년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27년 만에 미국 대통령에게 페르시아어로 쓰인 서한을 보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편지 전문이 영어로 번역돼 10일 뉴욕타임스를 통해 공개됐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무려 18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글에서 최근 미국과 날카로운 긴장을 빚고 있는 이란의 핵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라크 전쟁 및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그리고 빈곤층에 대한 대책과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차분하고도 단단한 어조로 조목조목 짚어갔다.

"당신의 행동은 예수의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가?"

"미국의 대통령, 미스터 조지 부시에게"로 시작하는 이 서한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젊은이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을 전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는 먼저 이라크 문제를 언급했다.

"어떤 한 나라는 대량살상무기(WMD)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침략을 받아 1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나라의 수자원과 농업 그리고 공업이 모두 파괴됐고, 약 18만 명의 외국군대가 그 땅에 주둔해 사람들의 가정은 철저히 파탄났으며 그 나라는 거의 50년 가까이 후퇴했다."
▲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난 8일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 EPA

이라크 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이라크 사람들 뿐이 아니라 침략한 나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다.

"만 여 명의 젊은 남녀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침략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쁜 길로 등 떠밀려 나왔으며 그들의 손은 다른 이들의 피로 물들었다. WMD가 존재한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침략한 나라의 사람들이나 침략을 당한 사람들이나 모두 이같은 끔찍한 비극을 겪게 됐다. 나중에 결국 WMD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담은 물론 잔인한 독재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명분은 "그를 몰락시키는 것이 아니었으며 WMD를 찾아내고 없애는 것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후세인은 전쟁 수행 과정에서 제거됐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기뻐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과거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당시 후세인은 지원했다는 것도 지적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당신은 내가 교사였다는 것을 알지도 모른다"고 언급하며 "나의 학생들은 내게 어떻게 이같은 행동이 이 평화와 용서의 메신저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전통에 따른 의무와 모순되지 않는 것인지 물어본다"고 전했다.

그는 편지에서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의 정신을 언급해 부시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예수를 언급할 때마다 바로 뒤에 "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PBIH : Peace Be Upon Him)"을 반드시 붙여 넣었다.

이어 그는 수감자의 인권 유린과 학대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많은 수감자들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도 없이 가족들의 면회도 금지된 채 갇혀 있다는 것. 유럽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수용소도 언급하며 "이런 것들이 인권과 자유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과학적인 연구·개발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

그는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 중 일부와 매우 가까운" 부시 대통령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침략을 당하곤 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오늘날에만 유일한 새로운 현상으로 생각된다. (…)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들(유대인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됐다고 주장했다. (…) 그렇다고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중동의 한 가운데 건국하는데 논리적 설명이 되는가? 또는 그런 나라를 지지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에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고, 난민이 되었던 것을 부시 대통령이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며 여전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을 감옥에 넣고 있으며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은 어떻게 이런 정권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결의안에 비토(거부권)을 행사했던 것도 비판했다.

이란의 평화적 핵활동의 권리를 염두에 둔 듯한 내용도 눈에 띈다. "중동에서 어떤 기술적인 혹은 과학적인 성과를 달성하면 그것이 왜 시오니스트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되는가?"라고 그는 반문했다.

"과학적인 연구·개발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가 아닌가? 당신은 역사에도 매우 밝다. 중세 시대를 제외하고,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범죄가 된 적이 있는가? 과학적 성취가 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과학 기술의 연구·개발 전체를 제재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만약 그런 가정이 사실이라면, 물리학·화학·수학·의학·공학 등 모든 과학 분야가 제재되어야 한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전세계의 미국에 대한 증오는 점점 커지고 있다"
▲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이라크 전쟁등의 문제로 취임 이후 연일 지지율이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 EPA

그는 또 2001년 9.11을 "매우 끔찍한 사고"였다며 그로 인해 생명을 잃은 무고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9.11 이후 부시 대통령과 서구 언론들은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려하기보다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급급하다고 그는 비판했다.

"몇몇은 꾸준히 또 다른 테러의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사람들을 공포로 밀어 넣고 있다. 미국인들은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새로운 공격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늘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 상황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누구인가?"

미국이 쏟아 붓고 있는 막대한 자금이 그 돈은 세금으로 낸 국민들을 위한 것이 맞는지 그는 되묻기도 했다.

"당신도 알고 있는 것처럼, 당신 나라의 몇몇 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시달리고 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집도 없이 실업상태에서 삶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는 다른 크고 작은 나라 모두가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점이다."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수많은 돈은 전쟁비용과 홍보에 쓰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그 대신 수십억 달러의 돈을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투자와 각종 지원에 사용했더라면 오늘날 전세계는 어떤 모습이 되었겠냐고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사람들도 부시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며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입지도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미안하지만, 전세계의 미국에 대한 증오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지 않은가"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전세계가 얼마나 더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나?"

그는 또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또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역할과 의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비유적으로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는지 면밀히 검사할 것이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평화와 안전, 번영을 주었는가 아니면 불안감과 실업을 가져다 줬는가? 우리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는가 아니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지원했는가? 많은 사람들을 빈곤 속에 살아가게 함으로써 몇몇 사람들만 부유하고 힘 있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는가? (…) 우리는 전세계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줬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전쟁을 짐을 지워줬는가? 우리 국민들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진실만을 말했는가 아니면 왜곡된 사실을 보여줬는가?"
▲ 이란의 핵활동을 놓고 이 두 사람은 날카롭게 대립중이다.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좌)은 부시 대통령(우)에게 "역사는 잔혹한 정권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충고했다. ⓒEPA

그는 "전세계가 얼마나 더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가?"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물었으며 "역사는 잔혹한 정권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는 인류의 이상 실현을 방해해왔다"며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한 발송으로 이란은 이미 긍정적 효과 보고 있다"

미 백악관은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편지를 받았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변을 할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미 고위관리들도 '핵문제를 풀기 위한 새로운 해법이 담겨있다'는 이란측의 주장에 대해 고개를 내저으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 편지에서 이란의 핵활동을 둘러싼 긴장을 해소할 뚜렷한 해법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서한 발송을 통해 이란은 부시 대통령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어서 요사이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대이란 제재' 움직임을 맥빠지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서구 언론들도 이란 대통령의 '깜짝 서한 발송'으로 이란이 많은 이득을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 이란 대통령은 이번 편지 발송으로 그간 받아왔던 것보다 더욱 긍정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란 대통령이 직접 서한을 보낸 것은 이란이 협상에 열려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BBC>도 이란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까지도 포함한 그 누구와도 협상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인디펜던트>는 서한 발송을 '비범한 전환'이라고 평가하며 이란측 핵협상 대표인 알리 라리자니의 말을 인용해 "시간이 지나면 이 서한이 새로운 외교적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 서한이 중동에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이미지를 노린 '묘책'으로 전세계 민주주의의 몰락에 관한 이슬람 세계의 용어를 철학적으로 말했다고 분석했다.

27년 만에 미국 대통령에게 이란 대통령이 직접 보낸 이 장문의 편지가 '이란 핵문제' 해결의 활로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편지 영어 번역본 전문은 http://www.commondreams.org/views06/0510-21.htm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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