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제안을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앞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전날 원고지 52장 분량의 장문의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한 뒤 하루 만에 다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제안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에 대해 적극 항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연정 제안이 구체적 측면에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대타협할 수 있는 문제이며, 이는 역사적 대의에 부합하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도 지지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였다.
***"내 제안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정치인은 성공 못할 것"**
노 대통령의 자신감은 "자신있게 제안한다. 왜냐면 역사적 대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국민들이 지지한다. 나의 정치 행위가 다 그랬다"고 호언장담하는 수준이었다.
노 대통령은 "나는 숫자를 헤아려서 정치하지 않는다. 역사의 대의를 가지고 정치한다"고 대연정 제안이 '정치적 꼼수'가 아님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국정운영에 대해서도 "제 살림살이 업적에 대해 내놓고 진지하게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토론해보자. 그 전에 어떤 대통령에 비해 어디를 잘못했는지 토론해 보자"며 자신감을 보였다.
***"국보법, 한나라당과 우리당이 한 자리에서 대화하면 답이 더 쉬을 것"**
노 대통령은 또 대연정 제안이 초헌법적 발상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어떤 법 논리로 해석하더라도 대연정의 구성이 우리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 좌-우 동거정부 경험이 있는 프랑스를 언급하면서 "프랑스가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들때 동거 정부라는 것을 예측하고 만들지 않았다. 동거정부가 출현할 때까지 이를 예측했던 사람들은 없다"며 "유신헌법을 만들 때 학자들이 프랑스 헌법을 그대로 베껴서 우리 헌법이 프랑스 헌법과 아주 닮았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차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제일 어려운 게 그 문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정체성이 아주 다른 정당끼리 대연정해서 성공한 역사가 있다"며 "역사적으로 대연정을 성공한 (오스트리아와 독일) 두 사례보다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오히려 적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90년 3당 합당 이후에 정체성을 달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당을 나눠서 입당하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에도 상당히 스펙트럼의 큰 차이가 있고 한나라당도 스펙트럼이 넓다"며 "민주노동당은 '두 당이 같은 당 아니냐' 이렇게 공격하기도 한다"며 거듭 양당 노선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연정이라고 하더라도 정부를 주도하는 것이지 국회는 여전히 지금의 국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정부를 주도하면서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는 정치 과정에서 공론이 채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은 같이 간다. 교육 정책은 토론해서 가면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오히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 자리에서 진지하게 대화한다고 가정하면 지금보다는 답이 쉽게 나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대통령, 멀티 태스킹 가능…주가 1000포인트 넘는 거 보고 연정 제안"**
노 대통령은 북핵 6자회담, 민생 경제 어려움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이유로 연정 제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에 대해 "대통령도 동시에 몇 가지 정도의 일은 진행할만큼 멀티 태스킹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연정 제안에 대해 "4월 30일 재보선을 통해 여당 과반수가 무너진 뒤, 그때부터 고민하고 준비해 온 논리"라며 갑작스런 제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언제 발표할 것인가 고민했는데, 주식시장이 1000포인트 넘어서 안정되는 거 보고 이젠 정치구조 얘기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정권 전반기에 살림살이에 전력 투구했다. 주식 1000포인트 넘어 갔으면 후보 때 약속했던 정치개혁을 좀 해야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요지.
***"정체성 다른 정당끼리 대연정 성공한 역사 있다"**
문 :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이면 한나라당이 실질적 행정 권력을 갖게 된다. 현행 헌법에서 행정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의 권한은 어떻게 되는거냐.
답 : 실질적으로 정권이양 아니냐는 전제인데, 그렇다. 헌법상 허용되느냐. 저는 허용된다고 본다. 우리 헌법의 내용이 상당히 유연하게 만들어져있다. 또 실제로 우리가 헌법의 해석을 사회의 변화에 맞게 유연하게 해야 한다.
법논리를 너무 모든 사회현실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프랑스가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동거정부를 예측하고 만들지 않았다. 실제 동거정부가 출연할 때까지 예측한 사람은 없다. 지금도 프랑스 동거정부의 대통령과 총리, 내각의 권한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게 아니다. 정치 관행으로 분배하고 있을 뿐이지 헌법상 경계가 나오는게 아니다.
우리 헌법은 프랑스와 아주 닮았다. 유신헌법을 만들때 학자들이 프랑스 헌법을 베껴왔다. 87년 개정 때 국회 해산권만 없애고 조금 손 본 수준이다. 독재적 요소만 빼면 프랑스와 아주 닮았다.
프랑스 동거정부에서 권한 배분이 관행, 정치적 합의로 이뤄지듯이 한국도 정치적 합의로 권한 배분을 적절하게 이룰 수 있다 . 무엇보다 지난번 보궐선거로서 여당 과반이 무너졌다. 여기서부터 소위 연대, 연정, 정책연합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연정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히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대연정은 역사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문 : 많은 국민은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노선이 크게 다르지 않아 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받아들여 국가보안법, 교육정책에 있어서 3불정책 등을 한나라당이 원하는대로 하면 노 대통령과 우리당 지지하는 국민은 어떻게 되나.
답 : 제일 어려운 게 그 문제다. 그러나 정체성이 아주 다른 정당끼리 대연정이 성공한 역사가 있다. 역사적으로 대연정에 성공한 사례와 비교하면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오히려 적다. 왜 적다고 보냐면 90년 3당 합당 이후 역사성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당을 나누는 바람에 실제로 우리당에서도 상당히 스펙트럼에 큰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도 스펙트럼이 넓다. 양쪽 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 아주 닮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조금 더 크고 우리당은 적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고, 실제로 노선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같은 당 아니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지금 정책을 결론 내는 곳은 국회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연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를 주도한다는 것이지 국회는 지금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양당이 합동 의원총회라든지 국회 토론을 통해서 국민이 바라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 토론 구조는 살아있다.
지금 주요 정책을 봤는데 부동산은 같이 간다. 교육정책은 토론해서 가면 될 것이다. 국보법 문제는 한나라당과 우리당 의원들이 한 자리에서 진지하게 대화한다고 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답이 쉽게 나올 것이다.
생각 같은 사람이 편을 갈라 습관적으로 싸우는 측면이 있다. 한자리에 모아 합동의총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정치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당에 정체성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고, 한나라당에 정체성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토론의 장은 열려있다.
***"지금 권역별 비례대표, 독일식 비례대표 나와 있어"**
문 :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을 정권 중반기에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구도 타파가 권력구조 개편으로 치유될 수 있는 문제인가.
답 : 갑자기 들고 나온 것은 아니고 선거 때도 지역구도를 최고의 문제로 주장하고 국민들에게 이것을 극복하겠다고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당시 언론계, 학계, 일반 국민이 제1번 공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후보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또 그렇게 말했다. 지금도 내가 대통령이 됐으니까 이것은 역사에 대한 의무다, 국민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구도 문제가 해결되면 정치문제가 다 해결되냐. 그렇게는 말하지 않겠다. 다는 아니지만 중대한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될 것이다. 반대로 지역구도가 해결되지 않고는 분열적 요소가 결코 극복되지 못할 것이다.
예산국회를 하면 예결위에서 지역구도가 다시 살아난다. 지역신문 1면 톱에 지역주의가 살아있다. 쓸 것 없으면 지역감정 부추기지 않느냐. 부산에서 부산 지역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모른다. 서울에서 호남 신문 제목을 보면 이건 결코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없겠구나, 정말 뼈져리게 느낀다. 지역구도를 풀지 않고 우리 사회가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문 :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통령의 권력 이양은 어떤 내용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대통령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선거제도 방향은 무엇인가.
답 : 이 문제는 내가 답변하기 어렵다. 나는 아주 구체적으로 망라했다고 생각한다. 내각제 수준의 권력, 그건 이미 모델이 나와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이상 설명하려면 헌법책을 갖다 놓고 권력을 나눠야 한다.
선거제도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이걸 틀에 박아 얘기하면 오히려 정치권 상호의 대화, 토론에 어려움이 생긴다. 대개 지금 나와있는 얘기들이 권역별 비례대표, 독일식 비례대표제 이런 것들이 있다. 필요하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말을 옛날에 한 적이 있다.
문 : 일부에서는 X파일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답 : 의혹이라는 게 추론 과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번에 X파일이 나오니까 정치적 음모라고 얘기하는데 도저히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음모를 한다는 것인지 합리적으로 추론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X파일로 덕 볼 게 있나. 곤란한 경우가 있으면 덮어서 이득 볼 게 있나. 아무 것도 없다. 저는 진실만이 답이다. 내 편이다. 그 원칙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대통령 자리 있지 못할 것이다. X파일은 진실대로 갈 것이다.
국가 운영에 관해서 한가지가 중요한데 왜 그 얘기를 하냐. 이 얘기는 앞으로 하지 말자. 대한민국 국정 운영 조직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항시 수십 가지 일이 일거에 진행되고 있고, 대통령도 몇 가지 정도의 일은 동시에 진행할 만큼, 멀티태스킹 시스템이 준비돼 있다. 너무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발표시점에 신경을 썼는데 4월30일 재보선으로 여당의 과반수가 무너졌다. 그때부터는 새로운 구조 위에서 정국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적 고민을 해야 한다. 그때부터 준비했는데 어떻게 발표할지 고심했다. 근데 결국 타이밍이 주식시장이 1000 포인트 넘어 안정되는 것을 보고 이제 정치구조를 얘기해도 되지 않겠느냐.
정권 전반기에 살림살이에 전력 투구했다. 스스로가 연루된 정치자금 문제, 불투명성의 문제 이런 것을 청산하기 위해 정말 힘겹게 2년을 노력했다. 올해는 우리 목표가 양극화 해소 쪽으로 잡아가고 있다. 그때 그때 항상 가고 있는데 다만 총체적으로 봐서 주가 1000 시대에 들어갔으면 대통령이 약속한 정치개혁 이것도 좀 해야겠다.
국민이 당신에게 정권을 남을 주라고 했나는 다음 질문이 나올 것 같은데 미리 말하겠다. 국민이 왜 저를 대통령으로 뽑았겠느냐. 노무현이 외교 잘할 것, 경제 제일 잘할 것이라고 뽑은 것도 아니다.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 대화와 타협, 협력의 방향으로 갈 것이다. 대외적으로 좀더 자주적으로 줏대 있게 갈 것이다. 정치 부정부패, 정경유착, 지역구도 이런 것을 고치는데 노력할 것이다.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본질적 개혁을 원칙적으로 밀고 갈 것이라고 보고 지지하지 않았겠냐.
정부 권력을 누가 가지냐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합리적 사회로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져가느냐가 필요하다. 국민이 맡겨준 취지가 역사적 개혁을 하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3당 합당과 다르다"**
김영삼 대통령 3당 합당과 비슷하다. 아니 더 나쁘지 않냐고 하는데 아니다. 합당과 연정은 다르다. 아주 다른 것이다. 밀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국민 앞에 공개하고 토론을 거쳐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토론하자. 진지하게 토론하자. 토론도 안 해보고 욕설부터 먼저 하지 말고 토론하자는 것이다.
목적도 다르다. 정권을 위해서, 제도를 붕괴시킨 게 3당 합당이면 저는 제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오히려 정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어떻게 같을 수 있나.
문 : 대통령 서신 문장 하나하나가 자신감에 차 있다. 한나라당이 반대할 게 뻔히 보이는데 이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나. 진보성향 국민 지지층을 업고 제안한 것이냐.
답 : 진보적 지지층에서 반대가 많은 것 같다. 자신있게 제안한다. 왜냐면 역사적 대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국민들이 지지한다. 저의 정치 행위가 다 그랬다. 제가 선택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많은 질문을 했지만, 그 뒤에는 '옳기는 옳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옳은 선택을 축적해 국민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지금도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평가됐지만 제가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내걸었던 정책과 이상은 대체로 실현돼 가고 있다. 다른 지도자들이 실현한 만큼, 그 이상의 확률로 성취돼 가고 있다.
제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지역구도 해소다. 지역구도 해소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우리 정치를 한 단계 향상시키고, 재건축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공허한 이상이 아니고, 반드시 어느 때인가 국민이 동의하고 어떤 정치인도 거역할 수 없는 공론이 되고 마침내 실현 될 것이다. 이 제안을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숫자를 헤아려 정치하지 않는다. 역사의 대세를 가지고 정치한다. 그점에 있어서 저는 꼭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앞으로 2년반 열심히 하겠다.
나라 살림도 열심히 하겠다. 국가 시스템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정치개혁도 하고, 경제 살림살이도 다 꾸려갈 수 있다. 한국은 그런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살림이 아직 많이 어렵지만, 살림살이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하고도 내놓고 진지하게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토론해보자. 그 전에 어떤 대통령에 비해 어디를 잘못했는지 토론해 보자. 아마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하면서 정치 개혁도 한다는 점에 대해 여러분이 잘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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