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어제의 세계: 지구화, 인수 합병, 신자유주의**
***② 차등화 축적: 넓이 지향과 깊이 지향**
닛잔/비클러 이론의 가장 핵심적 개념은, 자본축적에 대한 그들의 독특한 접근 즉 “차등화 축적 이론(theory of differential accumul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1. 권력으로서의 자본: 왜 “자본 축적”이 중요한가**
독자들 가운데 “어째서 우리가 굳이 자본축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는 분이 있을 수 있다. 이 자본축적의 문제를 처음으로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으로 등장시킨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이 말은 보통 착취, 사회 정의, 노자간의 모순 등등의 단어들과 연상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분히 가치평가적이고 이념적인 문제들이 지금 우리의 논의의 촛점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지구정치경제의 구조 변화의 메카니즘”이라는, 다분히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이론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어째서 19세기의 유산인 “계급투쟁”의 망령을 또 끌고 나오자는 것인가.
이 문제의 답은, 자본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권력이 존재하는 가장 지배적인 “형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의 축적이란 곧 사회적 권력이 축적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지구 정치 경제의 재구조화라는 것이 무슨 신의 섭리나 생산력 발전 같은 초월적인(transcendental)인 힘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권력의 축적을 노리는 다양한 구체적 인간 집단들의 치고박고에 따라 벌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다양한 인간 집단들 특히 거기서 가장 중요한 선수인 “지배 계급”의 행동을 읽어내는 것에 필요한 지표는 바로 이 자본 축적이 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목적이건, 미국의 세계 지배를 영구화하려는 목적이건 상관 없다. 지구 정치 경제 변화의 역동을 이해하려면 그 사회적 권력인 “자본”이 축적되는 양상을 연구해야만 한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자본이 뭐길래? 어떻게 ‘자본이 바로 권력이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불만이 당연히 터져 나올 것이다. 바로 그렇다. 그래서 어느 캐나다 유학생은 그 자본이라는 말의 정의를 사회 과학 전체에서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를 먼저 찾아보려다가 귀한 시간 1, 2년을 날려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사람마다 그 자본이라는 말을 쓰는 뜻이 모두 다르며, 정의도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에서 자본은 그저 노동력과 기술 이외의 모든 생산 요소 K 를 뜻한다. 그런데 막상 그 K의 개념을 정립한 클라크(J.B.Clark)의 책에서 자본의 정의를 찾아 보면 “자본은 하나의 추상이다. 알고보면 우리들의 인생도 모두 추상인 것이 아닌가”라는 아리송한 말만 나온다. 결국 60년대에 저 유명한 캠브리지 논쟁에서 폴 사뮤엘슨 스스로가 “자본 K란 하나의 우화(fable)에 불과한” 허깨비임을 인정하고 만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의 “자본”이란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 전체”라는 다분히 사회학적 개념으로도 나왔다가, 또 어떨 때에는 “죽은 노동 시간의 집적”이라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그 “노동 시간”이라는 것도 “물리적 노동 시간”이기도 하고 “추상 노동 시간”이기도 하다는데, 그 측량법을 정확히 제시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사회학이나 정치학으로 가게 되면 실로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다양한 뜻으로 쓰이면서도 누구도 정의하지 않는다. 부르디외(Bourdieu)같은 사람의 “문화 자본” “정치 자본”같은 말에 이르면 실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태를 일찌기 예견한 경제학자 슘페터는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다. “자본이란 원래 그저 장부상의 회계 항목으로 남겨 두었어야 하는 물건인데, 굳이 그걸 사회과학적으로 정의한다고 달려들었다가 이런 황당한 사태가 나오고 말았다”. 그렇다. 이 “자본”이란 말이 그런 형이상학적인 사회과학 이론을 제쳐놓고서 실로 엄청난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대기업들의 장부에서이다. 오늘날 지구 사회의 작동을 맡은 가장 중요한 조직은 대기업들이며, 그 대기업들의 장부에 나오는 “자본”이라는 항목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모든 결정이 튀어나오는 원천이던 “성궤가 있는 장막”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본이란 무엇인가”라는 모든 복잡한 논의는 지루한 사회과학자들의 논쟁에 맡겨두고 우리는 그저 그 현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즉 자본 축적이란 현실에서 “기업 조직이 스스로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자본 축적 연구의 구체적 방향은 기업의 축적 전략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것이 좀 더 영양가 있는 일이리라. 이것이 닛잔/비클러 이론이 노리는 바이다.
***2. 차등화 축적**
그런 현실적인 의미에서라면, 축적은 “기업의 자산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대로, 그 크기의 증가를 “달성 가능한 극대치”로 이루려는 것이 기업의 행동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 명쾌하다.
그런데 그 “달성 가능한 극대치”라는 것이 무엇이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전혀 단순하지도 명쾌하지도 않다. 미시 경제학 교과서가 주는 답은, “한계 수입과 한계 비용이 일치하는 점에서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할 때에 생겨나는 이윤이 그 “달성 가능한 극대 이윤”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한계 수입과 한계 비용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아낸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며, 이미 1930년대부터 알려진 바, 그런 식으로 “한계 비용 38원 11전과 한계 수입 35원 71전”을 비교하여 가격과 생산량을 먼저 정하는 기업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지가 않다.
대신, 현실에 존재하는 기업의 행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기업들은 자신들 기업의 명예나 위신에 맞는 “목표 수익률(target rate of return)”부터 정한다. 현대나 삼성 쯤 되어서 문방구 가게 주인 아저씨들의 수익률 정도를 노리고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생산량은 현실에 있는 시장의 크기 즉 베블렌의 표현을 빌면 “거래량이 소화할 수 있는 정도(what traffics can bear)” 에서 결정된다. 즉, 기업은 가격과 생산량에서 “극대 이윤”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목표 이윤율을 먼저 정해놓으며 생산량은 현실적 시장의 크기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거꾸로 가격은, 그러한 생산량에서 그러한 목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원가 가산 방식의 가격 설정(markup pricing)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질문이 주어진다. 자본 축적의 속도는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이 가르치는대로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의 압력”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그 목표 수익률의 설정과 실현에 의해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상당히 자의적일 수도 있는 이 목표 수익률은 어떻게 설정될까. 물론 “극대”로 하면 제일 좋겠지만, 어느 정도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서 “달성 가능한 극대치”일까.
여기에 답을 주려는 시도가 바로 닛잔/비클러의 차등화 축적 이론이다. 즉, 각 기업들 스스로가 경쟁 상대 혹은 벤치마크로 설정해놓은 기업 집단의 평균적인 수익률을 기준으로 하여, 그 “평균 수익률을 능가(beating the average)”한다는 원칙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앞에서 들었던 학교 성적의 예를 한 번 더 들어본다. 전교 1, 2등 하는 아이들도 이 벤치마크의 방법을 쓰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번 중간고사 영어 시험이 끔찍하게 어려워, 평소에 1개 이상 안틀리던 전교 1등 아이조차 3개나 틀렸으며 자신의 실적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아이는 각 반을 돌면서 평소 그래도 자신에게 도전해 오던 7반 반장 3반 반장 등에게 슬쩍 물어보아 이들이 5개 7개 씩 틀렸음을 확인한 뒤에야 안심한다. 성적이라는 경쟁의 장에서 달성 가능한 극대치는 물론 “만점”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달성가능 하지 않을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실적을 평가하게 될까. 이러한 “벤치마크로 잡은 집단의 평균을 자신이 어느 만큼 능가하는가”로 밖에 평가할 길이 없는 것이다.
***3. 차등화 축적의 여러 요소들**
그렇다면 이 차등화 축적을 이루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먼저 축적이란 “자산 증식”이라는 정의에서 시작해보자. 자산을 A, 이윤을 Π, 이자율을 r 로 한다면
***A = Π / r**
로 쓸 수 있다. 즉 장래에 기대되는 이윤의 흐름 Π 를 이자율 r로 나누어 현재가치로 할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산의 증가율 A’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A’ = Π’ – r’**
차등적 축적이란 다른 기업 Ap의 자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증가시키는 것이니, 그 차등적 축적률 A’ – Ap’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A’ – Ap’ = Π’ – Πp’**
결국 시장 이자율이라는 조건은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이니, 다른 기업들보다 이윤의 증가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렇다면 그 이윤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분석해보자. 그 기업의 총 매출액을 V, 생산량을 Q, 총 노동자 수를 L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이윤의 구성을 분석할 수 있다. 두 번째 식의 여러 분모와 분자들을 상쇄시키면 첫번째 식을 간단히 전개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Π = Π**
***Π = Π/V * V/Q * Q/L * L**
이 두 번째 식에 등장하는 네 가지 요소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L은 글자 그대로 총 고용자 수이다. Q/L은 총 생산량을 노동자 숫자로 나눈 것이니 곧 노동 생산성을 의미한다. V/Q는 총 매출을 생산량으로 나눈 것이니 생산물의 단위 가격을 뜻한다. Π/V는 이윤과 매출의 비율이니 전체 매출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 즉 마크업(markup)을 뜻한다. 즉, 이윤은 마크업, 가격, 노동 생산성, 노동자 수의 곱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차등적 이윤을 얻는다는 것은 곧 이 네 가지 요소 중 하나 이상을 다른 기업보다 빨리 증가 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4. 차등화 축적의 주된 양식들: 넓이 지향과 깊이 지향**
닛잔/비클러는 이 중 L을 더 빨리 키우는 방법 즉 기업의 규모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넓이 지향(breadth), 나머지 세 요소 즉 마크업, 가격, 노동 생산성의 더 빠른 증가를 꾀하는 방법을 깊이 지향(depth)이라고 분류한다. 그 각각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 넓이 지향: 신규 설비 투자와 인수 합병
노동자 숫자로 평가되는 기업의 크기를 늘리는 방법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인수 합병과 신규 설비 투자(green-field investment)이다. 물론 개별 기업 입장에서 보면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이 두 가지 방식 모두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덩치가 큰 세계적 규모의 자본 즉 닛잔/비클러가 “지배적 자본(dominant capital)”이라고 부르는 기업의 행동이나 아예 전체 경제의 축적 양식(accumulation regime)의 차원에서 보자면 신규 설비 투자라는 방식의 축적은 금방 한계를 드러낸다.
만약 전체 경제 차원에서 이 신규 설비 투자를 주된 축적 양식으로 삼는다면, 이는 그렇게 싼값으로 고용될 수 있는 노동력의 계속적인 유입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농촌 인구의 분해를 통한 이 “산업 예비군”의 조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일단 그 흐름이 고갈되고 나면 임금 상승이 시작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깊이 지향의 요소인 마크업에 영향을 주어 금새 이윤도 하향 압박을 받게 된다. 또 노동 생산성이 일정할 때 총 산출의 절대적 양도 늘게 되는데, 그 상품을 다 흡수할 시장을 조달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된다.
이에 비하여 인수합병은 그러한 문제를 피해 나갈 수 있다. 이는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용되어 있는 노동력을 흡수하여 크기를 키우는 것이므로 그러한 산업 예비군 조달의 압박도 받지 않는다. 또 기존에 판로를 가지고 있는 기업을 합병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규 시장 판로의 개척이라는 문제도 피해 갈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합병 후 과감한 다운사이징을 통해 노동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고, 독점력을 이용한 가격 상승도 가능하기 때문에 깊이 지향에서의 요소들마저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국적적인 “지배적 자본” 또 전체 경제의 축적 레짐 차원에서 보자면 신규 설비 투자보다는 이 인수 합병 쪽이 훨씬 더 바람직한 축적 방식이 된다는 것이 닛잔/비클러의 분석이다.
2) 깊이 지향
이 깊이 지향의 세 가지 요소들 각각은 넓이 지향의 요소에 비교하여 현실적으로 더 많은 장애를 갖고 있다. 첫째로 노동 생산성은 기술적 혁신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기술적 혁신을 잠시동안 특정 기업이 독점하여 우위를 점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금새 경쟁 기업들로 확산되게 마련이므로 주된 차등화 축적의 방법으로 쓰이는 데에 무리가 있다. 게다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 연구비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결과가 불확실한 기술 혁신 연구에 계속적인 투자를 한다는 것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 기술 혁신은 기업들에게 있어 그저 뒤처지지 않게 따라잡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 마크업이란 전체 매출에서 자본가가 이윤으로 취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곧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소득의 감소와 부의 불평등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 정치 사회적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이는 “사회의 계급 투쟁”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자본가들의 임의대로 되기 힘들다. 전체 경제의 축적 양식 차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강철 군화(Iron Heel)”같은 파시즘이 등장하여 노동 운동 전체를 탄압하지 않는 한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셋째, 가격의 상승이다. 이는 그 기업이 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독점적 가격 결정력(monopoly pricing-power)을 십분 활용하여 제품의 가격을 일방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몇 몇 대기업이 일시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많은 문제들을 낳게 된다. 먼저 관련된 다른 기업들도 가격을 상승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곧 사회 전반으로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게 마련이다. 물론 지배적 자본이 상대적으로 큰 독점력을 갖고 있는 한 더 높은 가격 상승률을 유지하면 계속적인 차등적 축적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은 곧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을 주된 축적 양식으로 쓰게 될 경우 곧 전반적인 사회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5. 인수 합병과 재구조화**
기술 혁신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깊이 지향 축적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사회적 권력 관계의 재구조화(restructuring)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크업의 신장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역관계의 변화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과 가격 상승은 가격 결정력의 차이를 이용하여 국내의 모든 경제 주체들 사이에 엄청난 부와 권력의 재분배를 가져옴으로서 차등화 축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넓이 지향 축적이 일반적으로 경제 전체의 고도 성장과 붐을 수반하는 평화적인 것에 비해 깊이 지향 축적은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차등화 축적 양식으로 이 인수 합병이 좀 더 주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넓이 지향 축적 방식에 일정한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며, 깊이 지향 축적 방식에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태일같은 청년들이 몸을 불살라야 했을만큼 노동 탄압이 심했던 어제의 대한민국이 사업가들에게 그야말로 얼마나 “땅짚고 헤엄치기”같은 환상적 사업 조건이었는지는 그 폭발적 경제 성장률이 말해주고 있다. 또 20년대 독일에서 최근의 아르헨티나의 경우에 이르도록, 이 고율의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와 속도로 가격이 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점력이 큰 기업들은 보통때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는 고율의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렇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인수합병이라는 넓이 지향 축적 방식이 상당한 시간 계속 되다가 일정한 한계에 부닥치면, 기존의 사회적 권력 구조가 급속히 재구조화되면서 노동 탄압이나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통한 깊이 지향 축적 방식이 짧은 기간 나타난다고. 하지만 깊이 지향 축적 방식이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수반하므로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넓이 지향 축적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고. 즉 20세기 전체의 지구적 축적의 역사를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긴 인수 합병과 넓이 지향의 기간 사이에 간헐적인 인플레이션 등의 깊이 지향 축적 방식의 기간이 끼어든다고 말이다.
지금은 가버린 듯한 “어제의 세계” 80년대와 90년대의 “지구적 인수 합병”의 기간을 닛잔/비클러는 전형적인 그 넓이 지향 축적 방식이 이루어졌던 때로 보고 있다. 또 그 기간에 나타난 지구 정치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도 그러한 축적 방식에 수반된 구조 변화라고 볼 수 있게 된다. 이를 이제부터 살펴보자.
* 이 부분에 대한 닛잔/비클러의 좀 더 심화된 이론은 홍기빈 역, 조나단 닛잔과 심숀 비클러, <자본 축적과 변형의 지구 정치 경제학(가제)>(삼인, 근간) 를 참조할 수 있다.
* 필자 홍기빈씨는 정치토론 사이트 '시대소리(www.sidaesori.com)'의 고정 필진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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