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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타자'의 눈으로 중국을 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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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타자'의 눈으로 중국을 볼 건가?

[기고] 중국의 '혐한', 그 뿌리를 밝힌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전세계가 올림픽을 결산하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올림픽의 성공이 중국의 미래에 미칠 영향, 그리고 중국의 미래가 세계의 미래에, 그리고 자국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느라 바쁘다.

한국의 입장에서 베이징 올림픽은 성공적이었는가? 한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인가? 경기 성적의 측면에서 보자면 말할 것도 없이 성공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경기 외적인 면에서 한국은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얻지 못했다. 바로 주최국인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과 중국인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멀어져 버렸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인들의 반한(反韓) 혹은 혐한(嫌韓) 정서가 크게 높아지는 계기이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중국인들은 친구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친구를 위해서는 돈과 목숨까지 내놓는다. 그리고 중국인들에게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두 부류를 달리 대하고 다른 행동 원칙을 적용한다.

그런 중국인들에게, 적어도 올림픽 기간과 그 전후를 보면, 한국은 중국인들의 친구가 아니었고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와 아는 사람에게 그렇게 대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친구이자 아는 사람의 범주에 속한다면, 한국이 제3국과 경기를 하는데 상대국을 응원하는 일은 없다. 친구라면, 예전에 늘 그러했듯이 한국이 일본과 경기를 하는데 한국을 응원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있어났는가? 중국인들은 왜 한국을 싫어하는가? 중국인은 왜 한국인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최근 들어 가장 교류가 빈번하고 같은 유교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인가?

한류의 발상지가 중국이고, 드라마 '대장금'과 '사랑이 뭐길래'에 가장 열광하던 나라이자, 한때 한국을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이상적인 발전 모델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중국인들 아니었던가.
▲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24년만에 한국의 아성을 무너뜨린 중국의 장주안주안. 이 경기에서 중국 관중들의 일방적이고 매너 없는 응원이 문제됐지만, 한국의 응원단도 마찬가지였다는 문제 제기도 있어 논쟁이 일기도 했다.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그저 중화주의 탓인가?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에서 거세게 일어난 반한감정을 중국 민족주의 탓으로, 패권주의 욕망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단오절이나 침술 등 전통문화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이 중국의 전통문화 유산을 가로채 가고 있다면서 한국을 비난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분명 민족주의 차원, 문화 민족주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가 함께 공유했던 문화유산을 오직 중국만이 전유하겠다는 것은 편협하고 오만한 문화 민족주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혐한 정서를 그저 중국인들의 오만한 중화주의, 민족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또한 지극히 한국 민족주의적인 발상이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서 병폐 중 하나는 중국의 실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은 채 '중국은 원래 이렇다'는 본질주의적 인식을 토대로 현상을 연역해 모든 것을 거기에 때려 맞추는 것인데, 이 경우 역시 그러하다.

또한 중국이 기본적으로 중화주의와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라는 인식은 안일하고 구태의연한 냉전적 인식, 민족주의적 인식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언론들의 중국 관련 보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병폐는 여기에 있다. 모든 일을 중화주의와 연결시켜 해석하면 그만이다.

'위협적인 팽창 욕구'라는 고정관념

반한 정서의 원인을 두고 한국인들이야 당연히 할 말이 많겠지만, 중국인들도 할 말이 많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가 항용 그렇듯 중국인들의 반한 정서도 한국과 중국인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문제가 촉발되고 심화됐기 때문이다. 그저 중국인들만의 자가 발전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의 탓도 큰 것이다.

달리 말해, 중국의 반한 정서는 중국인들의 문제이자 동시에 우리 내부의 문제이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일, '반구저기(反求諸己)' 정신으로 우리의 허물을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공포감이 스멀스멀 퍼져왔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올림픽에 왜 그토록 목을 매는지, 올림픽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이 제국으로, 패권주의로 갈 것이라는 음모론에 더 기울어져 있었다. 문제아인 중국이 올림픽을 성공하면 한반도와 세계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과 우려 속에서 올림픽을 지켜본 것이다.

문화계 유명 인사들의 올림픽 참관기를 종합한 한 기사에서 "중국의 거대한 물질주의적 공연이 중국의 위협적인 팽창 욕구를 상징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했다"고 쓴 것은 저간의 사정을 상징한다.(<연합뉴스> 25일 기사 '중국의 비상 세계에 과시')

쓰촨 대지진에 '잘됐다'고 했던 네티즌들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한국의 이런 인식과 반응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이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애초 한국인들만큼은 그래도 베이징 올림픽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해주리라 믿었던 것 같다. 중국과 비슷하게 근대 이후 외세의 압박에 시달렸고, 88년 서울 올림픽은 그런 치욕과 고통의 근현대사를 마무리 짓고 세계무대의 일원으로 나아가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었기에, 적어도 한국인들은 서구인들과 달리 자신들이 치르는 올림픽을 축하하고 성공을 기원해 주리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중국인들은 그렇게 본다. 미국인들이나 프랑스인들이야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인들이 서구인들 보다 더 심하게 중국을 비난하고, 올림픽의 의미를 폄하하고, 심지어 방해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과거의 상처를 씻고, 100년 넘게 지녀 온 '열등생 콤플렉스'를 씻고, 정상국가로 나아가 세계와 정상적으로 만나는 계기가 올림픽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패권주의로 나아가려는 것이 아닌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보는데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이 든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이런 감정은 쓰촨 대지진 당시 일부 몰지각한 한국 네티즌들이 '잘 됐다'고 ' 이참에 중국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쓴 글들로 촉발된 중국인들의 분노와 결합되면서 반한 정서가 들불처럼 중국 인터넷에 번져 나갔다.
▲ 25일 방한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는 한류스타 이영애. 그러나 이같은 상징적인 이벤트만으로는 반한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청와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 원인이 다양하고 뿌리가 깊은 까닭에 대처가 쉽지 않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나 정부 차원만으로 될 일도 아니고, 장나라가 중국 노래를 부르고 이영애가 후진타오를 만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네티즌의 성숙한 의식과 언론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크게 보면,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인식이란, 중국을 보는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하는 것, 탈식민·탈냉전 시대에 걸맞은, 동아시아 시대에 걸맞은 눈으로 중국을 보는 일이다.

한국인들은 근대 이후 중국을 보는 스스로의 눈을 잃어 버렸다. 중화 체제에서 벗어나면서 일본의 눈을 통해 중국을 보았고, 현대에는 미국의 눈을 통해 보았다. 그러면서 중국을 악마로 만들고,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비하했다.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비하하기로 치자면, 그것도 매우 티 나게, 중국인들의 기분이 잘 상하도록 감정적으로 무시하기로 치자면 한국인들이 세계 제일이다.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중국을, 중국인을 깔본다. 일제 강점기에도 그랬고 중국을 '중공'으로 부르던 박정희 시대에도 그러했으며, 탈냉전 시대라는 지금도 그렇다. 우파도 그렇고 좌파도 그렇다.

한국인들 생각에 중국은 우리 보다 한참 아래 있다. 그렇게 우리 밑에 있는 중국이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를 추월할 것 같아서 요즘 한국인들은 불안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기울고 더 얕잡아 본다.
▲ 필자 이욱연 교수 ⓒ프레시안

한국인들의 이런 반중 정서가 바로 중국인들의 반한 정서의 토대다. 중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한편,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한국을 초월하고 마침내 한국을 위협할 것 같다는 공포감 때문에 중국을 악마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반한 정서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의 반중 정서부터 치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보는 우리의 눈을 갱신해야 한다.

중국과 같이 살지 않겠다고 작정하면 모를까, 앞으로 교류하면서 같이 살겠다면 그래야 한다. 미국의 눈, 일본의 눈으로 중국을 보지 말고, 냉전의 틀을 버리고 동아시아 공동체 시대에 걸맞게 중국을 보는 새로운 눈, 우리의 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중국 및 중국인들과 새롭게 소통해야 한다. 정부도 그렇고, 개개인들도 그렇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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