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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산, 남미는 뛰는데 한국은 '뒷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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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산, 남미는 뛰는데 한국은 '뒷걸음'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324> 안병욱 과거사위원장 남미 방문

철권통치의 상징이자 남미 극우파를 대표했던 군부가 정권을 잡고 공권력을 마구 휘두른 참혹했던 학살의 땅. 현재 민과 관, 피해자가족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고 있는 군정 당시 과거사 정리현장을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방문했다.

최근 안병욱 위원장을 대표로 한 전문위원 등 7명은 페루와 칠레,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들은 남미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과 사법부, 민간 인권단체 대표(NGO),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한국의 과거사 정리 과정을 설명하고 상호 협력과 지지를 약속 받았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시차 적응이나 미처 여독을 풀 시간마저 없이 마라톤 일정을 소화한 안 위원장 일행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만나봤다.

안 위원장은 "남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사를 덮거나 묻어두려고 하는 게 아니라 더욱 단계를 높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들을 사법 처리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면서 "한국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과거사 청산의지가 약화되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안병욱 위원장 ⓒ김영길

다음은 안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한국과 남미는 좌우의 대립, 그리고 군정 당시의 인권탄압이 과거사 정리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안 위원장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 본 한국과 남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한국은 멀게는 친일청산 문제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그리고 군부의 인권유린 사태 등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어 화해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미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선 남미는 정복군들, 다시 말해 무관들에 의해 주도된 건국문화가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곳 군부가 저지른 만행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됐다. 마치 중세 때의 마녀사냥이나 히틀러의 유대인 집단학살이 연상될 정도였다. 하지만 남미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며 시간이 갈수록 그 단계가 점점 높아진다는 점은 많은 교훈이 됐다. 또한 남미는 한국과는 다르게 과거청산위원회가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도 특이 할 만한 사안이었다. 나아가 남미 사법권은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반인륜적인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한국 검찰은 초창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공소권 없음을 내세운 점도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아주 기세 좋게 출발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사 청산 노력과 의지가 약화된 감이 없지 않다. 정치적인 환경에 따라 위원회의 힘을 빼고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방향 등이 그것이다. 반면 우리의 활동을 지원해주고 있는 민간 인권단체들은 우리의 활동에 힘을 더 실어주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강해진 측면도 있기는 하다.

금년 초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과거사위원회를 통폐합시키려는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한 것도 우리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이다. 물론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유보된 상태지만 연말 정기국회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가 과거사위의 향후 진로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 페루는 좌우의 대립보다 민족정기와 정통성 되찾기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페루의 과거사 청산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나.

"페루의 과거사 진상위원회는 인권유린 사태를 조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구기능을 덧붙여 심도 있게 진실규명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나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수치와 오욕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성찰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역사의 도덕적인 가치관 확립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 칠레는 피노체트 사망 이후 과거사 청산작업이 단연 활기를 띄고 있는데 칠레 활동의 특이한 점은 무엇이었나.

"칠레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군부의 쿠데타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과거사 재조명이 군부의 재집권 예방 차원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과거사위원회는 상당수의 군정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었고,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보상도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다.

칠레는 가해자였던 피노체트가 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어 그야말로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부터 과거사 청산이 시작됐다는 점은 높이 살만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과 인권단체들은 과거사 정리가 미진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사망·실종자수를 축소했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이들은 우리를 향해 한국의 과거청산은 칠레처럼 대충대충 넘어가지 말고 철저하게 잘 하라는 충고를 특별히 강조하기도 했다.

칠레의 인권단체들은 군정 당시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 처벌과 보상 그리고 가해자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후 화해와 용서를 논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진실위 일행 ⓒ김영길

- 과거사 청산 작업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어떤가.

"아르헨티나에서 군정 당시의 희생자 숫자와 인권유린 사태를 청취하고 그 참상이 너무 잔인해서 20세기말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과거사 청산이 최절정에 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헨티나는 과거사 청산을 시작한지 25년여에 이르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지가 더욱 강해지고 있으며 한층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아주 강하게 받기도 했다."

- 짧은 기간 동안 마라톤 일정을 소화했는데 이번 남미 방문을 정리한다면?

"앞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과거사위 활동을 국내인권단체들과 피해자가족들의 후원과 지지만을 바탕으로 계속하기에는 한계에 부딪쳤다. 따라서 국제적인 지지와 후원을 염두에 두고 이번 남미 방문을 시작했다. 성과로는 한국의 당면 과제를 3개국 정부 당국자들과 인권단체대표들에게 설명하고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당국자들과 상호 과거청산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채결했다.) 또한 이들로부터 우리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약속 받았다.

우리 과거사위 그리고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정부기관들, 인권단체대표들은 21세기 전 세계의 인권신장을 위해 과거사청산 과정의 모든 문제점과 경험 등을 공유해 민주사회의 전환기에 있는 일부 아시아 국가와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다. 영국의 민주화 제도처럼 모범적인 사례로 길이 기억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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