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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그루지야 전쟁, 新냉전 불 댕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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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그루지야 전쟁, 新냉전 불 댕기나

[해설] 南오세티야, 동서 갈등의 격전장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전쟁을 시작한지 나흘째가 되면서 전황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의 주장에 따르면, 전장인 남(南)오세티야에서는 10일까지 민간인을 비롯한 2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난민은 2~3만명을 넘어섰다. 러시아는 10일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 인근을 폭격했고, 그루지야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면서 끝을 볼 듯한 태세다.

이번 전쟁은 그루지야의 자치공화국 중 하나인 남오세티야가 독립을 위해 벌이는 전쟁으로 그려지고 있다. 러시아가 친(親)서방 노선을 취하는 그루지야의 사카슈빌리 정권을 무력화하고 자신들의 편인 남오세티야를 독립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전쟁의 일면만을 보여 준다는 지적이다. 이 전쟁에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와 러시아 중심의 세력이 벌이는 신(新) 냉전의 대리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연자원을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의 각축전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 지난 9일 그루지아 트빌리시에서 80km 떨어진 고리 지역에 러시아가 폭격을 가한 뒤 한 그로지아 청년이 사망한 친척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그루지야와 남오세티야는 어떤 나라?

1991년 소련 해체로 분리된 그루지야는 소련의 마지막 외무장관 에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에 의해 10여년 간 통치됐다. 그러나 세바르드나제의 부정·부패와 독재에 불만을 품고 있던 국민들은 2003년 선거부정을 계기로 '장미혁명'을 일으켰고, 이듬해 1월 친미·친서방 노선을 취하는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36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끼어 있고 서쪽로는 흑해와 면해 있는 그루지야에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라는 두 개의 자치공화국이 있다. 이들 공화국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러시아계 인구가 70~80%를 차지하고 있고 아직도 러시아 선거권·시민권을 갖고 있는 등 친러시아 성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1991~2년 초반 그루지야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친미 성향의 사카슈빌리가 그루지야 대통령이 되면서 독립을 더욱 갈망하게 됐다.

러시아는 90년대 내전에 개입하며 남오세티야에 군대를 보낸 뒤 그루지야와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주둔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이름만 바꾼 뒤 사실상 군사적으로 이 공화국들을 장악해 왔다.

충돌의 불씨 던진 코소보 독립선언

이번 전쟁은 지난 8일 새벽 그루지야가 휴전 합의를 깨고 남오세티야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2월 17일 코소보가 독립선언을 하면서부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었고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놓여 있었다.

코소보 자치정부가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 등 서방권에서는 그를 지지했다. 하지만 코소보가 서방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 사태를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 사건'과 비유했다. 그만큼 휘발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단순한 반발에 머물지 않고 '서방이 코소보 독립을 지원한다면 우리는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독립을 지지하겠다'라는 논리를 펴면서 두 자치공화국에 병력을 증파했다. 그 와중에 압하지야 상공을 정찰하던 그루지야 무인정찰기가 격추되는 일도 벌어졌다.
▲ 그루지아 군대가 8일 남오세티아의 수도 츠힌발리에서 철수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지정학적 세력 다툼과 자원전쟁

이같은 갈등의 기저에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두고 벌이는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 싸움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10일 "러시아와 그루지야 당국자들은 이번 전쟁을 새로운 냉전식의 긴장과 동서간 지역 내 영향력 확보 투쟁의 맥락에 위치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체코와 폴란드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추진하면서 표면화된 미-러 신냉전이 그루지야라는 최전방 접촉면에서 파열음을 낸 것이다.

이같은 배경 하에 사실상 전쟁의 원인이 된 것은 그루지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추진이다. 서방 국가들의 안보기구인 나토는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그루지야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미 지난 2006년 나토는 그루지야에 '공고한 대화'(Intensified Dialogue) 상대 지위를 부여한 바 있다.

올 들어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6월 나토를 방문하고 7월에는 나토 함대가 그루지야를 방문하면서 러시아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루지야가 나토로 넘어가게 된다면 나토의 팽창이 심화됨은 물론이고, 그루지야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 흑해함대 관련 군사정보가 나토로 넘어가게 된다는 현실적인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전 대통령)가 10일 "나토에 가입하려는 그루지야의 열망이 다른 나라와 국민들을 핏빛 모험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에 더해 나토가 그루지야를 '접수'한다는 것은 곧 그루지야를 지나는 원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지배권이 서방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루지야에는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를 유럽으로 실어나르는 BTC(아제르바이잔 바쿠-그루지야 트빌리시-터키 세이한 연결) 송유관이 지난다. 또한 가스를 나르는 BTE(바쿠-트빌리시-터키 에르주름 연결) 가스관도 있다. 총연장 1776km의 BTC 송유관 중 그루지야 구간은 260km이고, 수도 트빌리시를 통과하며, 남오세티야 구간도 100km에 달한다. BTE 가스관 역시 비슷하다.
▲ 지난 7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는 사카슈빌리 그루지아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사카슈빌리의 무모한 도박?

러시아군과 그루지야군은 지난 1일부터 소규모 교전을 하다가 7일 밤 휴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그루지야군이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본격화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루지야를 공격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러시아가 수개월에 동안 그루지야 전역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전투에서 총을 먼저 쏜 쪽은 그루지야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전쟁의 책임에 대해서는 시각이 나뉜다. 서방과 나토 쪽에서는 물론 러시아가 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토 대변인은 9일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무력 충돌을 종식하기 위한 협상은 그루지야의 영토를 존중하는 것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태는 러시아 책임이며 러시아군의 철군이 협상의 전제조건이라는 게 나토의 입장이다.

반면 러시아는 자신들이 전쟁에 뛰어는 게 아니라 남오세티야에 주둔중인 자국 평화유지군과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를 취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특히 그루지야군이 남오세티야에서 러시아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저질렀다며 진격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전쟁이 시작된 8일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를 무력으로 탈환하려는 것은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무모한 도박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야망에서 전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런던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제임스 닉시 연구원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사카슈빌리가 서방국에 심은 명망이나 러시아가 도발할 때마다 종종 보여주었던 자제심으로 모두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라며 "그가 전쟁을 시작한다면 서방의 많은 친구들을 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루지야, 신통찮은 미국 반응에 일단 '후퇴'

사카슈빌리의 '배후'에 있는 미국은 그루지야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러시아와의 대립각을 세웠다. 곤잘로 갈레고스 국무부 부대변인은 "우리는 그루지야의 영토 통합을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잘마이 칼릴자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10일 러시아 정부가 그루지야의 정권 교체를 꾀하고 있다며 "절대 용인할 수 없으며, 한계를 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사실상 미국을 대신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루지야지만, 미국이 직접적인 군사 원조를 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당장에는 지지 발언 이상 나올 게 없다는 것이다. 그루지야 당국과 접촉했지만 지원 요청이 없었다고 선수를 치고 나선 미 국방부의 태도는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 러시아에 의해 폭격당하고 있는 그루지아 고리 지역 ⓒ로이터=뉴시스

사카슈빌리가 10일 러시아에 휴전 협상을 제안하며 전날 장악했던 츠힌발리에서 군대를 철수시킨 것은 신통찮은 미국의 반응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에 더해 자국 병력의 50배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반격, 또 다른 친러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의 그루지야군 공격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것도 휴전을 제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휴전 제안서를 접수했다고 확인하면서도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이에 러시아군이 공격을 중단하면 휴전협상에 응하겠다는 사카슈빌리의 말을 일축, 그루지야군의 무조건적인 철수만이 휴전의 조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루지야가 무조건 군대를 철수시켜야 하며 남오세티야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공식 문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가 이참에 남오세티야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그루지야의 친서방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볼모'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서의 평화유지군 주둔을 지속시키고,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하는 한편, 사카슈빌리 정권을 강하게 흔들어 보겠다는 시나리오 등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남오세티야에서 민간인 수천명이 인종청소를 당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사카슈빌리를 전범(戰犯)으로 몰아붙이겠다는 포석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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