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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디지털게릴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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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늙은 디지털게릴라의 노래

[촛불의 소리] 촛불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촛불항쟁이 6.10, 7.5집회로 정점을 이루었다가 또 하나의 기로에 처해 있는 것 같다. 6.10 이후의 강경 진압 국면은 천주교 사제들의 시의적절한 참여와 목사 승려 등 종교계의 합류로 7.5집회를 맞이했다. 촛불이 애초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중고생과 디지털게릴라로부터 출발했듯이 촛불은 7.5 이후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에 필자의 단상들을 생각이 가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돌이켜보면 기이한 것 투성이다. 먼저 이명박정권과 같은 극단적 정권이 성립된 것이 그러하다. 디지털게릴라들의 선도하에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두달여 동안 촛불 들고 나서는 것도 역시 기이하다. 그리고 최근 정권과 조중동이 그 촛불 든 이들을 폭도로 몰고 강경진압하고 원천봉쇄하는 것도 기이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러한 중대한 국면에서 대부분의 기성세대와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점이다. 대학가와 길거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식의 문건들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정말 의아하다. 혁명을 꿈꾸던 그날의 투사들은 어디로 갔는가? 여차하면 배후로 몰릴 것 같아서, 교과서에도 없는 전혀 생소한 국면이라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이미 체제에 포섭되고 보수화된 탓일까?
  
  우리 현대사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압축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변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공동체 운명이 결정되는 격동기가 몇 차례 있었다. 요즘과 같은 격동기의 하루는 평상시의 한 달에 상당할지도 모른다. 촛불항쟁은 과연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일까?
  
  두달여 동안을 쉼없이 타올랐던 촛불항쟁은 무엇일까? 촛불항쟁은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시대 혁명, 즉 21세기식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국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압축적 경제성장의 역사가 있었기에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폭발적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있었기에 촛불은 거세게 타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역사적 전례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 '시민광장' '집단지성' '시위2.0'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촛불항쟁의 역사적 실험이 가능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며 또 한국적 특수성을 넘어 지구적 보편성을 띨 수 있을지도 확언할 수 없다.
  
  이러한 촛불항쟁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촛불항쟁은 이미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쇠고기 추가협상을 강제했고,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개편을 강제했고, 정권의 독선과 질주를 견제했고, 조중동의 신뢰도와 경영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미FTA의 위험성을 환기시켰고, 대중들을 주체의식화시켰고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대통령을 두 번이나 머리 조아리게 했던 것이 촛불의 위력을 상징한다. 아직도 촛불항쟁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디지털게릴라들은 21세기판 인텔리겐챠
  
  촛불항쟁이 진전됨에 따라 다종 다양한 이들이 촛불행진에 참여했지만 그 선봉이자 핵심주체인 디지털게릴라들이 필자의 주목 대상이다. 이들 디지털게릴라들이 21세기판 인텔리겐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20세기 변혁의 중심에 인텔리겐챠가 있었다. 그런데 21세기에 한국에서 디지털게릴라들이 전격적으로 등장하여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생들 중심의 인텔리겐챠들이 오프라인의 학교를 기반으로 결집되고 의식화작업을 했다면, 디지털게릴라들은 온라인의 토론광장과 커뮤니티들을 기반으로 결집되고 의식화되어 실천적 지성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의 인텔리겐챠들은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연소한 인텔리겐챠들은 인생과 생명을 걸고 권력의 일탈을 견제하고 편협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공동체 전체와 대의를 위해 기꺼이 복무했다. 21세기 촛불 국면에서 촛불을 들고 난데없이(?) 등장한 디지털게릴라들이 그 계승자일지도 모른다. 주사파 같은 극단적 분파가 등장하고, 인터넷 괴담이 순식간에 퍼지는 등의 부정적 측면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양자는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물론 많다. 여기서 그것을 자세히 논할 여유가 없다.
  
  다만 디지털 게릴라들의 경우 과거와 마찬가지로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 구성에서 대학생 구성보다 덜 폐쇄적이고 보다 풍부한 정보와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선각자이며 실천적 지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적어도 참여 개방 공유의 문화에 익숙한 21세기의 디지털게릴라들이 20세기의 대학생보다 덜 신뢰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대부분의 후발국에서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역사에서 그 인텔리겐챠들의 역할은 지대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불안한 시선으로 대학생들의 시위를 지켜보았듯이 촛불을 든 디지털게릴라들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필자 역시 기성세대로서 그러한 불안한 시선을 떨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결국 촛불을 선도한 디지털게릴라들을 보다 적극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잠정 결론에 이르렀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광풍하에 보수화되고 정치적 무관심이 더해가는 현실에서 디지털게릴라들의 역할을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게릴라들의 선도적 투쟁이 없었다면 촛불항쟁은 없었을 것이고 이명박정권의 독선과 질주에 분노하면서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아야 했을 것이다. 촛불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명박정권의 질주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력이다. 그 촛불을 선도할 디지털게릴라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사명은 실로 막중하다.
  
  디지털시대 항쟁은 여론싸움이다
  
  디지털게릴라들이 선도하는 촛불은 이명박집권기 동안 자주 거리를 밝힐 것 같다. 그것은 물론 특정 정권기에만 존립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게릴라들은 선봉대, 시민행동대, 나아가 시민권력으로서 상당 기간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 같다. 대학생들이 학원을 중심으로 의식화작업을 하다가 유사시에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듯이, 디지털게릴라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학습하고 의식화작업을 하다가 유사시에 촛불 들고 거리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 대의에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共鳴(공명)하면 촛불의 바다가 연출될 것이며 또 공명을 얻지 못하고 초라한 촛불로 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디지털게릴라만으로 선봉대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그 과도기에 있으며 중요한 승부는 아날로그식으로 이루어진다. 디지털 투표가 도입되기까지는 아날로그식 붓뚜껑 투표가 필요하며 또 아날로그식으로 촛불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
  
  촛불항쟁에 다양한 집단이 참여했듯이 다양한 성격이 중층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촛불항쟁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결의 측면도 있으며, 20세기 가치와 21세기 가치간의 세기적 대결의 측면도 있고 한편 20세기의 오래된 대립구도도 함께 병존하고 있다.
  
  20세기 우리 역사는 4대 핵심 가치(민족 민주 성장 평등) 중 '성장' 중심의 주류이데올로기가 압도했다. 식민주의, 반공주의, 개발독재 등과 같이 성장을 위해 다른 가치는 존립조차 거부당했던 극단의 시대였다. 87년 이후의 민주화는 그 '성장'이란 가치의 배타적 지배가 부분적으로나마 상대화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에서 상징되듯이 이명박 정권의 성립은 그 부분적 상대화마저 되돌리고자 했다. 성장을 위해 식민과 독재의 역사마저 적극 평가될 지경이다. 정권이 바뀌고서야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정권이 불러올 가공할 위험들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디지털게릴라들이 선도한 촛불대열에 20세기의 비주류적(성장 외의 가치들) 흐름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세기 아날로그 세대는 어느 쪽이든 촛불 국면에서 혼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성장지상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특히 그러한 것 같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적은 광우병 괴담과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자주의식 때문에 대의(성장-한미FTA, 안보-한미동맹)가 내팽겨쳐지는 사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일회담시에 경제 성장을 위해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마저 포기했고, 월남전에서 무수한 젊은 생명을 바쳤던 과거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경제 살리라며 압도적으로 지지해준 국민들의 상당수가 몇 달만에 지지를 철회했다는 사실을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사람들이 건강과 생명에 얼마나 민감한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장과 경쟁력을 절대시하고 '잃어버린 10년'식의 극단적 인식과 정책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위 보수와 주류들이 그런 과거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사태를 방송과 언론의 선동과, 일부 불순세력의 배후 조종과, 인터넷상의 괴담 탓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서둘러 그리고 무리하게 공영방송과 언론을 장악하고, 배후론 색깔론 폭력론으로 불순세력의 개입을 차단하고, 인터넷실명제와 종량제를 통해 디지털게릴라들을 제압하려 한다.
  
  가치와 이해는 충돌하기 마련이고 이 충돌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상호이해와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촛불항쟁 사태도 이러한 소통의 부재에서 초래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소통을 말하지만 진정한 소통이란 쉽지 않다. 특히 언론이 그 소통의 매개자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주류 언론(조중동)은 그 소통의 매개자 역할을 아예 포기했다.
  
  디지털시대 항쟁은 장기전이고 여론전의 비중이 막중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명박정권이 언론 장악을 서두르고 조중동이 적극 가세하면서 촛불항쟁에서 언론전은 최전선이 되고 말았다.
  
  촛불과 조중동의 사투
  
  과거 예를 보면 항쟁의 막바지 단계에는 다음과 같은 양상들이 나타난다.
  
  1)길 막히고 장사 안된다며 시위대를 욕하던 거리의 시민들이 어느 순간에 시위대를 숨겨주고 박수 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2)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던 언론이 어느 순간에 시위대 숫자를 부풀린다.
  3)전국적 규모로 시위가 확산되면서 경찰력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계엄령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4)지배권력내의 내분 조짐이 나타난다.
  
  현재의 조건은 어떤가? 1)의 조건은 이미 충분한 것 같다. 2)의 조건은 쉽지 않다(후술). 3)의 조건은 비폭력 촛불시위라는 본질을 감안할 때 기대하기 어렵다. 4)의 조건은 정두언의 반란이 있었지만 곧 잠재워졌다.
  
  앞서 살펴본 대로 디지털과 민주화이후 시대의 촛불항쟁은 근원적으로 장기전이다. 누구도 상대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론전이 승패를 좌우한다. 여론싸움에서 2)의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방송과 소수 종이 신문 그리고 인터넷은 촛불에 대체로 우호적이지만, 조중동은 촛불에 단연코 적대적이다. 조중동은 6월 10일 대첩을 앞두고 촛불에 대한 적대성을 보다 분명히 했다.
  
  4.19 당시 불탔던 서울신문은 정부 기관지였다. 현재 조중동은 형식상 정부기관지는 아니지만 사실상 정부기관지격이다. 최근 국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조중동은 정부기관지 차원을 넘어서서 정권의 배후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지경이다. 조중동이 완강히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정권은 아직 건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중동은 정언유착의 수혜자이기도 했지만 부분적으로 정치권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항쟁의 마지막 순간에는 조중동도 항쟁의 편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조중동은 정치권력의 피해자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조중동은 이명박 정권을 세우는 데 일등 공로자이다. 광우병 쇠고기 국면을 통해서도 그 위선이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 그래서 촛불항쟁 과정에서 조중동은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극히 제한적이고 절제된 형태였지만 촛불항쟁 과정에서 조중동은 유일한 타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과거에 조중동은 시위의 폭력성을 강조하고 시위대를 폭도라고 매도하기도 했지만,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라고 차마 선동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구나 두달 동안이나 비폭력 기조를 견지해온 촛불시위대에 대해, 연일 그 폭력성을 부각하면서 공권력의 강경 진압을 앞장서 주문하고 있다. 시위대 숫자를 부풀리기는커녕 시위대 숫자를 축소하기에 애쓰는 모습이 역연하다.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원칙도 내팽개친 그 지면들은 곧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조중동은 시위대로부터 치명적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4.19 당시에 어용지 서울신문이 불탔고, 광주항쟁 당시에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한 방송국들이 불탔듯이.... 그러나 촛불은 신기하게도 극도의 자제심을 발휘했다.
  
  최근 조중동의 지면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광고가 줄어드니 지면이 줄어든 것이리라. 촛불은 조중동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물론 경영 측면에서도 과거 정권들이 가한 타격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것은 후퇴할지도 모르지만 방송 언론 장악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또 조중동도 촛불과의 결사 항전을 택했다. 따라서 이명박정권과 조중동은 그 운명공동체가 되었고 그 결합은 더해질 것이다. 실제로 바리케이드는 청와대만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앞까지 연장되었다. 상당기간 동안 촛불항쟁의 최전선은 언론 부문에서 형성될 것이고, 촛불은 언론사 주변에서 타오르게 될 것이다.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과 KBS사장 정연주의 거취가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명박의 극약처방: 재신임 국민투표
  
  일각에서 탄핵과 주민소환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 권한인데 현 국회의 구성을 감안하면 전혀 현실성이 없다. 주민(국민)소환제법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그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쇠고기협상에 대한 국민투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쇠고기협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재신임국민투표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재신임 국민투표가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다. 노무현탄핵판결 당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안에 대한 결정' 즉, 특정한 국가정책이나 법안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본질상 '대표자에 대한 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재신임 국민투표가 위헌 소지가 있지만 어떤 정책이나 중대 사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면서 재신임을 결부시키는 사실상의 재신임 국민투표는 최후의 카드일 것이다. 그런 전례도 있다.
  
  박정희는 1969년 삼선개헌안 국민투표(10월 17일)를 앞두고 특별담화(7월 25일, 10월 10일)를 통해 자신의 신임을 결부지었다. 그리고 유선헌법 반대에 대응하여 1975년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2월 12일)를 앞두고 특별담화(1월 22일)를 통해 신임과 결부지었다. 자신의 신임을 연계함으로써 3선개헌안과 유신헌법에 대한 찬성을 강제하기 위한 변칙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재신임이 아니라 쇠고기 협상과 같은 중대 현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면서 사실상의 재신임과 결부하면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노무현 재신임 해프닝 과정에서도 재확인된 것이지만 국민투표는 일반적으로 현 집권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국민투표는 정당성과 신뢰를 잃은 권력자들이 취하는 위기 돌파 수단이기도 하다.
  
  한번 잃은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번이 촛불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상당 기간 동안 국내외적 어려운 환경을 감안하면 추락한 지지도를 만회할 신통한 대안 역시 없다. 또한 재신임 국민투표는 촛불로 나타난 직접민주주의적 요구를 수용한다는 명분도 있다. 하지만 재신임 국민투표는 어느쪽에게나 극약처방이다. 필자는 그것이 촛불에게 더 극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화될 국내외적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권력이 유사 파시즘적 조치들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신임 국민투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재신임 국민투표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될 필요가 있다.
  
  지도부 개편 논의에 부쳐
  
  7.5 이후 촛불의 방향을 둘러싸고 새로운 모색의 뉴스들이 들려온다. 정권의 강경 탄압, 촛불의 피로도와 대책회의의 기획과 지도력의 한계 등등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리라. 내부 논의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주저되지만....
  
  지도부는 필요하다. 광우병대책회의가 대표성을 별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도성도 발휘하지도 못했지만 제 역할을 나름대로 감당해주었다. 7월 5일 촛불은 다양한 집단이 참여한 퓨전 촛불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을 선도한 디지털게릴라들의 지도부 참여도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제도권 정당의 참여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 실제로 역대 항쟁들과 달리 촛불항쟁에서 제1야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새로운 지도부와 연대의 틀을 꾸린다고 하더라도 쇠고기문제로 국한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쇠고기 문제외의 여타의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감당하는 범국민적 연대기구는 그 참여 폭을 제한시킬 것이며, 촛불의 성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한 지도부 구성은 구시대의 운동방식을 답습하는 것이며 또한 쉽게 낙인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책회의가 선정한 5대 사안들은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각각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5대 사안을 포함한 중대 사안들이 현안이 되었을 적에 각 사안별로 대책위 등이 꾸려지고 그 대책위들의 공조틀만 비공식적으로 마련하면 족하다.
  
  지도부는 디지털시대에도 필수적이지만 그 지도성은 아날로그 시대의 지도성과는 달라야 한다. 개인과 커뮤니티 각자가 사실상 주체이고 지도부이다. 지도부는 광우병 대책회의가 감당해왔던 식의 상징적 지도부 역할만 감당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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