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영국의 <데일리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오바마 의원이 자신의 지원을 받으려면 "내게 굽실거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분노와 함께 인색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7일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경선 과정에서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첫 공동 유세에 나서 "빌 클린턴과 힐러리는 민주당과 미국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으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 참석하는 대신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90회 생일 행사를 택했다.
앞서 지난 17일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직접 발표하는 대신 대변인 성명으로 "오바마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일을 요청받았고, 할 수 있는 일을 분명히 할 것"이라며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오바마가 당선을 위해 '클린턴 가문'에 영혼을 팔고 있다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바마가 힐러리 후보 진영이 경선과정에서 진 부채 2000여 만 달러 상환을 돕겠다면서 지지자들에게 힐러리 캠프에 후원금을 기부해줄 것을 호소한 것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진보성향의 논객 데이브 린도프는 웹진 '커먼드림스'에 기고한 'Primary Over, Hillary Won'(원문보기)이라는 칼럼을 통해 오바마가 경선에서 승리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면은 힐러리로 변했다며 '미국의 변화'를 가져올 차기 대통령 자격에 대한 우려를 토로했다. 나아가 '클린턴 가문'과 닮아가는 전략으로는 대선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오히려 적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오바마는 힐러리의 예쁜 포장지"
경선이 끝났지만, 분명한 승자는 힐러리 클린턴이다. 물론 버락 오바마가 더 많은 표와 대의원 과반수를 획득해 오는 8월 민주당 후보로 지명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예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그 포장지 안을 살짝 들여다 보면 힐러리 클린턴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이 끝나자마자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이스라엘을 위한 강력한 로비단체)로 달려가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한 약속들은 너무 역겨워서 오바마가 아니라 부시나 힐러리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범죄적이고 비정상적인 이스라엘의 우익 정부가 추구하는 최악의 정책과 행위들에 대해 맹목적인 지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오바마도 이스라엘은 무서워' )
'유태인 국가'를 위한 예루살렘 전체가 필요하다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수백만 명이 굶주림과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더도 좋다는 건가? 핵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혹시 핵무기를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이유로 이란을 공격하자고?
미 의회가 최근 FISA(해외정보감시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법은 부시 행정부로부터 영장 없이 미국 내 외국인 시설에 대한 도청을 지시받은 통신업체들을 소급 적용해 면책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런 개정안이 헌법을 파괴하는 입법이라며 반대한 15명의 상원의원(모두 민주당)이 있지만, 오바마 상원의원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함께 이 법을 지지했다.
최근 잇따라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온 미국 연방대법원이 아동 강간범에 대한 사형선고를 허용한 주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을 때, 오바마는 아동을 강간한 자는 누구든 죽일 권리가 주법으로 승인되어야 한다며 사형제를 옹호하고 나섰다. 살인은 아동 강간 못지 않게 추악한 행위인 만큼 오바마는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사형제에 대해서도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과 입장이 같은 셈이다.
미국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색인종이며, 현재 사형수 4000여 명 거의 대부분이 극빈층, 정신지체자 또는 단순한 정신이상자들이라는 것은 문제삼지 않고 있는 것이며, 강간은 잘못 기소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범죄 유형 중의 하나라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오바마의 말바꾸기
오바마와 힐러리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어떻게 입장이 다른지도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고 있다. 당초 오바마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16개월 내에 이라크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군 지휘관들의 의견을 들을 것"이며, 철군은 현지 상황에 따라 달렸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오바마는 기업의 지원을 별로 받지 않고도 수많은 개인들로부터 소액 기부와 지지를 이끌어내며 전국적인 경선을 치러낸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으나, 이제 힐러리가 빠진 더러운 기업 후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머지않아 오바마는 월가의 은행과 헤지펀드, 통신기업, 군수업체, 거대제약회사, 유전자조작식품 산업, 연예산업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때묻은 돈에 탐닉할 것이다.
오바마, 기업정치의 앞잡이로 전락한 또다른 정치인 되나
변화를 위한 서민의 후보로 혜성처럼 나타났으나, 기업정치(corporatocracy)의 앞잡이로 전락한 또다른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완성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육체를 빌어 힐러리가 이긴 꼴이 될 것이다.
오바마의 내면이 힐러리가 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힐러리 자신에게도 승리를 안겨주지 못한 것에서 보듯,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이긴 것은 힐러리와 다른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당시 로스 페로가 아버지 부시의 표를 갉아먹어준 덕분이었다. 올해 대선에서 오바마는 그런 요행을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다. 오히려 녹색당 후보나 랠프 네이더 등이 출마해 오바마에게 실망한 표들을 흡수할 것이다.
또한 어떤 후보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공약으로 오바마를 지지했다가 실망한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환멸을 느껴 투표장을 찾지 않는 유권자들도 늘어날 것이다.(앨 고어 역시 클린턴 식의 선거전략을 취하며 '주류' 유권자들의 표까지 노리다가 다 이긴 대선에서 부시에게 패배했다)
오바마가 진보성향의 유권자 표를 희생하면서까지 경선 때 힐러리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를 얻으려 하고 있지만, 그들이 오바마가 힐러리의 입장을 취했다고 해서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진짜 거래를 원하기 때문에 만일 힐러리가 경선에 승리해 본선에 나왔다고 해도 존 매케인에게 표를 던질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상황이 유리한 후보가 갑자기 왜 믿기 힘들 정도로 어리석은 전략을 취하려 드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것은 오바마가 대선 승리를 위해 클린턴 지지자들을 너무 많이 끌어들였거나, 기존의 선거전략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의 '단합'을 호소하면서 오바마는 한때 그가 지녔던 영혼을 팔아버렸다. 그는 적을 만나서 그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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