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부실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경제정책에 대해 훈수를 받는 신세가 됐다. 최근 중국 고위관료들이 공개적으로 미국의 관료들에게 경제정책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중국처럼 보다 강력한 정부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관료들은 경기침체를 면치 못하는 미국이, 가공할 정도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무슨 자격으로 가르치려 드느냐고 반박했다. 이들은 오히려 미국식 모델보다는 중국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이 우월하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17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이에 대해 "얼마 전만 해도 중국 관료들은 미국 관료들을 만나면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면서 격세지감을 전하기도 했다.
"미국의 부실한 경제정책, 세계 경제에 고통 초래"
<IHT>에 따르면, 중국 관료들은 최근 각종 국제무대에서 미국 관료들을 만날 때마다 "미국 정부가 시장 규제를 제대로 못해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초래했으며, 달러화 가치 하락을 방치해 다른 나라들에게 고통을 전가시키고 있다"면서 더 이상 유가와 식량 위기가 악화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 변화에 대해 <IHT>는 "부시 행정부가 레임덕에 빠지고, 이라크 전쟁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된 탓에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 틀림 없다"면서 "중국 관료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부시 행정부의 대응과 최근 쓰촨 대지진에 대한 중국 군대의 신속한 동원을 비교하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미국의 대내외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하며 중국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중국의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는 "미국과 미국의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바닥으로 추락했다"면서 "리스크 관리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중국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료도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서구식 정책은 재검토 대상"이라면서 "시장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정부의 규제 역할을 소홀히 하는 비뚤어진 인식이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원"이라고 일갈했다.
중국 정부도 물가 상승 등 여러 가지 경제문제로 고심하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학자들은 중국 정부가 자신감을 가질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국유은행들의 부실에 대해 중국 정부는 부실채권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리스크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등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으며, 미국의 은행들보다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중국의 금융체제는 보다 강력한 규제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스스로 주창해온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보호주의에 치우쳐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주요 기업을 중국 자본이 인수하려 할 때 미 의회가 제동을 건 사례들을 거론하며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중국의 공격적 태도, 자신감의 발로인가 전략적 대응인가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는 현상에 대해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폴슨 장관은 "미국의 정책에 대한 중국의 비판은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경제적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면서 "무역과 환율, 자본 이동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니콜러스 라디도 중국의 공격적 태도가 국가적 자신감이 높아진 결과이기보다는 미국 경제를 포함한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한 대응책으로 분석했다.
<IHT>는 "이런 분석이 맞다면, 중국은 자만감의 함정에 빠지는 신세를 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1980년대 일본이 미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난하다가 정작 경기침체에 빠져 지금까지 헤어나지 못한 사례에서 보듯 중국 정부가 주제 넘게 훈수를 두다가 일본 꼴이 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둔화에 따른 타격을 조만간 뼈저리게 느끼고, 결국에 가서 미국 경제는 여전히 정상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해 왔다.
중국의 한 경제학자도 "중국이 예전보다 자신감이 많아지고, 중국 경제에 대해 중국 국민들의 자부심도 높아졌지만, 도취감에 빠져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에 도전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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