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이 쌓은 금자탑(?)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세력의 대정부 비판 단골메뉴 중 하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수호하란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및 좌파세력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권위주의와 정경유착, 권언유착 등 정실자본주의에 익숙했던 세력이 특별히 뼈를 깎는 노력도 없이 순식간에 민주주의와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체화시켜 버린 듯 했다.
그들은 인권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인권 존중은 권위주의와 반비례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있어서, 또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지고의 가치이기도 하다. 평생 권위주의만 보고 자란 사람이 순식간에 인권을 존중하는 인권운동가가 되기는 신의 계시를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권력이 가져다주는 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떻게 신의 계시를 받아 다시 태어났는지 전혀 밝혀진 바 없지만 지난 10년간 순식간에 치열한 인권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이들은 북한이 주제가 되면 언제나 인권문제에 정열을 쏟는다. 보수세력에게 인권관련 교과서나 고전 등이 필독서가 되었거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특히나 아동과 장애인 등의 권리는 이들에게 인권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지만,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순식간에 이들은 세계무대에서 인권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또 있다. 정치지도자의 도덕성과 공적인 책임감, 준법정신 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가치다. 지도자는 능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강요되지 않는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이러한 가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정치지도자는 모래위에 지은 성에 사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능력과 운이 따르지 않으면 바로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보수와 보수 언론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준의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 그리고 준법정신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위장전입, 표절, 음주운전 등의 기준에서 고위 공직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와 도덕성이 서구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구나 싶어 기뻤고,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갖고 있는 정당이, 그리고 수많은 부패로 점철되었던 보수가 지난 10년 안에 이렇게 깨끗해질 수 있었구나 싶어서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만든다.(이를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라고도 한다) 앞에서 한 말 다르고 뒤에서 한 말 다르면 도대체 그 지도자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언제 생각을 바꿀지,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고는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보수 세력은 지도자의 신뢰성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지도자가 국내에서 한 말과 해외에서 한 말의 차이, 후보자 시절 했던 말과 당선 이후 한 말의 차이, 지지층들에게 한 말과 국민 앞에서 한 말의 차이 등을 밝혀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사회적 신뢰에 대하여 가열차게 강조해 왔다. 사회적 투명도가 높아진 사회에서 공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터인데, 통제에 익숙한 한국의 보수가 어느덧 신뢰의 문제에 이렇게 자신을 갖게 된 것을 보고 적잖은 기우도 갖게 되었다.
친박세력만 포용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나?
그랬던 보수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20%가 안 된다. 보수는 이상하다고 놀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 이유를 진보와 좌파세력의 준동에서 찾고 싶은 모양이다. 누가 그런 조언과 분석을 해 주는 것인지, 잃어버린 10년 동안 책사도 많이 잃어버린 모양이다.
보수여, 한번 잘 생각해 보시라. 위에서 말한 네 가지에서 과거 정부보다 잘 하는 게 단 하나라도 있는지. 아니 질문이 잘 못되었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에 대해 지금 뿌리부터 망쳐놓고 있지 않은 게 단 하나라도 있는지. 국민은 단순히 실망하고 있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와 국민들에게 반하는 정부에 분노하고 있고, 쉽게 말해 꼴도 보기 싫은 것이다.
국민들은 새로운 보수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준다고 해서, 국민의 살림살이가 모두 나아질 것 같아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찾아준다고 해서, 그리고 그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지고의 가치를 찾아준다고 해서 못 미더웠지만 한번 지켜보았다. 인수위 시절은 한참 정신없이 인수인계하는 시절이고 아직 정권이 다 넘어온 것도 아니니까 조금 시원치 않아도 참아 주었다. 처음 100일은 허니문 기간이니 그래도 한 두 달은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나 보수세력이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열을 올려 지켜야만 한다고 외쳤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불과 100일도 안 되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론은 통제되기 시작하고, 시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시민을 두들겨 팼다. 국민이 먹거리로 불안한데 니들은 무식하다고 깔보기 시작했고, 배후와 주동자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비밀리에 협상을 하고, 한반도를 다 파헤치는 대형공사도 은밀히 추진한다.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한다고 어린 학생도 조사하고 위협한다. 그리고 아무리 국민이 앞날을 걱정하고, 얻어터져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는 친박세력과 영남보수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완성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순간 보수는 공정경쟁이 시장경제의 기본이 아니라 그냥 시장만 있으면 시장경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강자가 이기면 그게 경쟁의 결과고, 약자는 경쟁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약한 놈 다 죽일 걸, 한 둘이라도 건져주는 것이 시장이니 찍소리 말라'고 한다.
독점을 방지하고, 시장의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제와 감독 기능을 마냥 풀어주면 대기업과 재벌이 독점을 만들 것을 다 알면서도 그게 바로 '자유로운 시장경제'라고 주장한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게 바로 이러한 무정부상태의 정글에서의 경쟁이라고 주장한다.
일관성이 없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문제
순식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침을 뱉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통제 당하기 시작했고, 무시 당하기 시작했고,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시장도 서민이 아니라 대기업을 위한 시장이 되었고, 누가 봐도 뻔한 몇 사람만 좋아지는 대형공사, 민영화를 밀실에서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추진하고 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수호신이라고 선전했는데, 물론 믿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파괴하니 어떤 국민이 가만히 있겠는가?
인권에 대한 자발적 존중은 바랄 수조차 없다. 증거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외국의 눈과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눈이 없으면 언제라도 자국민의 인권을 짓밟을 것 같다. 지금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공권력 집행의 책임자가 인권에 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국민에 대해 불법적 폭력행사를 용인하는 책임자의 문책과 사과없이 인권침해에 침묵하고 있다. 이들에겐 북한의 인권만 있고 국민의 인권은 없나보다.
그들이 도덕성과 청렴도의 기준을 그야말로 선진국의 수준으로 높여 놓았건만 알고 보니 그 기준에 맞는 사람들은 자신들 중에서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다. 아예 처음부터 높이지를 말거나, 아니면 그 만큼 자신있게 스스로를 추스렸어야 했는데 정권을 잡으니 완전 안면몰수다.
위장전입, 표절 정도는 '청렴'한 것으로 존경받을 만한 수준이다. 웬 의혹이 그렇게 많고, 웬 불찰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위에서 준법을 못하고 법치주의를 무시하니 국민에게 영이 서질 않는다. 존경받지 못하면 경제를 살리는 능력으로라도 승부해야 하는데, 1970년대의 능력으로 21세기 경제를 대하고 있으니 능력 발휘는커녕 모래성이 무너지고 있다.
말의 앞뒤가 맞는 일관성과 신뢰의 문제는 불과 100일이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일관성과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거짓말의 빈도를 줄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속이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인수위 때 했던 발언도 한 적이 없다느니, 무슨 말만 하면 오해라느니,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도 계속 위증만을 일삼아 결국 거짓말이 탄로났다.
강경진압도 안 들키게 하면 된다. 이상하면 언론에 엠바고를 걸고, 상대가 생트집 잡는다고 한다. 괴담과 유언비어가 돌아다녀서 그런 것이고, 좌파와 배후가 준동한다는 3류 소설을 쓴다. 안 되면 다 지난 10년 동안의 무게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한다. 왜 그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지, 왜 이렇게 스스로의 능력을 자백해야 하는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보수 신정권의 이 모든 한심함은 하나로 요약된다. 그건 바로 '아무렇게나 한다'이다. 말도 아무렇게나 했고, 분석도 아무렇게나 했고, 일도 아무렇게나 했고, 인사도 아무렇게나 했다. 이 모든 것이 권력만 있으면 가려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보수언론에게도 묻고 싶다. 그들도 보수 정치세력에 속았던 것인지? 정녕 이 '아무렇게니즘'에서 가장 자유롭지 않은 세력이 누구인지? 이번 정부의 대응과 보수언론의 시대를 못 따라가는 사고를 보면서 참으로 앞날이 걱정된다. 물론 야당도 별로 희망이 없다. 보수세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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